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8화 (168/615)

168화 카이로 제일 검 (3)

카이로 랭킹 1위.

리차드 니콜라스.

사람들은 그를 카이로 제일 검이라 인정하면서도, 그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니콜라스 백작은 대체 무슨 낙으로 사는 걸까? 오래전에 이미 정점의 자리에 올랐으면서도, 부와 명예를 즐기기는커녕 매일 수련장과 집을 오가는 삶을 살잖아. 참 답답한 인간이야. 내가 니콜라스 백작의 실력을 지녔다면, 베네딕트 후작과 결탁해서 안락한 삶을 살 텐데 말이야.”

한때.

니콜라스 백작의 삶이 조명된 적이 있었다.

참으로 따분했다.

하인이 증언한 바에 따르면, 아침에 잠시 명상의 시간을 가지는 것을 제외하고는 온종일 훈련장에서 산다고 말했다.

검술의 기본부터 시작해서 고난도의 기술까지.

매일 자신의 검술을 되돌아보며 땀을 흠뻑 흘린 니콜라스 백작은, 수하들을 불러들여 대련하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그게 하루 일정의 전부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로열 나이트로서 대외적인 업무도 빼먹은 채, 니콜라스 백작은 오로지 검술 훈련에만 열을 올렸다.

60대가 넘는 나이다.

아직 검사로서는 한창일 나이라고는 해도, 사회적인 지위를 생각했을 때는 훈련장에서만 하루를 보내는 삶은 그리 적절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니콜라스 백작은 매일 똑같은 삶을 살았다.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든, 눈을 뜨고 감을 때까지 그의 손에는 검이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히 좋아서?

검에 미쳤기 때문에?

아니다.

니콜라스 백작은, 하루를 마무리할 때면 속에서 올라오는 역한 기운에 억지로 눈을 감았다.

‘나도 치열하게 살고 싶지 않다.’

60년의 삶.

평생을 왕가를 위해 살았다.

어릴 때부터 검술 훈련에 게으르면 채찍질을 당했던 니콜라스 백작은, 현재에 이르러 카이로 왕가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었다.

본인도 알았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나약해지는 순간.

왕좌를 노리는 악의 무리로 인해서, 카이로 왕가가 모래성처럼 와르르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 없었다.

카이로 왕가는 니콜라스의 전부였다.

머릿속에 각인되어 버린 왕가에 대한 맹목적인 감정은, 사람들이 따분하다고 여길지언정 니콜라스 백작의 전부가 되었다.

그래서 이를 악물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버틀러를 쓰러트렸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니콜라스 백작은 훈련장으로 가서 온종일 검을 휘두르며 가상의 존재를 상대했다.

다니엘 카이로.

그리고 전대 국왕.

그들이 보여 주는 웃음 한 번에, 따뜻한 말 한마디에.

니콜라스 백작은 삶의 의미를 찾았다.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말하는 존재는, 결국 한낱 인간으로서 자신이 살아가는 가치를 믿고 따랐다.

어느 날.

자신과는 달리 평범한 삶을 사는 아들이 물었다.

“아버지,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매일 녹초가 되는 아버지.

화려한 명성과는 다르게 초라한 몰골로 집에 돌아오는 아버지.

그처럼 되기 싫어서 검을 포기한 아들의 책망에, 니콜라스 백작은 진심 어린 웃음을 보였다.

“아들아, 나는 카이로 제일 검이다. 사람들이 카이로를 약소국이라 부르며 우습게 보지만, 적어도 카이로라는 작은 우물에서는 나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야만 한다. 그게, 내가 살아가는 삶의 목적이다.”

그리고 오늘.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로만 드미트리.

어린 도전자를 상대하기 위해, 니콜라스 백작은 공개 랭킹전을 선언한 1년 전부터 준비했다는 사실을.

카이로 제일 검.

리차드 니콜라스는, 로만이 밟고 올라온 인물들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 * *

콰르르르르르르릉.

땅이 뒤흔들렸다.

강하게 휘몰아치는 모래 폭풍 사이로, 니콜라스 백작이 로만 드미트리를 몰아붙였다.

카앙!

카카카카카캉!

양상이 뒤바뀌었다.

초반에는 로만 드미트리가 공격을 주도했다면, 이번에는 니콜라스 백작이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부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도망치지 않는다.’

지난 1년.

니콜라스 백작의 머릿속에는 데이터가 쌓였다.

로만 드미트리가 호메로스를 상대했을 때, 남부 전선에서의 전투, 버틀러를 쓰러트렸을 때의 증언들.

정보가 되는 모든 사실을 머릿속에 담았다.

사람들은 카이로 랭킹 1위나 되는 사람이 아직 20대 중반에 불과한 검사를 왜 경계하냐고 말하겠지만, 니콜라스 백작은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상대의 재능은 찬란하다.

재능에서 압도할 수 없다면, 연륜으로 찍어 누르는 방법이 있었다.

콰앙!

폭발이 일었다.

상대가 도망치지 않으리라는 판단에.

일부러 오라를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대기를 일그러트리는 오라는 피하는 것만으로는 막을 수 없기에, 로만도 검을 들어 공격을 막았다.

카앙!

콰콰콰쾅!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상대의 수.

로만 드미트리가 생각하는 최선을 공략했다.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라면 무조건 공격을 막아 낸다는 판단 아래에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부었다.

오른쪽을 공격했다면 왼쪽을.

왼쪽을 공격했다면 머리 위를.

계속해서 공격의 패턴을 바꾸어 가며, 로만 드미트리가 허튼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모든 가능성을 차단했다.

한 번의 호흡.

그것을 선점한 대가는 컸다.

카이로 제일 검의 공격은, 한 번의 흐름으로 주도권을 완전히 가져왔다.

“와.”

“……이게 카이로 제일 검이구나.”

먼발치에 있는 사람들.

그들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모래 폭풍에 휩싸여 제대로 보이지는 않지만, 니콜라스 백작은 엄청난 존재감을 표출했다.

확실했다.

니콜라스 백작은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

랭킹 2위의 오스카는 대륙 랭킹 끝자락에도 도달하지 못했지만, 니콜라스 백작은 무려 80위에 올랐다.

그것도 5년이나 지난 일이다.

그때 이후로도 니콜라스 백작은 하루도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그가 다시 대륙 랭킹에 도전하면 순위가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60대의 나이.

신체적으로 늙어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카이로의 권력 체계가 어째서 자신으로 유지되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었다.

콰앙!

콰르르르르르릉.

폭발하는 오라.

니콜라스 백작이 모래 폭풍을 뚫고 나아갔다.

카이로 왕가를 지키기 위해, 강력한 도전자에게 아직은 멀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한 번이라도 공격이 어긋나는 순간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공격을 절대 늦추지 않았다.

그렇게.

니콜라스 백작은 활활 타올랐다.

그가 자신의 존재감을 불태울수록.

로만 드미트리.

그 또한, 같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 * *

니콜라스 백작.

그는 강자였다.

로만 드미트리로 살아가며 수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단언컨대 그보다 강한 검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버틀러보다 한 수 위다.’

강자와의 대결.

피가 끓었다.

지난 1년을 침묵으로 일관하며, 로만 드미트리는 오늘과 같은 순간을 기다렸다.

카앙!

카카카카캉!

검을 휘둘렀다.

상대의 의도에, 상대의 공격에.

모두 정면으로 대항했다.

조금도 물러나지 않고, 로만 드미트리는 상대가 어떻게 달려들던 정면에서 맞받아쳤다.

콰르르르르릉.

엄청난 충격이 일었다.

정면 대결은 소모적인 판단이건만, 누구 하나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카이로 제일 검에 대한 예우?

그딴 이유가 아니다.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로만 드미트리는, 상대를 힘으로 찍어 누르고 싶었다.

‘니콜라스 백작은 강하다. 그러나, 결국 카이로의 기준에서 강할 뿐이다. 대륙에는 그보다 강하다고 평가받는 존재들이 수십 명이나 되고,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존재들까지 포함한다면 얼마나 많을지 감히 예상할 수 없다. 그렇기에. 앞으로의 계획을 위해서는 니콜라스 백작 정도는 압도해야만 한다.’

상대를 인정했다.

그가 오스카와 같은 부류였다면, 로만 드미트리는 굳이 시간을 끌지 않고 승부를 끝내 버렸을 것이다.

번뜩.

니콜라스의 공격.

하늘에서 유성이 쏟아지듯 오라로 휩싸인 검이 떨어졌다.

로만은 앞으로 치고 나갔다.

상대의 의도를 따라 주며, 자신도 오라를 일으켜 공격을 맞받아쳤다.

콰앙!

콰르르르르르릉.

격돌의 연속이었다.

둘은 계속해서 부딪쳤다.

마치 한발이라도 물러나면 승부가 끝나는 것처럼, 그들은 서로를 향해 조금도 물러나지 않았다.

콰앙!

한 번의 격돌.

니콜라스 백작이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정말 미세한 차이지만, 그는 본인이 반발력에 조금 튕겨 나가는 것을 느꼈다.

콰앙-!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방금보다도 힘을 더 끌어올렸는데, 오히려 전보다 더 밀려났다.

콰앙!

콰콰콰쾅!

계속해서 부딪칠 때마다.

니콜라스 백작은 조금씩 밀려났다.

분명히 처음에는 그가 우세를 점했건만, 상대와 정면으로 부딪칠수록 믿을 수 없는 현실이 보였다.

가랑비에 몸이 젖듯.

결과가 켜켜이 쌓았다.

뒤늦게 자신이 다섯 보 이상 밀려났다는 사실에, 니콜라스 백작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내가 힘에서 밀리고 있다.’

그때부터였다.

사람들은, 대결의 흐름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 * *

이번 대결.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림이 있었다.

만약 로만 드미트리가 이변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적어도 정면 대결에서 승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로만 드미트리는 20대 중반에 불과해. 아무리 그가 대단한 천재라지만, 60년의 세월을 수련한 니콜라스 백작의 오라를 정면에서 상대할 방법은 없어. 모든 면에서 니콜라스 백작이 압도하는 상황에서, 로만 드미트리가 변수를 창출해야만 실낱같은 승리의 가능성을 살릴 수 있겠지.”

상식적인 판단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결과는 달랐다.

콰앙!

니콜라스 백작이 밀렸다.

처음에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밀렸지만, 지금은 한발 밀려나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

콰앙!

이번에는 이 보 뒤로.

니콜라스 백작이 이를 악물었다.

로만 드미트리의 검을 맞받아칠수록, 속에서 역한 기운이 일었다.

‘말도 안 돼.’

경악했다.

그도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로만 드미트리를 상대하기 위해 1년간 준비했지만, 그가 자신을 힘에서부터 찍어 누르리라는 사실은 감히 예상할 수 없었다.

그건 오만이 아니다. 자신에 대한 자신감.

60년의 세월을 살아가며 경험한 것이 있기에, 적어도 20대의 세월이 녹아든 오라보다는 강하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상식이 와르르 무너졌다.

상대는 괴물이었다.

사람들은 니콜라스 백작을 천재라 부르지만, 천재의 영역에서도 로만 드미트리는 천외의 존재였다.

콰앙!

촤르르르륵.

뒤로 쭉 밀렸다.

“쿨럭.”

순간, 피를 울컥 쏟아 냈다.

계속되는 격돌에 충격이 중첩되었고, 내장이 엉망이 되어 버린 모양인지 진득한 피가 입에서부터 뚝뚝 떨어졌다.

시선을 사로잡는 붉은 핏방울. 니콜라스 백작은 허무하다는 듯이 웃었다.

카이로 왕가의 버팀목으로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발악했건만, 그동안 경계했던 귀족파가 아니라 새로운 신성에게 무너지는 꼴이라니.

만약.

자신이 패배한다면 어떻게 될까.

로만 드미트리는 중립을 표방하지만, 그렇다고 다니엘 카이로를 도와줄 것 같지는 않았다.

그간 알아본 바에 따르면.

상대는 실리적인 인물이었다.

같잖은 낭만을 따라 인생을 바친 자신과는 다르게, 로만 드미트리는 왕가를 위해 희생할 이유가 없었다.

‘절대 질 수 없다.’

이를 악물었다.

피를 삼켰다.

역겨운 비린내를 꾹꾹 억누르며, 상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웃겼다.

로만 드미트리는.

자신에게 시간을 주었다.

속을 진정시키고 다시 전력을 다해 부딪치라는 듯이.

도전자에 불과한 녀석이 챔피언처럼 오만을 부리는 모습에, 니콜라스 백작은 오라를 전력으로 끌어올렸다.

‘오냐. 네 배려를 감사히 받아들이마.’

쿠르르르르릉.

검을 들었다.

마지막이다.

이것마저도 실패한다면, 로만 드미트리를 쓰러트릴 방법은 없을 것이다.

타닥.

콰르르르릉.

땅을 박찼다.

이번에도 정면에서 맞받아치는 로만 드미트리.

오라를 폭발시켰다.

니콜라스 백작의 비기.

자신을 80위의 랭커로 만들어 주었던 힘이 발현되자, 검을 휘감은 오라가 폭발하는 활화산처럼 활활 타올랐다.

‘끝이다.’

그때였다.

니콜라스 백작은 똑똑히 보았다.

세상을 집어삼킬 것처럼 타오르는 오라를 마주하고도.

자신의 의도를 파악했으면서도.

로만 드미트리는, 자신의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콰앙!

콰콰콰콰콰쾅!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