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마법사를 상대하는 방법 (2)
‘이게 무슨.’
머릿속에 의문이 떠올랐다.
마법의 불길.
오라를 두른 몸으로도 감당하기 힘든 열기일 텐데, 로만 드미트리는 불길에 휩싸인 채로 달려들었다.
해답을 찾을 시간은 없었다.
일단 피해야만 했다.
“블링크(blink).”
번뜩.
공간 이동 마법.
펠릭스의 모습이 사라졌다.
처음 있던 위치에서 열 걸음은 떨어진 곳에 나타났는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새도 없이 펠릭스는 경악스러운 장면을 목격했다.
로만 드미트리.
분명히 자신의 잔상을 공격했어야 하는 그가, 마치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방향을 틀고 정확히 펠릭스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겨우 세 걸음.
코앞이었다.
펠릭스는 이를 악물며, 마나를 흩뿌렸다.
“홀드(hold).”
발목을 묶었다.
이걸로 10초는 벌어들일 터.
빠르게 백스텝을 밟는데, 로만이 자신을 억압하는 마나를 단번에 풀어 버렸다.
‘이런 미친.’
상식을 벗어나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4서클 화염 마법의 불길을 몸으로 버텨 내고, 블링크의 공간 이동을 곧바로 따라붙더니, 이제는 홀드 마법을 3초 만에 풀어 버렸다.
괴물이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
로만이 어떻게 저런 일을 해내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상대를 만만히 볼 수 없었다.
승리를 확신했던 태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마법사를 상대하는 법을 알았지만, 펠릭스는 이대로 무너질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내게 말했었지. 최선을 다하라고. 오냐, 1000골드의 값은 해 주마.’
화르르륵.
눈이 빨갛게 물들었다.
피닉스 마탑의 비기.
버닝(burning).
그것을 완벽하게 발현할 수는 없지만, 반쪽짜리 흉내를 내는 것은 가능했다.
“인페르노.”
화르르르르륵.
불길을 일으켰다.
강력한 불길이 사방으로 번졌고, 동시에 불길 하나하나가 펠릭스의 의지에 따라 위협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자아를 가진 듯한 불길. 수십, 수백 개의 불길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로만을 향해 달려들었다.
일반적인 화염 마법 컨트롤을 넘어서는 능력이었고, 로만에게 퇴로는 허락되지 않았다.
그런데.
콰앙!
화르르르르륵.
로만은 코앞에서 공격을 피했다.
크게 움직이지도 않았다.
살짝 고개를 틀면 화염이 얼굴을 스쳐 지나갔고, 옆으로 빠지면 그 자리에 불길이 일제히 폭발했다.
달려드는 속도는 늦추지 않으면서도. 로만 드미트리는 정면에서 돌파했다.
마치 공격이 어떻게 들어오는지 예상이라도 하는 듯이, 마법을 모두 피해 버리는 움직임에 완전히 압도되었다.
말이 되지 않았다.
수백 개의 불길이다.
어느 하나는 살갗을 불태우는 게 정상이건만, 대체 어떻게 이런 움직임을 보인단 말인가.
‘빌어먹을.’
어느새.
상대는 코앞에 나타났다.
도망칠 방법은 없었고, 이번에도 블링크로 거리를 조절하려고 했다.
“블링크.”
번뜩.
공간을 접었다.
물리적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움직임.
잔상을 남기며 사라지는 몸이 스무 걸음 떨어진 곳에 나타난 순간, 펠릭스는 절망스러운 현실을 목격했다.
퍽!
“커억?!”
복부를 강타하는 공격.
눈을 부릅떴다.
로만은 블링크를 곧바로 따라붙었고, 주먹으로 펠릭스의 복부를 강타했다.
털썩.
무릎을 꿇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고개를 처박고 침을 질질 흘리는 펠릭스의 머리 위로, 로만 드미트리의 담담한 음성이 들렸다.
“오늘 대련은 이것으로 끝입니다. 내일 이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 * *
하루에 한 번.
거래 조건이다.
첫날의 대련을 끝마친 펠릭스는, 멍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로만 드미트리.
그가 보여 준 모습은 하나부터 열까지 상식을 벗어났다.
분명히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고 사용한 룬플레어는 승부를 결정짓는 강력한 한 방이었을 텐데, 로만 드미트리는 불길을 뚫고 달려드는 모습을 보였다.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어느 것 하나 펠릭스의 생각처럼 상황이 진행되질 않았고, 싸우면 싸울수록 진창에 빠져드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
화염 마법을 회피하는 움직임은 압도적이었다.
버닝의 효과로 화염 마법의 지배력을 극한으로 높였는 데도, 상대의 움직임을 따라잡질 못했다.
‘로만 드미트리는 분명히 내 마법이 어떻게 발현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만약 그런 것이 아니라면, 블링크를 두 번이나 따라붙지는 못했겠지. 학계에 알려진 바로는 마법을 예상하는 기적 같은 기술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온전히 로만 드미트리의 능력이라는 의미겠지.’
심장이 뛰었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마법 대련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고, 드미트리에서 지내며 적당히 보수를 받아 내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오늘과 같은 시련은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로만 드미트리가 소문처럼 대단한 검사일지라도, 펠릭스 또한 실력으로는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처참하게 박살이 났다.
뭘 제대로 해 보지도 못하고, 펠릭스는 무릎을 꿇고 진득한 침을 토해 내는 모습을 보였다.
굴욕적이었다.
남들 보기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지만, 그것보다도 로만 드미트리에 관한 생각이 머릿속을 장악했다.
‘다시 싸우면 이길 수 있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로만 드미트리가 눈앞에 나타났다.
빠르게 달려드는 그를 향해 마법을 사용했는데, 날쌘 짐승과 같은 움직임은 공격을 허락하지 않았다.
마법이라는 학문은 참으로 복잡하다.
아무리 강력한 위력일지라도 공격이 통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었고, 그렇기에 펠릭스는 상대를 어떻게 궁지로 몰아넣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 모든 방법이.
마법을 꿰뚫는 회피 능력에 무너져 내렸다.
원리를 알 수 없는 방법은 파훼할 수 없었고, 상상 속으로는 로만을 무너트릴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이대로라면 절대 이길 수 없다.’
필패(必敗).
상상 속에서도 무력하게 무릎을 꿇었다.
그런데도 그는 끊임없이 고민했다.
사람들은 펠릭스를 독종이라고 불렀다.
마탑주가 실종되었을 때.
모두가 버닝의 명맥이 끊어지면서 피닉스 마탑은 끝났다고 말했지만, 펠릭스는 악착같이 매달려서 버닝의 일부를 구현하는 것에 성공했다.
물론 미약한 성과였다.
하지만 워낙 난해하고 복합한 체계에 일인전승으로만 내려오던 버닝을 일부라도 구현해 낸 것은, 펠릭스라는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집념을 가졌는지를 증명했다.
3년.
후계자에 불과한 사람이 마탑주의 자리에 올랐다.
아직도 사람들은 대행이라는 단어로 그를 부정했지만, 펠릭스는 어떻게든 피닉스를 이끌어 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짜증이 일었다.
로만 드미트리의 능력?
인정했다.
자신을 압도적으로 쓰러트린 순간부터 그가 소문보다도 더 대단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렇다고 무력하게 패배를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수천, 수만 번의 실험으로 버닝의 일부를 구현한 것처럼.
펠릭스는 남은 시간을 허수아비처럼 당하기만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다음 대결에는 반드시 이긴다.’
생각에 빠져들었다.
해가 저물고.
다시 날이 밝을 때까지.
펠릭스는,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 * *
다음 날.
두 번째 대련이 진행되었다.
펠릭스의 어제와 오늘은 다르지 않았지만, 로만을 상대하는 방식에는 크나큰 변화를 주었다.
‘상대가 마법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다면. 예측의 영역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리면 된다.’
이번에도 선공은 펠릭스였다.
호의를 마다하지 않았다.
마나를 끌어올린 펠릭스는, 곧바로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스톤 에지(Stone Edge).”
콰릉.
콰르르르르릉.
바위를 일으켰다.
보통은 공격적인 마법으로 사용하는 것을, 일부러 자신의 발밑에 좌표를 설정했다.
그로 인해 펠릭스는 솟아오르는 바위 위에 올라섰다.
순식간에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였고, 로만 드미트리는 단숨에 뛰어올라 펠릭스를 공격하려 했다.
‘예상대로다.’
높은 위치.
그다지 매력적인 이점이 아니다.
6서클 마법인 플라이를 사용하지 않는 이상, 로만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런데도.
펠릭스가 높은 위치를 선점한 이유가 있었다.
“인페르노.”
화륵.
화르르르륵.
불길을 일으켰다.
상대를 특정해서 공격하지 않았다.
강력하게 일어나는 화염은 무분별하게 주변을 공격했고, 그것은 예측해서 벗어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서 버렸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불의 비. 세상을 뒤덮는 공격을 대체 어떻게 피하란 말인가.
제아무리 로만 드미트리라 할지라도, 이번에는 섣불리 화염을 뚫고 나아갈 수 없었다.
‘마법의 강점은 적을 정확하게 노릴 필요가 없다는 것에 있다.’
5M 범위를 공격해도.
근방에 있는 10M 범위의 존재들도 화력에 휩쓸리는 게 마법이다.
펠릭스는 그 점을 노렸다.
무분별한 화력.
평소에는 선호하지 않는 비효율적인 방식일지라도, 지금은 이만한 공격이 없다고 판단했다.
“파이어 웨이브.”
화륵.
화르르르르륵.
화염이 일렁였다.
로만을 특정하지 않은 힘이 주변을 활활 불태워 버렸고, 펠릭스는 팽팽 돌아가는 서클에서 끊임없이 마법을 분출했다.
로만 드미트리의 모습은 제대로 포착되지 않았다.
바위 아래는 화염으로 휩싸여서 모습을 찾을 수 없었지만, 괴물 같은 상대가 이대로 무너지진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확-
로만 드미트리.
그가 화염을 뚫고 나타났다.
불길에 휩싸여 허공에 떠오른 그 모습에, 펠릭스는 준비해 두었던 수를 사용했다.
“파이어 캐논(Fire Cannon).”
화륵.
화르르르르륵.
5서클 마법.
이번에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파이어 캐논은 빠르고 강력한 일격.
허공에 떠올랐기에, 로만을 궁지로 몰아넣는 완벽한 함정을 팠다.
콰앙-
콰르르르르릉.
작렬하는 마법.
파이어 캐논의 불길은, 로만의 몸을 그대로 뒤덮었다.
그 순간.
펠릭스는 보았다.
불길을 막아서는 무형(無形)의 벽을.
마치 실드와도 같은 방어의 효과에, 펠릭스는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 * *
오라의 방어막.
살면서 들어 보지 못한 종류의 기술이었다.
확실한 것은 방어막에 마법은 완벽하게 막혀 버렸고, 힘을 모두 소진하는 바람에 로만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퍽!
고개가 홱 돌아갔다.
강력한 충격이 일며, 펠릭스가 그대로 바닥에 추락해 버렸다.
아팠다.
얼굴을 비롯한 정신이 비명을 질렀지만, 그의 머릿속은 하나의 생각에 매몰되었다.
‘마법 아티팩트였을까? 아니다. 만약 마법의 힘을 빌렸다면 내가 마나의 흐름을 알아채지 못했을 리가 없고, 무엇보다도 로만 드미트리는 그렇게까지 해서 승리할 이유가 없다. 그는 분명히 본인의 능력만으로 오라의 방어막을 형성했다.’
헛웃음이 나왔다.
대체.
로만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자신은 밤새 로만을 쓰러트리기 위해 머리를 굴렸는데, 막상 로만의 털끝 하나 건드리질 못했다.
허탈했다.
자괴감이 일었다.
그때, 로만이 다가와 말했다.
“펠릭스 님. 제가 당신을 이겼다는 사실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펠릭스 님과의 대결에서 얻고자 하는 바가 있고, 그렇기에 어제와 오늘처럼 일방적인 대결은 제가 원하는 그림이 아닙니다. 그러니 저를 쓰러트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십시오. 마법적인 능력이라면, 그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허락하겠습니다.”
로만의 말.
굴욕적인 발언이었다.
속에서 뜨거운 열기가 치솟았지만, 로만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혼자만의 힘으로 부족하다면 마탑의 마법사들을 불러도 좋습니다. 일대 다수의 대결을 펼칠지라도, 어떻게든 저를 쓰러트리면 됩니다. 매일 한 번씩. 육 개월간 총 180번의 대결을 진행하며, 단 한 번도 저를 궁지에 몰아넣지 못한다면 수많은 마법사 중 펠릭스 님을 선택한 것을 후회할지도 모릅니다.”
순간.
눈빛이 분노로 물들었다.
아직 고통이 가라앉지 않았지만, 로만의 말을 계속 들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
“딱 한 번. 한 번만이라도 저를 상대로 승리한다면, 그때는 1만 골드의 보상을 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1만 골드.
파격적인 제안에, 펠릭스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확실했다.
로만 드미트리는.
처음부터 자신을 ‘동급’으로 여기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