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3화 (133/615)

133화 검 한 자루의 가치 (2)

아델리안.

워프 게이트의 존재로 동북쪽 일대에서 상업이 가장 활발하게 발달한 도시.

그래서 사람들은 아델리안 가문이 동북쪽 최고의 대부호라고 생각하지만, 워프 게이트의 설치를 중앙 정부에서 주도했기에 매년 막대한 금액의 세금을 냈다.

전체적으로 벌어들이는 금액이 비슷하다 할지라도, 자신들의 자본과 기술로 돈을 버는 드미트리와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로 득실거리는 아델리안에 도착한 루카스는, 로브를 눌러쓰고 곧바로 경매장으로 향했다.

“대기 번호 23번 손님.”

“예.”

대기 줄은 길었다.

아델리안 경매장은 일 처리가 확실한 것으로 유명하기에, 물건을 판매하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먼 걸음을 감수하면서까지 아델리안 경매장을 선호했다.

루카스는 23번 차례. 사람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감정실에 들어간 그는, 물건을 확인하겠다는 직원의 말에 검을 내밀었다.

“잠시 물건을 확인하겠습니다.”

직원이 새 장갑을 착용했다.

조심스러운 손길로 검을 든 그는, 마법 아티팩트의 불빛으로 이곳저곳을 비추며 물건을 확인했다.

‘오호.’

눈빛이 변했다.

마법 아티팩트는 물건의 강도에 따라 7개의 빛깔을 나타내는데, 이 검은 상위 등급인 파란빛이 은은하게 맴돌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검의 예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경매장에서 일하면서 수많은 검을 감정해 본 직원으로서도, 이렇게 시선을 압도하는 검은 절대 흔하지 않았다.

직원이 물었다.

“혹시 경매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 생각입니까?”

“익명으로 자유 경쟁을 진행하겠습니다.”

“자유 경쟁은 최소한의 낙찰 금액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수수료도 10%가 부가되는데 괜찮으십니까?”

“예.”

자유 경쟁 물건.

경매의 꽃이었다.

물건의 상태도 상당히 괜찮아 보이기에, 직원으로서는 조금 더 확실한 감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아무래도 제 능력으로는 검의 가치를 정확히 판단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자유 경쟁에서 높은 가격을 받아 내기 위해서는 물건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설명해야 하기에, 잠시 전문가를 불러서 보다 정확한 감정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윗선의 인물이 나타났다.

머리가 시원하게 벗어진 그는, 환한 얼굴로 악수를 건넸다.

“아델리안 경매장을 관리하고 있는 모리스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악수를 주고받았다.

얘기를 길게 끌고 갈 이유가 없기에, 모리스는 자신을 뒤따라온 감정 전문가에게 시선을 보냈다.

“확인해.”

“알겠습니다.”

전문가가 자리에 앉았다.

검을 이리저리 살펴본 그는, 직원의 의견과 비슷하게 말했다.

“확실히 검의 강도와 날카로움이 상품(上品)에 부합합니다. 이 정도로 잘 만들어진 검은 흔치 않은데……. 게다가 검의 무게도 적당한 것이, 실력이 좋은 장인이 만든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실 이런 검은 적어도 30골드 이상은 받아 내는 게 일반적인 시세입니다. 30골드가 적은 돈은 아니나, 장인의 검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일이니까요.”

30골드.

상당한 액수였다.

보통 일반 4인 가족의 일 년 생활비가 1골드인 것을 고려한다면, 검 한 자루의 가치가 백이십 명의 생계를 해결할 정도였다.

문제는 그게 적정한 감정가라는 것이었다.

곧바로 검을 원하는 사람들끼리 경쟁이 붙는다면, 희망적으로 생각했을 때 40골드 내외의 가격도 받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나 반응을 실험하겠습니다.”

감정의 필수 과정이었다.

검이 마나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이 검은 일반 검사들이 사용하는 검인지, 아니면 오라 검사들이 사용하는 검인지를 결정할 수 있다.

마나 반응은 1에서 10단계로 나누어져 있다.

최소한 3단계 이상에서 반응해야만, 진정한 명검(名劍)의 칭호를 획득하는 것이 가능하다.

우웅.

마나를 밀어 넣었다.

그때였다.

검에서 일어나는 반응에, 전문가가 눈을 부릅떴다.

“……헉?!”

검이 마나를 강하게 빨아들였다.

마나라는 이물질을 받아들이는 것에 조금도 거부감이 없었고, 전문가가 불어넣은 마나를 마치 굶주린 아귀(餓鬼)처럼 꿀떡꿀떡 받아들였다.

이건 절대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어떤 검들은 마나를 조금만 불어넣어도 깨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검은 마나를 완벽하게 받아들였다.

게다가.

마나의 힘이 증폭되었다.

단순히 마나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마나의 힘을 극대화시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수십 년의 감정사 생활.

수많은 검을 보았지만, 단언컨대 이런 검은 처음 보았다.

“대체 무슨 일이야? 얼마나 대단한 물건이기에 네가 그런 반응을 보여?”

모리스가 물었다.

전문가의 반응에 애가 닳은 모양이었다.

전문가는 모리스를 올려다보니, 루카스가 들으라는 듯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리스 님. 마나 반응도가 무려 10에 달합니다. 아니, 단계의 구분이 무의미할 정도로 마나를 완벽하게 받아들이고, 오히려 마나의 힘을 증폭하는 효과까지 보여 주고 있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게 마나 아티팩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법사의 힘은 조금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검 자체만으로도 마나와 완벽하게 동화하고 있습니다.”

모리스가 경악했다.

10단계.

그건, 아델리안 경매장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던 수치였다.

* * *

그날 저녁.

아델리안 경매장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평소보다 많은 인원 수에, 사람들은 서로를 경계하는 기색을 보였다.

‘다들 똑같은 생각이겠지. 특급 물건이 나왔다는 정보. 모두가 그것을 노리고 있는 것이 분명해.’

경매를 앞두고.

모리스는 소문을 퍼트렸다.

물건이 제값을 받기 위해서는, 그만한 손님들을 자리에 앉히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이번 경매는 반드시 참석하십시오. 제 이름을 걸고 약속하는데, 아델리안 경매장 역사상 이런 물건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물건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드리자면 오라 검사를 위한 명검입니다. 1성의 검사가 2성의 검사를 쓰러트릴 수 있게 만드는, 그런 괴물 같은 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충격적인 말이었다.

성의 구분.

1성의 검사가 2성의 검사를 쓰러트리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인데, 모리스는 그런 충격적인 비유를 말하면서까지 검을 홍보했다.

순식간에 소문이 돌았다.

특급 정보는 일부 핵심 인물들에게만 말했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냄새를 맡은 사람들이 경매장에 일제히 몰려들었다.

이번 경매.

손님들의 면면이 화려했다.

직원은 사람들을 입장시키며, 그들의 신분을 확인하고는 놀란 기색을 억눌렀다.

‘……지방의 유지(有志)들부터 시작해서 수도의 대부호까지. 거기다 카이로 왕국 제일의 부자라고 알려진 발렌티노 후작까지 경매에 참석했어. 발렌티노 후작은 대륙적으로 활동하는 상단을 운영하면서 막대한 부를 쌓은 인물. 중앙 정부의 정치 싸움에는 항상 중도를 지키지만, 좋은 물건이 경매에 나오면 상대가 누구든 간에 싸움닭처럼 달려드는 인물로 유명하지.’

발렌티노 후작.

아델리안 경매장의 VVIP였다.

한번 참석할 때마다 수백 골드를 우습게 사용하는 그의 등장에, 사람들은 수군거리는 반응을 보였다.

확실했다.

정확한 정보가 없이 경매장을 찾은 사람들은, 발렌티노 후작이 나타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늘의 경매가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정도의 인물은 정보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

경매장에서 직통으로 정보가 전달되었다는 의미고, 발렌티노 후작은 당당하게 경매장 안으로 들어섰다.

그 이후로도.

얼굴만 봐도 알 만한 거물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아직 경매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아델리안 경매장은 벌써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 * *

경매가 진행되었다.

나쁘지 않은 물건들이었다.

아델리안 경매장 명성에 어울리는 그런 물건들이었지만, 사람들은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유는 뻔했다.

그들은 모리스가 말한 물건에만 관심이 있었고, 혹시라도 그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서 자금이 부족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함부로 낙찰받지 않았다.

다른 물건의 주인들로서는 상당히 운이 나쁜 날이었다.

오늘과 같이 엄청난 물건이 예정되어 있는 날에는, 전체적으로 낙찰 금액이 확 떨어졌다.

폭풍 전야.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렇게 한참 경매가 진행되고서야, 사회자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여러분. 정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오늘의 메인 이벤트. 명검 블레이즈를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확.

물건을 감싼 천을 벗겨 내 버렸다.

순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며, 블레이즈의 매끄러운 자태가 드러났다.

“블레이즈는 강도 테스트에서 파란빛을 받아 낸 물건입니다. 만약 그게 이 검의 전부였다면, 아델리안 경매장에서는 블레이즈를 메인 이벤트로 내보내지 않았을 겁니다. 블레이즈의 진정한 능력은 바로 ‘마나 반응’에 있습니다. 한 1년 전이었던가요. 니들(needle)이라는 이름의 레이피어가 7단계의 마나 반응을 보여 주면서, 무려 300골드라는 충격적인 가격에 낙찰되었습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금액이지요. 그만큼 검 자체만으로도 뛰어난 마나 반응도를 보여 주는 것은 엄청난 메리트입니다.”

300골드.

작은 가문들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금액이다.

검 하나를 낙찰받기 위해서, 수도의 대부호들은 천 이백의 사람들을 일 년간 먹여 살릴 금액을 배팅했다.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플레어를 돈 먹는 하마라고 불렀다.

성 하나를 무너트리기 위해서는 최소 수십 발의 탄환을 발사해야 하는데, 플레어는 탄환 하나당 수십 골드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을 자랑했다.

그래서 플레어를 동원하고도 전쟁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그 가문은 그대로 파산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부자라고 불리는 이들은, 수백 골드는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부류였다.

“놀라지 마십시오. 블레이즈의 마나 반응은 무려 10단계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받아들인 오라의 힘을 증폭하는 능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저는 수많은 명검의 경매를 진행해 보았지만, 이와 같은 물건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단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지금부터 경매를 진행하겠습니다. 시작 가격은 10골드입니다.”

사회자의 말에.

웅성웅성.

사람들이 당황했다.

대단한 물건임은 알았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 할지라도, 설마 10단계의 마나 반응을 보여 주는 물건을 가져올 줄은 몰랐다.

그건 보물이었다.

마법사의 힘을 빌리지 않는 검의 능력이 그 정도라면, 오라 검사들로서는 환장할 수밖에 없는 물건이었다.

마법을 인챈트 한 아티팩트.

그것들의 능력은 정말 대단하지만, 전력의 오라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결국 순수한 상태의 검이었다.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손을 들었다.

낙찰 의사를 밝히는 반응에, 사회자가 눈에 보이는 대로 빠르게 상황을 전달했다.

“12번 10골드, 29번 20골드, 18번 30골드…… 지금부터는 50골드 단위로 진행하겠습니다. 39번 100골드, 41번 150골드, 아아 12번 손님이 더블을 부르면서 순식간에 300골드가 되었습니다!”

니들의 벽을 넘었다.

예상했던 바다.

이미 앞에서 낙찰된 사례가 있는데, 그 누구도 300골드 밑에서 끝나지 않으리란 사실을 알았다.

“지금부터는 100골드 단위로 진행하겠습니다.”

가격이 빠르게 올랐다.

사람들은 심장이 뛰었다.

100골드 단위.

부자들로서도 부담이 되는 가격이었다.

수백 골드를 사용한다고 해서 재정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검 한 자루에 그만한 돈을 투자하는 것은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다.

게다가 일이백 골드로 끝날 것 같지도 않았다.

순식간에 500골드를 돌파해 버리는 상황에, 사람들은 점점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다.

마침내.

“12번, 600골드 나왔습니다!”

“와.”

“……600골드라니.”

사람들이 당황했다.

600골드.

엄청난 액수였다.

단순한 계산으로도 2400명의 사람을 일 년간 먹여 살릴 금액이었고, 웬만한 가문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금액이었다.

12번은 경매장의 유명 인사였다.

그로서도 희생을 감수한 지출이었지만, 블레이즈의 설명을 들은 순간부터 그는 반드시 낙찰을 받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그때였다.

경매장 한편에서.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한 사람이 보낸 신호에, 사회자가 눈을 부릅떴다.

“아아아아아아! 53번 손님이 더블을 부르면서 낙찰가가 1200골드가 되었습니다! 이건 정말이지, 아델리안 경매장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낙찰가입니다!”

순간.

시선이 집중되었다.

53번의 얼굴을 확인한 사람들은, 그 사람의 정체에 절망에 빠져 버렸다.

‘발렌티노 후작.’

카이로의 대부호.

그가, 반드시 낙찰을 받겠다는 의지를 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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