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9화 (239/615)

239화 포식자의 방식 (3)

소문의 시작은 마린의 상인들이었다.

어디에서 정보를 들은 모양인지, 그들은 아침 일찍부터 물건을 사러 온 사람들에게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축제는 별 기대를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기대하지 말라니.”

손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로만 드미트리와 바르보사의 대결이다.

모랄레스가 쓰러지면서 사람들은 엄청난 관심을 보였고, 밤새 누가 승리할지 갑론을박(甲論乙駁)을 펼칠 만큼 사람들의 기대감은 대단했다.

바르보사가 승리한다면 발할라의 명예를 지키는 일이나, 로만 드미트리가 승리한다면 그것은 대륙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다.

겨우 20대의 나이.

남들은 3성의 오라만 발현해도 천재 소리를 듣는 나이에, 로만 드미트리는 대륙 십이검의 반열에 오름으로써 앞으로의 판도를 주도할 것이다.

약소국의 출신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전무후무(前無後無)한 행보는, 로만 드미트리 한 명의 존재만으로도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상인은 대체 왜, 그런 역사적인 승부를 기대하지 말라고 한단 말인가.

“……나도 거래처 하인들을 통해 우연히 들은 말인데, 전야제가 끝나고 로만 드미트리가 머무르는 숙소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었어. 듣기로는 ‘누군가’가 독을 사용했다고 하더라고. 결국, 배후는 찾지 못하고 흐지부지 상황이 마무리되었는데, 로만 드미트리는 독을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축제에 참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어. 그러니까, 크게 기대하지 말라고. 정상적인 몸 상태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데, 독을 먹은 로만 드미트리가 어떻게 바르보사를 쓰러트리겠어?”

“어떤 개자식이 감히 독을!”

손님이 분개했다.

발할라의 명예를 바닥에 떨어트리는 일이다.

축제는 신성시되는 무대고, 아무리 타국의 이방인일지라도 독에 중독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소문이 퍼졌다.

처음에는 명백한 사실을.

해가 떠오르고 날이 밝았을 때는, 일부분 와전되어 이렇게들 말했다.

“로만 드미트리는 지금 독에 중독되어 대결에 제대로 임할 수 없는 상태야. 그런데도 전사로서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축제 무대에 오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더군. 이번 일은 발할라가 부끄러움을 알아야만 하는 사건이야. 손님을 모셔 놓고 독에 중독되게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와 관련해서 바르보사는 아무런 말도 없잖아. 정말 어쩌면. 모랄레스와의 승부를 보고, 바르보사가 겁을 먹고 수작질을 부렸는지도 몰라. 다들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바르보사는 그렇게 깨끗한 인물이 아니잖아.”

소문이 들끓었다.

발 없는 말이 마린을 뒤덮었고, 로만 드미트리는 어느 순간부터 발할라의 명예를 아는 전사가 되었다.

편견은 없어진 지 오래였다.

모랄레스와의 승부로 이미 인정을 받은 로만 드미트리가, 축제에 대한 강한 열망까지 보이니 발할라의 사람들로서는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소문을 퍼트린 상인들, 그것을 떠들어 대는 거리의 여행객들, 그리고 조용한 얼굴로 마치 그게 사실인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까지.

모두 하오문의 소속이었다.

로만 드미트리의 정보 단체는, 드미트리를 장악한 것으로도 모자라 제국의 밑바닥까지 스며들었다.

완벽한 하모니였다.

그간의 행보.

소문에 근거를 부여할 사실.

그리고, 약간의 양념.

사람들이 축제 장소로 몰려들었다.

만약 발할라의 명예를 아는 로만 드미트리가 소문처럼 무력하게 무너진다면, 그때는 음모를 주도한 사람들을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폐쇄적이고 단순하지만, 낭만을 아는 사람들. 그게, 발할라의 근본이었다.

* * *

축제가 코앞이었다.

세간에 퍼져 나간 소문에, 벨피르 후작은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의도적으로 누군가가 소문을 퍼트리고 있다. 이는, 보수파의 소행이 확실하다.’

그로서는.

로만 드미트리의 수작질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발할라는 드미트리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땅이기에, 자신의 의도를 방해할 존재는 보수파밖에 없었다.

게다가 소문의 내용을 보라.

로만 드미트리를 치켜세우고 바르보사를 마치 악의 무리처럼 깎아내리는 내용은, 바르보사가 소속되어 있는 진보파를 비난하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축제를 앞두고, 보수파의 귀족들이 황제에게 말을 덧붙였다.

“황제 폐하. 세간의 소문이 매우 흉흉합니다. 발할라의 백성들이 독의 사용 여부를 의심하고 있는 지금, 축제를 중단하는 한이 있더라도 사실을 확실하게 확인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발할라의 축제는 신성한 무대입니다. 더러운 소문이, 무대를 더럽히는 일을 용납할 수는 없습니다.”

“맞습니다!”

보수파의 수장.

고메스 백작이었다.

그가 내뱉는 말에, 발할라 황제는 나른한 표정으로 벨피르 후작을 보았다.

“벨피르 후작. 네 생각은 어떻지?”

순간.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

발할라 황제는 유흥(遊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이고, 오늘의 무대에 상당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런데 만약 더러운 소문에 의해 중단되어 버린다면.

결과가 어떻든, 이번 일에 관련한 자들은 목숨을 구제하기 힘들 것이다.

바르보사와 로만 드미트리의 대결.

진보파가 주도한 자리다.

크로노스와 관련한 계획을 다들 모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책임이 모두에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벨피르 후작이 말했다.

“소문은 소문일 뿐입니다. 황제 폐하. 발할라를 대표하는 전사는 로만 드미트리가 아니라, 바르보사입니다. 그의 모습을 지켜보시지요. 애초에 ‘독’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압도적인 무력으로 로만 드미트리를 쓰러트릴 것입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기대하도록 하지.”

황제가 한발 물러났다.

독의 존재를 모르는 게 아니다.

그는 로만 드미트리의 대결을 지켜보길 바랐고, 사실을 알면서도 대결을 굳이 취소시키지 않았다.

그때였다.

쿵-

북소리가 들렸다.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

쿵, 쿵-

웅장하게 퍼져 나가는 소리에, 벨피르 후작은 무대로 시선을 옮긴 채로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바르보사, 진실을 묻을 방법은 로만 드미트리를 쓰러트리는 것밖에 없다.

발할라의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증명하라. 바르보사라는 존재가, 어떻게 대륙 십이검의 일원으로 인정받았는지를.’

믿었다.

그가 승리할 것을.

때마침, 무대 위로 축제의 전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 * *

바르보사와 로만 드미트리.

서로를 마주 보았다.

바르보사는 로만 드미트리의 모습을 살피며, 실실 웃음을 보였다.

“몸은 괜찮은지 걱정이군. 네가 먹은 독은, 시간이 제법 흘러야 그 효과가 나타나거든.”

이죽거렸다.

관중들이 듣지 못할 것을 알기에, 로만 드미트리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대놓고 상대를 조롱했다.

독.

비겁한 행위다.

하지만 바르보사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했다.

일반적인 발할라의 전사들과는 달랐다.

발할라의 사람들은 사후세계(死後世界)에 전사들을 위한 무언가가 있다고 말하지만, 바르보사는 생전에 모든 것을 누리길 바랐다.

실제로 그의 방식은 옳았다. 명예를 부르짖던 모랄레스는 허무하게 죽은 것에 비해, 자신은 끝까지 살아남아서 발할라를 대표하고 있지 않은가.

승자가 독식하는 세상이다.

새롭게 변화하는 흐름에, 바르보사는 가장 현실적으로 발전한 존재였다.

그런데.

로만 드미트리의 반응은 담담했다.

분명히 독의 이상 반응이 생겼을 것이 분명한데도, 그는 바르보사를 바라보며 이상한 말을 내뱉었다.

“처음 이 세상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나는 항상 사람들이 최고라고 인정하는 대륙 십이검의 존재가 궁금했다. 그들이 얼마나 강한지, 현생(現生)의 내가 그들을 쓰러트리기 위해서는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지.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때가 되었다는 판단에 발할라의 초대를 받아들였다.”

대화가 아니었다.

일방적인 통보.

로만 드미트리는, 상대를 바라보며 검을 뽑았다.

“미리 말해 두지. 네가 기대하는 독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이 자리.

검증(檢證)의 자리다.

로만 드미트리라는 존재가 ‘약소국의 출신’이라고 해서 무시할 수 없음을 사람들에게 증명함과 동시에, 스스로가 확신을 얻기를 바랐다.

바르보사는 앞으로의 강적들을 상대하기 전에 훌륭한 예시가 되어 줄 터.

그를 상대로 조금이라도 고전한다면, 제국과의 전쟁은 불가능하다.

크로노스.

발할라.

대해(大海)와도 같은 세상은, 일개 개인의 힘만으로는 범접할 수 없는 국력을 갖추고 있다.

그들을 상대하려면.

개인으로서는 압도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의 전쟁에서 드미트리는 제국이라는 거대한 철옹성을 상대로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을 수 있다.

바르보사의 표정이 굳어 갔다.

상대의 기세가 심상치 않음을 알았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지금부터 나는 전력을 다할 것이다. 네가 9번의 공격을 모두 막아 낸다면. 그때는, 발할라의 벽이 높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그때였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펄럭.

로만 드미트리가, 바르보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 * *

확.

빨랐다.

로만 드미트리가 순간적으로 상대와의 거리를 좁히더니, 오라가 휘몰아치는 검을 휘둘렀다.

‘천마검법 전반부 일초식.’

콰앙!

콰르르르르릉.

강렬한 격돌이 일어났다.

바르보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공격을 받아 내더니, 역으로 오라를 폭발시키며 로만 드미트리의 허점을 공략했다.

일련의 과정이 자연스럽고 빨랐다.

비록 확실한 승리를 위해서 더러운 수작질을 감행했지만, 바르보사가 이름뿐인 실력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단 한 번의 공방에 증명해 냈다.

‘천마검법 전반부 이초식.’

콰앙-

천마검법은 형(形)이 존재하지 않는다.

로만 드미트리는 상대의 공격을 힘으로 찍어 눌렀고, 바르보사의 표정에 조금은 당혹스러움이 드러났다.

예상 밖이었다.

상대는 공격을 주도하겠다는 듯이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고, 실제로 득달같이 달려들면서 몰아치는 모습은 마치 본인이 강자처럼 행동하는 것만 같았다.

바르보사의 자존심이 상했다. 발할라의 축제는 명백히 자신이 도전자를 받아들이는 방식인데, 로만 드미트리의 태도는 건방졌다.

번뜩.

바람을 갈랐다.

로만 드미트리의 회피를 유도하고, 바르보사 특유의 뱀 같은 검술이 상대의 목덜미를 물었다.

그런데.

확-

로만 드미트리는 물러나질 않았다.

상체의 움직임만으로 바르보사의 공격을 피해 냈고, 바르보사는 검의 방향을 틀면서 로만 드미트리의 움직임을 끝까지 쫓았다.

그의 검술은 집요했다.

단순히 막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각(死角)을 공격해서 상대의 육체를 난도질하는 것이 현재의 바르보사를 대표하는 검술이었다.

‘천마검법 전반부 삼초식.’

콰앙.

콰르르르르르릉.

바르보사가 튕겨 나갔다.

오라의 여파에 휘말리자, 그가 의도한 바를 이루지 못했다.

“이런 빌어먹을 새끼가.”

의도와는 다른 상황.

바르보사가 전열을 가다듬었다.

이번 대결.

대등한 승부도 부끄러운 일이다.

멍청한 군중들은 속이는 것이 가능하나, 벨피르 후작과 같은 인물들은 자신이 독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이 지금의 상황을 보면서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독을 사용하는데도 상대를 압도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자신의 가치는 예전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바르보사가 마나를 끌어올렸다.

지금부터는, 상대를 밀어붙일 생각이었다.

콰릉.

콰르르르르릉.

오라가 휘몰아쳤다.

이번에는 그가 먼저 달려들며, 로만 드미트리의 공간을 차단하고는 정면에서 상대를 찍어 눌렀다.

그 순간.

‘천마검법 중반부 일초식.’

‘천마검법 중반부 이초식.’

콰콰콰쾅!

연속되는 공격.

바르보사의 얼굴에 균열이 일었다.

그가 밀렸다.

분명히 상당한 오라를 끌어올렸는데도, 로만 드미트리와의 격돌에 그는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상대는 겨우 20대 중반의 나이고, 힘과 힘의 대결에서 본인이 승리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다.

게다가 방금의 공격.

전력을 다한 모랄레스도 받아 내기 쉽지 않았을 텐데, 힐끗 살펴본 로만 드미트리의 표정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그때부터였다.

불길함이 일었다.

평소와는 달리 독이 통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자신을 밀어붙이는 로만 드미트리의 모습이.

어쩌면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피어오르는 상황에, 바르보사는 자신의 전력을 폭발시켰다.

콰르르르르르르르릉.

“죽어라!”

세상이 번쩍였다.

압도적인 힘.

사람들은 눈이 멀어 버릴 것만 같았다.

6성의 오라가 극한으로 발휘되며, 일반적인 사람들은 감히 바라보지도 못할 정도의 힘이 휘몰아쳤다.

평소에 그와는 다른 방식의 양상이었다. 조급함을 잃지 않았다면.

그는 뱀과 같은 특유의 공격으로 상대의 체력을 갉아먹으며, 분명히 본인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유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크게 상관없었다.

이번만큼은, 로만 드미트리 따위가 막아 낼 수 없는 공격이라고 확신했다.

‘천마검법 중반부 삼초식.’

콰앙!

콰콰콰콰쾅!

세상이 뒤집혔다.

땅이 무너지며, 눈앞의 상황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먼지구름이 일었다.

일련의 상황이 조금 진정되었을 때, 사람들이 확인한 장면은 피를 토하는 바르보사의 모습이었다.

“쿨럭.”

피를 뱉어 냈다.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말이 되지 않았다.

6성의 오라.

전력을 끌어올린 힘과 힘의 대결에서 자신이 패배하다니.

문제는 아직 상대가 6번밖에 공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로만 드미트리는 분명히 9번을 공격하겠다고 경고했고, 아직도 3번의 공격이 더 남아 있었다.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현실을 부정하고만 싶었다.

하지만 앞을 보았을 때.

먼지구름을 뚫고, 로만 드미트리가 자신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천마검법 후반부 일초식.’

무림의 절대자들은.

천마의 후반부 초식을 천상(天上)의 경지라 일컬었다.

그 영역에 들어서는 첫 번째 일격에, 바르보사는 자신의 생명력을 불태우면서까지 오라를 극한으로 끌어올리며 로만 드미트리의 공격에 대항했다.

이미 상식의 영역을 넘어섰다.

어떻게든 9번의 공격을 막아 내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었으나, 오라와 부닥치자 정신이 날아가 버렸다.

번뜩.

소멸(消滅).

바르보사의 존재가 사그라졌다.

오라와 맞닿는 부분들이 불길에 타들어 가며, 그는 사그라지는 그 순간까지 현실을 부정하는 눈빛으로 로만 드미트리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만약 로만 드미트리가 이 정도의 존재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는 절대로, 그와의 대결을 추진하는 어리석은 일을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파사삭.

먼지가 흩날렸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명백한 결과.

승자가 결정되는 상황에, 무대를 지켜보는 관중들은 그 누구도 환호성을 내지르지 못했다.

아니.

내지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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