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철광산의 광부들 (2)
모르칸이 편견을 가진 이유는 단 하나였다.
평소에는 철광산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
무슨 이유로 일을 하겠다고 나섰는지는 모르겠지만, 로만의 행태가 그리 곱게 보일 수가 없었다.
‘광부들의 일을 우습게 아는 거지. 우리는 생업을 위해 매일 피땀을 흘려 가며 우리의 인생을 철광산에 바쳤건만, 로만 드미트리는 마치 소풍을 나온 것처럼 일하겠다고 나서는 꼴이라니. 만약 그따위 마음가짐으로 대장간을 찾아갔다면, 대장간의 마스터 헨드릭에게 아주 혼쭐이 났겠지.’
제이콥은 유한 사람이었다.
그가 로만을 받아 준 것도, 일하겠다고 나온 로만도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첫날.
모르칸은 신경질적으로 굴었다.
일부러 로만이 일하는 포인트 주변에서 작업하면서, 틈틈이 그가 딴청을 피우지 않나 감시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로만은 성실하게 일했다.
일하는 시늉만 하고 농땡이를 피우리라고 생각했건만, 로만은 다른 인부들과 마찬가지로 열성적으로 작업에 매달리며 할당량을 채웠다.
의외였다.
정말 성실하게 일만 하다니.
가끔 잡담하는 모습을 발견하기는 했지만, 사실 그 정도는 크게 문제가 되는 부분은 아니었다.
‘정말 일을 도와주려고 철광산을 찾은 건가? 아니면, 드미트리 영주님이 후계자 수업의 목적으로 우리와 똑같이 고생을 해 보라고 시킨 건가? 전자는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고, 후자는 이제껏 보여 주지 않았던 모습이야. 드미트리 가문의 차남인 로드웰 드미트리는, 어릴 때부터 대장간에서 온갖 고생을 하면서도 단 한 번도 철광산에서는 얼굴을 비춘 적이 없어. 유력한 후계자조차도 하지 않았던 일인데, 이제야 로만 드미트리가 이러는 이유가 대체 뭐지?’
참 이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목적이 없는 행보였다.
처음에야 단순하게 후계자 수업이라 생각했지만, 그게 의문을 말끔하게 해소해 주지는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모르칸은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본성에서 일하는 하인에게 들은 말인데, 드미트리 영주님은 로만 드미트리에게 철광산에서 일하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는데? 나도 로만 드미트리가 왜 이렇게까지 사서 고생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타의(他意)에 의한 판단은 아닌 것 같아.”
주변인의 말.
충격적이었다.
타의가 아니라니.
그동안 로만을 편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로만의 모습이 달리 보였다.
‘……대체.’
일주일.
로만은 정말 성실했다.
모난 구석 없이 인부들과 잘 어울려서 지냈고, 로만의 작업 태도로 불만을 가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첫날에 표출했던 불만이 사그라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신분을 내려놓고 똑같은 밥을 먹으며 똑같이 일하는 모습을 보여 주니, 악의가 있지 않고서야 싫어할 수가 없었다.
평판이 바뀌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생각보다 괜찮다더라.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일 때면 로만을 힐끗 쳐다보면서 말했고, 그들의 태도 또한 호의적으로 변해 갔다.
그러한 상황에.
모르칸은 의문을 참을 수 없었다.
드미트리의 세 후계자.
그중 유일하게 철광산을 찾은 로만 드미트리가, 어떤 목적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렇게.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모르칸은 처음으로 로만에게 다가갔다.
목적을 물어보는 질문.
로만은 모르칸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상적인 대답과 현실적인 대답 중 무엇을 듣고 싶지?”
예상과는 다른 반응이었다.
구구절절 이유를 말하리라 생각했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나온 선택지에 모르칸은 고민에 빠졌다.
이상과 현실이라.
모르칸은 모든 걸 알고 싶었다.
“둘 다 말해 주실 수는 없는 겁니까?”
“그렇다면 이상적인 대답부터 말해 주지.”
이상(理想).
한스에게 말했듯, 그건 너무나도 달콤한 말이었다.
“드미트리는 광업의 도시다. 로렌스의 영지민들이 농업으로 생계를 해결하듯, 드미트리의 영지민들은 철광산에서의 일을 생업으로 삼는다. 그래서 사람들의 일상을 직접 경험해 보고 싶었다. 드미트리의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단순히 먼발치에서 통계로만 알고 있는 죽은 지식으로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이라, 직접 같이 일하면서 현실을 알고 싶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필요하다. 내 성(姓)이 드미트리인 이상,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다.”
로만의 대답.
이상적이었다.
지도자에게 정말 듣고 싶은 말이었고, 순간적으로 로만을 향한 경계심이 완전히 풀어지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현실적인 대답은 무엇이란 말인가?
“현실적인 이유는 내가 드미트리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에서부터 비롯된다. 드미트리가 막대한 부를 쌓았다 한들, 그건 내 소유가 아니라 아버지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드미트리가 얼마나 많은 부를 쌓았는지,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드미트리의 장자인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볼 생각이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버지가 드미트리의 주인이라면, 결국 이 땅도 도련님의 것이지 않습니까?”
“아니.”
아비와 아들.
혈연의 사이.
하지만, 그것이 아비의 모든 것을 물려받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전대 천마는 열둘의 자식이 있었다.
아들에게 천마의 후손이라는 배경은 물려주었으나,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직접 쟁취해야 했다.
그때 알았다.
부자지간도 결국 타인임을.
아비의 것을 원하는 만큼 가져오기 위해서는, 합당한 대가가 필요했다.
“너에게 묻겠다. 만약 내가 지금 아버지에게 수백 골드를 요구한다면, 너희가 아는 드미트리의 영주님은 어떻게 행동할 것 같지?”
“당연히 이유를 묻겠지요. 수백 골드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니까요.”
“그게 철광산을 찾은 이유다. 드미트리의 일상에서 드미트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면. 나는 정당하게 아버지에게 ‘내 몫’을 요구할 권리가 생긴다. 그건 아들로서의 특권임과 동시에, 나의 권리를 직접 쟁취하는 것이기도 하지. 나는 앞으로 하려는 일들로 인해 많은 돈과 사람이 필요하다. 맨땅에서 그것을 하나씩 일구는 것보다는, 아버지의 배경과 재력을 이용하겠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과할 정도로 솔직한 대답이었다.
이상은 이상일 뿐.
로만은 솔직히 목적이 있다고 명확하게 밝혔다.
정말이지.
황당할 정도로 발칙한 대답에, 모르칸은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크하하하하하, 그런 이유였군요. 아버지의 것을 정당하게 요구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니. 정말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단순히 로만 도련님이 후계자 수업을 목적으로 철광산을 찾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제 머리로는 도련님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목젖을 드러낼 정도로 껄껄껄 웃었다.
로만의 대답.
기분이 나쁠 수도 있었다.
결국, 철광산에서의 일을 이용하겠다는 의미였으나, 모르칸은 다른 의미로 로만의 말을 해석했다.
‘로만 도련님은 드미트리를 위한 일을 하기 위해서 대장간이 아니라 철광산을 찾아왔어. 그건 우리 광부들이 하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일부러라도 흙먼지를 뒤집어쓰면서까지 일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겠지. 좋네. 그런 의미라면, 말릴 이유가 없지.’
자신들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것.
그것이면 충분했다.
광부들은 사람들의 인정을 바랐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차별 대우에 대한 불만이 쌓였고, 그것이 로만을 만나면서 분출이 되었다.
그러나.
로만은 철광산의 가치를 인정하고 이용하겠단다.
얼마나 듣기 좋은 말인가.
이런 이유라면, 모르칸은 얼마든지 이용당할 의향이 있었다.
모르칸이 말했다.
“그래서 무엇이 궁금하신 겁니까? 제가 아는 선에서, 모두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첫날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적대적이었던 모르칸이, 처음으로 마음의 빗장을 내려놓는 순간이었다.
그때부터는 대화가 순탄했다.
로만은 많은 것을 물어보았다.
철광석의 매장량.
하루 생산량.
그리고 제작과 유통의 방식 등등.
모르칸은 끝없는 질문에도 성실하게 대답해 주었다.
“사람들은 드미트리의 철광산이 왕국 최대 규모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이상, 대륙 최대라고 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카이로 왕국은 대륙 동북쪽에, 그리고 그중에서도 동북쪽 끄트머리에 존재하는 땅이 바로 드미트리입니다. 사람들은 드미트리를 대륙의 끝이라고 부르지만, 실상은 그와 다릅니다. 동북쪽 너머로 존재하는 수많은 산맥은 사람들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사람들은 드미트리를 기준으로 국경을 가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산맥들이 바로 드미트리가 부를 쌓은 원천입니다. 미지(未知)의 세계라서 무리하게 개발하지 않았을 뿐이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아직 개발하지 않은 철광산만 하더라도 십수 개에 달합니다.”
놀라운 정보였다.
동북쪽 너머.
끝없는 산맥이라고 부르는 그곳은, 그야말로 지금의 드미트리를 만들어 준 원천이라고 할 수 있었다.
수많은 철광산.
최상급 철광석.
그리고, 그것을 가공하는 기술력까지.
드미트리는 부를 쌓을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갖추었다.
부의 규모가 대단한 것은 알았다.
하지만 이건 상상 이상이었다.
‘동북쪽 일대의 대부호. 사람들은 드미트리의 부가 끝이 없다고들 말하지만, 그것조차도 드미트리의 저력을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한 것이었다니. 그렇다면 내가 정당한 명분과 대가를 제시한다면, 아버지는 그것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능력을 갖추었다는 의미겠지.’
모르칸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하루 생산량에 대한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실 드미트리는 갖추고 있는 조건에 비해서는 생산량이 대단히 많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철광석을 판매하지 않는 이유인데, 작업의 환경이 너무 위험합니다. 안정적으로 일을 하려다 보니까 당연히 속도가 늦어질 수밖에 없고, 그것이 생산량이 떨어지는 결과로 직결되고 있습니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충분한 안전시설을 갖추었다고 생각하는데.”
“맞습니다. 드미트리 영주님은 최대한 안전하게 일하도록 많은 지원을 해 주셨지만, 그래도 위험한 것이 바로 이 광업입니다. 동북쪽 일대의 산맥은 가끔 지진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갱도가 무너질지도 모르니 깊게 들어갈 수가 없고, 실제로 사고가 발생하면 며칠 내내 작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건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종류의 문제가 아닙니다. 천재지변(天災地變)을 어찌 한낱 인간이 막을 수 있겠습니까?”
현실적인 문제였다.
드미트리는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도, 안전 문제로 인해서 조건을 완벽하게 활용하질 못했다.
그리고 그건.
로만이 기다리던 종류의 대답이었다.
안전 문제.
매력적인 포인트였다.
로만이 물었다.
“만약. 안전 문제를 해결한다면, 드미트리는 어느 정도의 이득을 얻을 수 있지?”
“섣불리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못해도 지금보다 생산량이 최소 50%는 상승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철광산에서 과도한 인원을 투입하지 않는 이유는 안전을 책임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딱 관리할 수 있는 만큼의 인원을 갱도로 보내고, 안전을 위해서 항상 조심하기에 생산량이 매장량을 따라가질 못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드미트리 영주님은 참 대단하신 분입니다. 실리적인 이득이 눈앞에 있는데도, 인부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니까요.”
모르칸의 말처럼.
로메로 남작은 좋은 사람이었다.
만약 악덕 영주였다면, 불의의 사고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든 말든 갱도로 인력을 밀어 넣을 것이다.
하지만.
로메로 남작은 달랐다.
과도한 부를 탐하지 않았다.
현실에 만족하며, 자신의 사람들을 귀하게 여겼다.
모르칸과 같은 광부들.
그들은 작업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대장장이와의 사소한 차별로 인해 불만이 내면에 쌓이는데도, 항상 불만을 표출하지 않고 일하는 이유는 로메로 남작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었다.
‘찾았다. 내가 드미트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철광산의 고질적인 문제.
해결할 수만 있다면, 드미트리는 상당한 이득을 얻을 수 있다.
그때였다.
콰앙!
쿠르르르르릉.
어디선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재앙의 징조.
소리가 의미하는 바에, 모르칸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