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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화 (243/615)

243화 필살(必殺) (3)

번쩍.

세상이 밝아졌다.

잠깐 환해진 어둠 사이로, 로만 드미트리가 흑마법사들을 향해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홀드(hold).”

“인탱글(entangle).”

확.

파바바박.

흑마법사들이 검은 마력을 표출했다.

억압(抑壓)의 힘이 순간적으로 로만 드미트리의 움직임을 붙잡았고, 흙바닥에서부터 죽은 나무줄기들이 거대하게 성장하며 몸을 휘감으려고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일부는 로만 드미트리를 견제한다면, 다른 일부는 마력을 폭발시키며 동시다발적으로 공격 마법을 발현했다.

“다크 라이트닝.”

“다크 플레임.”

콰르르르릉.

화륵.

화르르륵.

마법사와 오라 검사.

사람들은 보통 비슷한 수준의 대결에서는 캐스팅의 존재로 오라 검사가 유리하다고 말하지만, 일대 다수의 대결에서 마법사들의 시너지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단순히 1+1=2의 결과가 아닌. 1+1=4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마법사의 시너지를, 흑마법사들은 무려 열의 힘을 합쳤다.

눈앞에.

지옥이 펼쳐졌다.

홀드로 인한 찰나의 억압이, 연쇄적으로 로만 드미트리의 존재를 집어삼킬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팟.

0.1초.

로만 드미트리는 체내에 파고드는 억압의 기운을 단번에 풀어 버렸고, 괴물의 촉수처럼 달려드는 나무줄기들을 오히려 도약의 발판으로 삼았다.

흑마법사들로서는 경악스러운 상황이었다.

너무나도 쉽게 홀드를 파훼해 버리자, 연속되는 공격 마법들이 애꿎은 땅에 작렬했다.

콰앙.

콰르르르르릉.

순간.

로만 드미트리가 폭발을 뚫고 공간을 파고들었다.

흑마법사 하나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번개같이 휘두른 검이 흑마법사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번뜩.

“막아라!”

“다크 애로우(dark arrow).”

파바바박.

사방에서 마법이 작렬했다.

지옥의 악마와 같은 듣기 싫은 목소리를 내뱉으며, 흑마법사들의 마법이 로만 드미트리를 공격했다.

사방에서 어둠의 화살이, 하늘 위에서는 벼락이, 그리고 주변에서 검은 불길이 일어나며 퇴로를 완벽하게 차단했다.

게다가 다시 한번 시도되는 억압의 힘. 일대 다수의 대결에서, 오라 검사 하나가 다수의 마법사를 상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상식의 영역.

로만 드미트리는 그 경계를 무너트렸다.

마법의 원리를 파악하고 난 이후부터, 체내에 파고드는 마나는 단 1초도 생존하질 못했다.

동시에.

과감하게 움직였다.

퇴로가 없다면, 마나를 일으켜 몸을 보호한 상태로 불길로 일렁이는 공간을 뚫어 버렸다.

화륵.

화르르르륵.

몸에 불이 붙었다.

오라로 보호한 표면에 일어난 불길이었고, 로만 드미트리의 날카로운 눈빛이 흑마법사들을 향했다.

“블링크.”

번뜩.

흑마법사들이 사라졌다.

10m의 거리에서.

단번에 50m의 공간으로 도망쳐 버렸다.

흑마법사들은 로만 드미트리로부터 안전한 공간을 확보했다고 생각했는데, 육체가 재구성되면서 시력이 돌아오는 순간 그들은 코앞에 들이닥친 존재를 목격했다.

로만 드미트리는 그들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파악했다.

일반적인 존재들은 마나의 흐름을 파악할 수 없는 상황에서, 로만 드미트리는 그들의 육체가 정확히 어디에서 재구성이 되는지를 간파했다.

펠릭스와 마탑의 마법사들.

그들은 약하지 않았다.

흑마법사들과 마찬가지로 역할을 분담하며 마법사들의 이점을 살렸으나, 로만 드미트리의 경악스러운 능력은 단 하나의 허점도 허락하지 않았다.

이동을 제약한다면 단번에 무마시켜 버리고.

공간을 이동하는 마법은, 도착하는 위치를 파악해서 사실상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렇기에.

그들은 말했다.

단언컨대, 로만 드미트리는 마법사들의 천적이라고.

눈으로 보고 직접 경험하면서도, 어떻게 마법을 저렇게 빠르게 파훼시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번뜩.

흑마법사를 베었다.

육체의 재구성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는데도, 일부 드러난 육체가 검에 의해 단번에 찢겨 나갔다.

압도적인 광경.

그때였다.

로만 드미트리가 다른 먹잇감을 향해 달려들려는 순간.

콰앙!

콰르르르르르르릉.

엄청난 불길이, 그대로 로만 드미트리를 덮쳐 버렸다.

* * *

엄청난 화력이었다.

상위 레벨의 마법을 사용한 존재가, 멀리 떨어진 위치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로만 드미트리. 발악하는 것도 거기까지다.”

화륵.

화르르륵.

그의 주변으로 어둠의 불길이 일렁였다.

방금 사용한 마법.

6서클의 마법이었다.

완벽하게 막아 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조금이라도 스치는 순간 몸 전체로 불길이 번질 만큼 엄청난 화력을 보였다.

흑마법사는 마력을 일으켰다.

어둠의 아지랑이에 휩싸인 상태로 주변을 살피던 그는, 순간적으로 ‘불길’ 안에서 생명체의 존재감이 느껴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말이 되지 않았다.

어둠의 불길.

현세(現世)의 모든 것을 불태울 강력한 힘이다.

로만 드미트리가 바르보사를 쓰러트린 괴물이라 한들, 피한 것도 아니고 불길 안에서 살아남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하지만 눈앞의 현실은 상식을 부정해 버렸다.

천천히 불길 안에서 걸음을 내딛는 존재가, 어둠의 불길에 휩싸인 채로 모습을 드러냈다.

화륵.

화르르르르륵.

6서클의 화력.

몸을 불태웠다.

로만 드미트리는 공격을 피할 수 있었으나, 뜨거운 열기를 확인하고는 일부러 피하지 않았다.

“크로노스 제국. 참으로 오만하구나. 같은 제국의 땅을 침범한 것으로도 모자라, 흑마법사들의 존재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다니. 승리에 대한 확신인가, 아니면 진실이 드러난다고 할지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어떤 것이든. 너희의 선택은 틀렸다.”

피닉스의 마법사들이 패배한 이유.

마법을 파훼하는 능력 때문만이 아니었다.

애초에 속성의 상성에서, 로만 드미트리는 피닉스의 마법사들이 공략할 수 없는 힘을 갖추었다.

화마(火魔)의 불길.

체내에 존재하는 강력한 힘은 불에 한해 압도적인 친화력을 부여했다.

애초에 열기에 강했던 로만 드미트리가, 화마의 불길을 받아들임으로써 6서클의 화력도 통하지 않는 존재로 거듭났다.

그 말인즉.

완벽한 천적이었다.

서로의 강점과 약점이 맞물리는 정도가 아니라, 절대 함락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성과 같았다.

“살고 싶다면. 끝까지 발악해라.”

파팟.

땅을 박찼다.

흑마법사는 마력을 폭발시켰다.

로만 드미트리가 불에 강력한 내성을 보인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그는 인간의 연약한 육체가 끝까지 버틸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완벽한 내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흑마법사가 사용한 마법이 약했을 뿐, 그 이상의 마법을 사용한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다른 마법사들.

그들이 힘을 보탰다.

힘과 힘의 대결이었다.

정면에서 달려드는 로만 드미트리의 모습에, 흑마법사들의 마력이 무섭게 존재감을 부풀렸다.

“파이어 스톰(Fire Storm).”

화륵.

화르르르르륵.

7서클의 마법.

압도적인 화력이었다.

흑마법사로부터 휘몰아치는 마력이, 이번만큼은 로만 드미트리를 집어삼키겠다는 열망을 보였다.

콰앙!

콰르르르르르릉.

화염이 작렬했다.

전투를 벌이던 로만 드미트리의 수하들조차 넋을 잃고 바라볼 정도의 광경이었고, 주변에 존재하는 수풀이 모두 새카맣게 타 버렸다.

크로노스 황제는 심연(深淵)의 악마들을 불러들였다. 어둠의 마나를 사용하는 존재들.

발할라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로만 드미트리로서는, 절대 그들의 공격을 막아 낼 수 없다는 확신이 있었다.

수많은 그림자.

그리고 흑마법사들.

암살의 수준이 아니다.

웬만한 소국은 무너트릴 만큼의 전력은, 일반적인 힘으로는 절대 감당할 수 없었다.

만약.

이곳이 전장이었다면.

파이어 스톰은 수천의 병력을 휩쓸었을 것이다.

그만큼 압도적인 힘이었으나, 로만 드미트리라는 단 하나의 존재는 쓰러트리지 못했다.

확.

화염이 휘몰아쳤다.

주변이 불타오르고 땅이 무너지는데도, 로만 드미트리는 화염의 불길을 뚫어내며 흑마법사를 향해 빠르게 달려들었다.

7서클의 불길은 오라의 벽을 뚫지 못했다.

로만 드미트리의 내성은 오라에도 영향을 미쳤고, 적어도 불을 상대로는 막강한 위력을 보였다.

다른 흑마법사들이 발악하듯 마법을 사용했다.

그들은 전력을 다해 로만 드미트리를 막았으나, 어느 순간 로만 드미트리는 코앞에 나타났다.

그리고는.

번뜩.

눈을 부릅뜨는 순간.

흑마법사의 몸이, 검붉은 피를 흩뿌렸다.

* * *

우두머리의 죽음.

상황이 변했다.

로만 드미트리가 우두머리를 죽이자마자, 특별한 신호가 없었는데도 그림자들이 빠르게 도망쳤다.

이질적인 장면이었다.

아직도 그림자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그들은 이번 싸움에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

로만 드미트리는.

그들을 쫓았다.

득달같이 따라가, 발악하는 그림자들의 숨통을 끊었다.

확.

파박.

그림자가 뒤를 돌며 반격했다.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는 최후의 반격은, 오라를 일으킨 단검째로 몸이 잘려 나가면서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학살은 사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로만 드미트리가 선두에서 그림자들을 도륙해 버리자, 그림자들은 이렇다 할 반항도 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바뀌었다.

암살자들이.

오히려 죽음에 내몰렸다.

발할라도, 크로노스도.

대놓고 이루어진 암살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확신했건만, 눈앞의 결과는 충격적일 정도로 압도했다.

크로노스.

명백한 적이다.

로만 드미트리는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고, 애초에 항복하라는 선택지도 제시하지 않았다.

자신을 적대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라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자신이 죽든, 상대가 죽든. 서로를 무너트리겠다는 확실한 의사를 보인 순간, 사람들이 말하는 인간적인 자비는 조금도 허락되지 않았다.

바르코를 학살했듯.

완벽히 무너트렸다.

이번 싸움.

발할라, 나아가 대륙이 지켜보고 있다.

로만 드미트리는 말도 안 되는 불합리한 싸움에서, 드미트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증명했다.

이제 마지막이었다.

시야에 보이는 마지막 그림자의 모습에, 숨통을 끊지 않고 뒤에서 그의 양팔을 잘라 버렸다.

팟.

비틀.

그림자의 균형이 무너졌다.

단번에 양팔이 잘려 나간 그림자는, 바닥에 얼굴을 처박으며 비참한 모습을 보였다.

순간.

콱.

그의 머리를 짓밟았다.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그를 강하게 억누르며, 로만 드미트리는 싸늘한 음성을 내뱉었다.

“너희들의 황제에게 전하라. 드미트리까지는 멀었다. 날 죽이려거든, 지금이 기회라고 말이야.”

포식자의 삶을 살았기에.

크로노스의 생각을 알았다.

그들은 절대.

충격적인 패배에도, 자신에 대한 살의를 거두지 않을 것이다.

* * *

상황이 정리되었다.

크리스가 다가와, 현황을 보고했다.

“미리 대비하고 있었기에 저희 측의 피해는 크지 않습니다만, 발할라의 전사들은 거의 절반에 달하는 숫자가 죽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의 도움 덕분에 피해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저희로서도 적지 않은 피해를 각오해야만 했을 겁니다.”

발할라의 전사들.

그들은 용맹했다.

그림자를 상대로 공격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발할라를 외치며 끝까지 싸웠다.

전투의 민족.

그들의 태생이었다.

로만 드미트리를 무사히 돌려보내기 위해서라면 목숨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고, 저돌적인 모습 때문에 오히려 많은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산체스와 그의 전사들은 절망에 빠지지 않았다.

절반이 죽었다는 사실보다, 절반의 희생으로 승리를 거두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시신을 수습하라. 망자를 위한 간단한 화장(火葬)을 진행하고, 곧바로 무역 도시로 이동하겠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주군이 확인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크리스의 말.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승리의 기쁨보다는, 로만 드미트리가 확인해야 한다는 ‘무엇’에 대한 걱정을 보였다.

걸음을 옮겼다.

크리스가 안내한 곳에는, 흑마법사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존재가 창백한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데.

‘익숙한 얼굴이다.’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펠릭스는, 예전에 자신의 사연을 언급했다.

“버닝을 터득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불의 친화력이 필요합니다. 보통 불의 친화력을 얻는 특별한 계기들이 있는데, 제 스승님은 어렸을 적에 끔찍한 방화 사고를 당하면서 불의 친화력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그 증거로. 스승님의 얼굴 절반은 화상 자국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만약 실종된 스승님을 찾는다면. 화상 자국으로 그분임을 확인해 주시면 됩니다.”

딱 한 번 언급했던 말.

그것이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흑마법사의 시체.

불빛 아래 모습을 드러낸 흑마법사의 얼굴은, 정확히 절반 정도가 화상 자국으로 뒤덮여 있었다.

확실했다.

흑마법사의 정체는, 실종되었던 피닉스의 전대 마탑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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