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3화 (263/615)

263화 제1차 대륙 전쟁 (1)

벌써 세 번째 회의였다.

이제는 삼국의 대표만이 남은 자리에, 오델리아 국왕은 호들갑을 떨었다.

“아침에 소식을 듣고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이게 정말 사실입니까? 아니, 대체 어떻게 라스칼에 침투해서 겨우 한 시간 만에 그 많은 병력을 처리했답니까? 로만 드미트리가 예사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건 상식의 범주를 벗어났습니다.”

“저도 믿기지 않습니다. 무려 일만입니다, 일만. 애초에 크로노스의 영토에 먼저 침범하는 것도 이례적인 일이건만, 로만 드미트리는 선전포고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드미트리가 전쟁을 원한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왕국 연합의 도움 없이 크로노스를 상대하려 하고 있습니다!”

움베르토 국왕이 맞장구를 쳤다.

라스칼의 괴멸(壞滅).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사람들은 드미트리가 카이로와 같이 서부에서 수성에 전념하리라고 확신했건만, 밤새 벌어진 사건은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소수의 병력으로 일만을 학살했다는 것도 경악스러운데, 애초에 크로노스의 영토를 먼저 침범한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자체가 일반적인 상식과는 달랐다.

대체.

로만 드미트리의 정체는 무엇일까.

남들은 감히 올려다보지도 못할 크로노스를 상대로, 그는 약소국 출신 주제에 물러섬이 없었다.

프랑크 국왕이 말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번 사건으로, 어쩌면 크로노스 제국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절대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만 드미트리는 왕국 연합의 개입을 배제했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드미트리만의 힘으로도 크로노스 제국을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우리의 진심을 바란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는, 라스칼을 괴멸시키면서 크로노스가 더는 무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번 사건의 경위를 파악하면서.

로만 드미트리를 이해하지 못했던 프랑크 국왕이, 어쩌면 승산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그 말에.

두 국왕이, 경기를 일으키듯 반응했다.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절대, 절대 그래서는 안 됩니다. 상대는 크로노스입니다! 겨우 일만의 병력을 잃었다고, 상황이 극적으로 바뀌리라고 생각하십니까? 라스칼의 병력은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맞습니다. 프랑크 국왕님. 로만 드미트리는 분명히 이전에는 없었던 충격적인 결과를 보여 주었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그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애초에 승산이 없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대륙의 역사를 돌이켜보십시오. 항상 크로노스 제국의 체제에 불만을 가진 이들이 나타나 목소리를 높였으나, 그들은 단 한 번도 제명에 죽지 못했습니다.”

과할 정도로 격렬한 반응이었다.

프랑크 국왕의 말은 분명히 일리가 있었으나, 두 국왕으로서는 그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2차 국제회의가 끝나고.

둘은 크로노스 제국에 연락했다.

이미 그들에게, 드미트리와 다시 연합하는 선택지는 없었다.

그런데.

프랑크 국왕은 물러나지 않았다.

“아니요. 제 생각은 다릅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원래 프랑크 소속이었던 피닉스 마탑이 드미트리로 소속을 옮겼습니다. 그때는 속이 참 쓰라렸는데, 사람을 보내 알아본 결과 피닉스 마탑이 정말 빠른 속도로 발전을 거듭하더군요. 그제야 알았습니다. 프랑크와 드미트리는 그릇이 다르다는 것을. 똑같은 조건에서도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내는 그들이라면, 어쩌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던 크로노스의 몰락을 현실로 만들어 낼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세간의 소문.

프랑크 국왕을 움직인 가장 중요한 이유는, 로만 드미트리가 전쟁을 선포한 명분이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자신의 사람이라고 규정하면 절대 그 손을 놓지 않습니다. 크로노스 제국의 밑에서 매일 불안에 떠는 것보다는, 일말의 승산이라도 있다면 드미트리를 따르고 싶습니다.”

“안 됩니다, 프랑크 국왕님!”

난리가 났다.

처음에는 의견 교류를 위했던 자리가, 어느 순간부터는 프랑크 국왕을 설득하기 위한 두 국왕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변했다.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프랑크 또한 왕국 연합 전체를 움직이고 싶었지만, 과할 정도로 반발하는 모습에 결국 레드포드처럼 자리를 박찰 수밖에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저는 드미트리와 ‘대화’라도 나눠 봐야겠습니다.”

그렇게.

프랑크 국왕이 자리를 떠났다.

제3차 국제회의 또한, 파국으로 끝나고 말았다.

* * *

망했다.

회의를 끝내고, 오델리아 국왕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국제회의는 이제 의미를 상실해 버렸고, 구성원도 국제회의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이국(二國) 연합이 되어 버렸다.

이를 대체 어찌한단 말인가.

만약 프랑크 왕국마저도 드미트리의 편에 붙는다면, 그때부터는 단순히 드미트리 하나가 멸망한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드미트리 연합이 패배하는 순간. 크로노스 제국은, 대륙 정벌의 야망을 실현하겠지.’

문제를 알면서도.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오델리아 국왕으로서는, 살기 위해 크로노스 제국에 연락을 취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드미트리는 이제 카이로, 레드포드, 헥토르, 프랑크 왕국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드미트리와의 전면전은 ‘대륙 전쟁’이라 불러도 문제가 없을 만큼 규모가 커진 상황이고, 라스칼의 일만 병력이 기습 공격에 괴멸당했다고 들었습니다. 저희에게 정답을 알려 주십시오. 오델리아가 살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까?”

간절한 물음이었다.

화면 너머에 있는 찰튼 남작은, 여유로운 얼굴로 말했다.

[오델리아 국왕님. 국왕님의 걱정은 애초에 전제부터가 잘못되었습니다.]

“……그게 무슨.”

[왕국 연합 전체가 드미트리를 지지한다고 해도, 크로노스 제국은 이번 전쟁을 강행할 것입니다. 라스칼의 사건으로 황제 폐하가 분노하셨습니다. 제국 전체에 소집령이 선포되었고, 그 규모는 역사에서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아십니까? 단순하게 드미트리를 벌하겠다는 정도가 아니라, 그들을 완전히 대륙 지도에서 지워 버릴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오델리아 국왕이 눈을 크게 떴다.

크로노스가 이번 전쟁에 사활을 걸었다면, 왕국 연합이 아무리 발악한다고 한들 전세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가 걱정했던 부분은 크로노스의 결단이었다.

그들이 모호한 태도로 이번 전쟁에 임한다면, 왕국 연합을 배반한 오델리아 왕국만 입장이 난처해질 수밖에 없다.

찰튼 남작의 말은.

확신을 부여했다.

안도감을 얻은 그는, 침착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오델리아가 해야 할 일을 말씀해 주십시오.”

그 말에.

찰튼 남작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마침 오델리아 왕국이 해 줘야 할 일이 있습니다.]

현인(賢人)들의 말은 옳았다.

세상에, 대가 없는 평화는 존재하지 않았다.

* * *

그로부터 며칠 뒤.

제1 방어 진지.

카이로와 국경을 맞닿고 있는 최전선에, 기나긴 행렬이 밀려들었다.

방어 진지를 담당하고 있는 보라스 남작은, 성문으로 들어서는 한 인물의 모습에 헐레벌떡 달려왔다.

“먼 걸음 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현재 상황은?”

“라스칼의 상황을 수습하고 곧바로 로만 드미트리를 포획하기 위해 병사들을 보냈습니다만, 어디로 갔는지 그 어디에서도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병사들을 다시 집결시켰습니다. 드미트리가 공격당한다면, 로만 드미트리도 결국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쥐새끼 같은 녀석. 잘했다. 그 녀석이 어디에 있든, 대세를 바꿀 수는 없다.”

크로노스 제국의 지휘관.

뱀포드 공작이었다.

수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백전노장(百戰老將)으로, 크로노스 제국에서는 군부의 상징으로 불리는 인물이었다.

그가 나선 것만 보더라도 크로노스의 의지를 알 수 있었다.

그를 필두로 약 3만에 달하는 병력이 제1 방어 진지에 도달했고, 아직 도착하지 못한 병력은 이보다 배 이상 많았다.

그가 걸음을 옮겼다.

지휘부를 호출한 그는, 자세한 사항을 전달받았다.

“현재 드미트리는 카이로와 연합해, 서부 전선에 병력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물자를 확보하고 마법 방어에 신경 쓰는 것으로 보아 농성전(籠城戰)을 준비하며 ‘모종의 계획’을 꾸미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로만 드미트리의 정확한 의도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왕국들의 경우에는 레드포드와 헥토르, 프랑크가 드미트리를 도와주기 위해 소집령을 발령한 상태고, 오델리아와 움베르토는 저희와 뜻을 같이할 것 같습니다.”

“세상 참 좋아졌어. 크로노스를 상대하는 일에, 그렇게 많은 왕국이 반기를 들 생각을 하다니.”

“로만 드미트리가 문제입니다. 그가 라스칼의 병력을 괴멸시키자, 프랑크 왕국 같은 경우에는 제국을 상대할 수 있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뱀포드 공작이, 피식 웃었다.

같잖았다.

농성도 서로의 전력이 어느 정도 비슷해야 버틸 수 있건만, 드미트리를 비롯한 왕국 연합은 환상에 빠졌다.

크로노스는 이번 전쟁을 위해 수십만의 병력을 동원했다.

단순히 압도적인 숫자를 떠나서, 크로노스의 기사단과 마법사들이 전부 동원되는 전투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대륙의 역사는, 보통 크로노스가 ‘일부의 힘’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결정이 났다.

그런데.

이번에는 황제가 결단을 내렸다.

로만 드미트리가 홀로 수만을 도륙할 수 있는 괴물일지라도, 지금부터는 국가 단위의 전쟁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켜켜이 쌓여 온 크로노스 제국의 역사.

그 일부에 함께 있었던 뱀포드 공작이기에, 확신에 찬 어조로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열흘 뒤. 준비되는 대로 드미트리를 향한 총공격이 시작될 것이다. 이번 전쟁은 대륙 정벌의 시작점이고, 단순히 드미트리를 상대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압도적인 결과가 필요하다.”

“명심하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전쟁은 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 * *

정확히 삼 일째.

제1 방어 진지에 문제가 발생했다.

“우웩.”

“콜록, 콜록.”

처음에는 단순한 질병인 줄 알았다.

그런데 구토 증상과 기침하는 사람이 늘어나더니, 순식간에 병력 전체로 번져 나갔다.

보라스 남작은 일련의 상황을 보고했다.

“오늘 아침부터 병사들의 상태가 이상하더니, 구토와 발열, 기침과 같은 증상을 보이는 병사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고 있습니다. 벌써 이상 증세를 보인 병사의 숫자가 일만에 달하고, 그중 약 삼백 명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아무래도 로만 드미트리가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이 분명합니다.”

일련의 상황.

뱀포드 공작은 직감적으로 문제의 시작점을 간파했다.

“맹독(猛毒)을 사용했구나. 당장 병사들에게 명령해, 우물과 같은 맹독을 풀기 좋은 진원지들을 파악해서 모두 차단하라. 그리고 베헤모스의 마법사들을 불러라. 그들의 기술력이라면, 병사들에게 퍼지고 있는 독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독이라니!

대체 언제 독을 사용했단 말인가!

뱀포드 공작은 전장에서 이와 같은 경험을 했기에, 단번에 우물을 이용했을 확률이 높다고 판단했다.

다수의 병사에게 독을 살포하는 방법.

결국, 사람은 물과 음식을 섭취할 수밖에 없기에, 우물은 정말 손쉽게 모두를 중독시킬 수 있는 적절한 장소였다.

그래서 우물의 경계를 철저히 하는데, 어떤 방법으로 경비를 뚫고 우물에 독을 살포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일단.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뱀포드 공작은 서둘러 걸음을 옮겼고, 환자를 살피는 마법사를 보며 닦달했다.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베헤모스의 마법사.

그의 이름은 마테오였다.

독의 전문가였고, 이와 같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마테오를 대동했다.

그가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독은 제 소관입니다.”

“역시!”

모두가 신뢰했다.

마테오는 사람들의 신뢰를 받으며, 정신을 집중해 해독을 진행했다.

“큐어 포이즌(cure poison).”

화악.

불빛이 일었다.

마나를 일으킨 마테오는, 능숙하게 해독의 기운을 체내에 불어넣었다.

독을 사용한 존재는 로만 드미트리일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찰튼 남작을 통해 해독 불가의 독을 받은 이후로, 베헤모스의 마법사들은 정말 열정적으로 해독에 열을 올렸다.

덕분에 성과가 있었다.

더욱 발전한 큐어 포이즌은, 이제 어떤 독일지라도 해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부여했다.

그런데.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도.

해독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환자를 붙잡고 씨름하던 마테오는, 이내 절망에 물든 얼굴로 뱀포드 공작을 올려다보았다.

“……지금 제 실력으로는 해독이 힘들 것 같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마탑주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당장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 얼굴.

절망적이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사용한 독.

그것은 지난번과는 하나부터 열까지 완전히 다른, 이 세상의 지식으로는 단시간에 해결할 수 없는 난제(難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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