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9화 (149/615)

149화 탐욕의 수집가 (1)

지난 한 달.

발렌티노 후작은 답답한 나날을 보냈다.

처음에는 드미트리의 마스터 블랙스미스, 헨드릭이야말로 블레이즈를 만들어 낸 장인이라고 확신했다.

동북쪽 일대에서 그만한 검을 만들어 낼 사람은 그밖에 없었다.

그래서 경매에서 낙찰을 받자마자 드미트리로 사람을 보냈는데, 부풀어 오른 기대감과는 다르게 실망스러운 답변을 받았다.

“최근에 제가 만든 검을 경매장에 내보낸 적이 없습니다.”

만약 헨드릭이 블레이즈를 만들었다면.

그것은 분명히 필생의 역작(力作)일 것이다.

본인의 작품이 경매장에서 팔렸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을 테고, 그렇다면 헨드릭은 용의 선상에서 제외되었다.

그때부터는 집착의 시작이었다. 발렌티노 후작은 본인이 동원할 수 있는 인맥과 재력을 이용해서, 카이로 왕국의 장인들을 모두 찾아가서는 블레이즈의 주인인지를 확인했다.

“저는 아닙니다.”

“카이로에서는 이만한 검을 만들어 낼 사람이 없습니다.”

“마나를 완벽하게 받아들이는 검이라니. 단언컨대, 대륙을 전부 뒤져도 찾아볼 수 없는 기술력입니다.”

돌아오는 대답.

진실의 실마리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사실, 블레이즈의 주인을 알아낸다고 해서 특별히 무엇을 하겠다는 목적은 없었다.

순수한 호기심으로부터 비롯된 욕심이었고, 같이 차라도 한잔 마시면서 웃고 떠들기만 해도 한 명의 수집가로서 정말 행복할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시간이 갈수록 답답함은 더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카이로 왕국에서 만들어진 검이 분명한데, 장인의 정체는 찾을 수가 없었다.

루카스.

그는 본인의 흔적을 완전히 지웠다.

단순히 드미트리가 대장 기술로 최고라서 헨드릭을 유추했을 뿐이지, 그는 단서를 남기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전.

발렌티노 후작은 수하로부터 희소식을 들었다.

“며칠 전에 드미트리의 마스터 블랙스미스를 만난 사람에게 들은 정보인데, 헨드릭의 컬렉션에서 블레이즈와 비슷한 형태의 검을 목격했다고 합니다. 같은 사람이 만들어 낸 검이라고는 확신할 수 없지만, 헨드릭이 자랑하듯 보여 준 그 검은 블레이즈와 마찬가지로 마나를 완벽하게 받아들이는 충격적인 능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후작님. 어떻게 할까요?”

블레이즈와 똑같은 능력.

명분은 충분했다.

발렌티노 후작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곧바로 외출복을 챙겨입고는 마차에 몸을 실었다.

“지금 당장 드미트리로 가거라!”

그로부터 며칠 뒤.

발렌티노 후작은, 드미트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 * *

드미트리의 마스터 블랙스미스.

헨드릭은 쉽게 만날 수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손님이 발렌티노 후작 정도 되는 거물이라면, 헨드릭으로서도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수수한 내부의 집무실.

평소에는 자주 머무는 장소가 아니었지만, 발렌티노 후작을 먼지가 날리는 대장간에서 응대할 수는 없었다.

헨드릭의 맞은편.

발렌티노 후작은, 살짝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한 달 전에, 아델리안 경매장에서 저는 블레이즈라는 이름의 검을 낙찰받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수집이 취미인 사람입니다. 헨드릭 마스터님처럼 평생 철을 다룬 것은 아니지만, 그 검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를 알아보는 안목 정도는 갖추었다고 생각합니다. 블레이즈는 그야말로 보물입니다. 마나를 완벽하게 받아들이는 검의 모습에, 이것을 만들어 낸 장인은 카이로 최고의 실력자라고 확신했습니다.”

신호를 주었다.

그러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사가, 천으로 잘 감싸고 있던 무언가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확.

“이게 바로 블레이즈입니다.”

천을 걷었다.

한 자루의 검.

매끄러운 자태가 드러났다.

조명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는 검에, 헨드릭이 놀라는 표정을 보였다.

‘역시.’

헨드릭의 반응.

검의 자태를 보고 감탄한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검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그것이 발렌티노 후작의 소유라는 사실에 놀라는 것 같았다.

예상대로였다. 수집가로 살면서 수많은 장인을 만났던 발렌티노 후작으로서는, 카이로 왕국에서 헨드릭을 제외하고는 이만한 검을 만들 장인이 없다고 생각했다.

솔직한 생각으로는 헨드릭의 실력으로도 의구심이 일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기에 헨드릭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헨드릭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가 만들었든, 만든 사람을 알고 있든, 헨드릭은 실마리를 가진 인물이었다.

“역시 검의 가치를 알아보시는군요. 며칠 전. 제 수하로부터 헨드릭 마스터님의 컬렉션 중에 이와 비슷한 형태의 검이 있다는 보고를 들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마스터님을 찾아온 목적입니다. 혹시, 헨드릭 마스터님이 보유하고 있다는 검을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목소리가 기대감으로 차올랐다.

만약 수하의 보고가 틀리지 않았다면, 발렌티노 후작은 상대로부터 확실한 대답을 요구할 것이다.

검의 주인인지.

혹은, 검의 주인을 아는지.

헨드릭의 검은 확신을 얻을 증거였다.

“크흠.”

헨드릭이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발렌티노 후작.

소문으로 들었다.

직접 만나 본 적은 처음이었지만, 워낙 열정적인 수집가다 보니 드미트리 대장간의 물건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거래 내역만으로도 VVIP라고 불릴 만한 인물.

어떤 사람들은 그를 탐욕의 수집가라고도 표현하지만, 장인들은 절대 발렌티노 후작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발렌티노 후작은 값어치 있는 물건을, 값어치에 걸맞은 대우를 받게 해 주는 것으로 유명하지.’

수집 경쟁자들.

그들 사이에서는 악인일지도 모른다.

장인들이 내놓은 물건을 차지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나, 적어도 장인들에게만큼은 극진한 태도를 보였다.

헨드릭을 대하는 태도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만약 헨드릭이 자신의 애장품을 판매하게 된다면, 발렌티노 후작은 그 대상으로 매우 적합한 인물이었다.

그 말인즉.

‘이 사람이라면 검의 가치를 알아보겠지.’

사실.

헨드릭은 이런 상황을 기다리고 있었다.

항상 자신이 받은 선물을 자랑하고 싶었는데, 드디어 그 가치를 완벽하게 알아봐 줄 사람이 자신을 찾아왔다.

기회였다. 벌써부터 기대감이 일었지만, 표정으로는 티를 내지 않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검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발렌티노 후작은 세상을 얻은 것처럼 표정이 환해졌다.

* * *

탁.

검을 내려놓았다.

시선을 사로잡는 매끄러운 자태에, 발렌티노 후작은 검을 확인하자마자 흥분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확실해. 블레이즈를 만든 장인의 작품이다.’

능력을 확인하진 않았다.

하지만 장인들의 작품에는 일정한 태(態)가 있다.

헨드릭의 검은 블레이즈와 비슷한 태를 보였고, 조명이 타고 내려가는 검날은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확실했다. 굳이 검에 마나를 불어넣지 않더라도, 발렌티노 후작은 이 검을 만들어 낸 사람이 블레이즈의 주인과 동일 인물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헨드릭이 말했다.

“검의 이름은 샐러맨더입니다. 발렌티노 후작님의 예상처럼 샐러맨더와 블레이즈는 같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정확히는 샐러맨더가 최초의 결과물이고, 그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 블레이즈입니다.”

순간.

발렌티노 후작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같은 장인의 작품이라는 사실보다, 샐러맨더가 최초의 결과물이라는 발언이 그의 정신을 사로잡았다.

‘최초의 작품이라고?’

입이 바짝 말랐다.

최초와 두 번째.

엄청난 차이였다.

블레이즈가 검으로서는 능력이 뛰어날지 몰라도, 수집가들은 최초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두 번째는 언제든 세 번째, 네 번째에 의해 순서의 가치를 상실하겠지만, 최초는 최초라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수집가들에게 높은 가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심장이 뛰었다.

욕구가 강하게 들끓었다.

‘정말 가지고 싶다.’

발렌티노 후작은 철칙이 있다.

장인에 의해 주인을 찾은 물건이라면.

절대 그 사실을 거스르지 않았다.

장인이 내놓은 물건만 어떻게든 차지할 뿐, 장인의 물건에 탐을 내는 어리석은 실수는 저지르지 않았다.

헨드릭.

검을 만들어 낸 주인일 수도 있다.

혹은, 주인에게 선물 받은 것일 수도 있다.

본인이 앞으로 할 발언이 실례가 되는 것임을 알면서도, 발렌티노 후작은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혹시 이 검을 제게 판매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만약 판매를 해 주신다면 그만한 대가는 충분히 지급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이건 판매하는 물건이 아닙니다. 선물을 받은 것이기도 하고, 발렌티노 후작님도 저와 같은 수집가로서 이 물건을 판매할 수 없는 제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선물이라고 하셨습니까?”

표정이 변했다.

단호한 거절에 실망스러운 기색을 보이던 그가, 선물이라는 단어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헨드릭이 만들어 낸 검이 아니다. 선물을 받았다면, 그는 장인의 정체를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확실했다.

검을 구매할 수 없다면.

적어도, 장인의 정체라도 알아내고 싶었다.

“그렇다면 검을 만들어 낸 분이 누군지라도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발렌티노 후작의 물음.

헨드릭이 기다리던 바였다.

로만이 검을 만드는 모습을 목격한 순간부터.

헨드릭은 항상, 드미트리의 장자가 얼마나 대단한 장인인지를 세상에 알리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했다.

때마침.

적절한 나팔수가 등장했다.

발렌티노 후작이라면, 진실을 알릴 대상으로 적합했다.

“발렌티노 후작님. 드미트리에서 이 검을 누가 만들었겠습니까?”

“……설마. 로메로 남작님입니까?”

“아닙니다.”

히죽, 웃었다.

진실을 아는 자의 미소.

헨드릭은, 진실을 갈망하는 발렌티노 후작을 충격에 빠트렸다.

“드미트리 가문의 장남. 로만 드미트리가, 바로 두 검을 만들어 낸 주인입니다.”

* * *

말을 잃었다.

충격에 빠진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상식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발언에, 발렌티노 후작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로만 드미트리. 그가 샐러맨더와 블레이즈를 만들었다고?’

충격적이었다.

두 검.

예술적인 작품이다.

로메로 남작과 헨드릭 같은 평생을 대장간에서 보낸 사람들의 작품이라면 이해를 하겠는데, 아직 20대 중반에 불과한 로만의 작품이라는 사실은 선뜻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장인의 작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천재들이 존재하지만, 적어도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장인의 영역에서는 그만한 경험과 노력이 있어야만 예술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다.

말이 되질 않았다.

이런 완벽한 작품을, 어떻게 20대의 나이에 탄생시켰단 말인가.

게다가.

‘로만 드미트리는 천재 검사다. 소문으로는 헥토르 왕국의 랭커인 버틀러를 쓰러트렸다지. 카이로 왕국 최고의 천재가, 카이로 왕국 최고의 검을 만들어 냈다니.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꽉.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생각해 보라.

최연소 대륙 랭커.

단순히 ‘결과물’만으로도 고평가를 받아야 마땅한데, 장인의 정체는 작품에 엄청난 수식어를 붙였다.

이건.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작품의 결과물부터 시작해서 그에 담긴 스토리까지.

심장이 쿵쾅쿵쾅 뛰다 못해, 당장 멎어 버릴 것만 같았다.

‘모든 작품은 그에 담긴 스토리가 중요하다. 검을 만들어 낸 사람이 단순히 이름 모를 장인이라면 결과물로만 평가를 받겠지만, 헨드릭과 같은 장인이라면 프리미엄이 붙겠지. 그런데 예상치도 못한 왕국 최고의 검사가 장인의 정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사람들은 검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너도나도 구매 의사를 밝힐 것이고, 그 희소성만으로도 값어치를 매길 수 없겠지.’

블레이즈.

생각보다 더한 보물이었다.

사람들은 낙찰가가 상당히 과하다고 말했지만, 진정한 가치가 알려지면 그건 푼돈에 불과할 것이다.

눈빛이 몽롱해졌다.

사랑에 빠졌다.

로만 드미트리.

그를 만나 보고 싶었다.

대체 어떻게 왕국 최고의 검사가, 대륙 최고의 검을 만들어 냈는지 궁금했다.

벌떡.

“아무래도 로만 드미트리 님을 직접 만나 봐야겠습니다.”

한 달간의 짝사랑.

마침내, 그 결실을 볼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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