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신(臣) 조현, 우국충정으로 아뢰옵니다. 왕자께서는 악귀가 들린 것입니다. 왕자의 재능을 시샘한 하늘이 벌을 내린 것이니 하늘이 노하기 전에 속히 제를 올리고 왕자를 폐위하셔야 옳습니다.”
“전염성 병이 의심되오니 외딴 별채에 유폐시켜 병세를 지켜보소서.”
호사가들은 왕자가 진맥하러 온 의녀와 눈이 맞아 월담하는 것도 보았다는 어처구니없는 소문까지 퍼뜨렸다.
병든 왕자에게 줄을 대고 싶어 하는 신료들은 아무도 없다. 모두 그를 떠났고, 어미인 빈마저 제 아들을 썩은 동아줄 보듯 바라보았으니 병든 왕자는 홀로 어둑한 방 안에서 머리를 쪼개는 두통과 사투하였다.
빈은 첫째 아들 금양군을 불러 앞으로의 일을 논의하였다.
“어머니. 숙의(淑儀)의 외척이 남몰래 사병을 모으고 있다는 것 알고 계십니까? 조만간 왕궁에 피바람이 불 것이요. 상황이 이러한데 어디 좋은 패가 없겠습니까?”
“기유의 병치레를 지켜보는 것만으로 진력이 다하거늘. 이제 어찌하면 좋단 말입니까. 믿을 것은 기유뿐이었는데…….”
“이리 당할 순 없지요. 이러다 누군가 뒤통수를 치고 보위에 오른다면 우리 모자의 목숨까지 위태롭게 됩니다.”
수심에 잠긴 어머니를 위로하며 금양군이 묘책을 내기를,
“예부터 신에게 사람을 먹이면 염을 이뤄 준다는 미신이 있다던데. 허언은 아닌 모양입니다.”
소리 죽인 금양군이 어느 무인에게 들은 이야기를 어미의 귀에 간살스레 뿌렸다.
“그 마을에 동해로 뻗는 강줄기가 있는데, 마을 영감이 금송아지를 바쳤더니 다음 날 죽은 손녀딸이 찾아와서 한나절 동안 놀다 갔다지요. 귀한 것을 바칠수록 신의 인심이 후해진다 하더랍니다.”
“하면 사람이라도 제물로 쓰자는 뜻입니까?”
“못할 것도 없지요. 제가 왕이 된다면야 무엇이 문제겠습니까?”
허무맹랑한 말이었으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차피 아우는 오래 못 삽니다. 어머니, 신께 그 애를 공양합시다. 이럴 때라도 쓸모를 다해야지요. 오래전 산중 무녀에게 예언 하나 받으신 것 기억나십니까? 어머니의 아들이 왕이 될 관상이라고요.”
금양군이 허리를 낮추고 속살대었다.
“그게 실은 아우가 아니라 저였던 것입니다.”
그 한마디가 갈피 잃은 어미의 가슴에 확신의 못을 박았다. 연후로는 눈에 뵈는 것이 없어졌다. 어차피 죽을 운명이면 산 사람이라도 제대로 살아 보아야 하지 않겠나.
하여 호원군, 산 제물이 되니 그의 나이 열일곱이었다.
그가 주기적인 발작을 앓아 이틀을 기절해 있던 어느 겨울날. 모자는 얼어붙지 않은 동해로 은밀히 배를 띄웠다. 무녀가 공양하는 노래를 바다로 함께 띄우니, 난데없이 파도가 험해지고 눈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우가 저리 고통스러워할 바에는 신의 곁으로 보내 주는 것이 옳습니다.”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못 뜨는 자식 앞에서 어미는 마지막까지 망설였다. 무엇에 잠깐 홀린 것이 아닌가. 차마 병으로 괴로워하는 아들을 깨우지 못했다.
그러나 당장 돌아가자고도, 눈감은 채 밀어 넣지도 못해서, 잠든 호원군을 칭칭 묶어 내던진 것은 금양군이 대신하였다.
풍덩!
시퍼런 소용돌이가 호원군을 집어삼켰다. 얼어붙을 듯한 추위에 눈을 뜬 아들이 울부짖었으나 처절한 비명은 물살에 먹혔다.
쿠르릉, 하늘을 쪼개는 우레가 모자의 죄를 꾸짖었다. 어머니, 어머니! 허우적대며 거푸 바다 위로 머리를 내밀고 잠기기를 반복한 호원군은 결국 파도에 먹혀 사라졌다.
그로부터 1여 년 뒤, 금양군은 교왕의 뒤를 이어 보위에 오른다. 그러나 들끓는 역병과 반란, 외세의 침입과 불안정한 민심으로 2년 만에 무너졌으며, 느닷없이 창궐한 요귀 떼로 인해 기씨 왕조는 멸망하게 된다.
이후 문씨 성을 가진 왕족이 신왕조의 기틀을 세우고 새롭게 군림했다. 이때 처음으로 대요귀가 나타났는데, 사관은 역사에 다시없을 대환란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온몸이 비늘로 덮이고 꼬리가 활처럼 긴 요물이 활개를 치니, 비록 용의 형상이나 그 형세가 괴괴해 하늘의 길조라 부를 수 없다. 그것은 재앙이다.
수장된 가옥이 300여 채를 넘어섰으며, 공격당한 효공주의 옥체는 차마 눈을 뜨고 보기 힘들어, 가까스로 수습하여 국상을 치르니 비통에 찬 백성의 울음이 도성을 울렸다.
노여움 풀기를 바라매 제례를 거행하는 무녀 서른을 세우고, 과녁판에 요귀의 흰 눈을 그려 넣어 화살 다섯을 박아 넣었다.]
* * *
인간들은 쉬이 상처 입고 죽는 하루살이라고 ‘아버지’가 질책하셨을 때, 그럼 당신께서는 어찌하여 그들을 돕느냐고 물었었다.
쉽게 바스러질 생. 왜 그들의 원을 들어주려 애쓰고, 미래를 점지해 주고 연을 맺어 주느냐. 어찌 재앙으로부터 구하려 하느냐 물으니 아버지께서는 대답이 없으시더라.
하나 부자의 마음은 일맥상통. ‘기유’는 저처럼 아버지 역시 인간들의 삶을 사랑했음을 알았다.
그들은 역경을 무찌르고 피어나는 꽃처럼 연약해 보이나 강인했다. 정을 나누며 희로애락에 매여 살아 가는 정경에 매혹되었다.
그 아름다운 이면에 자리한 추악함을 알려 하지 않은 죄일까.
호원군은 바다에 던져진 제 몸이 무언가에 먹히고 있는 것을 느꼈다. 육신이 아닌 영혼이 과편처럼 뜯어 먹히고 있었다. 음험한 울림이 귓가에 파도쳤다.
―하나를 주면 열을 가질 수 있단다, 얘야.
낭떠러지처럼 시커먼 바닷속에서 그보다 더 검은 뱀 몸뚱어리가 굽이굽이 바닷길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주름진 눈과 아가미는 물고기고, 긴 수염과 몸통은 뱀인 징그러운 혼종이었다.
―네가 인세에서 배운 것은 배신과 환멸뿐이로구나.
과연 그가 속세에 머물며 배운 것은 때 묻은 악의와 찌르는 투기심, 편협한 욕망이었다.
하늘 위에서 좋은 것만 보고 듣고 자라, 땅의 사람들도 악취 없이 향기로운 줄로만 알았다. 그가 사랑한 세상이었으니. 얼마나 미련한가?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감정이었으나 호원군이 처음으로 깨우친 것은 슬픔과 분노였다. 아버지의 말이 옳았다. 나서서 개입할 것이 아니라, 얌전히 구름 위에 머물다가 그를 필요로 하는 무녀나 역술인들의 가슴에 깃들어 힘이나 빌려줄 것을.
땅과 하늘의 차이는 사사로움에 있다. 신이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는 까닭은 그것을 익혔을 때 일으킬 파장이 세상을 흔들고도 남을 만큼 거대하기 때문이었다.
눈이 멀고 귀가 먹는다. 하늘의 존재인 기유는 섣불리 분노를 품어서도 안 되었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세에 보내 준 하늘신은 후회했다.
―살고 싶지.
뱀 괴물이 그의 마음에 대고 너그럽게 물었다.
―진정 살기를 원한다면 네가 가진 한 가지를 내어 주렴.
죽음을 목전에 둔 호원군은 살고 싶다는 것 외에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었고, 제 몸에 똬리 튼 기이한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래, 네 욕망은 잘 알았으니 이제 대가를 받아야겠구나.
사위에 김처럼 피어오른 안개 속에서 의식이 아득히 밀려났다. 한 번의 죽음을 겪고 되살아난 호원군의 정신을 움직이는 것은 그 괴물이었다.
콰앙!
갈퀴가 돋아난 팔을 마구 내리꽂았다. 몸체는 꼭 그 뱀처럼 길고 흉물스러웠다. 호원군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인식하지 못하고 서슴없이 사람을 베어 내장을 개었다.
바로 이것이 괴물이 말한 호원군의 바람이라 하였다. 자신을 사지로 내몬 인간들의 후손, 그들이 일군 땅을 도륙 내어 복수를 이루는 것. 그것이 진정 자신이 바라던 일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 그를 막아선 것이 무녀 홍운영이었다.
“네 몸속에 울고 있는 수많은 넋이 보인다.”
금색의 올가미가 사정없이 온몸을 조여 왔다.
“너는 누구이길래 인간의 몸으로 괴물을 받아들여 원치 않은 살육을 반복하는 거지?”
속을 투영하는 기이한 눈동자를 마주 보았다. 물속 깊이 가라앉은 것처럼 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호원군의 귀에 처음으로 목소리가 닿았다.
―나의 형제 금양군이 나를 죽였소.
“금양군. 하면 그대는 기유 왕자로겠구나.”
이후로 천신당에서 지내게 된 것은 홍운영의 안배일 터다.
천도를 가만 지켜볼 괴물이 아니었다. 기유는 유일하게 제 존재를 알아주고, 천도까지 돕겠다던 무녀를 제 손으로 죽이고 말았다. 이성은 악에 짓밟혀 거뭇해졌고, 손은 제멋대로 뻗어 나가 홍운영의 복부를 발라내었다.
‘내가 입 맞춰도 아무런 느낌이 없어?’
정을 나누고 싶어 아버지의 만류를 떨치고 사람이 되었으나 결과는 배신이었고, 선택은 늘 후회스러웠다. 괴물과 섞이면서 가장 먼저 감정을 내다 버렸다. 분명 그랬는데.
“…….”
홍운영의 너덜너덜한 시신이 메마른 동공에 박혀 들었다. 눈물이 모래 껍질처럼 공허한 눈을 적시고 뚝뚝 흘러내릴 때까지도 호원군은 제 상태를 몰랐다.
우우―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무너져내린다. 홍운영의 시신이 뿌옇게 젖어 들어간다. 파도치는 절벽처럼 깎이고 벼락 맞은 나무처럼 마음이 새카맣게 타들어 갔다. 가슴을 에는 후회와 슬픔.
그렇게 기유는 모든 요기를 잃고 홍운영의 봉인구에 100년간 잠들게 되었다.
잠든 그를 깨워 낸 것은 기씨 대감의 억장 무너지는 호소였다. 인신 공양 미신을 어디서 주워듣고 와서는, 제발 제 비루먹은 형편을 구제해 달라며 밤낮 배를 타고 강에 나와 읍소했다.
기유는 그 소리를 들었다. 홍운영의 일격으로 뱀과 의식이 갈라진 상태라 스스로 사고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여전히 봉인구와 함께 강물 아래에 처박힌 몸.
“아이고, 소루강 신님. 불쌍한 늙은이 하나 살리는 셈 치시고 금궤 한 짝만 올려 주십시오, 예? 제 병든 아들이라도 드려야 성에 차시겠습니까?”
세월이 흘러도 구정물처럼 고여 있는 인간의 욕망이었다. 스스로 도박판에 뛰어들어 가산을 탕진하고 식솔의 배를 굶겼으면서. 저런 것도 귀족이라고 홀로 값진 비단을 두르고 있다.
기 대감은 뱃놀이시켜 준다는 핑계로 제 막내아들을 강가로 끌고 와 밀어 버렸다. 호원군은 막내아들의 몸을 받는 대가로 대감을 거부로 만들어 주었다.
기씨 댁 막내아들 행세를 하며 고갈된 요력을 비축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리 방에 처박혀 있으니 병이 안 낫는 거 아닙니까?”
가슴팍에나 겨우 닿는 조그마한 소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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