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사형이랍니다.”
동횃불의 그림자가 그을음 묻은 사내의 위로 일렁였다. 한동안 제 손가락만 만지작대던 죄인이 웃음소리 비슷한 것을 내었다.
“예상했다. 아무렴 지은 죄가 있는데, 마땅히 벌을 받아야지.”
나는 발끝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에서 어렵사리 눈을 떼고 진원을 쳐다보았다. 고신당한 흔적이 남은 사지며 얼굴이 안쓰럽다. 봉두난발인 장발과 꺼끌꺼끌 돋은 턱수염에서 익히 아는 스승의 미려한 용모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니.”
“글쎄요. 그러는 진원도 얼마든지 증거를 속이고 감출 수 있었을 텐데 죄를 알아주길 바라고 허술히 내보이신 게 아닙니까? 소맷자락 밖으로 병을 빼 두셨지요.”
흘흘, 숨을 거칠게 쉬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네 말이 맞다. 너 말고도 다른 제자들 앞에서 은연중 병이며 약포지를 흘리기도 했고, 그때마다 그 애들도 의뭉스런 시선을 저들끼리 주고받긴 했지만 알면서 입 한번 벙긋 않더구나.”
“그게 보통의 사람이지요. 저도 만일 잃을 게 많은 사람이었더라면 눈감고 모르는 척했을 겁니다. 그래, 사왕의 견공으로 지내보니 어떻답니까?”
“권력이 편하긴 하구나, 생각했지.”
“망나니의 칼을 앞둔 심정은요.”
“권불십년은 무슨. 아니, 설령 10년씩이나 이어졌다 한들 죄지은 마음이 죽을 날 받아 둔 하루살이와 다를 게 무어겠나. 알고도 끊어 내질 못했으니 나 역시 잇속 챙기기 바쁜 사왕의 수족들과 다를 바 없지.”
나는 손목에 감긴 끈목의 돌을 꽉 누르며 입을 열었다.
“……하면 왜 자백하셨습니까? 일이 이리될지 모르지 않으셨을 텐데요. 죽음이 두렵지 않으셨습니까?”
“죽는 것보다 내가 지은 죄의 업보가 더 무서웠으니까.”
잘그락. 쇳소리와 함께 한숨 같은 웃음이 짧게 머물렀다.
“뒤늦게 후회가 된 모양이지. 이리 살다간 정말 죽어서도 영겁 불에 처박힐까 봐.”
“…….”
“신을 모시는 자가 하는 꼴이 우습지 않느냐?”
내 굳은 안색을 먼저 살피는 눈동자에 회한이 묻어 있었다.
나는 벽에 바짝 웅크려서는 한심하다는 듯 스스로를 비웃고 깔보며 자조하는 스승의 꼴이야말로 우습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저라고 하고 싶어 저지른 일이 아닌 줄 안다.
권력 운운하나 진원이 다른 상위 무녀들처럼 거들먹대거나 종과 제자를 화풀이 삼아 패고 녹봉을 빼돌리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었다. 나보다 더 오랜 기간 사왕의 괴뢰로 굴려지던 사내가 아니던가.
“잘 살거라.”
“정말…… 기가 차고 웃음만 나옵니다. 하면 금상께 제 무죄를 주장하고 사왕과 한패로 엮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전하께서는 도리어 저를 구국의 영웅으로 치하하며 상을 내리셨습니다. 그것도 스승님의 간곡한 주청입니까?”
“아니, 상벌이야말로 현군인 금상께서 결단하신 일이지.”
“당신의 제자라는 이유로 수많은 무녀들이 잡혀갔습니다.”
“그들 모두를 구해 줄 힘이 내게는 없다. 너도 알겠지만…… 누군가를 구하는 일이 어디 쉽느냐.”
“하면 저는 왜.”
“특별한 이유 없다. 붙잡혀 와 고생했으니 앞으로 편히 살라고. 무녀원을 샅샅이 들춰도 대요귀와 맞붙는 정도의 위중한 업을 떠맡았던 이는 없었으니 말이다.”
“고작 그런 이유로…….”
진원은 잔뜩 찌푸린 내 얼굴을 마뜩잖게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아아, 그래. 핑계 아닌 핑계를 대자면 말이다. 내게 너만 한 여동생이 있어서 그랬다. 되었느냐? 안 죽고 살아 있다면 엇비슷한 나이로 장성했겠지. 네가 하도 을러대니 하는 변명일 뿐, 농으로 넘기거라. 그런 되도 않는 이유로 너만을 살린 것은 아니니. 죽기 전에 마음 가는 대로 해 보자 한 것뿐인데 무얼.”
손목에 닿는 매끄러운 끈목의 감촉이 선연했다. 그 아래 촘촘히 매달린 다섯 색의 조약돌이 내 마음처럼 심란하게 이리 흔들리고 저리 부딪혔다.
한순간 머릿속에 움튼 가능성을 냉정히 잘라 냈다. 기대를 주고 실망만 받아 오는 것도 지겹다. 신당에서 나눈 이야기와 교묘히 맞아떨어지는 지금의 대화와 상황에서 난 아무런 기대를 걸지 말아야 했다.
설령 그가 시체조차 찾지 못했던 내 오라버니와 모종의 연관이 있다 한들 마찬가지였다. 행여 그가 죽은 줄 알았던 오라버니라면 나는 그의 목숨을 빌어 살아온 것이나 다름없으니 돌아올 반응이 두렵기도 했다.
내가 어머니의 안전한 품에서 자라 올 동안 그는 송두리째 삶을 빼앗기고 혹한에 내쳐졌다. 어쩌면 진원은 내가 바라는 허상일지도 모른다. 의미 없는 말 몇 마디로 그가 가족일지도 모른다는 터무니없는 비약 말이다.
“스승님은 사왕과 한패인…… 그런 인간들과 달라요.”
“그리 말해 주니 고마운데.”
“제 죄를 안다고 누구나 자백할 용기가 있는 건 아니니까요.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억울함만을 주장하며 뉘우칠 줄 모르는 자도 있겠고요.”
나는 끈목에 달린 돌을 아릿하도록 세게 움켜쥐었다. 이제 진원이 내 잃어버린 친오라비가 맞건 아니건 중요치 않았다.
처음엔 날 이 꼴로 만든 그를 할퀴고 싶어 안달하고, 밤잠을 설칠 만큼 증오하고 원망했으나 쓸려 오는 세월의 바람에 덮이고 덮여 차츰 무뎌졌다. 어느덧 그는 항시 내 곁에 머무는 존재가 되어 있었으니.
어머니가 정신을 놓았던 가장 힘든 시기에는 정말로 진원만이 옆에 남아 주었다. 꼭 마치 그래야 하는 것처럼.
그의 말대로 누군가를 내 손으로 살리는 일이 쉽지 않음을 안다.
“죽지 않을 겁니다.”
나는 이미 수 번 실패했다. 그럼에도 한 사람이라도 내 손에 살기를 바란다. 이미 죽어 내 곁을 떠나간 혼을 달래 주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믿고 싶지 않다. 그것은 내게 의미가 없는 위로였다. 함께 살아가고, 새 삶을 얻기를 바랐다.
“오라버니는 죽지 않을 거예요.”
* * *
대요귀가 이 땅에서 사라지고 여섯 해 만에 평화를 얼싸안은 밀국은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이 땅에서 완전히 요귀를 몰아낸 것은 아니었으나 기어 나오는 족족 요력이 다 죽어 가는 시시한 잡귀뿐이었다.
호미질하던 농민이 땅에 뭉툭하게 튀어나온 것이 무 대가리인 줄 알고 콱 찍었는데 알고 보니 땅 요귀더라. 피를 몇 방울 흘리더니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 기름진 거름이 되었다더라. 지나가던 아이가 코를 후비며 그 거름을 밟고 지나갔다더라.
우스갯소리가 곧 사실이니 아무도 요귀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물론 개중에는 무녀들이 나서서 제압해야 하는 성가신 놈들도 더러 존재했으나, 옛적에는 비싸서 엄두도 못 내는 부적이나 호신구를 평민들도 나눠 가질 수 있게 되면서 무녀가 파견될 때까지 제 한 몸쯤 방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뿐일까. 무녀님 보기가 하늘의 별 찌르듯 했던 과거와 달리 각지에 소규모 무녀청을 설립해, 신명님께 제를 올리고 관할 백성들의 안녕을 비는 상주 무녀가 둘씩 배치되었다. 제법 강한 요귀가 걸어 나와도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서 무녀가 맞아 주는 것이다.
이러한 평화를 위해 노력하던 시기. 사혜는 어머니를 모시고 이가할 준비를 하랴, 왕과의 독대를 위해 바지런히 편전을 오가랴, 눈 비빌 틈 없이 바쁜 낮밤을 보냈다.
당당히 궐에 들 적마다 비수처럼 꽂히는 대신들의 아니꼬운 눈총을 어깨 너머로 흘리고, 눈칫밥은 씩씩하게 잡쉈다. 몇 차례 왕과의 대담이 오가고, 몇 가지를 포기한 끝에 사혜는 비로소 원하는 바를 손에 얻게 되었다.
합문 밖으로 나온 사혜는 새하얀 천이 하늘거리는 신단(神壇)과 궁을 돌아보았다. 마흔아홉 밤 동안 오시의 맑은 하늘 아래 매일매일 제례가 열리고, 그 성스러운 기간 동안 궐은 흰 장식 옷을 입는다.
백의를 입고 하늘길에 오르는 영령이 보이는 듯했다. 여린 낭군께서도 마음 편히 저 하늘로 떠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는데. 끝끝내 운혁을 천도시켜 주지 못한 슬픔이 속을 파헤쳤다.
종종 그런 생각이 든다. 그와 다음 생을 약속했으나 진정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천도하지 못한 영혼이 어찌 되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어머니, 오는 봄에 여림으로 떠납시다.”
그 밤, 사혜는 어머니가 즐겨 드시는 조기를 손수 구워 석반을 내갔다.
칼을 잡고 요귀 아닌 음식을 썰고 다지는 것이 몹시 생소했다. 부엌 귀퉁이에 앉아 쌀을 담그고, 밥을 푸고, 장국을 끓이고. 누군가에게는 좀이 쑤실 만한 일상에 거리낌 없이 녹아드는 제 모습이 생경하였다.
어머니랑 무릿매골에 단둘이 살 적엔 지지리도 부엌일이 싫었는데, 요귀와 피를 뿌리며 뒹굴 바에는 차라리 쭈그려서 쌀을 씻고 푸성귀를 다듬고 말겠다.
“여림?”
“예, 춘삼월이 되면 여림의 서래들판으로 짝짓기하려 드는 나비들이 몰려오는데, 그렇게 장관이라고 합니다. 터도 나쁘지 않구, 그쪽 군수와 판관이랑 친분이 조금 있어서…… 진원도 그리로 보낼 겸, 겸사겸사요.”
“아가, 표정이 밝아 보여 좋구나.”
“아무렴 이제 좋을 일만 남았는걸요.”
고소한 구이 내음과 향긋하게 씹히는 채소의 풀 향이 일품이었다. 어머니는 오랜만에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셨다. 건강을 되찾으신 어머니 모습이 보기 좋았다.
놓아 버리고 싶던 적도 숱하게 많았으나 그래도 살아 있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세심히 둘러보지 못해 놓쳤던 것이었다.
나는 무릎에 올려진 어머니의 손등을 매만졌다. 기운혁이 떠났을 때 따라 요절할까 했던 충동이 떠오르니 어머니께 죄스러웠다.
홍운영처럼 내게도 기운혁의 혼이 보였다면 그는 분명 내가 살아서 마음껏 웃기를 바랄 것이다. 미련 때문에 놓지 못하면 그 사람도 마음 편히 갈 수 없다고 했다. 한 가지 양보 못 하는 게 있다면 죽을 날까지 기운혁을 못 잊으리란 것이겠지.
추억을 안겨 준 사내는 추억이 되어 버렸다. 여생을 그 추억만 끌어안고 살아도 나는 웃음을 잃을 일 없겠다.
들뜬 어머니의 손에 다정하게 깍지를 채웠다. 이제는 근심 없는 날만 찾아오리라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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