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수도에서 처음 보는 얼굴인데. 어디서 오셨수?”
“도곡에서 건너왔습니다.”
“아아, 그 큼지막한 부두 낀 마을. 도림항이던가. 하면 수도 나으리께 시집온 것이고? 어디 사시는데?”
“오가 거리라고 아십니까?”
“오가 거리?”
되묻는 사내가 뒤통수를 긁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거기 아직도 사람이 사는 줄 몰랐지.”
“한적하긴 해도 사람 사는 거리입니다.”
“내가 그쪽으론 통 지나다닐 일이 없어서. 폐가만 잔뜩 있는 줄 알았는데 지금쯤 집이 들어섰겠어.”
상인은 먼 산을 보다가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뒤이어 덧붙여진 말은 어쩐지 급하게 화제를 돌리는 기색이었다.
“종일 맑다더니만 저 봐, 먹구름이 하늘 귀퉁이에 붙었네. 오늘은 장사 일찍 접어야겠구만.”
구무럭거리며 몰려드는 운기가 심상치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다리 통증으로 악천후를 예견했을 텐데 운혁이 준 신통방통한 약재 탓인지 근래에는 통증을 느끼는 법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그이의 차림새가 어떠했더라. 운혁도 나도 얇은 장포 차림이었다. 강변 산책은 물 건너갔고, 아쉬운 대로 선물이나 싸 들고 속히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마음먹은 차.
값을 치르려고 귀주머니를 뒤졌는데 엽전이 몽땅 사라져 있었다.
‘아까 사당패로 몰려든 인파에 치일 때 도둑맞았나.’
기껏 나온 나들이인데. 오늘 하루 풀리는 일이 없구나.
“아이구.”
톡, 토독. 한두 방울씩 빗방울이 떨어지자 장사꾼이 허겁지겁 매대를 천으로 덮었다. 느닷없는 빗줄기에 여유 부리던 행인들의 발걸음도 벼락 소리를 들은 노루처럼 바삐 뛰어다녔다.
쨍한 하늘에 암운이 드리워지고 물 묻은 땅은 질퍽해졌다. 고대했던 하루를 엉망으로 망쳐 버려 속이 상했으나 별 수 있나.
고심해 고른 술띠가 손끝으로 빠져나갔다. 찐득한 습기를 품은 바람을 등지고 나는 진창이 된 거리를 달렸다. 더러운 흙물이 마구잡이로 튀며 치맛단을 더럽혔다.
* * *
쏴아아―
기울어진 삿갓을 타고 빗방울이 쉴 새 없이 낙하했다. 어둑한 밤길을 헤치고 나타난 사내의 발아래, 불어난 실개천이 남실대고 있었다.
서쪽 변두리의 작은 외촌.
이곳까지 오는 동안 여러 마을을 전전하며 같은 일을 반복했던 진원은 이번에도 망설임 없이 은색 병을 꺼내 기울었다. 제법 세가 큰 유지가 다스리는 고을, 무역이 성행한 마을, 돌고 돌아 변방의 촌읍까지.
병에 담긴 액체를 뿌리자 실개천에 시커먼 연기가 자오록이 피어올랐다. 마을 사람들의 식수로 쓰이는 개천이었다. 탁류가 된 물살을 무심히 훑던 진원은 이번에도 미련 없이 등을 돌리고 왔던 길을 따라 마을을 벗어났다.
그가 사라진 뒤 시궁창처럼 혼탁해진 강물 위로 거뭇한 안개가 피어올랐다. 몸을 부풀리며 꿈틀거리던 안개는 이내 질척한 그림자를 남기며 인가로 스며들었다.
“이제 오십니까?”
사왕의 명령을 수행하고 세 이레 만에 무녀원에 당도했다. 한달음에 달려 나온 종은 진원의 젖은 피풍의를 수습한 뒤 홍사혜로부터 온 서신을 전달했다. 안부 한마디 없이, 상록으로 가겠으니 병력이나 제때 보태라는 내용이었다.
‘서신을 보낸 지가 언제인데 이제야.’
어여쁜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 불초 제자 같으니라고.
이맛살을 찌푸리면서도 진원은 사혜의 요구 사항을 착실히 준비하도록 명했다.
그 뒤에 습관적으로 사혜의 홀어머니가 거하는 별당으로 향했다. 매일 한 번이라도 좋으니 어미가 잘 지내는지 확인해 달라던 부탁을 들어주는 것뿐이었다.
차라리 정신을 놓아 망정이지, 그전에는 딸을 내놓으라며 난동을 부리다가 급기야 제 팔뚝을 그어 버릴 뻔한 걸 간신히 말렸다. 밖으로 주야장천 나도는 사혜야 어미의 처지를 모르겠지마는 알려 줘 봤자 상처만 남을 게 뻔해 줄곧 함구해 왔다.
여인은 쪽마루에 쭈그리고 앉아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새 10년은 더 늙은 것 같은 주름진 얼굴은 서러운 세월의 자국이었다.
“진원 님, 의원이 다녀가셨는데 차도가 없더랍니다.”
사혜의 모친 곁에 상주하던 어린 종 하나가 조심스레 고개를 저었다.
“역시 그러한가.”
“앞으로도 정신을 되찾기 힘드실 거라고…….”
어차피 기대는 버렸다. 딸에게 대못 박고 정신을 놓아 버린 여인이었다.
“딸에게 그리 박정하였다면서. 뒤늦게 목메어 불러 보았자.”
게다가 베개를 제 딸로 착각하고 살뜰히 쓰다듬는 꼴이라니.
“쯧.”
비를 뚫고 기이한 빛을 두른 눈동자가 스르륵 굴러 맞닿았다. 팔짱을 끼고 기둥에 기대선 진원을 알아본 듯 노모의 인상이 대번에 험악해졌다.
“내 아들을 잡아먹은 것도 모자라 딸까지 데려가, 이 더러운 기생충 새끼들.”
또 시작인가.
“네 놈들은 무간지옥에서 영겁을 타 죽어야 해!”
흰 눈을 치뜨고 외치던 비명이 히득대는 웃음으로 갈라졌다. 형형한 예기를 품은 눈동자는 오차 없이 그의 손에 들린 약병에 못 박혀 있었다.
소싯적 예사 기인이 아니었다더니.
진원은 손에 쥔 병을 부러뜨릴 듯 엎어 쥐었다. 조롱을 뱉는 노모의 목소리는 잘 갈린 작두의 날처럼 살의가 가득했다.
“네 놈의 죄가 탑처럼 쌓여 가는구나.”
“이 무엄한……!”
호통치려 드는 종을 진원이 문밖으로 물렀다.
“무슨 뜻이지?”
“없어져야 할 것들은 우리가 아니라 네 놈처럼 더러운 뒷일이나 해 대며 나라를 좀먹는 기생충이 아니던가? 진정 박멸해야 할 해충들이 누군데!”
꼬챙이 같은 손가락이 진원의 소매에 가려진 도자기 병을 날카롭게 찔렀다.
“진원 님. 저 여자가 지금 무어라고 지껄이는 겁니까?”
“나가 있어라.”
진원은 문가를 서성이던 종을 거칠게 밀치고 성큼 횡행활보하였다. 스릉. 순식간에 뽑힌 장도의 날 서린 단면이 노모의 목 옆으로 바짝 들이밀렸다.
“광인이라고 눈감아 주는 것도 거기까지다.”
하나 정신이 온전치 못한 이에게 협박이 통할 리가. 제 목에 칼이 들어오던, 설령 지금 이 자리에서 목이 반토막으로 썰린다 한들 삶의 지푸라기마저 내던져 버린 저 눈은 수그러지지 않을 것이다.
진원의 죄를 꿰뚫어 본 신의 눈은 사왕의 명령으로 십수 년간 행해 온 악행을 고발하고 있었다. 방방을 돌며 식수에 독을 뿌리고, 요귀 사체에서 얻어 낸 영핵과 사금을 땅에 심어 두고. 너는 천벌이 두렵지도 않느냐, 그리 묻고 있었다.
드득, 잇새에 힘이 실렸다.
“딸의 안위가 걱정되지도 않은 모양이야.”
딸 운운하자마자 핏발 선 눈이 기세를 잃었다. 달려들 것처럼 덤비던 노모의 눈매가 축 처지고, 주름진 입술은 노글노글하게 익으며 괴괴한 탄성을 뱉었다.
그 직후 노모의 손이 앞으로 뻗어졌다.
“무슨……!”
맨손으로 파랗게 갈린 칼날을 잡는 행위에 놀란 진원이 급히 날을 떼 냈으나 이미 노모의 손은 피범벅이었다.
“그래, 너는 계속 그리 살 생각인가 보구나. 하면 그리하렴. 너와 사왕의 죄는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백성이 알 테니 훗날 응당한 죗값을 치를 터. 제 잇속 채우기 위해 죄 없는 이를 해하고 생을 난도질하고. 언제까지 그리 살아 보렴. 내 딸은 어디에 있지? 그 애도 네가 죽였니, 응?”
진원은 처음부터 홍사혜의 어머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유 없이 꺼려 할까. 지리한 모녀 관계를 파악하고부터였다. 말수가 적은 사혜이지만 가끔 떠밀 듯이 제 어머니 얘기를 툭툭 던지곤 하였다.
‘어머니는 저를 미워하셨습니다. 저 때문에 오라버니를 구하지 못하였다고 여기셔서.’
‘어김없이 어머니가 저를 해치려 드는 환몽이 보입니다. 무슨 수로 맨정신으로 버티겠습니까? 나는 거기에서 골백번은 독에 절여지고 날카로운 칼끝에 찔렸을 겁니다.’
‘미워도 별수 있겠습니까? 원망스러워도 기댈 사람은 어머니 한 분인데.’
“그리 소중한 자식이었으면, 처음부터 다정히 안아 주고 보듬어 주지 그랬나.”
왜 그 애 마음이 궁근 후에야 뒤늦게 울며불며 후회하고 난리를 치는지.
“왜 이제 와서.”
스스로도 이해 불가능한 사고의 흐름이지만 베개 따위를 딸로 착각하고 훌쩍이는 노모를 보노라면 오래전 그를 버린 제 몹쓸 어미가 떠올랐다.
다섯 살 때 시전을 구경하다 어머니 손을 놓쳤다. 정신없이 찾아 헤매도 찾는 이는 없고, 그러다가 웬 사내들에게 발각되어 죽기 직전까지 맞다가 끌려온 곳이 무녀원이었다.
그것은 너무나도 바랜 기억이라 설사 지금 친모가 나타난들 진원은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어린 진원은 밤낮 어미를 기다렸으나 하늘마저 등진 운명인지라. 어미는 찾아오는 법이 없었고, 하여 그는 사왕의 말대로 자신이 버려졌다고 의심 없이 믿게 되었다.
진원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칼을 거두어들였다. 애초에 조금이라도 상처 낼 마음이 없었다. 홍사혜가 생의 뿌리처럼 매달린 사람을 어찌 해칠 수 있나. 발로 묻어 둔 기억만 넝쿨째 드러났으니 결국 제 마음만 긁어 부스럼이었다.
기세가 떠나가고 울적히 가라앉은 노모의 얼굴은 도로 슬픔에 젖어 들었다. 비껴간 시선은 뿌옇게 물안개가 찬 마당을 응시하고 있었다.
추적추적, 빗방울 튀는 소리가 어두컴컴한 공간을 조용히 두드렸다.
진원은 사혜의 어머니를 볼 때마다 불쑥 떠오르는 사념의 원인을 깨달았다. 그를 내다 버린 어미가 어느 날 기적처럼 문간 앞에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그렇다면 아마 저런 눈으로 자신을 보지 않을까.
결국은 여태껏 손에서 놓지 못했던 헛된 미련이었다.
“내 딸은 죽었어.”
“…….”
“나도 알고 있네. 한데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지.”
늘 제 곁에 끼고 사는 베개를 딸로 착각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가 보다.
총기 잃은 눈은 여전했다. 매해 노모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다녀갔던 의원은 앞으로도 회복될 가망이 없다고 말했고, 늘 같은 결과였으니 지금이라고 상태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 마음이 그렇네.”
여인의 눈이 사멸하는 별처럼 어둡게 침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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