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눈을 뜨니 익숙한 물건의 윤곽이 시야를 비집고 들어왔다. 사흘. 자그마치 사흘을 기절해 있었단다.
그렇게 사흘 만에 눈을 뜨고도 나는 이틀을 송장처럼 가만히 누워 보냈다. 밥알을 넘길 힘도 없어 맹물로만 연명하였는데, 이대로 살다간 정녕 먼저 간 운혁의 뒤를 따라 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다행인 것은 눈물샘이 쥐어짠 영건처럼 말라비틀어졌다는 것일까.
나는 목깃을 벌리고 안쪽을 더듬어 보았다. 봉인구의 모양대로 볼록하게 튀어나온 헝겊 주머니를 어루만지며 간밤의 꿈을 떠올렸다.
“무녀님, 식사를 좀 하셔야지요.”
보약을 지어 온 시종이 걱정스러운 눈짓을 보냈다. 이번에도 물만 들이켜시면 어찌할까, 제대로 보필하지 못하였다고 괜스레 윗전에게 면박을 받을까 노심초사하며 약과 함께 챙겨 온 미음을 내려놓는다.
언제까지 종의 근심을 나 몰라라 할 순 없는지라 일어나 밥술을 떴다. 기운을 차리려는 듯이 바닥까지 긁어 꾸역꾸역 먹는 모습을 보고 종은 눈에 띄게 안도한 얼굴이었다.
“좀 더 누워 계시질 않으시고요?”
이번에는 좀 더 누워 있길 바라는 눈치였으나 나는 못 들은 사람처럼 풀어진 옷고름을 여미고 엉망이 된 머리칼을 손빗으로 쓸었다. 신을 구겨 신을 때에 허리를 숙이면서 덜 아문 옆구리가 욱신거렸으나 무시하고 방문을 젖혔다.
마침 찾던 이가 복도에 서 있었을 줄은 몰랐다.
“진원.”
“신력을 지나치게 맹신해 상처를 보살피지 않아 몸이 망가진 무녀들이 많다. 모르지 않을 텐데.”
단단히 팔짱 낀 진원이 못마땅하다는 듯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그래서 용건이 무엇이냐고 묻기도 전이었다. 진원이 날 억지로 떠미는 바람에 다시 이부자리에 드러눕게 되었다.
스승은 양 무릎에 주먹을 올리고 근엄하게 앉아 한동안 묵언했다. 처음부터 그리 살가운 사제 관계는 아니었지. 둘 다 말수가 적은 편이라 침묵은 어색할 게 없으나, 암말 없이 버티고 선 스승이 답답하기는 했다.
입을 열자마자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튀어 나갔다.
“할 말 있어 찾아오신 것 아닙니까?”
“몸이 나으면 다녀와야 할 곳이 있어.”
“지금도 문제없습니다. 상처야 찢어졌다 붙으려니 따끔거리는 게 당연하고. 아까도 더 누울 필요 없었는데 괜한 유난이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에라도 출발하잔 뜻이었다. 사실 이렇게라도 다른 곳에 정신머리를 두지 않으면 일생을 앓아누울 기세였다. 몸보다 마음이 욱신댄다.
버거운 짐을 두고 떠나 버린 기운혁이 괘씸하다가도 견디기 어렵게 애틋하여 이게 화인지 슬픔인지도 모르겠다. 기운혁의 ‘기’ 자만 떠올려도 눈가가 따끔하고 마른 줄 알았던 눈물샘이 시큰거리니 언제까지고 이러고 살 순 없지 않나. 힘에 부쳐도 이겨 내야지.
언제가 될지는 모르나 지금껏 씩씩한 척에 이골난 삶을 살아왔다. 기운혁이 부숴 놓았던 껍질은 새롭게 단단해져 가시까지 돋아나 내 몸을 둘렀다.
“사왕께 보고도 올려야 하고요. 어머니도 오래 보지 못하였으니 안부 인사도 드리러 가야 하고. 오래 쉬었더니 할 일이 태산입니다.”
“너는 더 쉬어야 해.”
“하릴없이 가만 누워 있으면 별별 생각이 다 납니다.”
내가 먼저 이부자리를 벗어나 밖으로 나갔다. 창을 열었다. 시린 겨울 햇발이 두 눈을 찔렀다. 언제나처럼 버거운 아침이었다. 간밤에 제법 눈이 많이 왔는지 온 땅이 새하얀 이불을 덮은 채 겨울을 맞고 있었다. 이마에 차양처럼 드리운 손등 위로도 눈송이가 하나둘 내려앉았다.
설득을 포기하고 문밖으로 따라온 진원이 등 뒤에서 낮은 한숨을 흘렸다.
“무슨 생각.”
“이 일만 끝나면 새 삶이 열릴 줄 알았지 뭡니까.”
“…….”
“하나의 목표를 보고 달렸는데 막상 가 보니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 허망하기도 하고. 앞으로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나 싶기도 합니다.”
“사혜야.”
“다 잃은 것 같습니다. 지키고 싶었는데 결국 무엇도 뜻대로 되질 않았네요.”
돌이켜 보면 언제나 그랬던 것 같다. 가족도, 운혁도, 나의 삶도. 하기야 태어났을 때부터 곁엔 아무도 없었는데 그런 놈이 지키긴 무얼 지키겠다고.
“홍사혜, 진정해라. 넋 나간 꼴로 정돈 없이 내뱉는 생각은 네게 도움이 되지 않아. 매무새부터 정돈해라. 광인이라고 해도 믿겠어.”
“…….”
산발이 되어 아무렇게나 묶인 머리카락, 며칠을 물로 때우다가 겨우 미음 한 사발을 비워 초췌한 눈가와 볼.
“오늘 분의 식사는 잘 챙겨 먹은 듯하고, 앞으로도 꼬박꼬박 끼니 거르지 말고 먹어라. 기운 차렸으면 뜰도 좀 거닐고. 어머니 뵈어야지. 네가 안정을 찾으면 다시 올 테니 이만 쉬어라.”
진원은 찬바람을 맞는 날 돌려세우고 억지로 방 안에 집어넣었다. 난 정말 괜찮은데. 남들 눈엔 다섯 걸음도 못 떼고 쓰러질 약골로 보이나 보다. 그 조금 움직였다고 벌써 피로하긴 했다.
종의 부축을 받고 다시 침상에 눕자마자 반가운 졸음이 쏟아졌다. 어쩌면 깨어나서도 줄곧 다시 잠들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을 추스르기도 전인데 몸이 버틸 리가 없다.
몹쓸 체력이 더 엉망진창이 되었구나. 골골대며 앓아눕는 것은 남에게도 폐를 끼치는 것이라고 어머니께 배우며 자라왔다.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고 싶었으나 몸이 축축 꺼지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이럴 때 운혁이 타 준 차를 마시면 깔끔히 털어 낼 수 있었을 텐데.
홍운영이 떠나간 꿈속에 이번에는 그가 찾아왔으면 좋겠다. 사흘 동안 홍보옥을 끼고 잤는데도 한 번을 안 와 주는 매정한 정인이었다.
와서 혼자 남겨진 나를 좀 위로해 주었으면. 별것 아니어도 좋으니 다정한 한마디를 듣고 싶었다. 그리 매일 밤을 찾아와 주면 나는 네가 없는 아침도 기꺼울 텐데.
* * *
이튿날 하오(下午), 더 쉬라는 진원을 무르고 부득불 외출을 감행했다. 진원이 함께 가자 청한 곳이 궁금하기도 했고, 개인적으로도 마무리 지어야 할 일들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누워 쉬는 일은 아직은 사치였다.
“이 숲입니까?”
“그래. 제대로 찾아온 듯싶구나.”
“한데 진원……. 어딜 다녀왔습니까?”
“음? 사왕을 뵙고 곧바로 이리로 온 것인데.”
앞서 말을 몰고 가던 진원이 왜 그런 것을 묻느냐는 듯이 말머리를 돌렸다. 나는 그의 진흙 묻은 신을 물끄러미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라면 되었습니다.”
이윽고 우리가 숲길을 지나 당도한 곳은 신을 기리는 신당이었다.
본디 수도 중심부에 설치된 신당은 세 곳으로, 역대 밀국 왕족의 이름이 새겨진 단자를 모셨으며 공훈을 세운 대소신료들의 이름이 적힌 푸른 종이를 걸어 두었다. 그런데 한 곳이 더 있을 줄이야.
낡은 나무 문턱을 넘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물며 내부 풍경도 익히 알던 수도 중심의 신당과 사뭇 달랐다.
“수도 외곽에도 신당이 숨겨져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향로 하나가 덩그러니 올려진 협소한 신단에, 연홍색, 백색, 자색, 흑색, 담청색의 긴 끈들이 장식처럼 얽혀 있는 적막한 신당이었다.
“그렇겠지. 주상께서 즐겨 찾는 곳은 아니니까. 속사정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잘 알려지지도 않은 신당이다. 그래도 매달 관리인이 찾아와 먼지를 치우고 잡풀을 뜯어낸다. 이곳은 대환란 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리고 싸운 무인(巫人)들의 위패를 모셔 둔 곳이야.”
“무인들의 위패?”
“네 이름도 이곳에 새겨질 거다.”
“사왕이 나의 공로를 인정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됩니까?”
“그래, 전처럼 도망 다니며 숨어 살지 않아도 되겠지.”
저지르지도 않은 역죄에서 마침내 발을 빼내었으니 환호라도 지르며 해방감을 만끽해야 할 것 같은데 지독한 피로감이 전부였다. 거대한 짐 덩이 하나를 내려 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탈력감과 무력감. 귀한 겨울 햇살이 너르게 펴진 제단에 누워 잠이나 한숨 늘어지게 자고만 싶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천천히 내부를 둘러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홍운영을 비롯해 풍림 홍씨를 쓰는 무녀의 흔적은 어디에도 볼 수 없었다.
예상한 일이라 시선을 거두고 다른 쪽에 관심을 두었다. 신당의 대들보에 묶인 오색 끈의 꽁지에는 같은 색 염료를 바른 돌들이 달려 있었다. 그 색이 어딘가 눈에 익었다.
“이 장식끈의 색은 종묘를 장식한 오방색과는 다르지. 알고 있었느냐?”
“듣기로 고대 천신당을 건립할 때 하늘에 나타난 영물의 꼬리 색이라고 들었습니다.”
색을 덧입은 돌들을 묵묵히 보다가 무의식적으로 옷소매에 가려진 손목을 만지작거렸다. 잘그락, 죽은 오라버니의 유품인 끈목이 손끝에 닿아 걸렸다.
돌의 색이 장식끈과 같아서인지, 처음 들른 장소임에도 이 신당이 사뭇 친근하게 느껴졌다.
“잘 아는구나. 천신당에서 구전되는 전설이라 어지간해서는 들어 보지 못했을 텐데.”
“그러는 스승님이야말로 대단히 옛사람인 듯이 말합니다.”
“나도 들어서 아는 것뿐이다.”
“누구에게 말입니까?”
“내 어머니.”
암울한 목소리 뒤로 정적이 내려앉았다. 지금껏 제 가족에 대해 일언반구 없던 사람인지라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구겨진 표정을 보아하니 어머니에 대해 더 물으면 사달 날 것 같았다.
나는 손목에 달린 조약돌을 어루만지다가 정적을 메꿀 목적으로 말했다.
“그러십니까. 저도 어릴 적 어머니께 들은 것인데. 제게 오색 끈목을 유품으로 남기고 간 오라버니가 있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그래서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군.”
딴에는 장황히 설명하였건만 한숨 나오게 짤막한 대꾸였다.
어찌 됐건 내 가문이 오명을 씻고 이곳에 이름을 걸게 되다니 기쁜 일이었다. 어머니의 정신이 온전하셨다면 나를 몹시도 자랑스러워하실 테지.
장하다, 기특하다. 역시 우리 딸 뿐이다. 뭐 이런 칭찬을 살면서 한 번쯤 들어 보고 싶기도 하였는데 아쉬웠다.
오색 끈을 말없이 어루만지던 진원이 몸을 돌려 시선을 마주했다.
“네가 곁에서 지켜본 벽수. 그자가 요귀였지? 4년 전, 무릿매골에서 네가 구하려던 소년이고.”
“…….”
“임영이란 자가 무녀원을 찾아왔었다. 네 이름을 대면서 위험하다고 알리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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