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1화 (71/615)

71화 비공식 랭커 (4)

마나를 불어넣자마자.

오라 측정기가 곧바로 반응했다.

후웅.

진동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회색빛이 돌던 오라 측정기가 빨간 불빛으로 물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황색으로 변했다.

색깔의 변화는 빠르면서도 부드러웠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에 의하면 오라 측정기의 측정 시간은 보통 5분 내외로 시간이 조금 필요한 편인데, 로만은 그런 게 없었다.

노랗게 물드는 측정기.

정말 빨랐다.

겨우 5초 남짓한 시간에, 오라 측정기는 극적인 변화로 목표였던 노란색에 도달했다.

사실상.

3성의 경지라는 사실은 증명을 끝냈다.

일련의 상황을 바라보던 윌라스는, 긴장되는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설마 4성이라는 건가?’

경악스러웠다.

윌라스는 그간 오라 측정기를 많이 사용해 보았지만, 로만만큼 극적이고 빠르게 반응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4성의 검사라 할지라도.

보통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색깔이 변했다.

그런데 로만의 측정은 상식을 벗어나다 보니, 윌라스로서도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힐끗, 로만의 얼굴을 보았다.

평화롭기만 한 그의 얼굴을 보니, 눈썹 한쪽이 파르르 떨렸다.

그런데.

윌라스는 아주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로만이 전력을 다해 마나를 분출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로만은 시작조차 하질 않았다.

처음 불어넣은 마나.

실험을 위해서 일말의 마나만을 허락했다.

샐러맨더 대륙의 방식이 아니었고, 응축된 마나를 조금 밀어 넣은 것만으로도 오라 측정기는 격렬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참으로 재밌는 장면이었다. 오라의 힘을 색깔로 측정해 주는 도구라니.

오라 측정기가 안전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로만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마나를 폭발시키듯이.’

오라의 분출.

마나를 끌어모았다.

그리고 단번에 오라 측정기를 대상으로 마나를 뿜어내자, 오라 측정기가 당장에라도 터질 것처럼 반응했다.

콰릉.

콰르르르르릉.

오라 측정기에서 굉음이 들렸다.

노랗게 물들었던 색깔이 초록색으로 변했고, 초록색으로 변한 색깔은 짙어지다 못해 시꺼멓게 변해 버리기 시작했다.

그건 상식을 벗어난 장면이었다.

윌라스로서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어떻게 손을 쓸 방법이 없었고, 오라 측정기는 마침내 칠흑 같은 어둠으로 완벽하게 물들었다.

그리고는.

콰직.

파사사삭.

그대로 부서져 버렸다.

표면에 일어난 균열대로 바스러지는 모습에, 상황을 지켜보던 윌라스가 넋을 잃었다.

잔해를 보고.

로만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잔해를 확인했다.

‘이런 미친.’

이건, 상식을 벗어난 결과였다.

오라 측정기가 어떤 물건인가?

처음 제작되었을 때, 대륙에서 알아주는 인력들이 모두 투입돼서 만들어진 지식의 결합체(結合體)였다.

제작자들의 설명대로라면 오라 측정기는 네 가지 색깔을 제외하고는 다른 색이 나타나는 일은 없다고 확실하게 못을 박았으며, 측정 과정에서 절대 부서지지 않는 내구성을 자랑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오라 측정기의 내구도를 확인하기 위해 대마법사와 6성의 검사가 동원되었다.

그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6성의 검사가 마나를 불어넣어도 색깔은 초록색까지만 나타나는 것이 한계였고, 기준치를 넘어서는 마나라 할지라도 오라 측정기에 이상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만큼 완벽한 검증을 끝낸 물건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눈앞의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혹시 불량인 걸까?

아닐 것이다.

드미트리에 오기 전에도 오라 측정기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고, 그간 수많은 대상을 상대로 오라 측정기를 사용해 보았지만 이런 일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은 하나밖에 없었다.

로만이 마나를 불어넣자마자 오라 측정기가 이례적으로 격렬한 반응을 보여 주었던 것처럼, 이렇게 부서진 것도 로만이라는 특수한 케이스에 의한 결과인 것 같았다.

로만이 물었다.

“불량인 겁니까?”

“그렇진 않습니다. 이례적인 결과라 어떻다고 확실히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말끝을 흐렸다.

부서지기 직전.

오라 측정기는 분명히 초록색을 보였다.

그것조차도 거짓일 리는 없기에, 윌라스는 하나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4성의 검사다.’

4성.

입이 바짝 메말랐다.

로만의 나이에 3성의 검사만 되어도 엄청난 일이다.

앞으로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대륙에서 강함을 논하는 5성 이상의 경지를 노릴 재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20대에 4성이다? 3성과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겨우 20대의 나이에 4성에 오를 재능이라면,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건 엄청난 사건이다. 로만 드미트리는 아직 날아오르지 못한 잠룡이 아니라, 이미 성체로 성장한 괴물이다. 드미트리에 이런 괴물이 살고 있었다니. 만약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카이로 왕국, 나아가 샐러맨더 대륙 자체가 발칵 뒤집히겠지. 새로운 6성의 재능이 나타났다는 사실에 제국조차도 움직일 것이다.’

원래의 대답은.

테스트에 통과했다고 말해야 했다.

3성이 아니라 4성의 검사고, 로만 드미트리는 랭커에 들 자격이 차고 넘친다고 말이다.

하지만.

카이로 왕국에 발할라 신전을 만들어 낸 제국은 목적이 있다.

그렇기에, 명확한 사실을 파악하기 전까지는 진실을 말해 줄 수가 없었다.

윌라스가 말했다.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죄송하지만, 이 결과에 대해 충분히 알아보고 며칠 안으로 대답을 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로만 드미트리를 아주 상세히 조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측정이 끝나고.

윌라스는 곧바로 제국의 정보망을 활용했다.

로만이 어떤 사람인지.

태생부터 시작해서 최근의 행보까지, 모든 것을 낱낱이 파악한 정보가 겨우 하루 만에 도착했다.

‘로만 드미트리.’

25살 전까지는.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삶을 살았다.

흔한 귀족 가문의 망나니에 불과했고, 사람들은 영주의 아들을 얼간이라고 조롱할 정도로 로만 드미트리를 쓰레기처럼 생각했다.

그런 평판이 뒤바뀌기 시작한 것은 블러드 팽 사건부터였다.

혼자만의 힘으로 블러드 팽을 토벌하더니, 바르코와의 전쟁에도 개입하고 나아가 호메로스를 쓰러트렸다.

‘25살 전후의 삶이 완전히 다르다.’

이유는 알 수 없다.

특별한 기연을 얻은 걸까?

아니면,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홀로 악착같이 단련한 것일 수도 있다.

확실한 건.

로만 드미트리가 각성했다.

새로운 사람으로서 살기 시작했고, 그동안 흙더미에 뒤덮였던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드러냈다.

팔락.

페이지를 넘겼다.

마지막으로.

바르코의 사건이 있었다.

바르코 자작을 찾아가서, 직접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아들을 죽여 버린 충격적인 사건.

그 부분을 읽으며 윌라스는 침음성을 삼켰다.

“……정녕 미친놈이구나.”

대담했다.

로만의 행보는 그야말로 매번 상식을 파괴해 버렸다.

바르코는 그냥 두어도 알아서 무너질 텐데, 로만 드미트리는 굳이 자신을 죽일지도 모르는 사지에 들어가서 안토니 바르코를 죽여 버렸다.

남들은 단순하게 잔인하다고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동안 로만이 보여 준 일 처리에, 그건 전부 완벽하게 계획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로만 드미트리는 단 한 번도 일을 어중간하게 처리하지 않았다. 블러드 팽을 토벌할 때는 그들의 우두머리를 공략하면서 조직을 단번에 와해시켰고, 바르코와의 전쟁에서는 로렌스의 병력들로 시선을 끌면서 적절한 타이밍에 바르코의 후방을 공격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바르코가 다시 일어날 수 없도록, 직접 찾아가서 그들의 희망을 완전히 짓밟아 버렸다. 자신의 계획에 목숨을 거는 대담함과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 내는 실행력. 로만 드미트리는 단순히 20대의 나이에 4성의 경지에 오른 괴물이 아니라, 그걸 활용하는 머리마저 갖추고 있는 인물이다.’

최근의 행보.

감탄이 나왔다.

발할라 사람들만큼이나 호전적이면서도, 냉철한 판단력마저 갖추었다.

‘딱 하나. 오라 측정기의 결과만 확인하고 결단을 내리자.’

부서진 오라 측정기.

이유를 알아야 했다.

그 잔해를 마법 길드에 보냈고, 이틀이 지나기 전에 결과가 도착했다.

내용은 이랬다.

[……오라 측정기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습니다. 검은색으로 변하고 오라 측정기가 부서진 것은, 오라 측정기가 감당할 수 없는 무형(無形)의 힘이 가해졌다고밖에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초록색으로 나온 결과는 정상이 맞습니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로만은 4성의 검사였다.

오라 측정기가 불량이라서 이상한 결과를 내보인 것이 아니라, 로만은 정말 20대의 나이에 4성의 경지에 올랐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결과였다.

처음에 드미트리를 찾아갈 때만 하더라도 이런 결과는 상상조차 못 했건만, 윌라스는 정말 오랜만에 자신이 바라던 목표물을 찾았다.

로만 드미트리.

그는 단순히 랭킹 검증으로 끝낼 인재가 아니었다.

윌라스는 곧바로 본국(本國)에 연락을 넣었다.

랭킹 시스템은 발할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런데 대체 왜.

다른 나라의 랭킹까지 발할라 제국이 관리해 주는 걸까?

사람들은 그걸 단순히 발할라의 성향이라 생각했지만, 숨겨진 진실은 그렇게 순진하지 않았다.

“로만 드미트리를 영입 대상으로 올리겠습니다.”

마법 통신을 통해.

윌라스가 본국에 보고했다.

발할라 제국은 전투에만 미친 야만인이 아니다.

그들은 제국의 위상을 쌓을 만큼 영악하게 행동할 줄 알았고, 랭킹 시스템이라는 제국의 전통을 활용해서 타국의 인재를 빼내 오는 방법을 구상했다.

사람들이 랭커를 영광스러운 자리라고 생각하면서 일을 처리하는 게 매우 쉬워졌다.

각 나라의 인재들이 모두 랭커를 희망하다 보니, 발할라 제국으로서는 적은 인원으로도 남들보다 일찍 인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윌라스가 이유를 설명했다.

로만 드미트리를 영입하려는 이유.

그가 일을 처리하는 방식과 4성의 재능이라는 말에, 마법 통신 너머 본국의 인물이 말했다.

“확실히 탐이 나는 인재군요. 로만 드미트리의 평가를 A등급으로 상향시키고, 항상 그를 예의주시하면서 영입할 방법을 찾아보십시오.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타국의 인재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보안입니다. 우리가 ‘랭킹 시스템’을 통해 인재를 빼내려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없도록. 최대한 자연스럽게, 로만 드미트리가 발할라로 마음을 돌리게 만들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A등급.

엄청난 평가였다.

카이로에서 그만한 평가를 받은 사람은 이제껏 단 한 명밖에 없었다.

고로, A등급의 의미는 반드시 로만 드미트리를 영입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것과 같았다.

윌라스가 말했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드미트리를 찾아가 오라 측정기의 결과는 불량이었다고 말하겠습니다. 로만 드미트리는 4성이 아니라 3성의 검사고, 랭킹의 말석을 차지했다는 정도로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입을 위한 사전 작업은 최대한 빠르게 진행하겠습니다. 25살의 나이에 랭킹에 오른 것만으로도, 카이로와 같은 소국에서는 난리가 날 만큼 엄청난 일일 테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통신을 끊었다.

그리고 다음 날.

윌라스의 발표에 카이로 왕국이 발칵 뒤집혔다.

최연소 랭커.

윌라스가 예상한 것처럼, 로만의 행보는 ‘일부’만 보여 주었는데도 사람들을 크나큰 충격에 빠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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