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이후로, 모든 일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 새에 날 향한 숙덕거림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열되었다. 저러다 요귀가 풀려나면 어쩌냐며 불신하는 대신들을 비롯해, 퇴마의 공을 가로채려는 병부의 승냥이 떼, 매한가지로 내 업적을 탐내는 동료 무녀들 사이로 무성한 뒷말이 오가고 있었다.
“무녀 계집이 귀신과 노닥거리느라 바빠 본분을 잊은 게 아닐까 염려스럽습니다, 전하.”
“단단히 홀린 것은 아닌지.”
“쯧,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오?”
“세상사 모르는 일 아닙니까? 지금이라면 늦되지 않소. 일이 커지기 전에 태만한 계집을 내쫓고 천신당의 기운에 눌려 쪽을 못 쓰는 요귀를 봉해야 옳소!”
홍운영을 음모하는 세력이 움직였다. 게다가 내 임신 사실을 안 일부 대신들은 요귀의 새끼를 수태한 게 아니냐는 말도 안 되는 오명을 뒤집어씌우려 들었다.
“사별한 남편의 아이라는데 참일지 거짓일지 어찌 판별한단 말입니까? 무턱대고 낳았다가 요귀 새끼면 뒷감당은 어찌하고!”
나는 항변했으나, 몰아붙이려고 혈안이 된 이들에겐 들리지 않을 호소였다.
49재를 마무리 짓기도 전이었다. 천도재를 세 밤 앞두고 오랏줄을 받은 나는 능지처참당할 죄인처럼 왕 앞에 끌려갔다. 그러곤 네 할 일은 끝났다며, 아이를 해산하기 전까지 사택에 가두고 위리안치시켰다.
“그 요귀는 제 곁에서 떨어지면 아니 됩니다!”
진심으로 걱정되어 한 말을 그들은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로 치부했다.
이제 기유는 어찌 되는 것이지. 기다려 달라 말도 못 전해 주고 끌려와 버렸는데 이 오해를 어찌 풀어야 할까. 다 끝장나 버렸다. 나는 주저앉아 울고만 싶었다.
서럽게 벽을 치던 나날이 쌓여 반년이 무상히 흘렀다. 기유의 소식을 알고 싶어 병사를 붙잡고 캐물어도 모르쇠로 일관하니 바깥의 세태는 내게 먼 일이 되어 버렸다.
아이를 낳고서도 여전히 유폐된 집을 떠나지 못했다. 아비도 물려받을 성도 없는 아이가 첫 돌을 넘길 무렵, 내 성인 풍림 홍씨를 주고 여혜라고 불렀다.
그즈음, 왕도에서 보낸 관원이 급하게 날 찾았다. 일이 터져 해결을 못 보고 기어코 내게 달려온 것이다.
도읍인 상록에 죽음의 냄새가 자욱했다. 사람의 피로 흠뻑 젖은 비늘 달린 몸통이 하늘까지 솟구쳐 있었고, 구덩이가 움푹 파인 땅은 멀쩡한 평지가 없었다. 그 구덩이마다 기유의 발톱에 뚫린 시신이 한 무더기씩 쌓여 있었다.
저것이 내가 버린 기유였다.
“기유야.”
저어기 목 달아난 송장은 왕의 부모였고, 공주의 시신은 조각보처럼 왕궁 처마에 널려 있었다.
음산한 기운을 풍기며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요귀에게 죽을 각오로 다가갔다. 기유를 처음 만난 전쟁터에서도 이렇게 사느니 죽자 싶었는데 이제는 다른 의미로 죽고 싶었다.
“기유야.”
내 부름에 수척해진 괴물이 돌아섰다. 이지가 붙어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죄를 알면서 살육을 저지른 행동에 두 번 놀랐으나 따질 겨를은 없었다.
“너, 제정신이구나.”
희망을 보고 손을 뻗으니, 까마득한 공중에서 날 내려다보던 요귀가 허리를 수그려 내 손에 뺨을 가져다 댔다.
“내가 미안하다. 미안해, 기유야. 천도시켜 주겠다 해 놓고선 말없이 사라져서. 약속을 한 번도 잊은 적 없어.”
그는 다 이해한다는 듯이 내 손바닥에 슬몃 뺨을 비볐다. 창칼에 뚫리고 신력에 호되게 맞은 두툼한 몸에서는 울컥울컥 핏물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가슴을 에는 상처였다.
나는 당장 제를 올리고자 제단으로 달려 나갔다. 그가 정신을 차렸으니 수틀린 일도 바로잡을 수 있으리라 믿던 때에,
푸욱.
방심한 것이었다.
내 배를 뚫고 앞으로 빠져나온 기다란 손톱은 끈적한 피로 물들어 있었다. 허리를 수그리고 배를 붙잡았다. 살을 뚫고 나온 기유의 손을 붙잡는 순간 입에서 한 움큼 핏덩어리가 쏟아졌다.
상황을 깨달을 법한데 한참이 지나서도 머릿속은 백지였다. 요귀의 손끝이 헤집은 구멍 밖으로 눈살 찌푸려지게 많은 피와 신력이 빠져나가는데도 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헐떡였다.
그러다 뒤늦게 도려내는 통증이 내장을 갈랐다. 발끝부터 타들어 가는 감각에 속수무책으로 집어삼켜졌다. 정신이 똑바로 박힌 그가 행한 짓이다. 왜 내게 이런 짓을 하냐고 따져 묻기에는 흘린 피가 지나치게 많았다.
괴로웠구나. 거짓으로 속이려 들면서까지 나를 원망했구나.
뺨에 애처롭게 문질러진 손등을 떠올리니 어처구니없게도 나를 죽인 괴물에 대한 원망이 한풀 꺾였다.
“그래, 하면 함께 가자.”
팔뚝을 적신 핏물이 딱딱하게 굳어 둥근 결정체로 변해 내 손아귀로 굴러떨어졌다.
웅웅―
바람 이는 소리에 요귀는 몸을 떨었다.
“언젠가 우리의 죄도 씻겨지겠지.”
쏟아지는 왕의 노여운 시선에 책망이 그득했다. 모든 불운을 내 탓으로 돌렸고,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적어도 거리를 두어 제의에 매진하는 모습만을 보였다면 내가 기유와 유리될 이유도 없었을 테니까.
신력을 두른 구슬은 급급히 혼을 태운 뒤 요귀의 팔까지 먹어 치웠다. 타들어 가는 괴물은 아파하면서도 몸에 박힌 팔을 뽑지 못하고 울었다.
“뱃가죽을 뚫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야.”
배신. 영불에 살라 먹힌 홍운영이 그 사실에 매몰되어 괴로워할 동안 나는 요귀의 일그러진 눈을 보았다.
미련한 여자야, 고개를 들어 슬퍼하는 괴물의 눈동자를 봐라.
말해 주고 싶었으나 홍운영의 몸은 찌꺼기 같은 감정에 검게 덮여 듣지도 보지도 못하였다. 외려 내 가슴 밑바닥에 파고들어 저와 같은 분노를 느끼라며 노도 같은 힘으로 뒤흔들었다.
“기억해, 끝까지 기억해 내. 이 감정을 죽어서도 영원히 잊지 마.”
원형의 세계가 까맣게 허물어진다. 한이 된 추억도 타다 남은 재처럼 희뿌옇게 바스러져 새벽하늘 아래 흩날렸다.
* * *
먹먹한 꿈이었다. 실제처럼 생생하게 겪고 느꼈는데 막상 눈을 뜨니 기억나는 것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기억해, 끝까지 기억해 내. 이 감정을 죽어서도 영원히 잊지 마.’
나는 수도 외곽의 더러운 길바닥이 아닌 부드러운 보료 위에서 눈을 떴다. 얼마나 오래 정신을 잃은 건지, 흐린 사각등이 어둠을 비추고 있었다.
요귀 떼와 고군분투하다 홍운영의 방해로 정신을 놓은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그리고 아주 긴 꿈을 꾸었는데 꿈의 내용은 무척 흐려서 또렷하지 않았다.
다만 죽어서 요귀가 된 사람들이 이랬을까 싶을 정도로 참독한 감정만 가슴 속에 허망히 맴돌았다. 마치 불가항력처럼 누군가를 애틋하게 여기고, 또 연모했었는데…….
‘……누구였지?’
몸도 불편한 마당에 기억력까지 감퇴 중인가. 사왕의 무녀도 다 죽었다. 이게 다 수련을 게을리한 결과였다.
그래도 죽지 않고 멀쩡히 살아 있어 다행이다. 누가 날 발견하여 가택까지 손수 옮겨 주었는지 의문이 들던 차였다.
“사혜야…….”
“도령?”
가여운 흐느낌이 들렸다. 하염없이 양손을 쓸어 만지는 사내는 내가 기절한 내내 그 자리에서 소리 죽여 눈물을 흘린 기색이었다.
“저는 괜찮아요.”
이리 걱정할 줄 알았다. 달래 주려고 손을 뻗으려는 찰나, 마음 한구석이 칼에 베인 듯 불쑥 따끔거렸다. 웃는 입꼬리는 허물어지고, 뺨에 닿으려던 손은 줄 끊어진 연처럼 허공을 휘젓다가 내려앉았다.
참 이상한 기분이었다. 운혁을 보는 순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꿈속의 귀신 사내가 떠올랐으니까.
그럴 리 없지 않은가. 설령 그렇다 한들 믿고 싶지 않아서 거북함이 올라올 때마다 꿋꿋이 그의 눈, 코, 입을 더듬었다.
“왜 거길 갔어?”
그는 내 손등에 입을 맞추듯이 하고 꼭 꿈에서 본 그 요귀처럼 뺨을 엉겨 왔다.
“왜 더러운 바닥에 정신을 잃고 혼자 쓰러져 있어.”
“아, 그게.”
설명하려는 혀가 딱딱하게 말라 버렸다. 가슴에 묵직하게 얹힌 부정의 이유를 모르겠다. 꼭 저 이가 나의 배에 손을 넣고 무자비하게 헤칠 요귀처럼 보이는데, 아직도 꿈의 여운에 취해 그러려니 하고 불안을 눌렀다.
어쨌든, 이대로 계속 닿아 있다간 죄 없는 사내의 뺨을 할퀼 것 같았다. 슬며시 손을 물리자, 그는 입술을 깨물고 나를 바라보았다.
“어디 다친 곳은.”
“저는 괜찮아요.”
정말 괜찮은 것인지 무언지. 양가의 감정이 섞여 파도를 몰고 왔다. 꼭 누가 나를 떠밀어 벼랑 끝에 얹혀 둔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숱하게 의지 없이 살아왔는데 이제는 속 알맹이까지 입맛대로 좌지우지하려 든다. 배려라곤 쥐뿔도 없는 홍운영 그 여자라면 가능하겠지. 내게 이상한 감정을 심어 두고, 연모하는 사람을 덧안경 쓰고 바라보게 하고.
지금도 그녀는 내게 기운혁을 멀리하라고 간교하게 속살거리고 있었다. 기운혁과 꿈속의 사내는 다른데 내가 왜 그 여자의 말을 따라야 하나 싶어서 반발하는 심정으로 그의 옷소매를 죽 잡아당겼다.
“안아 주세요, 도령.”
그 여자는 우리가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뿌리가 같으니 어쩌다 태어난 내가 홍운영과 놀랍도록 닮은 종자일 수 있겠지. 전생이든 후생이든 돌고 도는 생에서 한 번쯤 맞닿을 수 있겠고. 그러니 조상신의 탈을 쓰고 나타나 나를 겁박하고, 몸을 차지하려 들었을 터다.
팔을 뻗자 그가 나를 부둥켜안았다. 나는 그의 매끄러운 뺨으로 입술을 옮겼고, 그는 열 오른 입술을 마주해 밀어붙이며 화답해 주었다. 서로가 서로의 올무가 되어 함께 이불 아래로 굴러갔다.
“이번엔 아, 피하지 마셔요.”
“…….”
“매번 결정적인 순간에 망설이지 않으셨습니까.”
“안 그랬어…….”
“그랬어요.”
등줄기를 어루만지던 커다란 손이 옷자락 사이를 누비듯이 말려들어 갔다. 거추장스럽게 끼어 있는 천이 하나씩 발밑으로 떨어질수록 두 갈래 끈으로 쌓여 있던 마음도 한 올씩 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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