소설리스트

286화 (286/615)

286화 전쟁이 끝나고 (2)

헨더슨의 아내.

클로에는, 당장에 눈물을 쏟아 낼 것만 같은 눈빛으로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사진을 바라보았다.

“……나쁜 사람.”

헨더슨과 클로에.

둘은 평범한 평민이었다.

로렌스에서 태어난 헨더슨은 또래 아이들이 그렇듯, 어린 나이에 자연스럽게 농사일을 도우면서 남들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다.

클로에와의 결혼도 일반적인 범주에 포함되었다.

특별히 사랑해서 결혼했다기보다는, 빠르게 안정을 찾길 바라는 부모님의 권유로 클로에를 만났다.

그리고, 서로를 받아들였다.

애를 낳았고.

가정을 꾸렸으며.

서서히 물이 끓는 것처럼, 서로에 대한 감정도 깊어져 갔다.

헨더슨은 가끔 자신은 농사꾼이 아니라 ‘병사’가 되고 싶다는 허무맹랑한 말을 내뱉었지만, 현실에 만족한다면 큰 문제는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로렌스와 바르코의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로렌스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징집에 응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졌고, 헨더슨도 그 분위기에 동조되어 평소 어울리던 친구들과 같이 조잡한 무기를 들고 길거리로 나갔다.

그때 말렸더라면.

헨더슨은 죽지 않았을까.

과거의 일을 수도 없이 되새겼지만, 클로에는 헨더슨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당신은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어.’

사병 모집.

드미트리의 사병으로 덜컥 합격한 헨더슨은, 첫 휴가를 받고 돌아온 날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조금은 순진했던 얼굴이 날카롭게 변했고, 농사일로 굳은살이 가득했던 손은 검을 잡으면서 새로운 굳은살이 그 위를 덮었다.

헨더슨은 그날 드미트리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떠들었다.

봉급 자체도 농사일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많았고,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과의 수준 차이에 힘들어했으나 지금은 검을 수련하는 것 자체에 재미를 느낀다고 말했다.

보기 좋았다.

방긋방긋 웃는 얼굴이, 그의 진심을 보여 주었다.

행복했다.

남편이 집을 비우는 날이 많다는 것은 분명히 힘든 일이었지만, 헨더슨은 집에 돌아올 때면 자신과 하나뿐인 아들에게 충실했다.

그러는 사이에 드미트리의 위상이 드높아졌다.

바르코를 물리치고, 남부 전선에서 공을 세우면서, 헨더슨은 어느 순간 주변 마을의 유명 인사가 되었다.

“클로에. 나는 로만 드미트리 님을 진심으로 존경해. 그분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분이고, 설령 전장에서 죽는다고 할지라도 그 죽음을 가벼이 여기실 분도 아니야. 그러니까 나는 더 강해지고 싶어. 그분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 가족을 위해서.”

죽기 전.

헨더슨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잠을 줄여 가며 훈련에 매진하던 헨더슨은 정말 강해졌지만, 그 강함은 오히려 그의 죽음으로 되돌아오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말했다. 헨더슨은 농사꾼으로 태어나 정말 값진 삶을 살았다고.

드미트리 공작까지 찾아와, 남편을 잃은 슬픔을 공감해 주었을 때는 눈물을 펑펑 흘렸다.

책상 위.

둘의 사진은 저것 하나뿐이었다.

아이를 안고 있는 헨더슨과 팔짱을 낀 클로에.

마법으로 사진을 남기는 것은 평민들에게는 만만치 않은 소비다 보니, 헨더슨이 상금을 받아 왔을 때 큰마음을 먹고 사진사를 찾았다.

아쉬움이 남았다.

남편이 이리도 갑작스럽게 자신의 곁을 떠날 줄 알았다면, 겨우 한 장이 아니라 남편의 많은 모습을 사진에 담으려 했을 것이다.

그때였다.

똑똑똑.

“클로에 님, 계십니까?”

익숙한 목소리였다.

클로에가 잠에 빠진 아이를 둔 채 문을 열자, 문 너머로 크리스의 모습이 보였다.

* * *

어색한 상황이었다.

드미트리의 병사들에게 다소 냉철하기로 소문이 난 크리스였지만, 클로에를 마주하는 상황에 어색한 얼굴로 차를 마셨다.

클로에는 헨더슨과 같이 몇 번 얼굴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헨더슨이 죽은 상황에서, 그의 아내인 클로에를 만나는 것은 심적으로 불편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주변을 보았다.

헨더슨의 흔적이 곳곳에 남았다.

추모식을 치렀지만, 클로에는 아직 헨더슨을 떠나보낼 준비를 끝내지 못한 것 같았다.

탁.

찻잔을 내려놓고는.

조금은 가라앉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헨더슨은 좋은 친구였습니다. 드미트리 병사들 내에서 사람들을 연결해 주는 연결 고리와 같은 녀석이었고, 헨더슨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크로노스 제국이 드미트리를 공격한 날에 많은 사람이 죽었을 겁니다. 헨더슨의 죽음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헨더슨이 얼마나 가치가 있었는지를, 그의 죽음이 우리에게 남긴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런가요.”

클로에가 웃음을 보였다.

배려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크리스의 마음을 편히 만들기 위해,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았다.

“사실 제가 클로에 님을 찾아온 이유는 헨더슨을 국가 유공자(國家 有功者)로 선정하기 위함입니다.”

“……국가 유공자요?”

생소한 단어였다.

단어 자체의 뜻은 알겠는데, 샐러맨더 대륙에 그와 관련한 시스템이 있다고는 들어 보지 못했다.

“예. 국가 유공자는 이번 회의로 결정된 사안입니다. 드미트리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을 국가 유공자로 등록, 그에 합당한 보상과 남은 가족의 생계를 평생 책임지겠다는 것을 약속하는 국가적인 시스템입니다. 헨더슨은 용감한 친구였습니다. 그가 해낸 일은, 그만한 대우를 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순간.

클로에가 당황한 얼굴을 보였다.

애써 웃어 보이려고 했는데, 크리스의 말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보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드미트리가 헨더슨의 죽음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 그를 위해서 국가 유공자로 등록해 주겠다는 그 마음만으로도 울컥하는 감정이 일었다.

헨더슨의 말은 옳았다.

로만 드미트리는 충성을 바칠 만한 사람이었고, 가장을 잃은 가정을 슬픔에 빠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고개를 숙였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에, 크리스를 차마 올려다볼 수 없었다.

‘사람들의 죽음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 태도와 명확한 보상만이 사람들의 슬픔을 보상해 줄 수 있다고 했었지.’

로만 드미트리의 말이었다.

크리스는 하루 전.

전쟁 보상을 논의하던, 드미트리 수뇌부들의 열띤 토론을 떠올렸다.

* * *

“……진심으로 하는 말씀입니까?”

콘라드 자작이 귀를 의심했다.

로만 드미트리의 발언은, 그뿐만 아니라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했다.

“전쟁 보상금. 좋습니다. 저희도 그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주군이 말한 액수는 무려 100만 골드입니다. 그건 드미트리의 재력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액수입니다. 차라리 50만 골드로 줄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카이로 왕국과 얘기를 잘해서, 크로노스 제국에 받은 보상금을 온전히 전쟁 보상금으로 활용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100만 골드.

듣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액수였다.

레드포드 왕국은 10만 골드의 부채 때문에 나라가 망할 뻔했는데, 아무리 드미트리일지라도 그만한 돈을 전쟁 보상금으로 내놓았다간 금전적으로 상황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

웬만한 문제는 전적으로 로만 드미트리의 뜻을 따랐다.

하지만 지금은, 반대의 목소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옳은 말이다. 100만 골드는 드미트리로서도 부담이 되는 액수지만, 그렇기에 전쟁 보상금으로서의 의미가 있는 일이다. 크로노스 제국은 휴전의 조건으로 50만 골드를 보상금으로 내놓았다. 만약 우리가 그들에게 받은 액수 그대로를 보상금으로 내놓는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 것 같은가.”

“……그야 감사하겠지요.”

“눈앞의 보상은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겠지만, 사람들은 전쟁의 승패가 보상과 직결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50만 골드에서 우리의 돈은 단 1실버도 포함되지 않는다. 나는 이번 전쟁 보상금으로, 사람들에게 드미트리를 위한 희생에는 반드시 그만한 대가가 있다는 확고한 믿음을 부여할 생각이다.”

휴전의 대가.

로만 드미트리는 일부러 50만 골드를 요구했다.

찰튼 남작의 권한으로 받아들이기에는 과한 액수지만, 그렇다고 제국의 규모에서는 부담스러운 금액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책정한 이유는 이후 전쟁 보상금을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드미트리는 크로노스에서 받아 낸 액수만큼 전쟁 보상금을 내놓을 생각이었고, 50만 골드가 앞으로의 계획을 진행하기 위해서 적정한 액수였다.

애초에.

크로노스의 전쟁 보상금은 상징적인 의미가 컸다.

휴전의 조건으로 보상금을 내놓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드미트리는 이번 전쟁으로 많은 것을 얻었다.

“이번 전쟁 보상금은 시작일 뿐이다. 드미트리는 지금부터 ‘국가 유공자’ 시스템을 도입할 생각이다. 전쟁의 사상자들에게도 충분한 보상을 지급하겠지만, 헨더슨과 같이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들은 국가 유공자로서 그 이름을 기억하고, 그에 합당한 보상을 지급할 것이다. 단순히 차등의 의미가 아니다. 전과(戰果)에는 합당한 보상이 따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일이다. 이에 관해서는 카이로와 얘기를 모두 끝낸 상태다. 카이로는 50만 골드 전부를 전쟁 보상금에 사용하는 것에 동의했고, 나머지 50만 골드도 일부를 부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아무도 반발하지 않았다.

나라가 개인의 희생을 기억해 주는 것.

사실 회의에 참석한 수뇌부들조차도, 언젠가는 본인이 그 개인에 포함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는 전쟁으로 많은 것을 잃었다. 특히 크로노스 제국과의 무역에 제한이 생기면서, 당분간은 금전적으로 힘든 상황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드미트리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큰 상실은 사람을 잃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만 한다. 사람을 위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탁상공론(卓上空論)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진정한 강국은 그 뼈대를 구성하는 일반 사람들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드미트리의 사람들이 진정으로 드미트리의 부흥을 바란다면, 일시적인 흔들림은 어느새 해결되어 드미트리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 것이다.”

강인한 목소리였다.

로만 드미트리는 전생을 경험했다.

자신의 방식이, 자신이 생각하는 드미트리가.

결국에는 무림의 태평성대를 이루었던 것처럼, 이상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는 전쟁에 승리했다. 드미트리, 그 어디에서도 슬픔에 빠져 승리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지금부터는 민생(民生)을 돌보는 일에 집중할 것이다.”

“명을 받듭니다!”

“명을 받듭니다!”

모두가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이 순간.

의문을 표하던 콘라드 자작조차도, 끓어오르는 가슴에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명령을 받들었다.

* * *

크리스가 떠나고.

클로에는 펑펑 울었다.

[국가 유공자, 헨더슨]

작은 메달이었다.

드미트리가 헨더슨을 기억해 준다는 사실에, 이렇듯 유족들의 슬픔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눈물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헨더슨이 죽었다는 사실을 듣고.

잠깐이지만 로만 드미트리를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지만, 지금은 드미트리를 위한 희생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평민의 삶은 가혹했다.

보통은 징집을 당해 죽는다고 할지라도, 그에 대해 제대로 보상하는 귀족은 거의 드물었다.

무의미한 희생이었다.

일반 영지들에서 전쟁이 벌어질 때면, 징집을 당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가족의 사람들은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오열했다.

몸 성히 돌아올 확률은 너무나도 낮았다.

분명히 목숨을 잃거나 신체에 큰 이상이 생긴 상태로 돌아올 텐데, 그때는 ‘징집의 의무’를 말하던 사람들은 전쟁에서 승리했다면 그들만의 파티를 벌이거나, 패배했다면 전쟁의 여파로 세금을 높이기 바빴다.

“흑, 흑흑.”

울음이 멈추질 않았다.

드미트리의 보답에도.

헨더슨을 잃은 슬픔은 사라지지 않았다.

슬픔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해소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원망의 감정이 슬픔을 키우지는 않았다.

얼마나 울었을까.

한참을 울던 클로에의 눈에, 크리스가 남겨 두고 간 상자가 보였다.

“국가 유공자들에게 드리는 보상입니다. 나중에 확인해 보십시오.”

보상.

슬픈 단어였다.

하지만 클로에는 현실을 살아야 하기에, 이제는 남편을 잃은 과부가 되어 버렸기에.

손을 뻗어 상자를 열었다.

“…….”

순간.

말을 잃었다.

상자 안에는.

평민들로서는 평생 구경도 하지 못할, 금화가 수북이 쌓여 찬란한 빛깔을 뽐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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