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버들이.
무당 어미 따라 꼬박꼬박 약사발을 내오는 소년은 우스꽝스러운 숯검정이 눈썹만 빼면 제법 태가 고왔다. 어디서 본 익숙한 검무를 흉내 내고 나비 영물을 부르니 흥미가 일 수밖에.
무엇보다 봉인 직전 그를 꿰뚫었던 싯붉은 눈이 놀랍도록 닮아서. 그것만큼은 100여 년을 초월해 생생히 뇌리에 각인된 것이라, 홍운영의 후손임을 자연히 알게 되었다. 그 눈이 심드렁하게 저를 보고 있었다.
“저놈 말고 나랑 노는 건 어때.”
버들이를 끈덕지게 따라다녔다. 그 애가 자신을 걱정하고 가엾어 한다는 것을 간파했다. 참으로 제 조상을 빼닮지 않았나.
“도령! 저들을 어디에서 만났습니까? 어느 집 자제들이랍니까?”
일부러 강 속에서 구물거리는 요귀 다섯을 건져 친구처럼 끼고 다니니 펄쩍 뛰어 댔다. 그때엔 버들이의 외면에 약간 심통이 나 있어서,
“네게 말할 이유가 있나.”
“저들과 어울리지 마십시오.”
“네가 무어라고.”
냉한 말을 내뱉었고 버들이는 상처받은 얼굴을 했다. 신기한 것이, 100여 년 전에는 없던 감정이 버들이 앞에서는 이리 튀고 저리 튀어 댔다. 저 상처 입은 얼굴에 재미를 느꼈다.
몇 마디 찌르니 굴복한 버들이는 개 풀 씹은 얼굴로 그의 집을 찾아와 주었다. 홍운영과 알게 모르게 비슷한 얼굴이라 그러한가. 틈만 나면 관심 있게 쳐다보니 버들이는 쑥스러워하면서 귀를 만졌다.
그때도 제법 어여뻤고,
“소원 빌어야지요.”
선물이랍시고 연등을 사 올 때도,
“왜요, 대감께서 가문의 명예나 실추시키는 못난 종자라며 핍박한답니까? 그리하여 반평생을 앓다가 겨우 보전한 몸 이리 쉽게 내버립니까? 기껏 다 죽어 가는 거 구해 놨는데, 한참 미련한 짓이었습니다.”
반응이 궁금하여 몸소 강으로 들어간 그를 죽기 살기로 구해 낸 뒤 화를 낼 때도. 버들이는 참 한결같이 어여뻐서, 보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우습지 않나. 피를 나눈 살붙이도 제 이해득실 셈하기 급급한데. 자식의 생사여탈권을 저울에 달아 두고 미련 없이 내던지는데 말이다.
아무것도 아닌 버들이가 그의 죽음을 두려워하고, 떨고, 분노하고, 그를 구하고.
처음엔 무얼 믿고 저러나 우습다가, 돌연 슬퍼졌다. 버들이는 그를 좋아했다. 저리 티를 내는데 몰라보면 눈이 처마나 땅바닥 어디쯤에 달려 있겠지.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이 아니었다.
연정을 깨닫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졌다. 숨이 막히고 목이 메이고, 뜨겁고 불쾌한 무언가가 속에서 끓었다. 버들이가 다른 사내에게 스스럼없이 웃는 걸 볼 때 감정의 불씨는 한층 노여워졌다.
“버들아, 너를 오래전부터 연모해 왔어. 네 비밀, 평생 지켜 줄게.”
그러다 계집애란 걸 알게 되었다. 깨지락거리며 숨는 손가락, 피하는 눈동자, ‘기 도령―’하며 부르는 목소리. 모두 그의 것이었다.
당장에 윤후의 자리를 빼앗았다. 버들이를 제 곁에 앉혀 두고 글 읽는 법을 비롯해 낚시며 사냥, 무엇이든 따라다니며 다른 사내놈에게 낄 틈 하나 내어 주지 않았다.
“도령의 이름. 제가 지어 주고 떠나도 됩니까?”
그러다 홍운영이 지어 준 것과 닮은 이름을 갖게 되었다.
“거창한 뜻은…… 없습니다. 그저 도령이 건강해져서, 지금보다 자유롭기를 바라서요.”
운과 운혁. 둘은 가질 수 없으니 선택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혼기가 차셨으니 도령 댁에도 곧 매파가 올 겁니다.”
“나는 네가 좋은데, 버들아.”
버들이의 흔들리는 동공이 마음을 들뜨게 했다. 계속 그렇게 제 앞에서 바람 맞은 버들잎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면 좋을 텐데.
“가져.”
홍운영이 자신을 봉한 홍보옥을 주었다. 알아볼까? 내가 네 조상을 죽인 요귀란 걸 알면 어떤 표정을 내어 줄까, 궁금하여서.
버들이는 아무것도 몰랐다. 아리송하게 고개를 기울다가, 못 받는다며 완강하게 버티는가 싶더니, 결국 수줍게 웃으며 가져갔다. 지켜보는 속이 전보다 더 심하게 울렁였다.
그 애가 가는 걸음마다 따라붙고 싶고, 웃으면 같이 웃어야 될 것 같고. 가랑비에 젖은 옷처럼 그렇게 물들어 갔다. 진실로 웃고, 여인에 대한 소유 욕구를 배우게 되었다.
마음의 빛깔은 전보다 조금 더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무슨 소원을 빌었어?”
“입 밖으로 내면 신께서 듣지 못한다잖아요.”
사당에서 빈 소원을 물었더니, 말하면 달아난다고 입을 꽁꽁 틀어 맨다. 너는 일평생 모르겠지. 소루강의 악신이 눈앞의 자그마한 여인에게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음을.
흉물스런 악귀에게 자신의 안녕을 빌었다. 결국 그에게 빈 꼴인데 그 간절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리 없다. 그가 죽기를 바라는 소리를 들은 적은 있어도 그 반대는 처음 들어 보았다.
타는 듯 무더운 마음을 안고 버들이를 바라보았다. 계집애 티를 온몸으로 내고 다니는 긴 속눈썹과 오동보동한 뺨, 무르익은 입술과 향긋한 내음.
가까이 둘수록 더 이상 호기심이 아니게 되었다. 기어이 욕망하게 되었다.
“놓아!”
사왕의 무녀가 요귀를 끄집어낸 날. 난리 통에서 그 무녀의 팔을 뿌리치고 자신을 구하려 했던 버들이를 보았을 때에. 어처구니없게도 그녀 앞에 요귀 아닌 사람으로, 사내로 서기를 갈망했다.
그러나 그런 속내를 뭉개듯이 몸 안의 뱀이 기지개를 켰다. 잠을 충분히 자고 개운한 태세로 그의 몸을 다시 뜻대로 움직이려 들었다. 깨어난 악의가 으슥하게 하품하며 그의 몸을 전율케 했다.
운혁은 이 마음이 부질없음을 알았다. 어떠한 감정이 되었든 주고받지 못할 것이고, 자신은 언제든 이 작은 계집을 해치게 될 것이다. 이만하면 충분했다.
운혁은 이보다 더한 변고가 일어나 버들이가 다치기 전에 싹튼 연을 잘라 내는 것이 최선임을 알았다. 스스로 강물로 걸어 들어갔다.
묻고 싶었다. 너는 왜 나를 구하고자 달려들었냐고. 무슨 배짱으로, 무얼 믿고, 너의 모든 것을 걸고 지켜 준다는 듯이 구는지.
용기로 무장한 눈동자가 비수로 틀어박혔다. 틈 없이 붉고 명료한 눈은 그가 모르는 수많은 감정으로 맴돌이치고 있었다.
가증스럽게 보았던 지난날이 눈물이 되어 뺨을 타고 흐른다. 누구라도 나를 불러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때에 나타난 홍운영처럼 두 사람은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사왕의 무녀에게 붙잡혀 팔이 꺾이고 무너지는 와중에도 그를 불러 댄다. 심장이 누더기가 된 것 같았다. 제 영육이 요귀에게 한 점 남김없이 뜯어 먹혀도 그 장면을 잊지 못할 것이다.
네가 살아 있기를 바란다. 다시 해후하게 된다면 나를 죽여 주기를. 비정한 괴물이 되어 가는 그를 부디 거두어 주기를. 내가 너를 두 번은 해치지 못하도록.
운혁은 간절히 바랐다.
* * *
강호의 만물은 하물며 하늘 세계의 존재일지라도 인과율을 따른다. 부정을 저지른 이들은 스스로 올가미를 걸게 되어 있으니, 그것이 신이 내린 벌이렷다.
그들은 죽어서 서천의 꽃으로 화하는 대신 삼색 물의 찌꺼기로 심연의 저토를 구른다. 꽃들이 제각각 환생을 거쳐 필부와 왕후장상의 인생길을 걸어갈 동안 찌꺼기들은 업보를 벗을 때까지 그네들의 윤회를 먼발치서 지켜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운혁은 제 죄의 크기를 가늠해 보았다. 괴물에게 영육을 내주고 행한 살육을.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저 수평선보다 헤아리기 어렵다. 백 번 천 번을 죽어 마땅할 몸이었다.
* * *
“어째 영 집중을 못 하시는데, 홍 무녀.”
타박을 듣고 사혜는 묵상에서 깨어났다. 어째 손바닥을 쥐어도 헛헛하다 싶더니, 손금을 따라 빠져나간 황금색의 글자들이 오열을 갖추지 못하고 엉망으로 허공에 흩어지고 있었다.
“봉마식까지 하루 남았으니 심란한 마음도 이해는 한다만.”
“왜 아니겠어. 다른 것도 아니고 제 조상 썰어 먹은 대요귀인데. 그런 만큼 의지를 다지고 모아야지 목숨 걸고 싸워야 할 판에 저리 정신 줄 놓으면 쓰나.”
걱정과 질책을 반죽처럼 섞은 무녀원 동기들이 혀를 차며 지나갔다. 사왕의 수결이 찍힌 패를 달고 상록까지 걸음 한 귀한 인재들이었다.
사혜는 대답 없이 텅 빈 부적 쪼가리를 집어 들었다. 애써 쓴 글자가 제 역할을 다하기도 전에 허공에 버려졌다. 이렇게 버린 부적만 넉 장째. 저자들 말대로 이따위 헐거운 정신머리로는 요귀 앞에서 제대로 된 술 하나 못 읊고 놈의 발톱에 열 조각으로 쪼개지리라.
‘왜 소식이 없는 것이지.’
운혁이 불시에 떠나고 3일이 흘렀다. 말없이 사라질 위인이 아닌데 일거무소식이니 불안으로 가슴이 저물어 갔다.
‘요귀를 걱정하는 처지라니 웃기지도 않아.’
변고를 일으킬지언정 당하진 않겠지. 아는데도 발이 근질거렸다.
벼락 맞고 죽어야 할 요귀가 아니라 잃으면 찾아야 할 정인이라고 착각을 한다. 도적 떼의 칼에 찔리면 죽고, 재수 없게 요귀에게 걸리면 목숨이 위험한 그런 평범한 사내 말이다.
그러나 사혜는 한 발자국도 빠져나가지 못하는 처지였다. 운혁을 찾으러 나가겠다고 하면, 동기들은 콩밭에 간수를 치려 드는 그녀를 패대기쳐 앉히고 일에 순서를 두라며 술서를 떠밀 것이다.
사혜는 무심결에 새하얀 천을 덮은 제단을 바라보았다. 오색의 새끼줄과 제단을 따라 세워진 열 개의 성불, 따그락, 딱딱 바람 따라 을씨년스럽게 우는 금령(金鈴). 신물이 나도록 반복한 제례인데 돌연 시야에 비치는 풍경이 판설었다.
“정신 차려라.”
툭. 그녀의 어깨를 치고 간 것은 스승이었다.
“무녀원에서 지켜보고 계실 줄 알았는데요.”
“방금 당도했다.”
진원은 찌푸린 눈으로 올려다보는 사혜의 정수리를 목탁 밀 듯이 검지로 쭉 밀었다.
“생사의 기로에 던져진 제자가 잡념에 빠져 있는데 팔자 좋게 드러누울 스승이 어디에 있다고 날 그런 취급이더냐. 네가 그리 환멸하는 요귀에게 개죽음당하고 싶지 않으면 앞만 보라 이거다.”
“환멸. 환멸이요.”
“그래.”
진원이 실성한 것처럼 웃는 사혜를 지그시 보며 한숨을 쉬었다.
“정 집중을 못 하겠거든 들어가 눈이나 붙여라. 새벽 일찍 깨워 줄 테니.”
“스승님이라면 어쩌시겠습니까?”
“무엇을.”
“……아니, 아닙니다.”
“정신머리를 보아하니 저녁 수련은 글렀겠다.”
진원은 서늘한 한마디를 읊조리고 무심히 마당을 지나쳐갔다. 그의 걸음마다 짓밟힌 부적 쪼가리들이 바람에 떠밀려 사혜의 앞까지 굴러왔다. 사혜는 넝마가 된 부적들을 쓸다가 제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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