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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화 (227/615)

227화 발할라 제국 (2)

발할라에는 그런 말이 있다.

길거리를 지나가는 배불뚝이 아저씨도, 한때는 전장에서 피를 마시던 전사였을 것이라고.

취객이 그랬다.

얼굴을 테이블에 처박으며 코가 뭉개지고 피를 흘렸지만, 취객은 곧바로 고개를 벌떡 들었다.

얼굴은 이미 피로 얼룩진 상태였다.

웬만한 사람들은 고통에 신음하며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인데도, 취객은 험악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입 안 가득 고인 피를 뿜어냈다.

“퉷. 이런 개새끼가 선빵을 날려?!”

더는 말이 필요 없었다.

취객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대로 들이받아 크리스를 쓰러트리려는데, 크리스가 한발 피하더니 상대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퍽!

“커억?!”

눈을 부릅떴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이 일었지만, 취객은 이를 악물면서 크리스를 향해 주먹을 연속해서 휘둘렀다.

확실히 일반인을 넘어서는 맷집과 의지였다.

그는 어떻게든 크리스를 쓰러트리겠다는 의지를 보였으나,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자비 없는 손속이었다.

빠악.

옆구리를 얻어맞고.

뺨을 날려 버렸다.

휘청거리는 취객의 복부를 걷어차 버리자, 테이블 위로 볼품없이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이 새끼가.”

“공격해!”

난장판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방금까지는 낄낄 웃으며 상황을 지켜보던 취객의 일행들이,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간다는 사실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들의 숫자는 3명이었다.

다들 길거리 싸움에 익숙한 모양인지 주먹을 휘두르는 모양새가 제법 날카로웠지만, 주먹질 한 번에 그들은 세상이 번쩍이는 충격을 받았다.

퍽.

콰당!

일방적이었다.

사내 세 명이 뭘 해 보기도 전에 나가떨어졌고, 크리스는 끝까지 일어나려는 그들의 얼굴을 그대로 걷어차 버렸다.

피가 튀었다. 정신을 잃은 사람들로서는, 더는 크리스를 향해 달려들지 못했다.

발할라.

이곳에는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

그들은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릴 때 결투를 통해 상황을 정리하는데, 승패를 결정하는 방식이 일반적인 나라들과는 달랐다.

세 가지의 방식. 죽어 버리거나, 혹은 전투 불능의 상태가 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본인이 스스로 항복을 시인하고 대결을 끝내는 것이 마지막 방법이었다.

고로.

피를 흘리고 쓰러지는 것만으로는 결판이 나지 않았다.

발할라의 사람들은 항복을 외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기에, 취객들은 정신을 잃고 나서야 달려드는 것을 멈출 수 있었다.

참담한 상황이었다. 방금까지 일상적인 분위기였던 여관이, 바닥에 피를 흘리는 사람들과 부서진 테이블로 인해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주인의 반응은 담담했다.

마치 일상적인 일인 듯이 받아들이는 모습에, 로만 드미트리는 금화를 하나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동의 대가는 금화로 치르도록 하지. 그리고, 파울로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 어디지?”

금화.

그것을 본 여관 주인은, 환한 표정을 보였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파울로 제일의 번화가는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발할라의 사람일지라도.

결국, 인간은 인간일 뿐이었다.

* * *

여관 주인의 안내에 따라.

로만 드미트리 일행은,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광장에 도착했다.

“이곳이 파울로 광장입니다. 도시의 중심지고, 이곳을 중심으로 파울로 어디로든 갈 수 있어서 사람들의 왕래가 활발한 곳입니다. 혹시 몰라서 미리 경고해 드리는데, 이곳에서는 여관에서와 같은 소란을 일으켜서는 안 됩니다. 저야 외부인을 상대로 영업하는 사람이라 웬만한 일은 넘어가지만, 극단적인 사람들은 발할라 사람이 공격당하는 상황에 무슨 일을 벌일지 모릅니다.”

진심 어린 경고였다.

천으로 얼굴을 가린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볼까 봐 서둘러서 광장을 빠져나갔다.

로만 드미트리는 주변을 보았다.

발할라의 사람들.

그들은 평화로운 분위기를 보였다.

다른 나라들과 다르지 않게 서로 어울리며 호객 행위도 하고, 상인들은 목소리를 높이며 물건을 팔았다.

문제는 타국의 사람들은 그러한 평화에 어울리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상인들은 타국의 사람들이 다가오면 입을 다물었고, 어떤 사람은 코를 막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사실.

파울로는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도시는 아니다.

그래도 국경에 인접한 도시다 보니 발할라의 다른 도시들보다는 외부인과 접촉할 일이 많은데, 축제 기간에는 인종 차별이 극에 달했다.

전사들의 혼을 기리는 축제는 발할라 사람들만의 특권이다.

그런데 타국의 행사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축제를 경험하고자 발할라에 입국하는 일이 많았고, 그들의 행태가 발할라의 사람들로서는 그렇게 좋게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전사가 아니다.

전장에서 피를 흘린 사람들만이 축제를 즐길 자격이 있는데, 외부인들은 감히 축제를 유흥거리로 어겼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문제였다.

발할라의 신성한 문화를 타국의 사람들이 소비하지 않기를 바랐고, 그렇기에 축제 기간에 발할라에 입국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사람들 사이로 걸었다.

거부감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길을 비켜섰고, 그들은 저마다 일행들에게 속닥거리면서 로만 드미트리를 향한 반감을 보였다.

인종 차별이 폭력으로 변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위험한 눈빛을 보이는 이들이 단 한 명이라도 앞으로 나서는 순간, 그들은 외부인을 향한 폭력을 행사할지도 몰랐다.

재밌는 나라였다.

제국이라 불리면서도, 아직 제국에 어울리는 품격을 갖추지 못한 나라.

크로노스가 강한 탐욕을 주체하지 못한다면, 발할라는 아직 야만성을 버리지 못한 그런 나라였다.

‘샐러맨더 대륙의 혼란은 우연이 아니다. 크로노스와 발할라. 대륙을 통치하는 양대산맥이 공명정대(公明正大)하지 못하기에, 대륙은 언제나 전쟁과 폭력으로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혼란의 책임이 크로노스에 있다고 말하지만. 발할라의 성향과 그들의 방관 또한 책임이 있다.’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이번 발할라행.

새로운 판도의 시작점이었다.

본격적으로 전쟁에 불이 붙기 전에, 로만 드미트리는 이곳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릴 것이다.

웅성웅성.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광장 한복판.

타국의 사람들에게 의구심을 보이는 그들의 시선에.

로만 드미트리가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드미트리 공국의 후계자인 로만 드미트리다! 나와 대결할 자가 있거든, 앞으로 나와라!”

* * *

분위기가 변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차별과 경계 정도였다면, 로만 드미트리의 발언에 사람들은 적의(敵意)를 보였다.

상대는 로만 드미트리.

소문의 오라 검사다.

보통은 겁을 먹고 물러나기 마련인데, 발할라는 달랐다.

“감히 발할라에서 행패를 부리다니. 내가 상대해 주마!”

건장한 체격의 사내였다.

태산(泰山)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체격에, 흉터로 가득한 그의 얼굴은 그가 평범한 일반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사람들이 로만 드미트리와 사내를 중심으로 공간을 형성했다.

어느덧 대결의 무대가 마련되었고, 딱히 시작 신호가 없었는데도 사내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콰르르르르릉.

오라가 일었다.

사내는 오라 검사였다.

그 힘은 로만 드미트리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나, 겉보기에는 단번에 상대를 잡아먹을 것만 같았다.

후웅.

무기를 휘둘렀다.

거대한 도끼가 바람을 갈랐고, 로만 드미트리는 검을 뽑지 않은 상태로 공격을 피했다.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가 섬뜩하게 들려왔다.

사내는 시작부터 승부를 보겠다는 듯이 전진 스텝을 밟으면서 맹렬하게 몰아붙였고, 방어는 도외시하고 오로지 상대의 급소만을 노렸다.

확실히 호전적이었다.

명백하게 로만 드미트리가 유리한 대결인데도, 사내는 전사가 어떤 존재인지를 증명했다.

그러나.

상대를 잘못 골랐다.

로만 드미트리는 공격을 피하며 다리를 걸었고, 휘청거리는 모양새에 그대로 뺨을 날려 버렸다.

짜악!

고개가 홱 돌아갔다.

사내의 얼굴에서 피가 터졌고, 땅바닥에 핏방울이 흩뿌려졌다.

당혹스러운 상황.

무기를 휘두르고도 오히려 뺨을 얻어맞자, 사내는 잔뜩 달아오른 얼굴로 이를 악물었다.

발할라에서는 죽음보다도 감당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치욕이다.

사내의 근육이 당장에라도 터질 것처럼 크게 부풀어 올랐지만, 그가 휘두르는 무기는 단 한 번도 유효하게 적중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김없이.

짜악.

뺨을 날렸다.

처음에는 의도한 공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뺨을 맞은 상황에, 로만 드미트리가 자신을 우습게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새끼가!”

분노가 폭발했다.

이건 명백히.

자신을 무시하는 행위였다.

발할라에서는 전사를 대우해 주는 것이 법도이건만, 자신을 완전히 어린아이처럼 조롱하고 있었다.

얼굴은 이미 엉망이 되어 버린 뒤였다.

사내는 미칠 듯이 달려들면서 뺨을 얻어맞든 말든 무기를 휘둘렀지만, 의지가 행할 수 있는 움직임에는 한계가 있었다.

짜악.

고개가 돌아가고.

도끼를 휘둘렀다.

짜악.

다시 한번 고개가 돌아가자.

이번에는 앞으로 나아가면서, 로만 드미트리를 끌어안으려고 했다.

짜악.

다리가 비틀거렸다.

정신이 없었다.

충격에 시야가 흐릿해졌고, 맹렬하게 타오르던 전사의 의지는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 처참하게 짓밟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신을 잃고 쓰러지지는 않았다.

분명히 얼굴 전체가 뜯겨 나갈 정도로 엄청난 충격이 일었는데, 아무리 맞아도 정신을 잃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다.

짜악!

짜악, 짜악!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도 사람이었다.

계속되는 충격에 아무런 저항조차 할 수 없게 되자, 사내로서는 이 상황을 벗어날 방법이 필요했다.

“……항복하겠습니다.”

그제야.

로만 드미트리는, 뺨을 날리려던 손을 내렸다.

* * *

“우우우우우.”

“차라리 죽어라.”

“자존심도 없는 새끼! 발할라를 욕보이지 마라!”

사람들이 야유했다.

세 가지의 선택지.

그중 항복을 선택했다는 사실에, 처음에는 환호성을 보냈던 전사의 존재를 수치처럼 여겼다.

사내로서는 억울했다.

맞은 사람만 알았다.

정신이 날아갈 것만 충격은, 전장에서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생소한 충격이었다.

“저리 꺼져. 내가 발할라의 의지를 보여 주마.”

새로운 사내였다.

앞선 사내와는 다르게 호리호리한 체격의 사내였는데, 얼굴을 가로지르는 검상과 날카로운 눈빛은 독종(毒種)의 기미를 보였다.

그도 로만 드미트리를 상대로는 승리할 수 없음을 알았다.

구스타보 기사단장을 쓰러트린 소문의 오라 검사는, 일반인이 범접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항복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패배하더라도, 그는 명예롭게 패배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은.

처음 뺨을 얻어맞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짜악!

단검 공격을 피하고.

로만 드미트리가 뺨을 날렸다.

홱 돌아가는 고개에, 사내는 순간 천국을 보았다.

‘……이런 미친.’

엄청난 고통.

눈이 팽팽 돌았다.

사내는 비틀거리면서 자신도 모르게 항복이라고 외치려다가, 사람들의 야유가 떠올라서는 간신히 입을 다물었다.

뒤늦게 후회가 밀려왔다.

앞선 사내가 어째서 항복을 외쳤는지 알 것 같았지만,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항복을 외치는 굴욕을 보여 주고 싶지는 않았다.

‘이판사판이다.’

방어를 포기하고 달려들었다.

차라리.

제대로 얻어맞고 실신하자.

그렇다면, 적어도 전사로서 명예롭게 패배하는 길이었다.

하지만.

짜악.

짜악, 짜악.

아무리 맞아도 정신은 건재했다.

로만 드미트리는 뺨을 날리면서 마나를 흘려보냈고, 고통을 전달하면서도 상대가 정신을 잃지 않도록 충격을 완화시켜 주었다.

상대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뺨을 얻어맞는 충격이 항복을 외치는 그때까지 지속할 것 같다는 생각에, 사내는 결국 결단을 내렸다.

‘다른 방법은 없어.’

짜악.

고개가 돌아갔다.

비틀거리는 다리에, 사내는 마치 충격에 못 이겨 혼절한 것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눈을 질끈 감았다.

끝까지 싸우다가 기절한 사내에게는, 패배할지언정 사람들의 박수가 쏟아질 것이다.

깜깜한 의식 위로.

로만 드미트리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일어나. 아직 정신을 잃지 않았잖아.”

꽈악.

“크악!”

급소를 누르는 발.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자신의 의도가 들통이 났다는 생각에, 사내의 얼굴이 잔뜩 붉어졌다.

그제야 알았다.

‘이 새끼 설마.’

로만 드미트리.

그는 처음부터, 발할라의 자존심을 완전히 짓밟아 버릴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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