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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화 (233/615)

233화 축제를 위한 축제 (4)

일련의 상황.

시각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세상 그 어디에도, 허공에 떠오른 돌을 밟아서 추진력을 얻는 기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콰르르르르릉.

세상이 밝게 물들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에, 모랄레스는 고개를 치켜들며 검을 위로 휘둘렀다.

콰앙!

콰콰콰콰쾅!

엄청난 충격이 일었다.

전신의 털이 쭈뼛 설 정도로 근육에 엄청난 과부하가 밀려 들어왔고, 공격을 막아 내는 자세 그대로 모랄레스의 몸이 쭉 밀려났다.

사람들의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모랄레스는 발할라의 괴물이니만큼 괴력의 상징으로 불리는데, 방금의 장면은 명백하게 힘에서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콰직.

땅이 무너졌다.

충격에 말랑말랑해진 땅이 걸음마다 붕괴되었는데, 로만 드미트리는 지형의 제약을 받지 않았다.

탁.

타탁.

기묘한 움직임이었다.

마치 무게가 없는 사람처럼, 무너지는 땅을 밟으면서도 달려드는 속도가 조금도 늦춰지질 않았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오라라는 폭발적인 힘을 강력하게 발현하는 방법밖에 몰랐다.

로만 드미트리의 힘은 ‘가벼움’을 추구하는 무공이었고, 떨어지는 돌로도 추진력을 얻는 모습은 당혹스러움을 더했다.

번뜩.

콰앙-

옆으로 튕겨 나갔다.

분명히 발을 디딜 곳이 없다고 생각되었던 공간이었는데, 로만 드미트리가 주먹만 한 돌을 밟으면서 검을 휘둘렀다.

모랄레스의 반응은 빨랐다.

과감하게 고개를 젖히면서 상대의 공격을 흘려보냈으나, 로만 드미트리는 다시 한번 추진력을 얻어 뛰어오르더니 검으로 내리찍었다.

콰르르르르릉.

콰앙!

모랄레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로만 드미트리의 연계 공격을 막아 내는 것만으로도, 어느새 그의 얼굴은 붉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그 또한.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로만 드미트리를 자신과 같은 동류로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20대의 검사가 자신보다 강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상식에 매몰된 판단이 아니다.

그간 수많은 전장을 전전하면서 경험했던 기억들이, 로만 드미트리가 자신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부정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격렬하게 몰아치는 공방.

로만 드미트리는 명백히 힘에서 우위를 보였다.

단순히 지형지물을 무마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어떠한 자세에서도 모랄레스를 압도하는 힘으로 찍어눌렀다.

역시 세상은 넓었다. 로만 드미트리의 기묘한 움직임도, 상식을 벗어나는 힘도.

그러한 모든 것을 갖춘 존재가, 아직 20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도.

상식의 영역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모랄레스는 어쩌면 이 대결에서 자신이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콰앙!

서로가 튕겨 나갔다.

오라를 일으키며 로만 드미트리를 뒤로 밀어낸 모랄레스가, 얼굴 가득 웃음을 피어 올렸다.

“정말 즐겁구나!”

늘 바라왔다.

로만 드미트리와 같은 전사와 싸우기를.

발할라의 축복 아래서, 전사로서 존재하기를.

가슴을 열었다.

넓은 가슴에 새겨진 상처들이, 모랄레스의 기쁨이 진심임을 증명했다.

“지금부터 훗날은 생각하지 않겠다. 이 모랄레스가, 로만 드미트리를 쓰러트리기 위해 전력을 다하마.”

콰르르르릉.

마나가 들끓었다.

몸 전체로 번져 나가는 변화.

뼈가 뒤틀렸다.

거대한 육체가 이전보다도 더한 크기로 불어났고, 모공에 돋아난 털들이 거칠게 자라나면서 문신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전신을 뒤덮었다.

모랄레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고통에 차오르는 신음을 토해 내며 그가 앞을 바라보았을 때, 그의 눈빛은 인간의 것이라고 할 수 없었다.

곰의 형상을 한 존재.

그는, 야인의 후손이었다.

* * *

제국의 상위 랭커.

그들은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각자만의 무기를 갈고 닦았다.

단순히 오라가 강하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강력한 힘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강함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었고, 모랄레스도 과감한 공격만으로 12위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야인의 후손들에게만 허락되는 변화의 능력. 그것을 발전시켜, 모랄레스는 동화(同化)의 단계에 이르렀다.

“크르르르륵.”

몸에 짐승의 피가 돌았다.

감각이 확장되었고,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밀하게 주변에서 전해지는 감각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대검은 버렸다.

양손에 돋아난 손톱이, 오라에 휩싸이며 마치 10개의 검을 양손에 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타닥.

콰르르르르릉.

땅을 박찬 순간.

땅이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이 일었다.

3m가 넘어가는 모랄레스의 거대한 체구가 로만 드미트리를 향해 달려들었고, 양손을 그대로 휘두르자 바닥에서부터 오라를 따라 거칠게 파여 나갔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전율이 일어나는 공격이었다.

로만 드미트리의 존재가, 이대로 짐승의 먹이로 전락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로만 드미트리는 상대를 마주했다.

물러나지 않고, 정면에서 맞닥트렸다.

콰콰쾅!

콰르르르르르르릉.

그때부터는 초월(超越)의 영역이었다.

모랄레스는 로만 드미트리가 자신의 공격을 막아설 것이라는 사실을 예상했다는 듯이, 방어는 생각하지 않고 미친 듯이 몰아붙였다.

로만 드미트리의 반격은 쉽사리 먹혀들지 않았다.

10배, 20배, 가파르게 달아오르는 짐승의 감각이, 상대의 의도를 시작 단계에서 알아차렸다.

오른손가락을 움직이는 순간.

이미 회피할 공간을 파고들었다.

몸을 틀며 검을 내리찍으면, 모랄레스는 빠르게 반응하면서 상대의 공격을 발톱으로 쳐 내 버렸다.

콰앙!

역한 충격이 일었다.

모랄레스의 입에서 핏물이 새어 나왔으나, 기괴하게 일그러진 표정은 이 순간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끝을 크르륵, 보자꾸나!”

쾅!

콰콰쾅!

공격을 몰아쳤다.

자신이 죽든.

로만 드미트리가 죽든.

이 싸움에 승자는 한 명뿐이다.

서로가 악연으로 얽힌 사이는 아니었지만, 발할라의 전사로 태어났다는 것은 언제든 죽음을 받아들이는 운명을 뜻했다.

적어도 로만 드미트리는. 바르보사보다도 발할라의 축제에 어울리는 존재였다.

자신의 공격을 정면에서 맞닥트리는 모습은, 모랄레스가 바라던 전사의 대결이었다.

생명이 타들어 갔다.

오라를 분출할 때마다.

로만 드미트리와 부닥칠 때마다.

모랄레스의 육체가 비명을 질렀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과도한 힘은, 승리할지라도 그만한 대가를 치르리라는 사실을 경고했다.

그러나.

‘반드시 승리한다.’

죽음을 받아들일지언정.

패배를 당연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모랄레스가 오라를 미친 듯이 끌어 올렸다.

이미 통제력을 잃은 것처럼, 모랄레스의 육체는 로만 드미트리에게 밀리지 않도록 전신에 퍼져 있는 오라를 바닥까지 긁어 냈다.

강렬하게 타오르는 오라.

손톱을 매개체로 발현되는 열 개의 오라는, 지켜보는 이들에게 모랄레스가 어떻게 12위의 자리에 올랐는지를 증명했다.

광폭의 전사.

10위 안의 랭커들도 기피하는 존재다.

야인의 후예라는 까다로운 특성과 방어를 도외시하는 공격 방법은 모두가 그를 상대하길 싫어했다.

그렇기에.

바르보사가 그와의 대결을 꺼린다는 말도 돌았었다.

바르보사는 대륙 십이검이며 6성에 오른 검사였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피해 없이 모랄레스를 쓰러트릴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오라의 경지를 떠나서 무조건 피해를 감수해야만 하는 상대.

그게 바로 모랄레스를 표현하는 수식어였고, 그는 발할라의 전사로서 조금도 모자라지 않은 존재였다.

콰직.

다시 한번 땅을 무너트렸다.

상대가 물러날 것을 알았다.

기묘한 움직임은 지형의 제약을 받지 않겠지만, 상대의 방향을 예측하며 오라를 폭발시키려 했다.

그 순간.

비틀.

모랄레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오라를 폭발시키기도 전에.

번뜩이는 검이, 그의 가슴팍을 갈라 버렸다.

* * *

모랄레스는 강했다.

그간 상대했던 존재들.

그들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였지만, 발할라의 사람들이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세간에 들려온 소문들.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린 업적은, 로만 드미트리가 전력을 다한 결과가 아니었다.

‘모랄레스. 너는 진정한 전사로구나.’

발할라.

사람들이 말하는 전사의 나라.

로만 드미트리가 경험한 발할라는 인종 차별이 극에 달하고, 압도적인 폭력에 항복을 말하는 세간의 소문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

실망의 연속이었다.

크로노스 제국의 유일한 대항마(對抗馬)는, 대륙을 다스릴 만큼의 품격을 보유한 그런 나라가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

모랄레스는 발할라의 근본을 증명했다.

발할라가 어떻게 탄생했으며, 어떠한 방식으로 제국을 이루었는지, 그의 존재가 모든 것을 말했다.

피가 끓었다.

발할라가 말하는 투쟁.

마교의 방식과 비슷했다.

약육강식은 생명을 담보로 한 처절함이 있다고는 하나, 대륙을 통틀어 발할라가 로만 드미트리에게는 익숙한 방식을 추구하는 나라였다.

모랄레스와의 대결은 자비를 베푸는 것이 아니다.

발할라가 마교와 흡사하다면, 지금부터는 무엇이 옳은지를 무력을 통해 증명할 차례였다.

로만 드미트리는.

사람들이 비난하는 약소국의 검사는.

바르보사의 상대로 조금도 부족하지 않은, 오히려 패배를 걱정해야 하는 그런 존재임을 증명했다.

힘과 힘의 대결.

대결을 즐겼다.

일반인들이 확인할 수 없는 압도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눈으로 직접 자신의 존재감을 목격하기를 바랐다.

그런 의미에서 모랄레스는 로만 드미트리를 진심으로 즐겁게 만들어 주는 존재였다.

야인으로 변해 몰아치는 공격은, 샐러맨더 대륙이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했음을 보였다.

푸확.

가슴팍을 가르는 검.

피부가 거칠었다.

강철만큼 단단한 피부가 갈라졌지만, 모랄레스는 신음 하나 흘리지 않으며 공격을 몰아붙였다.

“크아악!”

콰앙!

콰콰콰쾅!

패색이 짙어졌음을 알면서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보이지 않았다.

본인 스스로의 존재감을 불태우는 모랄레스를 상대로, 로만 드미트리는 기꺼이 그와 공방을 섞었다.

팔을 베고.

공격을 막았다.

다리를 베고.

자신을 끌어안으려고 달려드는 존재를 그대로 바닥에 처박아 버렸다.

콰직!

피가 튀었다.

얼굴이 뭉개지고, 땅이 부서졌다.

모랄레스로부터 흘러내린 피가 어느새 흥건했지만, 모랄레스는 곧바로 고개를 들며 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사람들에게 보였다.

주변에서 비명이 들었다.

그들이 믿고 따르는 모랄레스가 이렇게 일방적으로 밀린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건만, 눈앞의 광경은 현실을 강요했다.

뚝뚝.

바닥을 물들이는 피.

모랄레스가 히죽, 웃었다.

고통은 익숙했고.

그는 사지에 섰음을 알았다.

확실했다.

자신은 오늘, 이 자리에서 죽을 것이다.

* * *

변화가 풀렸다.

인간의 형상으로 돌아온 모랄레스가, 광기에 차오른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발할라의 사람들이여! 오늘을 기억하라. 드미트리의 후계자인 로만 드미트리는, 발할라가 비겁한 계책으로 본인을 함정에 빠트린다는 사실을 알고도 초대에 응했다. 그는 전사의 긍지를 타고난 존재다. 우리 모두가 그의 존재를 의심할 때, 바르보사와의 대결을 앞두고도 발할라 앞에 부끄럽지 않게 우리들의 도전을 받아들였다!”

처절했다.

악에 받친 목소리는, 모랄레스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음을 증명했다.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발할라는 제국으로 도약하며 근본을 잃었고, 나라는 대국이 되었으나 소국보다 옹졸한 마음을 가졌다. 더는 강함을 추구하는 전사들이 아니라. 정치적인 모략에 응하는 사람들이 권력을 쟁취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기에 로만 드미트리의 존재를 반겨라. 그의 무대를 즐겨라. 그 누구도, 바르보사와 로만 드미트리의 대결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눈을 부릅떠라.”

발할라 황실.

바르보사는 그들의 개다.

황실은 분명히 완벽한 승리를 위한 계책을 생각할 테고, 자신이 바르보사와의 대결에서 무릎을 꿇었던 것처럼 상황을 조작하려고 할 것이다.

파울로에 도착한 로만 드미트리가.

사람들의 안내를 받지 못하고, 인종 차별에 시달린 것만 보더라도 수뇌부들의 옹졸한 마음가짐을 증명했다.

“쿨럭.”

피를 토했다.

모랄레스가 다시 검을 쥐었다.

어느새 날이 상해 버린 검으로 오라를 일으키며, 로만 드미트리를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는 이미.

내부가 죽어 버린 상태였다.

강렬한 격돌에, 생명은 모두 녹아 버린 촛불처럼 위태로운 모습을 보였다.

일촉즉발의 상황.

생명력을 폭발시켜 그대로 달려드는 모습에, 로만 드미트리는 전력의 ‘일부’를 보여 주었다.

번뜩.

강렬한 불빛.

아무도 진실을 보지 못했다.

무언가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인식하기도 전에.

로만 드미트리의 검이, 모랄레스의 넓은 가슴을 다시 한번 갈랐다.

푸확.

고통이 일었다.

불타오르는 통증이 전신으로 번지는 느낌에, 모랄레스는 로만 드미트리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방금의 공격으로 확신을 얻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바르보사를 쓰러트릴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을.

‘바르보사. 나를 대신할 죽음의 사자가 너를 곧 찾아갈 것이다.’

그대로 무너지는 모랄레스.

그 뒤로.

산체스를 비롯한 사람들이, 충격으로 얼룩진 표정으로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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