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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65/615)

65화 로메로 남작의 고민 (2)

모르칸.

익히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철광산에서 오래 일하기도 했고, 이번에 안전 책임자로 선정되었다는 말도 들었다.

충분히 신뢰할 만한 인물. 게다가 제이콥이 일부러 데리고 올 정도라면, 철광산의 대변인으로 적합했다.

로메로 남작이 말했다.

“그래, 현장에서 로만과 같이 있었다고?”

“예.”

“당시에 있었던 일을 상세히 말해 보거라. 사고가 발생했을 때 로만이 어떻게 행동했으며, 그가 무슨 이유로 철광산의 안전 문제에 관심을 보였는지, 그리고 해결책을 스스로 찾은 것이 맞는지도 말이다. 조금의 거짓도, 조금의 과장도 보태지 않은 진실만을 말해 주길 바란다.”

“알겠습니다.”

모르칸이 예를 다했다.

자신이 경험한 그대로.

한스와 마찬가지로, 그는 본인의 생각을 말했다.

“사고는 로만 도련님이 일을 나오신 지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 발생했습니다. 지반이 무너지는 붕괴 사고로 인해 인부가 부상을 당했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저는 사고 매뉴얼에 따라 안전한 방법으로 인부를 구출하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로만 도련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본인의 능력이라면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인부를 충분히 구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저를 비롯한 사람들이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직접 사고 현장으로 가셨습니다. 그것이 진실입니다. 누가 강요하지도, 누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도련님은 스스로 판단을 내렸습니다.”

한스의 말과 같았다.

드미트리의 성을 짊어졌기에.

로만은 위험을 감수했다.

어두컴컴한 지하를 혼자 내려갔을 아들을 생각하니, 로메로 남작은 자신도 모르게 의자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사실 저는 도련님이 어떤 이유로 철광산을 찾았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부상자를 직접 치료한 이후에, 철광산의 안전 문제를 해결해 주겠노라고 말하는 도련님의 모습을 보면서 제가 얼마나 한심하고 어리석은 인간인지를 알았습니다. 도련님은 특별한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드미트리 가문의 장자로서 사람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직접 경험해 보려는 의도였고, 안전 문제를 직면했기에 그것을 해결할 책임이 본인에게 있다고 말했습니다.”

감격했다.

한 명의 인부로서.

모르칸은 진심으로 로만에게 반했다.

그래서 로만이 목적을 가지고 제안했는데도, 진심은 드미트리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믿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안전 문제를 해결한 방법은 모두 도련님의 생각이었습니다. 혹시 오늘의 이 자리가 도련님이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 것이라면, 제가 진심으로 신뢰하고 따르고 싶은 드미트리 가문의 후계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진심을 토해 냈다.

고개를 조아리면서도.

흔들림 없는 음성은, 로메로 남작이 요구한 대로 조금의 거짓과 과장이 없음을 증명했다.

“……그렇단 말이지.”

듣고 싶은 얘기를 모두 들었다.

로메로 남작은 이만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단 한 사람도 로만이 드미트리의 후계자로 적합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구나.’

철광산의 민심.

이번에도 로만의 편이었다.

혹시라도 로만에게 누가 될까 봐, 단어 하나하나 조심히 말하는 모르칸의 모습을 보면서 느꼈다.

이미.

그들에게 로만은 드미트리의 후계자였다.

고민에 빠졌다.

대세는 기울었다.

모두가 로만을 바라지만, 그렇다고 아직 결단을 내릴 수는 없었다.

마스터 블랙스미스.

아직, 제일 중요한 대장간의 의견이 남아 있었다.

며칠 전.

대장간은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화덕의 뜨거운 불길 앞에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마스터님.”

“말해.”

“로만 드미트리 도련님의 이름으로 물건들이 들어왔습니다. 받을까요?”

로만.

대장간의 금기어였다.

저번에 한바탕 사건이 있었던 이후로 되도록 로만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으려 했지만, 의뢰가 들어온 이상 마스터인 헨드릭에게 보고해야만 했다.

잔뜩 긴장하는 대장장이. 그런데 헨드릭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받아.”

“……예?”

“귓구멍 막혔어? 받으라고.”

“아, 알겠습니다!”

대장장이가 황급히 뛰어갔다.

이윽고.

그는 철제를 잔뜩 들고 왔다.

혼자서는 모두 챙길 수가 없어서 대장장이들이 여럿 달라붙었고, 대장간은 어느새 철제 무기와 방어구로 가득 찼다.

하루 이틀로 끝낼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로만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을 생각하면 당연히 거절해야 맞건만, 헨드릭은 거부감이 없는 얼굴로 철제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정말 엉망이네. 얼마나 훈련을 해 댔으면 상태가 이래?”

로만을 따르는 사병들의 것으로 보였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거절하고 싶었다.

하지만 최근에 로만을 향한 감정이 조금 변했다.

제이콥을 통해서 철광산에서 벌어졌던 사건에 대해 들었고, 인부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말에 로만이 조금은 달리 보였다.

생각해 보면 대장간에서 한바탕 논쟁을 벌였던 사건도 로만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장인으로서 안일한 태도를 보였고, 로만의 입장에서는 화를 내는 것이 당연했다.

이번 일.

보답의 의미가 강했다.

로만에게 잘못한 것이 있으니, 그가 부탁한 일이라도 제대로 처리해서 마음을 풀어 주고 싶었다.

그렇기에.

물건들의 상태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떻게 해야, 로만이 만족할지를 고민했다.

그런데.

산처럼 쌓인 철제들을 확인하던 헨드릭은, 따로 빠져 있던 한 검을 확인하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건 대체 뭐야?!”

확실했다.

이 검은.

대륙에서 흔히 찾아볼 수 없는 명검(名劍)이었다.

헨드릭은 장인이다.

수십 년을 대장간에서 피땀을 흘리며 일했기에, 명검의 영롱한 자태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어디서 이런 물건을 구했지?”

검을 불빛에 비추어 보았다.

반짝이는 불빛이 검날을 매끈하게 타고 내려갔고, 살포시 말아쥔 손잡이는 그립감이 예술이었다.

톡톡 두드려 본 검날의 강도도 매우 적절했다.

대륙 제일의 명검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아무리 대장장이들의 본거지인 드미트리에서도 이 정도의 검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헨드릭을 진정으로 감탄시킨 포인트가 있었다.

‘마나의 반응도가 예사롭지 않아.’

불빛을 받았을 때.

검은 불빛을 머금고 영롱하게 빛났다.

그건 자연의 기운, 즉 마나를 받아들이는 능력이 다른 철제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주 오랜 옛날.

그때만 해도 명검의 기준은 단순히 잘 베고 튼튼한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지만, 알렉산드르 황제가 오라 검사로서의 가능성을 열면서부터는 기준이 완전히 달라졌다.

검으로서의 기본 성능은 당연한 것이 되었고, 검이 얼마나 마나를 잘 받아들이냐에 따라 명검으로 인정을 받았다.

헨드릭은 검을 불길에 가져갔다.

아주 가끔.

마나의 반응도가 뛰어난 무기는, 불길에 가져가는 것만으로도 극적인 현상이 일어나곤 했다.

바로 지금처럼.

화륵.

화르르륵.

“……?!”

불길이 검을 휘감았다.

정확히는 사방으로 타올라야 할 불길이, 마치 인력(引力)에 끌려가는 것처럼 검 주변에서 타오르려는 성질을 보였다.

정확히는 휘감았다고 표현할 만큼 극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나를 주입하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의 효과라면, 이건 오라 검사들이 환장할 물건임에는 분명했다.

‘세상에 이런 보물이 있었다니.’

심장이 쿵쿵 뛰었다.

헨드릭은 철제를 다루는 기술로는 대륙 제일임을 자부했다.

하지만.

마나 반응도를 높이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대체 어떻게 이런 물건을 만들 수 있었을까.

장인으로서 들끓는 호기심에, 그는 방금 무기를 가져왔던 대장장이에 다가가 물었다.

“이 검. 누구의 것이지?”

그도 알았다.

로만의 의뢰라면.

명검의 주인이 누구일지.

그런데도 진실을 확인해야만 했고, 예상대로 대장장이는 헨드릭이 떠올린 그 이름을 말했다.

“……로만 도련님의 것입니다. 사병들의 무기와 방어구를 모두 회수하고 나서, 그 검은 따로 제게 맡기셨습니다. 그런데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지금이라도 명령하신다면, 이것들을 모두 로만 도련님에게 돌려주고 오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로만.

그 이름이 머릿속에 콱 박혔다.

이런 검을 어디에서 구했을까?

드미트리의 재력이라면 분명히 거액을 주고 샀을 터.

그렇다면 검을 제작한 사람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수많은 의문이 꼬리를 물었고, 헨드릭으로서는 결국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검의 출처가 어디인지를 직접 물어보자.’

애가 닳았다.

웬만해서는 로만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은 먼저 고개를 숙여야 할 만큼 욕심이 일었다.

로만을 만나기 위해서는.

빨리 그의 의뢰를 처리해야만 했다.

아무런 결과물도 없이, 검만 하나 달랑 들고 물어볼 수는 없지 않은가.

헨드릭이 소리쳤다.

“지금 당장 여유가 있는 대장장이들을 모두 불러모아라. 우리는 며칠 안에, 이 작업을 완전히 끝내야 할 것이다!”

이곳에서.

헨드릭의 말은 곧 법이었다.

그날부터, 대장간은 해가 저물 때까지 화덕의 불길이 꺼질 줄을 몰랐다.

촤르르르륵.

카카캉.

대장장이가 철제들을 바닥에 쏟아 냈다.

마치 새것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철제들의 모습에, 크리스는 진심으로 놀란 눈빛을 보였다.

“벌써 끝났다고? 30명의 무장이라 최소 2주일은 걸릴 줄 알았는데.”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2주일 정도로 나누어서 천천히 작업할 줄 알았는데, 대체 무슨 일인지 헨드릭 마스터님의 눈이 돌아가서 여유가 있는 대장장이들이 모두 이 작업에 달라붙었습니다.”

대장장이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지난 며칠.

그야말로 지옥 같은 일정이었다.

야간 작업은 위험하기에 강행하진 않았지만, 해가 뜨고 저물 때까지 대장간에서 쉴 새 없이 철제를 두드려야만 했다.

평소에 보장되던 휴식 시간도 온전히 즐길 수 없었다.

대장간의 마스터란 사람이 1분 만에 빵을 입에 쑤셔놓고는 대장간으로 바로 뛰어가는데, 대체 그 밑에 있는 대장장이들이 어떻게 쉴 수 있겠는가.

그렇게 3일 내내 작업에 매달린 끝에 지금의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나중에 로만 도련님에게 꼭 물어봐 주십시오. 헨드릭 마스터님이 왜 그렇게 애가 닳았는지 말입니다.”

“알겠다.”

고개를 끄덕이는 크리스.

힐끗 옆을 보자, 대화를 나누는 로만과 헨드릭이 보였다.

헨드릭의 얼굴은 퀭했다.

무리하게 작업하는 바람에 피로도가 상당했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강한 열의로 들끓고 있었다.

“로만. 이 검은 대체 어디에서 구한 거지? 검을 만든 제작자는 또 누구고?”

질문을 쏘아붙였다.

빨리 대답하라는 듯이.

로만을 앞에 두고도 안달 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 모습에.

로만은 웃음을 머금었다.

‘예상대로구나.’

처음 의뢰를 맡겼을 때부터.

로만은 헨드릭이 이렇게 반응하리라는 사실을 예상했다.

장인이라는 부류는 한결같다.

매력적인 물건을 보면, 그 물건의 주인과 어떤 관계든 간에 헨드릭처럼 반응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로만은 미리 생각해 둔 대답을 말했다.

“어디서 구한 검이 아닙니다. 제가 그 검을 직접 제작했습니다.”

“……뭐라고?!”

경악으로 물드는 헨드릭의 얼굴.

그건.

지난 며칠 동안 감히 상상치도 못한, 너무나도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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