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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화 (103/615)

103화 전지적 헨리 앨버트 시점 (3)

베네딕트 가문의 대저택.

갑작스러운 부름에 회의실로 모인 가신들은, 베네딕트 후작이 도착했다는 말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왕실에 가신 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것 때문에 너희들을 부른 것이다. 모두 자리에 앉도록.”

탁.

곧바로 상석에 앉았다.

그제야 다시 자리에 앉는 가신들의 모습에, 베네딕트 후작이 말했다.

“헥토르 왕국과의 협상이 결렬되었다.”

“……설마 전쟁을 하려는 겁니까?”

“그래. 방금 중앙 정부에서 헥토르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하지만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부정적인 소식은 아니다. 조금 전. 남부 전선에서 ‘로만 드미트리’의 이름으로 한 통의 연락이 도착했다. 밤새 헥토르 왕국과의 전투가 있었는데, 그 전투에서 로만 드미트리의 병력이 상대를 크게 물리쳤다는 보고였다.”

“헉.”

“그게 정말입니까?”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 번의 승리.

의미가 남다르다.

남부 전선에 변수가 생겼다는 의미고, 완전히 함락당하지 않았다면 반전의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가신 하나가 흥분한 기색을 보였다.

“정말 다행이군요! 사실 헥토르 왕국과의 협상을 계속 진행했다면, 카이로 왕실로서는 귀족들의 재산에 손을 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레고리와 덴버 백작의 세력은 카이로 왕국이 무너지더라도 상관이 없겠지만, 저희는 아니지 않습니까.”

“네 말도 맞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회의 직후.

베네딕트 후작은 가신들을 소집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카이로 왕국의 안위를 논하기 위함이 아니라, 전적으로 로만 드미트리라는 한 존재 때문이었다.

“이번 전쟁으로 남부 전선을 빼앗긴다고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그리 나쁜 일이 아니다. 그 문제를 빌미로 현 왕실의 무능(無能)을 비난할 수 있으니, 오히려 중앙 정부의 권력을 강화하는 결과로 직결되겠지. 문제는 바로 헥토르 왕국을 상대로 승리한 로만 드미트리의 존재다. 그가 이루어 낸 업적은 절대 단순하지 않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그들은 제5 방어선으로 향해서 적들을 물리치며 첫 번째 승리를 거두었고, 워프 게이트가 위험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빠르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산에서의 전투. 헥토르 왕국이 작정하고 병력을 무르면서까지 로만 드미트리를 공격했으나, 역으로 적들을 물리치는 결과를 만들었다.”

일련의 상황.

보고를 들으며 손에 땀이 났다.

로만 드미트리가 예사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이번 전투로 강한 확신이 생겼다.

“그 결과가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느냐? 로만 드미트리는 단순한 3성 검사가 아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을 타고났고, 그런 인재가 다행히도 카이로 왕국에 대한 애국심을 보였다. 그에게는 분명히 도망칠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끝까지 싸우는 모습은 아직 크로노스나 발할라 제국에 회유되지 않았다는 의미니, 우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로만 드미트리의 마음을 확보해야만 한다.”

애가 탔다.

원래부터 그를 영입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회의를 진행하면서 다른 귀족들의 표정을 확인한 순간, 그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음을 알았다.

만인의 남자.

로만 드미트리는 너무 뛰어난 인재였다.

탐욕으로 번들거리는 귀족들의 눈빛에, 베네딕트 후작은 강한 어조로 말했다.

“원래의 계획은 국방의 의무를 마친 로만 드미트리를 영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당장 로만 드미트리와 접촉해서 그의 마음을 회유할 방법을 강구하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좋다. 베네딕트 가문의 재물을 얼마든지 사용해도 좋다. 로만 드미트리의 충성을 받아 내는 이가 있다면, 내가 크게 포상할 것이다.”

“명을 받듭니다.”

나라가 위험한 이때.

그들은 욕망을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귀족들도 다르지 않았다.

* * *

덴버 백작.

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그는, 발할라 제국과의 통신에 당혹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일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예상을 벗어난 결과군요. 정보부 맥킨을 통해 로만 드미트리에게 ‘전쟁의 시그널’을 알려 준 것은 그에게 호의를 베풀어 위험을 피하라는 의도였는데, 그걸 역으로 전쟁의 승리로 이끌다니. 확실히 대단한 인물입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능력에 오히려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저는 이번 기회로 로만 드미트리의 능력을 확인하길 바랐는데, 헥토르 왕국을 물리치는 말도 안 되는 결과를 만들어 내면서 중앙 정부의 귀족들이 완전히 반해 버렸습니다. 아마도 지금 베네딕트 후작과 그레고리 백작은 로만 드미트리를 영입할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을 겁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원래는 장기적으로 그를 영입할 생각이었으나, 저희에게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상황이 재밌게 돌아갔다.

대전사 전투 직후.

발할라 제국은 맥킨을 통해 로만 드미트리의 영입 의사를 밝혔다.

그때도 파격적인 제안이라고 생각했는데, 로만 드미트리의 폭발적인 성장세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발할라 정보부가 파악한 바로는 헥토르에서 이번 전쟁을 주도한 인물은 에드윈 헥토르입니다. 헥토르의 별이라 불리는 그는, 단순히 개인의 무력이 강하다고 해서 패퇴(敗退)할 만큼 만만한 인물이 아닙니다. 로만 드미트리. 그는 발할라 제국이 바라는 인재입니다. 그렇기에, 다른 세력들이 그를 데려가는 것을 가만히 방관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등급의 격상.

로만을 다시 평가했다.

발할라의 갈증을 유발할 만큼, 로만 드미트리는 그만한 재능을 보여 주었다.

[덴버 백작. 당신에게 로만 드미트리의 영입에 필요한 전권을 일임하겠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접촉하는 것은 늦습니다. 지금부터 바로 로만 드미트리를 영입할 방법을 찾고, 반드시 그의 마음을 회유하십시오. 크로노스 제국은 날이 갈수록 그들의 야욕(野慾)을 숨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후일 그들과의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로만 드미트리와 같은 인재들이 필요합니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였다.

베네딕트 후작에 이은 덴버 백작.

그레고리 백작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헥토르 왕국과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건만, 카이로 왕국에서는 장외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 * *

한참 난리가 난 그때.

헨리 앨버트는 본인이 어떤 판을 만들었는지 몰랐다.

그의 발언에 중앙 정부가 난리가 났지만, 헨리 앨버트에게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중앙 정부와의 통신으로 확실해졌어. 로만 드미트리의 일원으로 살아남는다면 나도 출세할 수 있어.’

화면 너머.

경악으로 얼룩진 귀족들의 표정이 잊히질 않았다.

헨리 앨버트가 사회 경험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 표정이 의미하는 바를 모르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고. 로만 드미트리는 중앙 정부에 입성할 것이 분명해.’

금의환향(錦衣還鄕).

왕국의 환영을 받을 그 자리에 딱 붙어 있어야 했다.

문제는.

로만 드미트리의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첫 만남에서부터 워낙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기에, 당연히 자신을 좋아할 이유가 없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어. 그렇다면 그가 없는 상황에서 누구에게 잘 보여야 할까? 마침 나는 그 조건에 적절한 인물을 알고 있지. 로만 드미트리의 충직한 신하이면서, 상당한 발언권을 지닌 인물. 그리고 나와 생사를 넘나든 동료(?).’

싱긋.

웃음을 보였다.

세상 따듯해 보이는 미소로, 한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

“크리스. 많이 출출할 텐데 이것 좀 먹어.”

육포를 내밀었다.

손수 챙겨 온 고급 육포였지만, 크리스는 헨리의 얼굴을 스윽 확인하더니 시선을 바로 돌려 버렸다.

“싫습니다.”

“에이, 받으라니까? 이거 정말 맛있어.”

“내가 당신의 속셈을 모를 것 같습니까? 이번 전쟁으로 우리는 상당한 공로를 얻었습니다. 그 자리에 당신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면 포상을 받을 게 분명하니, 아까부터 똥 마려운 개처럼 우리의 눈치를 보고 있지 않습니까? 일 없습니다. 당신이 정말 합당한 보상을 받고 싶다면, 우리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서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가 되십시오.”

“…….”

입이 쏙 들어갔다.

판단 실수였다.

크리스에게 속물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보니, 이깟 뇌물로는 그의 마음을 회유할 수가 없었다.

헨리 앨버트는 민망한 얼굴로 웃었다.

전처럼 크리스에게 뭐라 말하지는 못하고, 은근슬쩍 걸음을 돌렸다.

그런 그의 눈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이름이 케빈이라고 했던가.’

케빈.

아직은 소년의 얼굴이 남아 있는 인물.

처음에는 왜 이런 아이가 로만 드미트리 밑에 있는지 의문스러웠는데, 전투하는 모습을 보고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야말로 전장의 귀신이었다.

단순히 무력의 수준을 떠나서 상대를 어떻게 죽이는지 그 방법을 알았고, 전장을 종횡무진하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으로 남았다.

크리스가 이인자라면.

케빈은 삼인자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계산은 빨랐다.

헨리 앨버트는, 활짝 웃으며 케빈에게 다가갔다.

“저기 케빈이라고 했나? 이것 좀 먹지 않을래?”

앨버트 가문의 차남.

여관의 문을 박차고 호기롭게 등장했던 전형적인 망나니는, 이제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 * *

평화는 짧았다.

헥토르 왕국은 하루의 휴식을 취한 뒤, 곧바로 남부 전선의 최전방 방어 진지들을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했다.

제3 방어선.

그곳의 지휘관인 바실리 남작은, 멀리서 몰려드는 헥토르의 병력을 바라보며 말했다.

“부관.”

“예.”

“왕실에서 받은 연락에 의하면, 헥토르 왕국은 로만 드미트리가 이끄는 병력을 처리하겠답시고 따라갔다가 대패를 당했다고 했다. 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로만 드미트리는 겨우 이백도 되지 않는 병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런 병력에 당할 정도라면 헥토르 왕국의 전력이 생각보다 약한 게 아닐까?”

하루 전.

왕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로만 드미트리가 적을 물리치는 엄청난 성과를 이루었으니, 그를 도와서 시간을 벌어 달라는 내용이었다. 카이로 왕국은 헥토르와의 전쟁을 결정했다. 앞으로 약 열흘 정도만 지나면, 카이로의 본대가 남부에 도착할 것이다.

그런데.

로만 드미트리의 업적을 칭찬하는 왕실의 모습을 보니, 바실리 남작의 마음속에서 욕망이 꿈틀거렸다.

부관이 말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헥토르는 최근에 대기근으로 인해 굶주리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는 나라이지 않습니까? 머릿수만 많을 뿐이지, 생각보다는 강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지?”

“예.”

둘은 척척 맞았다.

얼마 전.

헥토르 왕국의 공격을 받았던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 일방적으로 밀렸던 바실리 남작이지만, 이미 행복회로가 돌아간 그의 머릿속에는 플레어를 대비하는 마법 방어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로만 드미트리는 겨우 이백의 병력으로 적을 물리쳤단다.

왠지 로만 드미트리가 대단해 보이기보다는, 상대가 만만해 보였다.

‘이따위 변방에서 썩은 지도 벌써 3년. 어쩌면 이건 하늘이 내게 내려 준 기회일지도 모른다.’

헥토르.

그들은 세 개의 방어선을 공격하기 위해 병력을 나누었다.

이전 전투로 의욕을 잃은 패잔병이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 같았다.

“지금 당장 병력을 추려라. 나 또한, 게릴라 작전으로 헥토르 왕국에 본때를 보여 줄 것이다.”

그때만 해도.

바실리 남작은, 자신이 로만 드미트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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