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9화 (69/615)

69화 비공식 랭커 (2)

사병으로 모집한 30명의 병사.

그들 중 오라 검사는 없었다.

푸키는 루카스보다도 한 단계 밑인 C급 용병에 불과했는데, 처음 로만에게 지도를 받던 날 이해할 수 없는 얘기를 들었다.

“너는 무골(武骨)을 타고났구나.”

그때만 해도.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

전쟁이 끝나고 로만의 사병들은 수라 심법을 익혔고,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인 푸키는 정말 빠르게 발전했다.

다른 사람들과는 습득하는 속도가 달랐다.

옆에 있던 한 병사는 마나를 받아들이는 것부터 어려움을 느꼈다면, 푸키는 자연스럽게 마나를 받아들이고 인도하기까지 했다.

마나의 발현.

수년을 걸려도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그런데 푸키는, 겨우 한 달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 오라를 발현하는 것에 성공했다.

엄청난 사건이었다.

처음에만 해도.

루카스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수라 심법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다.

아무리 드미트리가 엄청난 재력을 갖춘 가문이라 할지라도, 로만이 일개 병사들에게 대단한 심법을 나누어 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하지만 수라 심법을 직접 경험하고, 푸키라는 매우 성공적인 결과까지 나오자 그들의 생각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수라 심법은 진짜다.’

로만의 선물.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보물이었다.

푸키의 재능이 뛰어나서 오라 발현에 성공한 것일 수도 있으나, 사람들은 수라 심법을 경험해 보았기에 그것이 단순히 푸키의 재능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님을 알았다.

그냥 수라 심법의 효과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주변의 마나를 느낄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주니, 일반 사람들이 오라 검사의 입문 과정에서 가장 고비라고 말하는 부분을 너무나도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상황이 변했다.

노력만 한다면.

푸키와 마찬가지로 오라 검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케빈이라는 또 다른 결과물도 있기에, 그때부터 훈련에 임하는 병사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다들 목숨을 걸었다.

강해지기 위해.

벽을 넘어서기 위해.

악착같은 분위기는 경쟁심을 불러일으켰고, 케빈과 푸키의 극단적인 격돌은 그로 인한 결과였다.

카앙!

콰르르르릉.

오라와 오라의 격돌.

소리부터가 달랐다.

한껏 빨려 들어갔던 공기가 단번에 폭발하자, 주변에서 대련하던 이들이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돌렸다.

“어디 막아 보라고!”

콰앙!

푸키가 기세를 잡았다.

오라를 발현하기 시작한 시점은 케빈이 빨랐으나, 신체적인 부분에서 푸키가 우세를 점했다.

거대한 체격에 갑옷처럼 탄탄한 근육들.

폭발적으로 시도되는 공격은 오라의 힘과 더불어 시너지를 일으켰고, 상대를 찍어누르는 강력한 공격에 케빈으로서는 속절없이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케빈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는 순간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건만, 케빈의 시선은 상대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진짜 징글징글하기는.”

병사들 사이에서.

케빈은 귀신(鬼神)이라 불렸다.

이유는 다양했다.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과 특유의 변칙적인 검법은 마치 귀신을 떠올리게 했으나, 가장 큰 이유는 목숨이 여러 개라도 되는 듯한 저 대담함이었다.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

그간 수많은 대련을 진행했지만, 로만의 사병들은 케빈이 무서워서 한발 물러나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스스로 팔을 잘랐던 케빈.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 내면서, 케빈의 머릿속에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반드시 이긴다.’

패배는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케빈은 크리스가 자신보다도 중용되는 사실에 질투심이 생겼다.

그런데 크리스를 넘어서기는커녕 푸키와도 같은 인물에게 쓰러진다면, 케빈은 자괴감에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인생이 처참하게 짓밟히는 상황에서 만난 자신의 구세주.

로만에게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서라면, 지금보다도 더 강해져야 한다고 항상 스스로 채찍질했다.

탁.

상대의 공격.

검면으로 쳐 내며 흘려 버렸다.

케빈은 그대로 달려들었고, 푸키는 상대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이 검을 빠르게 회수하며 공격했다.

푸키의 반격은 빨랐다.

이대로라면.

케빈의 머리가 단번에 갈라질 것이다.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상황.

본인의 목숨이 위험한데도, 케빈의 선택은 회피가 아니라 일보 전진이었다.

훅!

검을 뻗었다.

푸키의 턱 아래로.

급소를 노리는 공격에, 푸키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선택해야만 했다.

케빈을 먼저 공격해서 쓰러트려 버릴지, 아니면 공격을 포기하고 케빈의 공격을 막을 것인지.

이게 실전이라면.

푸키는 전자를 선택해 승부를 보겠지만, 겨우 대련 따위에 무모하게 목숨을 걸고 싶지는 않았다.

“빌어먹을.”

카앙!

공격을 막았다.

불안정한 자세에 균형이 흔들렸고, 케빈은 그대로 푸키를 덮치면서 거구를 무너트려 버렸다.

 그것으로 승부는 끝났다.

 푸키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 올리자, 서늘한 감각이 목 근처에 맴돌았다.

“……진짜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너도 목숨을 걸어 보든가. 그때는,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겠지.”

질린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푸키.

케빈은 덤덤한 표정으로 검을 회수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련은 끝났다.

그리고 그 모습을.

윌라스가 먼발치에서 충격에 빠진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가벼운 호기심이었다.

변방의 병사들.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 훈련하고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를, 심심풀이 삼아 한번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렇기에.

훈련은 시작부터 충격적이었다.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대련을 진행하는 병사들.

그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다.

보통 일반 징집병들은 단순하게 창을 찌르고 막는 정도만을 훈련하는데, 로만의 병사들은 달랐다.

마치 노련한 검사처럼 서로의 급소를 노렸다.

공격을 회피하는 동작은 효율적이며 재빨랐고, 순간적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모습에는 윌라스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힘껏 쥐었다.

감탄이 나왔다.

특히 검술의 완성도.

체계적으로 상대를 몰아붙이는 검술을 보니, 정녕 저들이 변방의 병사들이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병사들은 모두 같은 검술을 사용하고 있고, 검술의 완성도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그리고 실전처럼 치열하게 싸우는 훈련의 분위기라니. 이게 겨우 변방의 남작 가문이 보여 줄 수 있는 수준이란 말인가? 이건 마치, 발할라 제국의 축소판을 보는 것만 같다.’

발할라도 이와 같다.

전투에 목숨을 거는 호전적인 민족들.

무슨 이유든 최선을 다해 싸우는 그들처럼, 로만의 병사들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공방을 주고받았다.

그때였다.

케빈과 푸키가 맞붙었다.

그들의 싸움이 격렬해지더니, 마침내 검에서 오라가 발현되었다.

그건.

정말 경악스러운 장면이었다.

소년병으로 보이는 이가 오라를 사용했다는 사실보다는, 오라의 질이 윌라스의 시선을 잡았다.

‘말도 안 돼.’

둘의 오라.

일반적인 상식과는 달랐다.

보통 오라는 폭발적인 분출로 순간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인데, 케빈과 푸키는 이게 오라인지 의심될 정도로 미약한 오라를 발현했다.

처음에는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

마법 아티팩트와 같은 것으로 눈속임을 하나 싶었는데, 두 오라가 부딪치는 순간부터는 입이 떡 벌어져 다물어지질 않았다.

콰앙!

콰르르르릉.

바람이 불었다.

멀리에서도 둘의 격돌이 피부로 느껴졌고, 오라의 힘이 보는 것과는 다르게 강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상식 밖.

머리가 팽팽 돌았다.

병사들의 수준부터 오라의 특이점은, 윌라스를 당황하게 했다.

‘이들은 일반 병사가 아니다. 아마도 드미트리 가문이 심혈을 기울여 육성한 기사단이겠지. 그런데 드미트리 가문이 언제부터 이 정도의 힘을 갖추고 있었지? 이번에 로만 드미트리와 관련해서 알아보면서 드미트리가 동북쪽 일대의 실세라는 사실은 확인했지만, 그래도 이건 변방 가문의 힘이라고는 볼 수 없다. 중앙 정부의 실세들도 이러한 힘을 갖추지는 못했다. 드미트리는 분명 광업으로 유명하다고 들었건만, 내가 목격하고 있는 이 장면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사제님. 드미트리가 정녕 광업의 도시가 맞습니까?”

사도의 음성.

그도 윌라스와 다르지 않았다.

드미트리 가문에 관해 조사한 바가 있는데, 생각과는 다른 상황을 목격하자 넋을 잃어버렸다.

윌라스가 말했다.

“나도 내가 지금 무엇을 보는지 의심스럽구나. 확실한 건 저들은 일반 병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드미트리에는 드미트리의 이름을 딴 기사단이 있다던데, 아마 저들이 그 드미트리 기사단이겠지.”

그나마.

상식에 부합하는 추론이었다.

병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데.

바로 옆에서 대화를 듣던 한스가 말했다.

“저들은 드미트리 기사단이 아닙니다. 드미트리 기사단은 따로 존재하고, 지금 보고 있는 사람들은 로만 드미트리 도련님을 따르는 개인 사병입니다. 가문에 소속되지 않고 오로지 로만 도련님에게 충성을 맹세한 이들이지요.”

그 말에.

윌라스는, 다시 한번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발할라.

전사의 제국.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병사를 보유하고 있다 알려진 그곳에서도, 병사가 이처럼 강하지는 않았다.

‘저들이 일개 병사라고?’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병사(兵士)란.

전장의 톱니바퀴 같은 존재들을 의미했다.

지금 보는 것처럼 치열하게 공방을 주고받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춘 존재들이 아니라, 보통은 한두 번의 공격에도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사람들이 일반적인 병사다.

그건 발할라 제국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발할라 제국의 병사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뛰어난 전투력을 갖추고 있지만, 그렇다고 로만의 사병들처럼 한 명의 검사로서의 자질을 보여 주진 못했다.

말문이 막혔다.

드미트리.

변방의 영지다.

어디 제국의 명망 높은 가문도 아니고, 겨우 드미트리가 이런 수준의 병사들을 육성해 내고 있다니.

상식이 무너졌다.

잠시 패닉에 빠져 있는 사이.

훈련은 마무리되었다.

윌라스로서는 이만 숙소로 돌아가야만 했고, 한스의 안내에 따라 이동하는 길에 궁금한 것을 물었다.

“저런 병사들을 어디에서 모집한 거지? 다들 실력이 예사롭지 않던데. 혹시 거금을 들여 고용한 것인가, 아니면 기사를 준비하는 견습생이라도 되는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오라 검사를 일반 병사로 부릴 리가 없지 않은가.”

병사들의 수준이야 그렇다고 치자.

그러나.

케빈과 푸키는 병사라고 불릴 인재가 아니었다.

대놓고 오라를 발현할 줄 아는데, 대체 세상에 어떤 미친놈이 그런 인재를 병사로 부린단 말인가.

만약 병사의 입장이었다면.

부당한 대우에 당장 일을 그만두었을 것이다.

이번만큼은 상식적인 대답이 돌아오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스는 다시 한번 윌라스의 상식을 박살 내 버렸다.

“무슨 의도로 그런 질문을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혹시 케빈과 푸키를 말씀하는 것이라면 그들은 얼마 전만 하더라도 오라 검사가 아니었습니다. 케빈은 빈민가의 출신이었지만 로만 도련님이 특별히 그를 거두었고, 푸키는 C급 용병이었는데 사병 모집 공고를 보고 로만 도련님의 병사가 되겠다고 자처했습니다. 그들은 로만 도련님의 가르침을 받아 강해졌을 뿐입니다. 참 대단하지 않습니까? 로만 도련님은 드미트리 가문의 후계자로서, 사람의 재능을알아보는 안목을 타고났습니다. 정말이지, 드미트리의 축복이지요.”

한스의 음성은 한껏 고양되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자랑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다는 듯이, 로만을 찬양하는 그 말에 윌라스는 걸음을 멈추었다.

주변의 풍경.

정말 칙칙했다.

변방 특유의 분위기.

광업의 도시라 불리는 이곳에서, 호메로스를 쓰러트릴 만한 인재는 탄생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로만 드미트리, 대체 그 녀석의 정체가 뭐야?’

내일로 미루어진 만남.

로메로 남작에게는 하루 늦어져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지금은 로만을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었다.

애가 닳았다.

소문의 주인공.

로만 드미트리가 어떤 인물일지.

상식을 완전히 무너트린 그의 진실을 확인할 방법은, 결국 얼굴을 직접 확인하는 것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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