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칠흑같이 어두운 밤 (3)
암살(暗殺).
몰래 사람을 죽이는 행위.
크로노스 제국이 로만 드미트리를 암살하겠다고 말했을 때, 케빈은 잠깐이지만 로만 드미트리가 죽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가 신뢰하는 주군은 암살에 당할 인물이 아니었다.
어떻게 죽을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러한 결과를 마주한다면 자신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릴 것이다.
로만 드미트리.
자신의 하늘.
자신의 신(神).
삶의 밑바닥에서 자신을 끌어 준 존재가 죽는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분노를 들끓게 했다.
처음에는 암살에 대해 걱정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화가 났다.
만약 암살을 시도하는 존재가 있다면, 자신이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 버리리라.
다시는 사람들이 로만 드미트리의 암살을 감히 시도조차도 못할 정도로, 정말 잔인한 하나의 선례를 만들어 주리라.
그리고 지금.
코르트를 발견했다.
코르트가 이를 악물며 다른 곳으로 도망치려는 순간, 케빈이 그를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콰르르르르릉.
“네 녀석이구나!”
에코르셰의 검.
루카스가 말해 주었던 경계 대상이었다.
케빈은 순식간에 상대와의 거리를 좁혔고, 코르트는 표정을 찌푸리더니 본인도 오라를 일으켰다.
몸이 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케빈을 뿌리칠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면 정면 대결. 4성의 오라 검사인 자신의 실력이라면, 소문의 주인공인 케빈을 단숨에 무너트릴 자신이 있었다.
화악-
오라가 공간을 갈랐다.
케빈은 공격을 피하더니, 상대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바짝 붙었다.
서걱.
“크윽.”
그대로 다리를 베어 버리는 검.
빨랐다.
코르트가 단검의 방향을 틀면서 케빈을 공격해 보았지만, 케빈은 상대와의 거리를 유지한 채로 조금도 물러나질 않았다.
멀리서 보면 서로 뒤엉켜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분명히 조금이라도 실수하는 순간 목이 날아갈 텐데, 케빈은 두려움이 없는 모양인지 득달같이 따라붙었다.
피가 튀었다.
기묘한 움직임으로 계속되는 코르트의 공격을 피하면서, 케빈은 상대의 몸에 상처를 하나씩 남겼다.
분명히 실력으로는 코르트가 우위에 있었다.
케빈이 발현하는 오라는 코르트에 비해 명백히 약했지만, 팔을 하나 잃음으로써 본인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다.
게다가.
상대는 무모할 정도로 과감했다.
빨갛게 물든 눈으로 따라붙는 케빈은, 마치 죽음을 탐하는 귀신과도 같았다.
훙-
간발의 차이로.
공격이 빗나갔다.
케빈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악마들의 외침은 공격의 방향을 말해 주었고, 케빈은 고개를 젖히면서도 시선은 코르트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상식적이지 않은 대결이다.
로만 드미트리를 통해 검술을 수련한 지는 이제 겨우 2년밖에 되지 않았고, 4성의 오라를 상대로는 압도적으로 패배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케빈은 상식 밖의 세상에 살았다.
로만 드미트리가 나아가는 길을 따라가면서, 오라의 위력이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사람은 똑같았다.
오라 검사라고 할지라도 목이 날아가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간의 경험은 그러한 생각에 확신을 주었다.
그간 상대했던 존재들.
모두 케빈보다도 강한 존재들이었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눈빛으로 고통에 얼룩지고 말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케빈은 상대의 약점을 노렸다.
팔을 잃었다면 철저히 그쪽 방향으로.
밸런스를 무너트리면서 몰아붙였고, 코르트는 명백히 더 강한 존재인데도 기세를 잡지 못했다.
광마의 무공.
케빈의 존재감이 들끓었다.
코르트가 기습적으로 상대의 급소를 노리는 순간, 케빈은 오라 속으로 뛰어들며 똑같이 대응했다.
파앗.
서로 뒤엉켰다.
크게 흔들리는 코르트의 동공.
한발 늦어 버렸다.
오라가 얼굴을 덮치는 상황에서도, 케빈은 과감하게 먼저 상대의 급소를 공략하는 방법을 택했다.
어떻게 저런 말도 안 되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걸까.
자신을 바라보는 케빈의 눈빛에는 두려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오히려 본인의 판단이 옳다는 강한 확신 같은 것이 보였다.
‘……의뢰를 잘못 받았구나.’
로만 드미트리도 아니다.
그렇다고 그 다음가는 실력자라고 평가받는 크리스도 아닌데, 케빈의 실력은 상상을 넘어섰다.
자신이 꿈을 꾸는 게 아니라면.
애초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의뢰를 받아 버렸다.
팍.
머리를 박았다.
바닥에 쓰러진 코르트의 모습에, 케빈은 살의가 넘실거리는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주군이 너를 죽이지는 말라고 하지 않았다면, 나는 네 의식이 살아 있는 채로 살점을 하나하나 발라냈을 거야. 그렇다고 안심하지는 마. 살아 있음이, 그리 감사하게 느껴지지 않을 테니까.”
그 말이.
퍽.
코르트가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 *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코르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탁자에 놓여 있는 촛불만이 아른거리는 밀실에 존재하고 있었다.
고통이 일었다.
자신은 아직 죽지 않았다.
그렇다면, 살아갈 방도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로만 드미트리는 내게 바라는 게 있다. 그런 이유가 아니고서야, 나를 살려 줄 이유는 존재하지 않겠지. 일단 그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자. 정보가 필요하다면 정보를, 충성을 바치라면 충성을. 어떻게든 살아남아야만, 오늘 내가 겪은 수모를 똑같이 갚아 줄 수 있다.’
암살자의 세계.
한번 만만히 보이면 끝이다.
팔에서부터 올라오는 고통에 이를 악물면서도, 두 눈은 복수에 대한 열의를 보였다.
그때였다.
끼익.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오는 사내.
루카스였다.
코르트는 일단 그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려고 했는데, 루카스는 시선 한번 마주치지 않더니 무언가를 옆에 깔았다.
순간 코르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가죽 덮개 안에 드러난 것들은, 분명히 고문 도구였다.
“아, 아니, 일단 대화부터…… 크악!”
시작은 손톱이었다.
하나하나.
루카스는 집게로 코르트의 손톱을 빼 버렸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고문은 계속되었다.
손톱을 전부 빼 버리자 발톱을.
발톱마저도 전부 사라지고 피를 철철 흘리는 상황에, 루카스는 다른 도구를 꺼내서 상대가 적응하지 못하도록 새로운 고통을 선사했다.
대화는 없었다.
무려 일주일간.
코르트를 고문했다.
점점 무너져 가는 정신에, 코르트는 이제 신음을 내뱉을 힘도 없었다.
“……제발, 제발 죽여 줘.”
일주일째.
삶의 희망을 놓았다.
혹시라도 살아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부질없는 희망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자.
루카스가 코르트를 보며 말했다.
“코르트. 에코르셰의 검. 우리는 너를 죽이지 않을 생각이야. 주군께서 말씀하셨거든. 드미트리를 공격한 녀석들의 최후가 어떤지를 기억하고, 사람들에게 말해 줄 단 한 명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너를 제외한 에코르셰의 암살자들은 모두 죽었어. 그리고 내가 그동안 네게 남긴 고통의 흔적들은, 너라는 존재를 통해 드미트리를 건드린 대가가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알려지겠지.”
걸음을 옮겼다.
짐에서 투명한 액체가 담긴 약병을 꺼내더니, 코르트의 입에 흘려 넣었다.
“마셔.”
꿀꺽꿀꺽.
거절할 수 없었다.
그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기에, 그것이 독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코르트는 전부 들이켰다.
“일주일 전. 주군은 크로노스 제국으로 떠났어. 카이로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에코르셰의 본거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냈거든. 지금부터 나는 너를 풀어 줄 생각이야. 그러니까…….”
씰룩, 웃었다.
루카스는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살고 싶다면 전속력으로 달려. 나의 주군이, 너의 주인을 죽이기 전에.”
* * *
에코르셰의 마스터.
브라칸은, 의뢰인의 연락을 받았다.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습니다. 이 정도면 임무에 실패한 것이 아닙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에코르셰의 검은 실패를 모릅니다. 아직 드미트리에서 암살에 실패했다는 소문이 도는 것도 아니고, 지난 일주일간 로만 드미트리의 행방도 묘연한 상태입니다. 지금은 결과를 단정 지을 때가 아니니, 에코르셰의 능력을 믿고 기다려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하지만 명심하십시오. 실패의 대가는, 그리 만만하지 않을 것입니다.]
툭.
통신이 끊겼다.
상대의 엄포에, 브라칸은 현기증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정말 실패했단 말인가.’
일주일.
사실상 데드라인을 넘어섰다.
브라칸으로서는 이미 실패의 가능성을 받아들였으면서도, 의뢰인에게 그 사실을 밝힐 수는 없었다.
상대는 무려 크로노스 제국이다.
그들의 황제가 로만 드미트리를 암살하겠다고 공표했는데, 그 임무에 실패했다면 어떤 대가를 치르겠는가.
제국이 제안한 엄청난 보상에 에코르셰는 암살 임무를 받아들였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것이 얼마나 멍청한 선택인지를 깨달았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크로노스의 의뢰는 로만 드미트리의 죽음을 바랐다.
에코르셰의 검이 실패했을지라도, 아직 에코르셰는 상당한 수의 암살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지금부터는 현재 진행하고 있는 암살 임무를 모두 취소하고, 에코르셰의 총력(總力)을 다해 로만 드미트리를 암살해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길드원 대부분을 잃을지라도. 로만 드미트리만 죽인다면, 에코르셰는 크로노스의 지원을 받아 다시 반등하는 것이 가능하다.’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
에코르셰는 그간 수많은 암살 임무를 완수했고, 그러한 성과에 암살 업계에서는 에코르셰를 인정해 주었다.
상대가 5성의 검사라는 사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물론 에코르셰로서도 위험한 임무임에는 분명하나, 과할 정도의 인력을 투입하면서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클리프와 코르트.
그리고 수십의 암살자들.
막말로 카이로 국왕조차도 죽일 수 있다고 자부하는 전력이건만, 그들 중 단 한 명도 연락이 없었다.
벼랑 끝에 몰렸다.
브라칸은 자리에서 일어나, 오랜만에 자신이 직접 나서야 할 때임을 인정했다.
그때였다.
깜빡.
램프의 불빛이 꺼졌다가, 켜졌다.
브라칸의 집무실.
늦은 시각에 홀로 있었다.
계속해서 깜빡이는 램프의 불빛에, 그것을 직접 고치려고 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깜빡.
불이 켜졌다.
동시에.
어둠 속에서 드러난 의문의 존재에, 브라칸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 * *
1초.
상대의 얼굴이 익숙했다.
처음에는 어둠 속에 가려져서 얼굴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는데, 머릿속에 벼락이 내려치는 것처럼 방금까지 살펴보던 자료의 내용이 떠올랐다.
로만 드미트리를 암살할 새로운 작전.
자료의 가장 첫 페이지에는 로만 드미트리의 얼굴이 있었고, 의문의 존재는 그와 똑같은 얼굴을 했다.
2초.
눈을 부릅떴다.
상대가 로만 드미트리라는 확신이 생기는 순간, 브라칸은 허리춤에 매단 단검을 뿌리면서 백스텝을 밟았다.
3초.
공격이 모두 막혔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애초에 이런 공격으로 로만 드미트리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크로노스 제국에 나타났다는 것.
에코르셰의 본거지가 카이로 국경과 그리 멀지 않다지만, 그 사실이 의미하는 바를 모르지 않았다.
로만 드미트리를 암살하려는 계획은 실패했다.
코르트와 같은 인물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고, 로만 드미트리는 어떻게 알아냈는지 에코르셰의 본거지를 정확히 찾아냈다.
그렇다면.
이건 오히려 기회였다.
로만 드미트리를 이 자리에서 죽인다면, 자신이 바라던 그림을 완성할 수 있다.
4초.
단검을 추가로 뿌리면서, 한 손으로는 탁자 밑을 더듬었다.
비상벨이 있었다.
그것을 통해 이곳의 상황을 알린다면, 밖에 머무르고 있는 수십의 암살자들이 모두 몰려들 것이다.
5초.
서걱.
“크아아아악!”
팔이 날아갔다.
브라칸의 얼굴이 고통으로 얼룩지며, 바닥에 그대로 쓰러졌다.
피가 콸콸 쏟아졌다.
로만 드미트리는 어느새 검을 뽑았고, 미처 반응하지 못할 속도로 단번에 팔을 베어 버렸다.
머리가 팽팽 돌았다. 사고회로가 완전히 정지되는 기분이었다.
암살 업계에 발을 들이면서 곱게 죽지 않으리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로만 드미트리의 암살 임무가 이런 결과를 초래할 줄은 몰랐다.
이곳은 크로노스다.
대체 어떤 미친놈이, 암살을 시도했다고 제국의 영토에 발을 들인단 말인가.
“……크으윽.”
신음을 흘렸다.
하나만 남은 팔을 질질 끌며, 최대한 로만 드미트리에게서 멀어지려고 했다.
이곳의 소리를 수하들이 들었기를.
이루어질 수 없는 헛된 희망을 품었다.
힐끗.
로만 드미트리가 비상벨의 위치를 확인했다.
“이걸 누르면 네 수하들이 이곳으로 몰려들겠지.”
의도를 들켰다.
창백한 안색으로 로만 드미트리를 올려다보는 그때.
꾹.
삐이이이이익!
로만 드미트리가, 브라칸의 눈을 바라보며 비상벨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