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칠흑같이 어두운 밤 (8)
발할라의 초대장.
초대(招待)의 단어적인 의미를 생각했을 때는 긍정적인 일인 것처럼 보이나, 그 앞에 발할라가 있다면 얘기가 달라졌다.
발할라 제국이 초대장을 보내는 경우는 두 가지다.
정말로 손님을 초청하는 순수한 의미와 로만 드미트리가 맞닥트린 상황처럼 불순한 의도를 드러내는 경우.
로만 드미트리는, 초대장을 읽었다.
[로만 드미트리. 당신을 전사들의 혼(魂)을 기리는 축제의 대표 전사로서 초청하고 싶습니다. 기한은 지금으로부터 백일 뒤며, 전날까지 발할라에 도착하지 않는다면 초대에 불응한 것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매년.
발할라 제국은 전장에서 죽어 나간 전사들의 혼을 기리는 축제를 열었다.
그날은 발할라 전체가 축제의 분위기로 휩싸이며, 대표 전사들을 선별해 피를 보는 것이 발할라만의 전통이었다.
전투가 격렬하면 격렬할수록 망자의 혼을 기쁘게 한다는 미신을 믿었다.
즐거운 자리다.
문제는, 올해 발할라의 대표 전사로 확정된 존재였다.
크리스가 말했다.
“이번 발할라의 대표 전사는 대륙 십이검(十二劍)이라고 불리는 바르보사입니다. 덴버 백작을 죽인 일로, 공개적으로 복수하겠다는 의도가 분명합니다.”
대륙 십이검.
6성의 검사이자, 발할라 랭킹 6위.
대륙에서는 11위에 랭크되어 있는 괴물.
바르보사가 바로 발할라 제국의 대표였다.
크로노스와 발할라의 성향이 극명하게 나뉘는 순간이었다.
카이로의 숙청 사건으로 두 제국은 똑같이 복수를 바랐지만, 크로노스 제국은 옳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공개적으로 암살을 선언했다.
승리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족속.
그것이 크로노스 제국이라면, 발할라 제국은 황당할 정도의 정공법을 택했다.
초대장에 응한다면.
로만 드미트리는 바르보사를 상대할 것이다.
상식적인 결과로는 당연히 죽음을 맞이할 테지만, 만약 승리한다면 그간의 원한은 잊어버리겠다는 게 발할라의 태도였다.
물론 그동안 발할라의 초대에 응해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발할라가 내보낸 대표 전사들은 대륙에서 명성을 떨친 존재들이었고, 그들의 무지막지한 검술에 쓰러지는 상대를 보며 발할라는 축제의 분위기로 물들었다.
의도가 노골적이었다.
발할라는 덴버 백작 사건의 책임을 바랐다.
말이 초청일 뿐이지, 발할라 제국 또한 크로노스와 마찬가지로 제국 특유의 강압적인 모습을 보였다.
사형선고.
응하는 순간 죽는다.
로만 드미트리를 신뢰하는 크리스일지라도, 이번 문제만큼은 걱정이 앞섰다.
“굳이 승낙할 필요가 없는 제안입니다. 2년 전과는 달리, 지금은 주군만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위험을 피해 가십시오. 에코르셰에게 직접 복수를 행한 것처럼, 언제까지고 모든 위험을 감당하실 수는 없습니다.”
크리스의 말.
이해했다.
하지만, 로만 드미트리는 크리스처럼 상황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초대는 말 그대로 초대일 뿐. 네 말대로, 발할라의 초대는 거절한다고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다만. 발할라 제국은 전사들의 명예를 중요하게 여긴다. 초대에 불응하는 것은 발할라의 승리라고 생각할 테고, 그들은 그것을 빌미로 내 명예를 깎아내리려고 할 것이다. 발할라는 전사의 탈을 쓴 여우들이다. 초대에 응한다면 죽음을, 응하지 않는다면 실리적인 이득을. 그들은 완벽한 계획하에, 초대장을 보내는 결론에 이르렀겠지.”
선택은 로만 드미트리의 몫이었다.
안전을 생각한다면 거절하는 것이 백번 옳지만, 그렇다고 그게 최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크리스. 나는 나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신앙적(信仰的)인 존재여야만 한다. 앞으로 상식적으로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적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나와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승리한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그런데 발할라의 초대에 불응한다면. 사람들이 이를 어떻게 생각할 것 같나.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당연한 선택이라고 생각되는 단 한 번의 거절이, 사람들의 믿음에 미세한 균열을 일으키겠지. 그게 분열의 시작점이다. 발할라는, 드미트리의 분열을 바란다.”
그간의 전쟁들.
드미트리는 항상 승리했다.
처음에는 로만 드미트리 개인적인 능력이었다면, 시간이 갈수록 병사들의 능력도 빛을 발했다.
그들의 원동력.
신뢰에 있었다.
로만 드미트리를 따른다면 그 어떠한 적도 쓰러트릴 수 있다는 강력한 확신에, 그들은 전장에서 목숨을 바치는 것을 아끼지 않았다.
만약 죽는다고 할지라도.
진심으로 슬퍼하고 가족을 대우해 준다는 확신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던 전투를 압도적인 승리로 이끌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드미트리의 신(神)이었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서, 그 믿음을 배신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요소임을 알았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백일 뒤. 나는 발할라의 초대에 응할 것이다. 크리스. 너의 역할이 있듯,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역할이다.”
순간.
크리스는 말을 잃었다.
그는 늘 생각했다.
자신은 절대, 로만 드미트리처럼 살지는 못할 것이라고.
* * *
그 무렵.
암살 업계에 하나의 소문이 퍼졌다.
“에코르셰가 로만 드미트리의 암살을 맡았다가 몰살을 당했다.”
소문의 시작은 단테였다.
단테는 보고 들은 것을 주변 인물들에게 말했고, 소문은 들불처럼 빠르게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에코르셰의 검. 코르트를 오랜만에 만났을 때, 단테는 당혹스러운 감정을 숨길 수 없었어. 왜냐고? 샐러맨더 대륙에서 알아주는 암살자의 몰골이 고된 고문으로 참담하게 변해 있었고, 드미트리를 공격한 모든 암살자가 몰살을 당했다고 말했거든. 코르트는 그렇게 죽어 갔어. 드미트리는 잔인하게도 독에 중독시킨 채로 풀어 준 것이었고, 바닥에 쓰러진 코르트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피를 토하다가 죽음을 맞이했지. 그리고, 세간에 알려진 대로 로만 드미트리는 암살을 시도한 존재들을 몰살한 것으로도 모자라 국경을 넘어 에코르셰의 본거지를 공격했어.”
생생한 증언이었다.
단테의 말을 전해 들은 사람들이, 그때의 일을 격렬하게 떠들어 댔다.
에코르셰의 몰락.
모를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아침을 맞이했을 때, 거리에 걸려 있는 브라칸의 머리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상식 밖이었다.
에코르셰가 암살에 실패한 것은 감탄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나, 그 일을 복수하겠다고 국경을 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게다가 크로노스 황제는 로만 드미트리의 암살을 공표했다.
크로노스의 영토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살아 돌아갈 수 없을 텐데, 로만 드미트리는 끝까지 복수를 행했다.
하나의 예시.
사람들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암살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그동안 한결같은 모습을 보였어. 바르코 가문이 몰락했을 때. 사람들은 전쟁의 패배가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고 생각했지만, 그 이면에는 로만 드미트리가 바르코의 사람들을 몰살했음을 알 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지. 그게 바로 로만 드미트리라는 존재의 잔인함이야. 에코르셰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처럼. 앞으로 로만 드미트리와 그의 사람들을 암살하라는 의뢰를 받을 생각이라면, 그 대가로 본인도 위험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
암살의 대가.
로만 드미트리는 그것을 확실하게 보여 주었다.
어중간하게 말뿐인 협박을 내뱉는 것이 아니라, 국경을 넘은 일은 로만 드미트리의 집요한 면모를 보여 주는 예시가 되었다.
그로 인해 암살 업무에 관심을 보이던 이들이 고개를 돌렸다.
크로노스 황제가 바라는 일을 성공시킨다면 부와 명예를 얻겠지만, 이번 일은 너무 위험했다.
덕분에.
동북쪽 일대의 암살 의뢰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괜히 드미트리와 연관되어있는 사람들을 건드렸다가, 그 대가를 치를지도 모른다고 걱정한 것이다.
로만 드미트리의 판단은 옳았다.
단 한 번의 선례는.
백 번의 말보다 더 확실하게, 사람들의 심장에 공포를 각인시켰다.
* * *
에코르셰의 몰락.
어떤 사람은 감탄을.
어떤 사람은 경악을.
어떤 사람은 공포를 느꼈다면.
로만 드미트리를 따르는 케빈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꼈다.
‘……나는 언제까지고 주군의 위험을 방관할 수밖에 없는 걸까.’
이번 일.
자신도 따라나서고 싶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니만큼 도움이 되고자 했지만, 로만 드미트리는 그 누구도 대동하길 바라지 않았다.
그때의 로만 드미트리는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서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하자는 말에, 케빈을 비롯한 사람들은 감히 그 말이 틀렸다고 말하지 못했다.
모두가 알았다.
자신들이 로만 드미트리를 따라갔다간,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방해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진심을 억눌렀다.
사지로 떠나는 로만 드미트리를,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우리의 성장이 비정상적으로 빠르다고 말하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앞으로 주군이 나아갈 길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존재할 수 없어. 크로노스 제국, 발할라 제국. 대륙을 다스리는 포식자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도 강해질 필요가 있어.’
매일.
수련장에 나갔다.
해가 저물면 완전히 녹초가 되어 버릴 정도로 훈련에 열을 올렸지만, 단순히 훈련만으로는 상식을 넘어서는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새로운 방법이 필요했다.
로만 드미트리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로만 드미트리의 무공을 연마하며, 부가적으로 성장을 촉진할 방법이.
그러다 문득.
얼마 전에, 펠릭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번에 일정 구역의 마나 농도(濃度)를 높이는 마법진을 개발했습니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오차범위를 모두 해결하고 나면 다방면으로 도움이 될 게 분명합니다. 마법을 사용할 때 마법의 위력을 높여 줄 뿐만 아니라, 오라 검사들로서는 ‘수련의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이지 않은 농도에서 오라를 사용한다는 것. 이론적으로 생각했을 때, 오라 검사들이 체내에 받아들이는 마나의 양을 늘리고, 오라의 위력 또한 증폭시킬 수 있습니다.”
크리스와 나누었던 대화였다.
펠릭스는 드미트리를 위해 많은 실험을 거듭했고, 그중 하나로 마법진을 개발하는 것에 성공했다.
사실 프랑크에 머무를 때부터 연구했던 부분이었는데, 재정적인 여건이 허락되지 않아서 차일피일 미루었던 걸 마침내 성공한 것이다.
아직은 미완성의 단계.
확실한 성과와 안전하다는 판단을 위해서는 반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케빈은 앉아서 기다릴 수가 없었다.
펠릭스를 찾았다.
조금이라도 강해지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의향이 있었다.
마법진의 실험체로 전락할지라도, 케빈은 지금 당장 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 줄 방법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곳에는 이미 손님들이 있었다.
헨더슨, 맥버니를 비롯한 동료들.
로만 드미트리를 따르는 사람 중에 조금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들이 먼저 자리를 잡았다.
에코르셰의 사건으로, 그들 또한 케빈과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펠릭스가 말했다.
“……정말 무모한 분들이시군요.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아직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기술입니다. 만에 하나. 실패의 예시가 여러분들일 수 있는데도, 이걸 굳이 훈련에 사용해야겠습니까?”
“펠릭스 님. 저희가 왜 찾아왔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저희에게 중요한 것은, 앞으로 다가올 현실에서 주군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이대로는 부족합니다. 아무리 성장한다고 한들, 앞으로 상대해야 할 적은 이미 수백 년도 전부터 강자로 군림해 온 제국입니다.”
헨더슨이었다.
이해했다.
펠릭스 또한 무력감을 느꼈기에, 그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명심하십시오. 가장 최우선은 안전입니다. 주군을 위해서 뭘 해 보기도 전에 불구가 되어 버린다면, 주군을 볼 면목이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피닉스 마탑은 주군에게 받은 돈이 많아서, 저로서는 절대 주군에게 좋지 않은 소식을 전달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도 알았다.
큰 변화는 기대할 수 없음을.
그렇다 할지라도, 그들은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택했다.
* * *
그로부터 보름 뒤.
드미트리의 한 철광산.
새로운 철광산을 발굴하고 갱도(坑道) 작업을 진행하는 도중, 갑작스러운 사고가 발생했다.
콰앙!
콰르르르르르르릉!
“통로가 무너진다!”
“몸을 피해!”
갱도가 붕괴되었다.
지반이 단단한지를 확인하는 등 철저하게 주변을 조사했지만, 갑작스러운 사고는 인간의 능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빠르게 대피했다.
예전이었다면 갱도 사고는 많은 목숨을 앗아 가는 재앙이었으나, 지금은 그들을 보호해 주는 안전망이 설치되어 있었다.
[에어 실드(air shield).]
화악-
바람이 일었다.
무형의 방어막이 형성되며, 천장에서부터 무너지는 것들을 막아 주었다.
덕분에 사람들은 도망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 지반이 안정되자, 갱도를 확인하던 총 책임자 모르칸은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이게 대체.”
지하 깊숙이.
구멍이 뻥 뚫렸다.
그리고 그 끝에는.
명백히 사람의 손길이 닿았다고 추정되는, 지하 통로가 형성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