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또 무엇에 심기가 틀어지신 건지.’
기운혁은 이틀 동안 나를 방치해 두고 방 안에 틀어박혔다. 혹 어디가 아픈 건 아닐까 염려스러워 찾아갔는데 막상 문을 열고 나온 것은 푹 자다 깬 얼굴이었다.
그리고 어째 그날 이후로 운혁은 틈만 나면 내 어깨에 앉아 있는 나비를 처치하고 싶어 안달이었다.
“그것 좀 떨쳐 낼 수 없어?”
“곧 도령한테도 정을 붙일 겁니다. 너무 미워하지 마셔요.”
“과연.”
아무리 그래도 어찌 신을 떨쳐 내란 소리를 다 하신담. 그것만큼은 못 한다고 일관하자 그는 태세를 전환했다.
“그럼 저것이 낄 틈 없도록 바쁘게 시간을 보내자.”
중얼거리는 사내의 옆구리에는 옥 장기판이 끼어 있었다. 그는 미련 없이 나비에게 관심을 거두고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대로 계단을 올라간 나는 푸른 바닥을 깐 정자에 앉게 되었다.
별수 없이 장기 내기를 하게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이리 한가로이 유희나 즐길 시간이 아니었으나 운혁은 부쩍 제 일을 팽개치고 내 옆에 붙어 살았다.
집요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시선이 항시 내 얼굴에 앉아 있었다. 하나 가끔씩은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착각이겠지.
통으로 내게 하루를 빼앗긴 그는 밤새 밀린 잡무를 붙잡고 있다가 새벽 늦게 이불을 덮었다. 그런데도 그다음 날마저 꼭 부인 찾는 새신랑처럼 다가와 이것저것을 함께 하자고 청한다.
늘 함께 있는데도 부족한 것처럼 초조한 눈길을 보내고, 대중없이 날 눕혀 놓은 다음 끌어안고, 아주 제 마음대로였다.
“별 볼 일 없는 스승 아래에서 배우니 발전이 없지.”
오늘은 풀밭에서 활을 쏘자고 해서 따라갔는데 다짜고짜 시비를 걸어왔다. 나는 손끝을 떨며 활시위를 겨누는데, 기운혁은 품위를 내던지고 바닥에 걸터앉아 내가 하는 짓을 여상히 거들떠보았다.
그가 꼬집는 스승이란 어릴 적 내게 활을 가르쳐 준 윤후였다.
“그게 언제 적 일인데…….”
그러나 뒤끝이 긴 도령께서는 방해 공작을 그칠 줄 몰랐다. 이번에는 직접 다가와 내 허리를 안듯이 휘어잡으며 바르게 교정해 주는 중이라고 으름장이다.
딴에는 진심이었겠으나 숨도 참아 가면서 활시위만 겨눈 내게는 그가 닿는 자리마다 의식하게 되니 고역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그때는 힘이 좋았는데. 담 너머로 새총을 내던졌지, 아마?”
“손에 익지 않아서 그런 것이거든요.”
“한데 지금은 왜 이리 시위를 못 당겨.”
보드라운 손바닥이 기어코 암깍지를 낀 내 엄지를 문질렀다. 머리통 뒤로 닿는 가슴팍이 반석을 채운 것처럼 딱딱하다.
그는 어정쩡하게 나를 가둔 자세로 어깨를 틀더니, 나와 손을 겹치고 쭈욱 활시위를 당겼다.
“마찬가지로 활 쥐는 법이 판설어 그럽니다.”
“가르쳐 줄까?”
내가 고군분투하며 늘여 놨던 것의 배로 시원스레 활줄이 당겨지더니 핑 소리와 함께 떠났다. 관중이었다.
무녀원에서 쓸 만한 인재로 자리매김하려면 무기 두엇은 기본으로 다루어야 했는데, 나는 유난히 국궁에 소질이 없었다. 활을 잡아 본 지 오래되었다며 둘러댔으나 3년 동안 각별히 수련한 것 역시 국궁이거늘.
이쯤 하면 곡도처럼 손안에서 노닐법한데, 이놈의 활은 영 손에 맞질 않았다.
요는, 내게 누구를 스승으로 붙여 준들 소용없을 짓이란 얘기였다. 진원조차 뭐 이리 발전 없는 종자가 다 있느냔 표정으로 눈알을 희뜩댈 정도이니 변명도 무색하다.
“활도 쏘실 줄 아네요.”
“날 뭘로 보는 거지.”
“도령께서 절 가르치려고 애쓰셔도 무용할걸요. 하던 검무나 집중해야지 괜히 창고에서 활을 발견하는 바람에 시간 낭비만…….”
말하다가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분명 등 뒤로 어설프게 붙은 몸이었는데 언제부터인지 바람 한 점 들어갈 틈이 느껴지질 않았다.
목 뒤에서 옅게 색색 오가는 숨소리가 들렸다. 기운혁은 어느덧 내게 활을 맡겨 두고, 저는 내 허리를 꼬옥 껴안고 아주 좋은 듯이 내 목에 웃음을 뭉개는 중이었다.
“도령.”
꽃내음 실은 바람이 귀밑머리를 흔들며 지나갔다. 예고도 낌새도 없는 수줍은 포옹이었다.
잠시 뒤 돌아본 내가 지긋하게 쳐다보니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내 팔뚝을 만지작거렸다.
“싫어?”
“무얼 말입니까?”
“허락 없이 안아서.”
“싫지 않아요.”
“한데 꼭 몹쓸 것을 보는 듯한 시선인걸.”
“대낮에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럽니까? 여기가 도령 댁 내실도 아닌데, 탁 트인 들판에서 비비적대고 있는 게 남들 보기 무얼 좋다고…….”
말하고 아차 싶었다. 이 사람은 내가 좋아서 안은 것뿐인데, 혹 상처를 주었나 싶었다.
어릴 적의 기억 탓에 나는 여전히 주변인의 시선에 민감했다. 구설수에 휘말리는 것만큼 끔찍한 일은 없었고, 호기심 섞인 따가운 시선만큼 치 떨리는 게 없었다. 다 자란 지금이 되어서도 좀먹는 악몽은 여전했다.
눈길을 떨군 사내를 보자니 미안해졌다. 못 이기는 척 돌아서서 그의 등에 팔을 두르고 다정히 깍지를 꼈다. 얽은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시선을 맞대려는 차.
“도령?”
이 이가 어딜 보고 있나. 그는 허공에 날카로운 시선을 둔 채였다. 굳은 어깨를 잡고 흔드니 정신을 차리고 어색하게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응?”
“어딜 봅니까? 저어기 무어 흥 나는 거라도 있는지요.”
“……아니. 이만 돌아갈까.”
나는 그만 맥이 풀리고 말았다. 역시 아까 전 거부를 받고 토라진 모양이었다. 딱히 그렇게 보이진 않으나 열 길 물속보다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 사람 마음 아닌가.
미련을 남기고 허리에서 떨어져 나간 손을 기억한다. 아무래도 그는 겉보기와 달리 많이 섭섭한 모양이었다. 햇살 좋고 바람 좋은 들판에서 보낼 시간도 아깝다는 듯이 황급히 집으로 이끄는 걸 보면.
“아.”
그때 운혁의 허리가 푹 수그러졌다. 기쁨이 아닌 고통으로 말미암은 신음이었다. 도령, 당황해 부르니 그는 할퀴듯이 제 왼 어깻죽지를 짚고 물러났다.
설마 그때 불 요귀한테 당한 상처가 아물지 않고 덧이 났나. 요귀가 소멸하면 스며든 독액도 자연히 사라지나 간혹 죽어서까지 제 흔적을 남기는 질긴 독종들이 존재했다. 혹 그것 때문에 고통받는 것일까.
“괜찮아.”
찡그린 미간이고 땀방울이고 악몽 꾼 밤 이후로 처음 보는 것들이라 더럭 겁이 났다.
운혁은 한참 숨을 고르다가 스스로 안정을 되찾았다. 고통으로 혈색이 빠져나가 희게 바랜 낯. 그 다 죽어가는 얼굴로 이만 돌아가자며 태연하게 손을 내미는데, 맞잡은 피부의 온기가 없다시피 해 불안함으로 가슴이 요동쳤다.
“무슨 일인지 끝까지 설명 안 해 주실 겁니까?”
“네가 알 필요 없는 것이야.”
“그럼 저는 도령이 식은땀 범벅으로 깨어나던, 무얼 하던 주제넘게 묻지 말고 손톱만 뜯으며 먼저 입 열어 주시길 기다려야겠네요.”
“주제넘다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잘난 입술이 꾹 다물렸다. 그가 고개를 흔들며 내 손을 붙들었다.
“저주야.”
“저주?”
“어릴 적 지병도 모두 내 업보라 이리 고통받는 것이니 너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는 뭐에 쓰인 사람처럼 중얼거리더니, 얽은 손에 아플 만큼 힘을 주었다. 마치 고통을 참아내는 듯했다. 나는 뼈마디가 패일 정도로 옹다물린 손을 잡아 주는 것밖에 도움이 못 되었다.
그날, 나를 방에 데려다주고 사라진 기운혁은 밤이 까맣게 이울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꼭 그 형체 없는 어둠에 녹아 사라져 버린 것처럼.
* * *
우득, 우드득.
사혜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 이르자마자 어깻죽지부터 날카로운 비늘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운혁은 숨을 멈추고 어둑한 창고 속에서 몸을 웅크렸다. 팔을 붙잡고 익숙한 통증이 죽기를 한참 기다렸다. 그러고 있다가 어깨를 돌려 확인해 보니 역시 검푸른 비늘이 날개뼈부터 팔등까지 징그럽게 돋아난 게 보였다.
벌써 세 번째이던가. 정확히 짚자면 마음에서 욕망이 한 톨 자라날 때마다 네 처지를 알라는 듯이 요귀의 껍질이 피부를 뚫고 드러났다.
증상이 나타나면 몇 시진 내로 이성을 잃기에 사혜가 있는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다른 요귀들을 도축함으로써 살의를 풀어야 했다. 사혜가 지금껏 요귀 퇴치라고 믿던 그의 행보는 실상 이런 것이었다.
운혁은 싸늘한 새벽바람을 등진 채 밖으로 나아갔다.
쾅!
굉음과 함께 뒷문을 빠져나가는 순간, 시야로 붉은 실타래가 핏물처럼 흘러내렸다. 홍사혜를 대신하여 나타난 홍운영이 입술을 죽 늘리며 날카롭게 비웃는다.
“나를 갈기갈기 찢는 것도 모자라 그 아이까지 죽이려 드는구나. 비열하고 악독한 요귀야. 그 애도 네 번드르르한 낯짝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니 참으로 가엾고 딱하다. 네 놈이 후안무치한 금수인지도 모르고…….”
환청이다. 죽어서도 그를 잡고 흔드는 망령.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눈앞에서 보이지 말 것을, 그가 홍사혜의 마음 한 자락 가지려 드니 귀신같이 알아채고 나타나서는 저주란 저주는 다 퍼부었다.
운혁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저미는 두통에 이를 물어도 환청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더욱 그를 괴롭게 만들 뿐이었다.
* * *
밤 동안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까라졌는지, 해 뜨자마자 기운혁은 말도 없이 종적을 감췄다.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 당황은 금세 가라앉았다. 시종들도 매한가지로 주인이 있든 없든 전각을 바지런히 쓸고 닦으며 제 할 일에 매진이다.
화분을 살뜰히 옮기고 있던 종비 하나가 화사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조반상 내올까요, 아씨?”
네 주인은 어디 갔느냐고 캐묻는 것은 무용했다. 저들도 뜸부기처럼 고개를 갸웃거리곤 죄송하다, 모른다는 웅얼댈 게 뻔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