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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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봉인술 할 때마다 이리 팔을 난도질하였습니까?”
다급히 면포를 가져와 지혈했다. 깊게도 쑤석여 놨다. 면포를 둘러도 둘러도 배어 나온 피는 다섯 장 정도 겹쳤을 때야 겨우 멎었다. 한데 기운혁은 남 일처럼 실실 웃는 게 아닌가.
“걱정해 주는 거야?”
“어서 여기를 누르세요.”
“널 다시 만나니 정말 좋아.”
“난데없이 무슨 소리람.”
눈을 흘기며 보는데, 그가 공중에 뜬 내 팔을 잡아다 손목 안쪽에 살짝 입을 맞추고 떨어져 나갔다.
저가 무슨 짓을 하였는지 알긴 하나. 의미 모를 행동만 반복하는 사내에게 속절없이 끌려다니기 싫어 냉랭히 팔을 물렸다. 천천히 굳는 사내의 시선을 무시하고 큰소리쳤다.
“정말 혼자서 괜찮으시겠습니까? 지금이라도 근방 퇴마사들에게 연통을 취해 함께 때려잡는 편이 어떠신지.”
“네가 도와주기라도 하려고?”
“이 근처에 퇴마소가…….”
“나는 괜찮으니 밖으로 나가 있어.”
그는 제 손목을 문지르며 차분히 답했다. 문득, 퇴마하는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떠올렸다. 내게도 예외는 없었다.
“들어오지 마. 엿보지도 말고.”
어쩌지. 사왕이 알아보라 하교한 것이 바로 이것인데. 차라리 두 눈으로 뒤탈 없음을 확인하고 제대로 보고를 올리고 싶었다. 기운혁이 사왕의 감시 물망에 올랐다는 사실도 못내 찝찝했고 말이다.
5중으로 첩첩이 덧댄 문이 탁, 탁, 탁, 소리를 내며 차례로 닫혔다. 시간이 되자 호헌은 약속대로 1층 욕탕을 폐쇄했고, 그곳엔 오로지 요귀를 기다리는 기운혁만이 남아 있었다. 욕탕 밖으로 쫓겨난 나는 뜬눈으로 방문을 지켰다.
그러고 얼마를 버텼을까. 휘이이, 길게 늘어진 등잔불이 매서운 바람을 따라 사납게 흔들렸다. 불이 하나씩 꺼진다.
역시나 요귀는 불을 타고 잠입했다. 등잔불을 먹은 놈은 음험한 기운을 사방팔방 흩뿌리며 봉인진이 있는 다섯 개의 문 너머로 기어갔다.
소름 끼칠 정도로 짙은 요기가 아닌가. 안에서 무슨 흉측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기운혁이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 소리와 기척, 외부 충격을 막는 부적 도합 서른 장을 덕지덕지 발라 놓았으니 알 재간이 없었다.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으니 더 막막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숨 막힐 정도의 거대한 요기 덩어리가 느껴졌다.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는 몸부림이 잇따랐다.
우우우―
문틀이 흔들리고 바닥이 진동한다. 불의 요귀가 봉인되지 않으려고 발악을 해 대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인내 잃은 내 발은 닫힌 문을 열고 뛰어가고 있었다. 약속은 약속이고, 저대로 놔두었다가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문을 하나씩 밀 때마다 깨진 등불과 타 버린 부적들로 바닥이 어수선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문.
“버들아.”
다급히 열기도 전에 얼굴에 피를 흠뻑 뒤집어쓴 운혁이 문짝을 드르륵 밀며 나타났다.
“내가 걱정되어 달려 온 거야? 이리 옷이 다 흐트러진 줄도 모르고.”
질척하게 흘러내리는 핏물 사이로 새하얀 이가 드러났다.
“……성공하셨습니까?”
“그럼.”
안쪽을 살피니 박살 난 돌바닥과 시커먼 그을음 자국, 파손된 벽 따위가 보였다. 바닥에 그려진 봉마진은 요귀를 피를 흡수하고 새까맣게 변한 채였다.
“말했지 않아. 염려할 필요 없다니까.”
“그렇지만…….”
“해도 내 안위가 걱정되어 정신없이 달려온 널 보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네.”
이 지경이 되도록 혈투를 벌였는데 아무런 소음이 새어 나오지 않다니. 그러나 현장을 둘러보던 나는 문득 이상한 것을 느꼈다.
“고생하셨습니다.”
우선은 씻고 나온 기운혁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조마조마했는데 다친 곳 하나 없이 멀쩡히 나온 것이 기특하다.
“곤해.”
방으로 돌아와서는 씻고 이부자리를 편 기운혁이 제 곁에 앉으라는 듯이 옆자리를 두드렸다.
“잠들 때까지 옆에 있어 줘.”
“왜, 이런 것도 시비의 일이라 하시게요.”
요귀를 봉하는 작업은 힘과 기력 모두를 쏟는 일이니 녹초가 될 만하다. 기운혁은 내가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저가 외려 내 허리를 토닥이더니 색색 잠에 빠졌다.
나는 포슬한 그의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아까의 장면을 떠올렸다.
벽에 발린 뇌수, 몸을 뒤틀며 불을 뿜었던 흔적.
‘사투라기보다 살육의 현장인데.’
그것도 한쪽이 무차별적으로 찢기고 짓뭉개진.
‘지나친 해석일까.’
아니면 상급이라고 판단했던 요귀가 실은 기대 이하의 하류였나. 그리하여 운혁이 쉬이 제압한 걸까.
그렇다면 봉인에 소요된 시간이 짧았을 터다. 한데 기운혁은 방 안으로 들어간 뒤 한참 만에야 모습을 드러냈으니 모순이다. 게다가 내가 느낀 어마무시한 요기 덩어리는 또 무엇이고.
‘뭐가 뭔지.’
나는 한 손으로 그의 고단한 낯을 조심히 쓸었다. 피로를 증명하듯 말랑한 입술은 까슬하게 일어 있고, 평소보다 거뭇해진 눈가가 흰 피부에 두드러졌다.
수련 때마다 진원은 잡념 많은 나의 머리통을 지적했다. 이것저것 재다가 다 잃고 정신 차릴 거냐면서.
마음속으론 사왕이 준 임무를 상기했으나, 그를 의심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향긋한 연고를 가져와 도령의 입술에 발라 주었다.
‘이자에 대해 조사해.’
오늘 밤이 지나면 진원에게 벽수는 특별할 것 없는 퇴마사라는 전갈을 보내려 했다. 하나 만일 기운혁이 정말로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면. 하여 내가 알지 말아야 할 것을 알게 된다면.
그럼 난, 사왕에게 곧이곧대로 고할 수 있을까.
* * *
한바탕 전투를 치른 기운혁은 동면에 빠진 것처럼 하루 내리 먹지도 않고 잠만 잤다. 무슨 문제가 있나 오만 걱정을 매달고 살피러 갔는데, 그와 함께 용수보에 온 호위사가 고개를 저었다.
“회복에 전념하는 중이십니다.”
그러고 하루하고 반나절 만에 깨어났던가.
기운혁은 눈을 뜨자마자 나를 찾았고, 저가 자는 동안에도 이기적이게 날 옆에 두려고 했다. 하여 그의 일과는 내 무릎을 베고 까무룩 선잠에 들거나, 내 허리에 매미처럼 매달려 쿨쿨 자거나, 뜨끈한 약탕에서 몸을 익히다가 조는 것뿐이었다.
정말로 어디가 아프긴 한가 보다. 염려스럽게 지켜보다가 잠든 그에게 이불을 덮어 주고 나오는 길, 문 앞에 여느 때처럼 검은 무복을 입은 그 남자가 서 있었다.
“호위사, 혹 벽수의 퇴마술을 본 적 있습니까?”
혀가 잘렸는지 의심될 정도로 말하는 걸 본 적 없는 사내였다. 이번에도 그는 조용히 고개만 저었다. 닫힌 문틈 새로 낮은 신음성이 흘러나온 건 그때였다. 나도, 호위사도 그리로 시선이 쏠렸다.
호위사는 무언가를 아는 눈치였다. 식은땀을 흘리는 운혁에게 달려가는 날 막는 대신 조용히 뒤에서 문을 닫았다. 제 주인이 저리 앓는데도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하지 마. 하지…… 마.”
“도령?”
요귀에게 물어뜯기는 악몽이라도 꾸는 중일까. 괴로워하는 손을 붙잡으려 했으나 그는 매섭게 쳐냈다. 잠결에도 내 기척을 신기할 만큼 알아채던 그였는데 지금은 나인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저예요, 정신 차려 보세요.”
도망치려는 그의 손을 다시 붙들고 젖은 이마를 쓰니 이번엔 날카로운 손톱이 내 손등을 파고들었다. 당황하던 찰나 굳게 닫힌 검푸른 동공이 열렸다. 금수처럼 가늘게 날이 선 눈알.
새파란 초승달 같은 것이 어둠을 가르고 내게 꽂혀 있었다. 목덜미에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으, 윽!”
물러나기도 전에 날카로운 손이 내 팔을 부러뜨릴 듯 움켜잡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장판에 처박힌 채였다. 등뼈가 부러지진 않을까 염려될 만큼 무작한 힘에 짓눌려 짐승처럼 빛나는 시선에 올곧이 꿰뚫렸다.
“이것, 놓으……!”
맛이 간 눈동자로 내 몸을 점차 강하게 우그러뜨린다. 일신의 위협을 가장 먼저 감지한 신이 무형의 기운을 사위로 방출시켰다. 하나, 둘, 셋. 야광주처럼 요요히 빛나는 나비의 수가 늘어난다. 신기가 속절없이 흩어지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나를 무감하게 내려다보는 눈자위는 실핏줄이 터져 있었다. 기괴하게 끌어올린 입술 사이로 축추근한 혀가 빼어져 나와 헐떡인다.
목을 졸리는 와중에 절망으로 일그러진 그의 얼굴이 먼저 가슴을 덮친 까닭은, 나의 곤궁보다 그의 말 못 할 괴로움이 먼저 눈에 밟힐 정도로 이 사내에게 마음이 쓰여서겠지.
“……도령.”
도대체 무슨 꿈을 꾸었길래 다 큰 사내가 흉몽에 얽매여 사지를 떨며 괴로워하는가.
그를 막아 보려 했다. 요귀의 피 맛을 아는 나의 신은 자비로움과 거리가 멀었으며, 내 몸을 깔아뭉갠 무뢰한을 난도질하고 싶어 발악해 대는 중이었다.
나는 기운혁 대신 달달 볶아 대는 신을 떨쳐 내는 불경을 저질러 버렸다. 돈을 주면 동정을 팔겠다던 어린 계집은 익은 자두처럼 물컹한 마음 어귀에 사내의 고통을 제 것처럼 고스란히 쌓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 때문에 그리 괴로워하십니까.”
땀방울이 밴 도령의 뒷덜미를, 악몽 꾼 밤이면 어머니가 내게 그랬듯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아아.”
그는 눈을 감고 있었다. 의도대로 호흡을 내뱉으며 안정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목을 쥔 손에서 서서히 힘이 달아나는 게 느껴졌다.
취한 사람처럼 다가온 운혁이 방향을 틀어 내 목덜미에 깎아지른 콧날을 비볐다. 금방이라도 비틀어 죽일 것처럼 살벌히 목을 조른 주제에 이토록 다정하고 애처로운 행위라니.
산등선처럼 내 위로 버티고 엎드린 그는 취하듯 몸을 포갰다. 내게 한 짓을 죄스러워하며 용서를 구하듯 꽉 끌어안는다.
“버들아.”
기운혁은 몸을 떨다가, 무지근한 눈을 반쯤 내리감고 눅눅한 음성을 흘렸다.
“꿈속에서 널 보았어.”
“저를 보고…… 그리 괴로워하신 겁니까?”
“네가 날 도와주겠다고 했는데 나는, 나는.”
그가 날아다니는 나비 한 마리를 잡아채 주먹 안에 우그러뜨렸다. 이지가 돌아와, 목 졸린 통증에 생리적 눈물이 괸 날 망연히 건너다보았다.
목을 살며시 깨물고 떠난 잇새의 감촉이 선연하다. 도령은 저가 무슨 짓을 하였는지 알지 못한 채로, 무너지듯 품 안에 떨어져 다시 정신을 잃었다.
그 순간에 떠오른 환몽이 있었다.
‘도와줄게.’
‘…….’
‘내가 널 도울 수 있어.’
무섭게 파고드는 환청에 한동안 나는 꼼짝을 못 했다. 두 배는 됨직한 사내의 체구에 눌려, 고통으로 범벅된 등을 끌어안고 달래는 것 외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