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화 (198/615)

198화 드미트리 공국 (3)

드미트리.

정말 오랜만에 찾아오는 고향이었다.

수도에서 자신을 증명하겠다며 드미트리를 떠났던 로드웰은, 주변의 풍경에 과거를 떠올렸다.

‘몇 년 만이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드미트리 성 밖은 이토록 살기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

분명히 드미트리를 떠날 때만 하더라도 빈민가에서는 악취가 났는데, 허름한 집들을 무너트리고 보기 좋은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어두운 표정의 사람들이 없었다.

잘 먹고 잘 자란 아이들이 활기찬 얼굴로 뛰어다녔고, 시선을 옮기자 저 멀리 드미트리 성벽이 압도적인 존재감을 풍겼다.

예전보다 더 높은 것 같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전투에 실용적인 구조로 바뀌었고, 성벽에는 마법을 대비한 방어진이 설치되었다.

‘많은 일이 있었구나.’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드미트리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바르코와 전투를 치렀고, 동북쪽 일대를 차지하는 과정에서 북부의 영주들과 트러블이 있었으며, 반란군의 지휘관인 베네딕트 후작은 드미트리를 공격하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그러한 일들로 드미트리는 변화를 거듭했다.

한때는 변방치고 우수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지금은 왕국 그 어디에서도 드미트리만큼 잘 갖추어진 환경은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전쟁이 끝나고.

로드웰 드미트리는 휴가를 명령받았다.

드미트리는 공국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카이로와 국방을 따로 나누는 것은 아니었다.

서부와 남부 같은 타국과 직접적으로 국경을 맞닿는 부분은 공동의 국방으로 결정했고, 로드웰 드미트리만 원한다면 서부에서의 생활을 지속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게다가 논공행상에서 진급을 약속받았기에, 이번에 돌아가면 그는 지휘관급의 자리를 배정받을 것이다.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드미트리에 남을지.

아니면, 다시 서부로 떠날지.

결정을 위해 드미트리로 돌아온 그는, 감상은 한편에 접어 두고 성문을 통해 드미트리로 입성했다.

그리고.

감탄했다.

눈앞의 모습은, 자신이 기억하는 드미트리와는 너무나 달랐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잘 닦인 도로와 건물.

변방의 도시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발전이었고, 무엇보다도 시선을 사로잡는 부분은 드미트리의 병사들이었다.

입성하는 과정에서도 느꼈는데, 한눈에 보아도 잘 훈련받은 그들은 체계가 잡힌 모습으로 순찰을 돌아다녔다.

절도 있는 동작과 날카로운 눈빛.

조금의 분란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그들의 모습에, 로드웰 드미트리는 전장에서 보았던 로만의 병사들이 떠올랐다.

확실했다.

그들은 달라졌다.

변방의 그저 그런 병사들이 아니라, 그들은 왕국군과 비교해도 오히려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로드웰 드미트리는 거리를 걸었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드미트리를 떠난 시간이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건만, 이토록 변화한 자신의 고향을 선뜻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조금은 혼란을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이름 모를 식당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고, 한편에서 맥주를 홀짝이면서 오가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껄껄껄, 정말 그런 일이 있었어?”

“그렇다니까. 신입이 실수하는 바람에, 그대로 지하 터널에 묻힐 뻔했어. 정말 로만 드미트리 님이 갱도의 안전을 확보해 주지 않았다면, 나는 오늘 이 자리에 없었을지도 몰라.”

“그렇긴 하지. 마법 아티팩트로 갱도를 보호하고 난 직후부터, 누가 죽었다는 말을 들어 보지 못했어.”

“내 목숨을 살려 준 로만 드미트리 님을 위해, 건배!”

“건배!”

탁!

맥주잔을 부딪쳤다.

철광산의 광부로 보이는 이들은 로만 드미트리를 언급하며 떠들었고, 다른 테이블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이 하는 말은 로만 드미트리로 귀결되었다.

이번에 전장에서 보여 준 로만 드미트리의 활약에, 그들은 드미트리의 일원이라는 사실에 엄청난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았다.

하나의 도시.

활기가 넘쳤다.

드미트리는 철광산으로부터 영지민들의 일자리를 확보해 주었고, 그로부터 벌어들이는 돈이 선순환을 이루어 소비를 장려했다.

자연스레 사람들은 일상을 즐겼다.

그리고 그 일상이 로만 드미트리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들의 대화에는 로만 드미트리가 빠지질 않았다.

기억에 괴리감이 생겼다.

로드웰 드미트리가 떠나기 전, 그의 하나뿐인 형은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는 드미트리의 얼간이였다.

벌컥벌컥.

술을 들이켰다.

그리고는.

탁.

술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맛이 썼다.

* * *

그날.

로드웰 드미트리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남작 가문의 차남.

자신은 왜 그렇게 악착같이 살았던 걸까.

대단한 이유는 없었다.

단순히 드미트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발악했건만,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세상이 변해 버렸다.

이름만으로도 조롱을 받던 로만 드미트리는 없었다.

길을 걸으며 보고 들었던 것들은, 드미트리의 사람들이 로만 드미트리를 얼마나 신뢰하고 존경하는지를 보여 주었다.

허탈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현재의 드미트리는, 자신보다도 로만 드미트리가 어울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정말 거지 같네.”

그간의 노력.

자신은 후계자로서 자격이 있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낮잠을 잘 때 검술을 연습했고, 술을 마실 때 대장간에 갔으며, 여자들을 만나고 다니다가 경비병들과 목소리를 높일 때는 방에서 홀로 전술을 공부했다.

사람들은 그런 로드웰 드미트리야말로 가문의 후계자라고 단정했다.

드미트리를 떠날 때만 해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다고 말하던 사람들이, 오랜만에 마주한 자신의 얼굴에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것은 분명히 미안함이었다.

그들의 마음은 로만 드미트리를 향하기에, 로드웰 드미트리를 진심으로 대할 수가 없었다.

잔인한 현실이었다.

노력했던 것들이 무너지는 상황에 서운한 마음이 일면서도, 그렇다고 로만 드미트리를 따르는 사람들을 원망하고 싶지는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결과가 있지 않은가.

드미트리는 발전했고,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남작 가문은 이제 하나뿐인 공국의 주인이 되었다.

어느 것 하나.

흠잡을 것이 없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드미트리에 정말 잘 어울리는 후계자였다.

‘그리고 나는 눈마저 잃어버렸어.’

한쪽 눈.

시큰거렸다.

검사로서 눈을 하나 잃은 것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검을 휘두르는 모든 방식이 낯설게 느껴졌고, 당장에 거리 감각마저도 예전처럼 정확하지 않았다.

베란다에서 하늘을 보았다.

어두운 밤이었다.

자신의 미래처럼, 로드웰 드미트리는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드미트리에는 내 자리가 없어. 그리고 서부로 돌아간다고 한들, 그들이 원하는 내가 아니야.’

막다른 길에 몰렸다.

사실.

모든 이유를 떠나서, 로드웰 드미트리는 로만 드미트리가 전장에서 보여 준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소문으로만 들었을 것이다.

구스타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압도적인 무력을 보여 주었다고 말로만 떠들어 대는 그들과는 달리, 로드웰 드미트리는 그때의 상황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압도적이었다.

강렬했다.

눈을 한번 깜빡일 때마다 피를 흩뿌리는 그 모습에, 그때부터 이미 후계자의 자리를 포기했다.

드미트리 공국.

남작 가문 따위가 아니다.

동북쪽 일대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자신보다도 로만 드미트리가 후계자 자리에 어울렸다.

밤새 생각을 정리했다.

하루, 이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던 그는, 아버지의 부름에 집무실로 향했다.

그리고.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을 말했다.

“단순히 장남이기 때문에 양보하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드미트리에 도착하고 사람들의 일상을 지켜보며, 이미 대다수가 로만 형을 드미트리의 후계자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도로 떠나 있던 시간을 탓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드미트리에 남았다고 할지라도 로만 형만큼의 모습은 보여 주지 못했을 것이고, 오히려 비교를 당하면서 사람들의 결정은 더 쉬웠을지도 모릅니다. 아버지. 드미트리의 미래를 위해서 그간의 노력을 운운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

드미트리의 천재.

드미트리의 미래.

그가, 길을 잃었다.

자신감이 넘치던 과거와는 다른 얼굴로, 로메로 남작을 올려다보았다.

“저를 이만 보내 주십시오. 당분간은 드미트리가 아닌, 저를 위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마지막 인사를 하고서 집무실을 나가 버렸다.

* * *

둘만 남은 집무실.

로메로 남작이 말했다.

“……한때, 나는 로드웰에게 과도한 짐을 짊어지게 했던 적이 있었다. 장남이라고 불리는 네가 드미트리의 얼간이라고 불리기에. 평민 출신의 가문은 태생의 한계가 있다고 떠들어 대는 사람들로 인해. 곧잘 검술을 익히고, 남들보다 뛰어난 모습을 보여 주는 로드웰의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그가 드미트리 가문의 미래를 책임질 후계자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가슴이 답답했다.

항상 의젓했던 차남이다.

어쩌면 장남보다도 더 신뢰했던 존재기에, 그가 마지막으로 보여 주었던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아직은 어리광이 필요한 나이에, 로드웰은 아버지의 기대를 받는 삶을 살았다. 내가 믿는다는 말 한마디에, 신뢰한다는 눈빛에. 처음에는 어리광을 피우던 어린아이가 어느 순간부터는 독한 눈빛으로 싫은 소리 없이 모든 일을 해냈지. 로드웰은 드미트리의 자랑이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 평생을 드미트리를 위해 살아온 로드웰에게 후계자의 자리를 허락할 수 없다고 말했다. 참으로 잔인한 일이지. 하지만 지금도 그 선택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드미트리 사람들의 미래를 위해서는, 로만 드미트리 네가 후계자가 되는 것이 옳다.”

다만.

아버지로서 마음은 별개의 문제였다.

가주로서는 올바른 판단을 내렸지만, 로드웰이 떠나간 순간부터 그의 얼굴은 슬픔으로 물들었다.

‘나는 그리 좋은 아버지가 아니구나.’

로만 드미트리.

아픈 손가락이다.

그래서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고, 로드웰 드미트리가 대단한 일을 해내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도 로만 드미트리가 조금만 잘하는 상황에서는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뻐했다.

평민의 삶을 같이했던 아이기에. 그때는, 아픈 손가락을 챙겨 주는 것이 아비로서 옳다고 믿었다.

반대로 로드웰 드미트리는.

가문을 물려주는 것으로 보상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이를 먹고 인생을 살아 보니, 그때의 자신은 부모로서 너무나도 서툰 존재였다.

사람들이 로메로 남작을 입지적인 인물로 떠받들었지만, 그 또한 아비로서는 능숙하질 못했다.

“로만아.”

“예.”

“나는 그리 똑똑한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후회할 일을 하고서도, 지금도 아비로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잘 모르겠다. 평소라면 네 어미를 찾아가 정답을 물었겠지. 하지만 이번만큼은, 네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말씀하십시오.”

부자(父子)가 서로를 보았다.

드미트리의 새로운 미래.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삶보다는, 드미트리가 드미트리로서 존재하기를 바랐다.

“네 동생을 챙겨다오. 많은 것을 잃은 동생이다. 너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이 로드웰에게 좋은 선택이라는 확신은 없지만, 가족이 가족으로서의 의미를 다하는 것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너와 로드웰의 아비인 것처럼. 아비로서 부족하더라도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처럼, 너 또한 가족을 위하길 바란다. 이것이 드미트리를 물려받을 네게 바라는 마지막 부탁이다.”

가족이라는 말.

로만 드미트리가 잠시 말을 아꼈다.

현생.

익숙하지 않았다.

전생을 경험했으나, 전생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아버지.”

담백한 대답.

그 말에, 로메로 남작은 그제야 편안한 웃음을 보였다.

* * *

집무실을 나섰다.

로만 드미트리는 복도를 걸으며,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전생에는 이 손으로 내 혈육들의 숨통을 끊었다.’

아직도 선명했다.

자신을 죽이겠다고 얼굴을 붉히고, 숨통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눈을 부릅뜨며 저주하던 그들의 얼굴이.

나름대로 좋은 관계를 맺었다고 생각했던 형제들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삶이 다하는 순간에는, 골육상쟁을 부추긴 아버지가 아니라 당장 숨통을 압박하는 자신을 원망했다.

그게.

백중혁의 삶에서는 형제라고 불렸다.

현생은 달랐다.

로렌 드미트리를 만나고.

로드웰 드미트리와 대화를 나누면서, 로만은 머릿속으로 그들과의 관계를 정리했다.

“멍청한 녀석.”

한심했다.

로드웰은 눈을 하나 잃었다고 세상을 포기한 얼굴을 했고, 본인이 그간 노력해 온 세월이 있는데도 후계자의 자리를 망설임 없이 양보했다.

전생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알량한 권력을 차지해 보겠다고 발악하던 형제들과는 다르게, 로드웰은 가족과의 분쟁을 바라지 않았다.

세상은 험난하다.

자신의 동생이라면, 자신의 핏줄을 타고난 사람이라면.

로드웰 드미트리가 이대로 무너지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본인이 어떤 사람을 형으로 두었는지, 드미트리로서 살아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번 기회에 보여 줄 생각이었다.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도착한 곳.

드미트리의 연무장에는, 햇볕 아래서 검을 휘두르는 로드웰 드미트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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