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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화 (252/615)

252화 드미트리에 드리운 그림자 (6)

찰나의 순간.

단 한 번의 기회.

페르난도는 이를 악물며, 선천(先天)의 기운마저 폭발시켰다.

콰르르르르르르르릉.

오라의 범람이었다.

로만 드미트리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면서 억눌렀던 오라가, 단번에 분출되며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스벤의 표정에 당혹스러움이 떠올랐다.

세상을 전부 물들일 것처럼 넘실거리는 오라는, 제아무리 그림자의 육체라고 할지라도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하지만.

막을 수 없었다.

헨더슨이 빨갛게 물든 눈으로, 악착같이 검을 붙들었다.

“나와…… 쿨럭, 같이 가자!”

푹.

헨더슨의 몸에 검이 더욱 파고들었다.

헨더슨은 오라를 일으키며 검을 끌어안았고, 오랜 시간 붙잡을 수는 없어도 찰나의 공백은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헨더슨이 피로 얼룩진 얼굴로 히죽 웃었다.

단 1초의 차이. 헨더슨이 자신의 몸을 희생한 대가로, 스벤은 생각한 것보다는 한발 느리게 검을 회수했다.

푸확.

피가 튀었다.

헨더슨이 초점을 잃은 눈으로 무너지는 순간, 페르난도의 오라 또한 폭발적으로 스벤을 덮쳤다.

콰앙!

콰콰콰콰쾅!

엄청난 충격이 일었다.

강력한 오라의 폭풍에 스벤이 휩싸였고, 스벤은 갈기갈기 찢겨 나가는 육체에 눈을 부릅떴다.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다. 로만 드미트리가 없는 자리에서, 6성의 오라 검사인 본인이 이런 꼴을 당할 줄은 몰랐다.

사람들은 말했다.

6성부터는 천외(天外)의 경지라고.

겨우 피라미들을 상대로, 이렇게 무너질 수는 없었다.

“크아아아악!”

콰르르르릉.

어둠의 오라가 일었다.

스벤의 육체가 연기로 흩어지며, 어떻게든 충격을 흘려보내려고 했다. 일반적인 인간의 육체가 아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스벤이 악귀와도 같은 표정을 보이며, 페르난도로부터 휘몰아치는 오라를 이겨 내고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이번 공격마저 실패한다면. 드미트리의 검사들로서는 승산이 없다는 사실을, 스벤과 페르난도 서로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이곳은 드미트리고, 스벤은 혼자였다.

“익스플로전(Explosion).”

콰앙!

화르르르르르르륵.

녹스의 존재가 활활 타올랐다.

버닝을 사용한 그가 불에 동화되더니, 무려 6서클의 마법을 사용해서 페르난도의 공격에 힘을 보탰다.

매우 치명적인 일격이었다. 스벤의 몸이 비틀거렸다.

방금까지 격렬하게 분출하던 어둠의 오라가 그의 몸으로 스며들었고, 균열이 일어나듯 충격을 받은 표정을 보였다.

틈이 드러났다.

그리고, 이곳에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존재들이 많았다.

푹!

푹푹푹!

맥버니가 먼저 복부를 찌르자.

드미트리의 검사들이 사방에서 달려들며 스벤을 난도질했다.

어떤 이는 스벤의 반격에 목이 날아가고 가슴팍이 베였지만, 그들은 본인들의 안위는 생각하지 않고 간신히 얻은 기회를 악착같이 살렸다.

그림자의 육체로도 버틸 수 없는 공격이었다.

섬뜩한 소리가 연속해서 들리자, 스벤은 들고 있던 검을 놓치더니 그만 무릎을 꿇었다.

그 순간.

번뜩.

스벤의 목이 날아갔다.

마침내 승기를 확보하자, 페르난도가 다시 한번 오라를 일으켜 목을 베었다.

끝이었다.

머리를 잃은 육체가 무너지는 그 상황에.

페르난도는, 시체를 살펴보지도 않고 곧바로 헨더슨을 향해 달려갔다.

* * *

케빈과 헨더슨.

상태가 매우 처참했다.

케빈은 페르난도가 도착한 그 순간부터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 찢겨 나간 상처에서 피가 멈추지 않고 흘렀다.

그런데 헨더슨의 상태는 케빈이 양반으로 보일 정도였다.

뼈가 훤히 드러날 정도로 베여 버린 상처에, 헨더슨은 창백한 얼굴로 당장에라도 숨이 넘어갈 것만 같았다.

“버텨. 끝까지 버텨라. 여기서 이렇게 죽지 말라고!”

페르난도가 악에 받쳐 소리쳤다.

탁.

포션을 열었다.

하나에 무려 수십 골드에 달하는 최상급의 포션이었지만, 페르난도는 망설이지 않고 상처 부위에 콸콸 쏟아 냈다.

확실히 포션의 효과는 대단했다.

상처가 빠르게 아물면서 지혈(止血) 효과를 일으켰지만, 헨더슨은 회복하는 육체와는 다르게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피를 계속 토해 냈다.

“포션을 가져와! 더, 더 가져오라고!”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본인들이 비상시에 챙겨 둔 것들을 모두 가져왔고, 효과가 중첩되지 않음을 아는데도 계속해서 들이부었다.

콸콸콸!

드미트리.

아직 이곳에서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페르난도는 이제 막 사람들을 알아가는 과정이었고, 헨더슨이 자신을 위해 해 주었던 행동들을 잊지 못했다.

드미트리에서 헨더슨은 가장 평범한 사내였다.

옆집 친구처럼 친근한 미소로 다가온 그는, 페르난도가 드미트리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해 주었다.

본인은 몰랐다.

헨더슨이라는 사람이, 드미트리에서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를.

로만 드미트리를 따르는 사람 중에 검술은 크리스, 난전은 케빈, 전술은 맥버니 등등 각자만의 강점이 있었지만, 제일 좋은 사람을 물었을 때는 모두가 하나같이 헨더슨을 언급했다.

헨더슨은 드미트리에서 그런 존재였다.

거대한 무리를 이루는 톱니바퀴였고, 스벤이라는 강력한 적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작은 톱니바퀴는 모든 것을 맞물리게 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대로 죽일 수 없었다.

헨더슨이, 죽지 않기를 바랐다.

“……그, 그만하십시오.”

헨더슨이었다.

정신이 들었다.

창백한 얼굴로 페르난도를 바라보며, 그가 가쁜 숨을 참아 가며 말했다.

“아,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각자 해야 할 일을 하십시오.”

외성 너머.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헨더슨을 붙들고 이렇게 절망하고 있는 사이에도, 밖에서는 드미트리의 병사들이 적을 막아 내기 위해서 죽어 가고 있었다.

헨더슨은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생사(生死)의 경계선에서, 그 또한 케빈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존재 목적을 말했다.

케빈이 빈민가에서 로만 드미트리를 만났듯.

광장에서 블러드 팽을 처단하던 로만 드미트리의 모습은, 헨더슨에게 마치 운명처럼 다가왔다.

받아들였다.

죽을지라도.

웃으며 받아들일 것이다.

“……알겠다.”

케빈과 헨더슨.

미련한 녀석들이었다.

자신의 안위를 챙기려고 했다면, 그들은 분명히 살아남을 방도가 있었을 것이다.

페르난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소한의 응급 처치는 끝냈다.

지금부터 이들의 목숨은 하늘에 달렸고, 적어도 희생을 헛되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크로노스 제국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야만 했다.

자신도 이제는 드미트리의 사람이었다.

30위의 수문장이라는 조롱의 종지부를 찍으며, 페르난도는 삶의 존재를 드미트리를 위해 바쳤다.

“반드시 버텨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지금부터 크로노스의 잔당들을 소탕하러 간다.”

악귀의 얼굴로, 페르난도는 성벽으로 향했다.

* * *

크로노스의 계획은 완벽했다.

기습적으로 성벽을 공격하고, 그림자들을 침투시키며, 스벤이라는 강력한 존재로 암살을 시도했다.

어느 하나도.

실패를 의심하지 않았다.

말이 양동 작전이었지, 사실 이번 작전을 주도한 미스틱으로서는 애초에 드미트리의 성벽이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진실은 달랐다.

동북쪽 일대의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는 명백하게 우위라고 생각했건만, 1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상황은 완전히 반전되었다.

끼익.

쿵.

“공격하라!”

“크로노스 제국을 처단하라!”

드미트리가 성문을 열었다.

그들은 지원군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본인들의 힘만으로 크로노스를 소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난전(亂戰)이 시작되었다.

성벽의 이점을 포기한 드미트리의 군대는, 압도적인 무력으로 크로노스의 병사들을 학살해 버렸다.

특별하게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것이 아니었다.

드미트리의 병사들은 단순히 개개인의 무력이 뛰어났고, 혼자만의 힘으로도 크로노스의 병사 수 명을 상대할 정도로 강했다.

게다가.

몇몇 인물들의 존재감이 두드러졌다.

페르난도와 로드웰 드미트리가 선두에 나서며, 적들로 득실거리는 공간에 거침없이 들이닥쳤다.

콰앙!

콰르르르르르릉.

학살이었다.

백병전(白兵戰)에서, 크로노스의 군대는 드미트리의 상대가 되질 않았다.

소름이 돋았다.

드미트리의 전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애초에 그들을 고평가하면서도 그를 압도하는 전력을 동원했는데, 그것조차도 드미트리에게 박살이 나고 있었다.

펠릭스의 존재로 성벽 공략에 실패했고, 내부에 침투했던 그림자들은 30분도 버티지 못하고 모조리 전멸을 당해 버렸다.

마지막으로 스벤의 존재. 그만큼은 결과를 만들어 내리라고 생각했지만, 스벤의 생명마저도 느껴지지 않는 상황에 미스틱은 충격을 받았다.

“……이게 정녕 드미트리의 힘이란 말인가.”

이곳에.

로만 드미트리는 없다.

크로노스는 항상 ‘일개 개인’을 경계했다.

그가 만들어 내는 차이가, 드미트리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전쟁의 결과는, 드미트리가 나라로서의 전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콰직!

콰르르르르릉.

페르난도.

그가 달려들었다.

드미트리의 수문장으로 변한 그가, 까맣게 득실거리는 병사들의 목을 날리면서 미스틱을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미스틱은 마나를 일으켰다가 성벽 위의 존재를 보았다.

펠릭스의 시선은 자신에게 고정된 채로, 언제든 자신의 마법을 무효화시키기 위해 마력을 끌어 올린 상태였다.

끝이었다.

더 시간을 끌었다간, 자신의 목숨도 위험했다.

“드미트리. 이번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확.

어둠의 마력을 흩뿌렸다.

마치 공간이 커튼처럼 접히더니, 미스틱의 존재가 어둠의 장막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미스틱의 도주.

치열했던 전쟁의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 * *

멀지 않은 거리.

어둠의 장막을 열고, 미스틱이 나타났다.

그 순간.

번쩍!

콰르르르르르릉.

섬광(閃光)이 작렬했다.

미스틱은 본능적으로 어둠의 마나를 일으켜 막았지만, 엄청난 충격에 표정을 잔뜩 일그러트렸다.

눈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순백의 갑옷을 입은 존재는, 미스틱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 내게 꼬리를 잡히지 말라고.”

“……빌어먹을.”

미스틱이 긴장한 기색을 보였다.

상대에게서 성스러운 후광(後光)이 일어났다.

순백의 갑옷에 치렁치렁하게 기른 금발의 머리칼은, 그녀가 크로노스 제국이 경계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사람들은 그녀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끝없는 산맥.

그 너머에 있는 땅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전설적인 소문의 주인공이었고, 크로노스가 경계하는 위험한 존재였다.

그동안.

크로노스 제국이 대륙 정벌의 야욕을 억누른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완벽하게 준비가 되지 않기도 했지만, 눈앞의 존재는 사사건건 크로노스의 일을 방해했다.

그녀가 검을 들었다.

미스틱을 겨누며, 심연의 악마와는 상극이라고 할 수 있는 성스러운 오라를 일으켰다.

“오늘은 너를 붙잡아 진실을 확인해 주마. ‘그 녀석’이 대체 어디에 존재하는지를.”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확.

콰르르르르르릉.

미스틱의 마력이 폭발했다.

둘이 격돌했다.

엄청난 충격이 일며, 하늘과 땅이 뒤집혔다.

크로노스와 드미트리의 전쟁.

미스틱이 도주한 것으로만 기억하는 사람들로서는,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 수 없었다.

* * *

한 번의 전쟁.

드미트리가 발칵 뒤집혔다.

드미트리와 카이로는 전시(戰時) 상황임을 선포함과 동시에, 카이로 국왕이 헥토르 왕국에 연락했다.

“드미트리가 크로노스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았습니다. 로만 드미트리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루어진 공격은, 분명히 로만 드미트리와 드미트리를 동시에 공격하려는 수작임이 분명합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헥토르의 병력을 움직여 주십시오. 만약 로만 드미트리가 국경을 넘어오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 생긴다면, 앞으로 대륙은 크로노스의 음모를 막아 낼 수 없습니다.”

빠르게 판단했다.

이미 로만 드미트리를 향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문제는 드미트리를 공략하는 것에 실패한 크로노스 제국이, 국경에 있는 로만 드미트리를 향한 위협을 강화시킬 수도 있었다.

카이로로서는 절대 방관할 수 없는 문제였다.

카이로와 드미트리 연합의 핵심은 로만 드미트리였고, 그가 존재해야만 왕국이 버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헥토르의 대답은 의외였다.

“이미 병력을 보냈습니다. 저희 또한, 로만 드미트리가 죽는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한때는 적이었던 사이.

하지만 드미트리의 원조를 받으면서부터, 헥토르 왕국은 드미트리를 확실한 우방국으로 생각했다.

애초에 이와 관련해서 드미트리 공작의 연락을 받았다.

로만 드미트리를 끔찍하게 생각하는 드미트리의 주인은, 헥토르 왕국이 병력만 보낸다면 필요한 지원은 아끼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그렇게.

로만 드미트리는 헥토르의 워프 게이트를 활용해 드미트리로 이동할 수 있었다.

사건 발생 며칠 후.

마침내, 드미트리는 애타게 기다리던 존재의 귀환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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