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아침을 맞이하기 무섭게 옷을 갖춰 입었다. 맹랑하게 대낮에 도둑질을 했던 그 꼬맹이. 그 아이를 시켜 알아볼 것이 있었다.
‘이쯤이었는데.’
미로처럼 얽힌 뒷골목에서 몸을 숨기고 기다렸다. 그 꼬맹이는 또 뭘 훔쳤는지 배부른 표정으로 휘파람을 불며 지나가다가 내게 덜미를 잡혔다.
“아악, 그때 그 괴물!”
“누가 괴물이라는 거냐.”
“왜 또 날 찾아온 겁니까?”
“너, 도곡 출신의 임영이라는 자를 아나?”
“그 할아버지는 왜요?”
역시 이 애라면 모르는 게 없을 줄 알았다.
“아는 걸 다 말해 봐.”
“그럼 저 놓아주실 거예요? 관아에 신고 안 하실 거죠?”
“내놓은 정보가 만족스럽다면 눈감아 주지.”
아이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저도 자세한 건 모릅니다. 오래전에 산으로 들어가셨단 거 말고는요.”
“오래전에 입산수도를 하였다고?”
“10년도 더 되었을걸요.”
10년. 기운혁이 그를 찾아가 가르침을 사사한 것이 2년 전. 그렇다면 도령이 내게 허언을 하였나. 혹은 이 아이가 잘못 꿰고 있는 것일까.
파헤칠수록 돌부리가 튀어나왔다. 그 돌에 채여 넘어질 때마다 멍 자국이 늘어갔다. 나는 기운혁에 대해서 알아야 할 필요를 느꼈다. 더불어 그 정체 모를 환시에 대해서도.
후자는 당장 파헤칠 길이 없으니 임영을 붙잡고 내가 모르는 운혁에 대해 토막만 한 정보라도 얻어야 했다. 물어본들 그는 제 얘기를 죽어도 뱉질 않았으니까.
결국은 또 뒷조사였다.
“어느 산인지 아느냐.”
“10년 전에 숨어 버린 늙은이의 행방을 어찌 압니까? 그때에 나는 다섯 살이었습니다.”
녀석은 내가 놓아주자마자 꽁지에 불을 붙이고 달음박질쳤다.
해가 질 때까지 임영에 대해 알아보았으나 도곡의 유지란 자도 임영에 대해 그 꼬마 아이만큼 아는 게 없었다. 그래도 영 헛다리품은 아닌 게, 근 2~3년 전 임영으로 추정되는 자가 옷을 꽁꽁 둘러매고 돌아다니는 꼴을 보았다던 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실인지 아닌지 판별할 계제는 없고, 내게 정보 값을 받아먹기 위해 없는 일을 꾸며 내었을 수도 있다만.
용수보로 돌아가는 길에 진원에게 임영의 생사 여부를 조사해 달라는 서신을 부쳤다. 더불어 정신이 온전치 못한 어머니의 안부를 물었다.
사왕부에 끌려가 수련을 받는 동안, 거기에 1년을 더한 지금까지도 어머니와 왕래할 수 없었다. 100년의 봉인을 부수고 깨어난 요귀를 멸하는 것보다, 내가 죽는 것이 더 빠를 테니 어쩌면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르겠다.
구국의 영웅이 되고자 하는 사왕이 진정 원하는 것은 왕위였다. 오랫동안 검은 속내를 숨기고 현왕의 경계를 피하기 위해 여자를 끼고 사는 척, 세속에 먼눈인 척, 사내까지 위장시켜 곁에 두고 남모르게 뒷배를 키워 왔다.
요귀를 잡은 공로까지 앞세우면 왕위 찬탈에도 그럴싸한 명분이 생길 터. 나는 명백한 도구였다.
“아침 댓바람부터 어딜 나돌다 이제 온 거야! 퇴마사님께서 널 찾으시잖아!”
용수보 입구를 넘자마자 억센 손에 멱살이 잡혔다.
“네가 사라졌다고 하니 우리 모두 죽을 뻔했다고, 알아?”
“무슨 소립니까? 이 손 치우고 얘기하십시오.”
눈알을 부라리는 호헌을 거칠게 쳐 냈다.
“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구워삶으랬지 누가 미치게 만들랬어?”
호헌은 나를 거칠게 잡아끌고 도령의 방 안으로 처넣었다. 가는 동안 옹기종기 모인 일꾼들이 수런대며 나를 흘끔거리고 있었다.
“네가 해결해.”
난장판이 된 기운혁의 방을 목도하고 깨달았다. 이 사태의 주범은 방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다.
“어딜 갔었어?”
다가가는 걸음 소리를 듣고 사내가 시든 얼굴을 들었다. 하룻밤 사이 더욱 초췌해져 눈가가 거뭇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내가…… 잠들 때 곁에 있어 달라고, 부탁했잖아.”
그에게 닿기 전에 그가 먼저 다가왔다. 나를 어디 못 가게 제 맞은편에 끌어다 앉히는 눈가가 발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하, 이맘때에 꼭 악몽을 꾸는데.”
나는 으스러져라 내 손목을 움켜쥔 운혁을 달랬다. 늘 하던 대로 등을 어루만져 주었다.
“내가 죽인 것들이 너무 많아서.”
“도령의 꿈속에 질 나쁜 요귀가 찾아와 괴롭히는지요?”
“아니.”
그는 열병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맥없이 중얼거렸다. 언제나 알아들을 수 없고,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흘리는 사내.
나는 다 내려 두고 그의 손을 단단히 깍지 꼈다. 그는 익숙하게 팔을 벌리고 내 품 안에 안겼다. 어젯밤처럼 내 목에 입술을 비비적거리면서도 저가 무슨 행동을 하는지 자각이 없는 듯했다.
목을 조르는 대신 안달 나 허리를 끌어안은 손이 끈적했다.
“버들아, 내게 맹세해.”
“무엇을 말입니까.”
“나를 버리지 않겠다고.”
“……그리하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성이 돌아온 눈에는 푸른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기운혁은 어째서 그런 말을 입에 담는 것일까. 마치 내가 저를 두고 떠나리라 예견한 것처럼.
“일생을 곁에 남겠다고 약조해, 어서. 날 떠나는 일이 두 번은 없을 거라고.”
뒤늦게 정신이 들었다. 방금 내가 무슨 주제넘는 소리를 지껄였지. 사왕의 목줄을 찬 내 처지에 그러한 맹세가 가당키나 한가. 뒤늦게 실수를 돌아본 내가 대답을 못 하니 그는 배신당한 사람처럼 성을 냈다.
“기억 안 나? 너는 두 번이나 내 목숨을 구했고, 또 영원히 나의 벗이 되어 주겠다고 하였잖아.”
“……저는 머잖아 도곡을 떠야 합니다. 하지만 그전까지 도령의 곁에 있겠습니다.”
“어디로 가는데.”
“여비를 모으면 어머니와 배를 타고 타국으로 이민을 가기로 하였어요.”
“밀국을, 떠난다고?”
착각일까. 일순간 그의 눈초리가 혹한보다 매서워졌다. 어젯밤 목을 졸리며 보았던 형형한 기운이 올무처럼 나를 휘감았다.
“가긴 어딜 가.”
“도령.”
“넌 내 곁에 있어야지. 어떻게 다시 만났는데. 그러지 말고 나와 수도로 가는 건 어떠해. 얼마든지 내 집에 눌러살아. 원하는 건 뭐든 안겨 줄 테니. 지금처럼 고생하면서 살 필요도 없고, 그래, 네 어머니도 데려오면 좋겠는데, 응?”
“저는…….”
당연하게도 그러겠노라 섣불리 답하지 못했다. 나를 옥죄는 상황, 내게도 섣불리 밝히지 못할 비밀을 감추고 사는 기운혁. 사왕과의 연결점. 그런 것들이 구속구가 되어 사지를 물었다.
처지를 알면 지체 없이 거절해야 마땅한데, 당초 고민할 거리도 못 되는데 왜 망설이나. 달싹대는 입술이 한심하고, 혼란은 나날이 독초처럼 자라나고, 그럼에도 이 사람에게 묶여 버린 나는 그만 괴로워졌다.
그러나 우습게도 한편으론 기뻤다.
“제가 곁에 있어 주었으면 좋겠어요?”
그가 내 팔등에 뺨을 묻었다. 과거가 어찌 됐든 내게만 매달리는 사내를 보고 희열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혼란, 초조함. 괴로움. 그 모든 감정을 뒤로한 기쁨을.
무심코 고개를 내렸다. 나를 끌어안은 기운혁은 눈꺼풀을 감은 채였다. 그 고운 눈두덩에 충동으로 입술을 대고 말았다.
‘너는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지 말고 자식도 낳지 말아. 사지육신 찢겨 죽지 않으면 한생 잘 살다 간 것이니.’
‘마제를 찾아 멸하라. 그리하여 네 업으로 내가 영웅의 반열에 오른다면, 홍운영부터 이어진 죄의 굴레를 벗겨 주겠다.’
나의 만행을 꾸짖는 엄렬한 호통이 들려오는 듯했다. 오래도록 나의 삶을 쥐락펴락한 어머니의 당부, 다른 일에 눈 돌리기도 벅찬 생사를 건 임무.
기쁨은 찰나 머물고 떠나갔다. 싸늘하게 식은 입술을 도령의 눈에서 천천히 떼어 내려던 순간이었다.
그의 눈꺼풀이 움찔 떨렸다. 충동에 젖은 것은 나만이 아니었을까. 커다란 손이 뒷목을 감싸 안았다. 나는 가깝게 다가오는 그의 눈동자에서 주저하는 기색을 읽었다.
숨이 닿는 거리에서 운혁은 눈을 내리감고, 방향을 비껴 나의 이마에 조심히 입을 맞췄다. 여전히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의 눈에 비친 나도 매한가지였을 것이다. 서로가 입을 맞추고도 혼란한 얼굴이었으니까.
“아.”
운혁은 넋을 빼둔 표정으로 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충동에 넘어간 제 행동을 곱씹고 있는 듯도 보였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에도 기운혁은 나를 부르지 않았다. 누구도 얼씬 못하게 문고리를 닫아걸어 버렸다.
딱히 섭섭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이 사람은 원래 제멋대로였고, 속을 알기 힘들었으며, 놀랍도록 다정하다가도 낯을 바꾸고 냉랭해졌으니까.
시종을 교체하라는 명도 없어, 내가 하루 종일 하는 일이라곤 우두망찰 닫힌 방문 앞을 지키는 번견 노릇이 고작이었다. 발이 닳도록 퇴마사의 방을 드나드는 날 눈꼴 시려 하던 동료 일꾼들은 드디어 내가 눈 밖에 났다며 앓던 이가 빠진 얼굴로 돌아다녔고, 기운혁 덕에 호황을 누리던 호헌은 초조해했다.
그는 방 안에 틀어박혀 잠적했다. 곧잘 용수보 주변을 산책하던 발길도 뚝 끊겼다. 식사도 들지 아니하고 등잔불은 늘 꺼져 있는데, 간간이 방 안 욕탕에서 물 흐르는 소리만 음산히 울렸다.
“이러다 송장 치우는 것 아니야?”
호헌이 직접 운혁을 찾아갔으나 내가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문이 호헌을 반길 린 없고, 탐욕스런 용수보의 주인은 나를 닦달하기 시작했다.
“대관절 무슨 일이야? 뭔 놈의 짓을 저질렀길래 퇴마사님 심기가 틀어진 것이냐고!”
내 쪽에서도 별다른 소득이 없자 호헌은 급기야 머리털을 쥐어뜯었다.
뒤숭숭한 여러 밤이 흐르는 와중에 나의 마음은 하루에도 수차례 열탕과 냉탕을 오가며 허우적거렸다.
‘나와 수도로 가는 건 어떠해. 얼마든지 내 집에 눌러살아. 원하는 건 뭐든 안겨 줄 테니.’
원하는 것.
뒤따르면 그래, 정녕 나는 태도가 모호한 저 사내로부터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을까. 받아 낸다 하여도 그게 내 삶에 이로울까.
그러다 내 어깨에 짊어진 임무도 내버리고 싶어지면.
자꾸만 마음이 겉돈다. 무녀원에 있을 적보다 더한 구렁이 발아래에서 내가 꺼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그 밑바닥을 볼 자신이 없었다.
하릴없이 담장 밑을 서성이던 내게 기운혁의 호위가 찾아온 것은 그날 이후, 정확히 아흐레째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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