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으악,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나리!”
벽수가 나타난 뒤로 용수보의 풍경은 사계처럼 다채로웠다.
쿵!
고고한 퇴마사가 머무는 방의 복도에 오늘도 구경꾼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있다. 그들의 시선은 막 패대기쳐진 시종을 향해 굽어 있었다. 퇴마사의 개인 시종이 바뀐 것이 벌써 두 번째이던가. 세 번째이던가. 길면 하루, 짧으면 반나절도 못 버티고 저리 팽당하는 꼴이 측은할 정도였다.
첫날 시종으로 뽑힌 둘은 각각 하루, 이틀을 이 악물고 앙버티다 쫓겨났다. 나리님 비위도 못 맞추느냐며 그들을 힐난하고 대신 시중들기를 자처한 두 번째 지원자들은 두 시진도 못 넘기고 궁둥이를 걷어차였다.
나날이 기록이 갱신되고 있었다. 저게 다 무슨 꼴이람. 대관절 방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길래 이 난리 통인지 모르겠으나 그 세 번의 기회 동안 단 한 번도 선발되지 않은 나도 참 대단하다 싶었다.
신기한 것은 다들 퇴마사를 두려워하면서도 그를 모시고 싶어 안달이란 점이다.
“왜 쫓겨난 겁니까?”
되우 궁금하여 팽당한 자들에게 연유를 물으니 ‘개 짖는 소리를 제대로 못 내서’라는 얼토당토않은 대꾸나 들었다.
“그분을 즐겁게 해 드려야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놀아나고 싶습니까?”
“네 놈이라고 돈주머니 앞에서 사정이 다를 것 같아?”
그들은 씩씩대며 내게 삿대질을 하였다. 듣자 하니 짐승 흉내를 낸 종놈이 퇴마사를 피식하게 해 보수로 은자 다발을 받았다는 데서 난 사달 같았다.
내가 볼 땐 그 소문에 꾀인 어리석은 종자들이 웃기지도 않은 몸 장난을 선보이다 되려 그의 화만 부추길 듯싶은데. 그들은 모르는 모양이었다.
꼭 그 이유뿐만이 아니더라도 퇴마사의 예민한 성미와 까다로운 취향도 한몫했다.
“그분은 자신의 몸에 허락 없이 손대는 걸 극도로 싫어하시는데, 내가 장국을 쏟아 급한 마음에 의관을 닦아 드리려 했지 뭔가. 불같이 화를 내시더군. 그러니 다 내 잘못이지.”
“사소한 실수도 묵인하지 않으시다.”
그 사소한 것은 개미 오줌만 한 것이었다. 제 앞에 먼지가 보여서, 물 온도가 티끌만큼 어긋나서, 젓가락이 짝짝이라서. 반반한 낯짝을 가림막 삼아 행패를 부리는 것이 내가 알던 누군가와 은연히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연거푸 시종을 갈아 치우는 사태가 나자 네 번째로는 손이 야무지고 관록이 있는 ‘조호’란 아이가 수발을 들게 되었다.
한 며칠 간은 평온한 듯싶었다. 3일이나 버티다니. 신기록이라며 일꾼들은 시샘 반 부러움 반을 담아 입을 삐죽대고 조호는 범을 달고 다니는 여우마냥 거들먹거렸다.
“이게 뭔 줄 아나. 주인님께서 내게 하사하신 거란다.”
조호는 값나가 보이는 은가락지를 얄밉게 흔들더니 찬찬히 빼어 검지에도 껴 보고, 중지에도 끼워 보고, 그러다가 약지에 건 뒤, 쪽 입을 맞추며 오만 너스레를 떨었다.
“가락지도 받았겠다 그만 떨어져. 나도 나으리 좀 모셔 보자고.”
“네 놈이 부족해 뽑히지 못한 것을 누굴 탓해? 저리 비켜.”
벽수가 어슬렁대던 날부터 기묘하게 들뜬 분위기가 부유 중이었다. 활기보다는 탐욕으로 무지근하고 끈덕진 열기라고 해야 할까.
벽수의 취향은 좀 특이했다. 어느 때는 어여쁜 아이를 뽑았고, 다른 때는 화상 자국이나 흉터 탓에 결코 곱다고 할 수 없는 아이를 데려갔다. 팔다리가 사슴처럼 늘씬한 아이도, 잘 먹어 복스럽게 찐 아이도, 퉁방울처럼 살집이 붙은 아이도 모두 고려의 대상이 되었다.
나는 돌아가는 상황이 우스워 언제부턴가 지원 않고 팔짱 끼고 지켜보았다. 처음의 목적을 상기하며 목이 빠져라 다음 기행을 기다렸으나 하는 짓거리라곤 시종을 갈아 치우는 일뿐이니. 흥미가 칙칙하게 바랬다.
언제쯤 이 짓거리를 때려치울까 계산하며, 나는 청소를 핑계로 퇴마사의 내실이 보이는 빈 복도를 얼쩡거렸다. 황옥과 금, 칠보로 장식을 한 화려한 방을 곁눈 팔며 지나갈 때였다.
“악!”
퍼억!
문밖으로 조호가 공처럼 데굴데굴 굴러 나왔다. 그 뒤로 탁상이 엎어지고 식기가 벽에 날아가 부닥치는 요란한 파열음이 들렸다.
“나리, 제가 무어 실수한 게 있는지요?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주인 나으리!”
“눈치가 없는 게 문제라니까.”
“제가 주제넘었습니다. 나으리의 건강을 염려하는 마음에 백단향을 준비한 것인데 싫어하시는 줄 몰라뵙고…….”
덜그럭, 성의 없이 문이 열렸다. 틈새를 차지한 육 척 사내의 미려한 옆태가 내 시야에도 비쳐 들었다.
“네 놈에게 그런 일을 부탁한 적 없는데. 하라는 일만 시간 맞춰 하라는 데도 그걸 못 하니.”
“나으리!”
‘조호 저 녀석은 눈치를 국밥 말아 먹었나.’
간드러지는 목소리와 미소에 홀려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퇴마사의 싸늘한 푸른 눈과 초승달 같은 입매가 따로 놀았다. 저런 간극을 지닌 자를 질리도록 봐 왔던 나다. 그의 느리게 올라간 다리는 분명 꼴사납게 비는 시종의 몸뚱어리를 뒤집어 찰 심산이 분명했다.
‘저것이 퇴마사의 껍질 벗긴 진면모인가.’
“버들아, 어디 갔었어. 한참 찾았는데!”
난데없는 외침에 세 쌍의 시선이 물걸레 대에 팔을 얹고 선 내게로 날아왔다. 부르며 다가오는 이는 머리에 쟁반을 얹은 요희였다.
“밥 먹으러 가야지.”
식사 시간은 한참 남았는데. 필히 내가 퇴마사의 복도로 향하는 걸 보고 몰래 뒤를 밟았음이라.
요희는 착한 아이였으나 호기심이 왕성했다. 궁금한 건 무조건 캐내야 하고 발 달린 소문에 몹시 밝았다. 퇴마사 곁에서 최장기간을 버틴 조호가 심하게 거들먹거린다는 소문을 얘도 들었다. 처량하게 주저앉은 조호를 향해 요희가 숨김없이 비웃음을 드러냈다.
그러다 문득 그 사내와 시선이 얼러붙었다. 조금 크게 벌어진 푸른 동공이 기이한 것을 보듯 내게 붙어 있었다. 조호는 울고, 요희는 소리 죽여 웃는 와중에 그따위 것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이 오로지 나만을.
“이만 가자.”
요희를 끌고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자꾸만 내 멍든 기억을 들쑤시는 저자의 눈을 마주치는 게 싫었다. 3일 동안 물 한 모금 못 댄 것처럼 입천장이 거끌거끌 메말랐다.
쳐다보기 싫으니 아닌 척 지나가면서 그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이나 읽어 내려 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사왕이 엉뚱한 추측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조호를 대하는 그의 태도에서 음충한 기운을 느낀 것이다.
“당장 저걸 치울 사람이 필요해.”
향긋한 음성이 목뒤를 덮쳤다. 명백히 나를 찌르는 말이었다. 무시하고 걸을까, 하다가 용수보에서의 내 처지를 깨닫고 뒤돌아보았다.
퇴마사가 웃는 듯 마는 듯 방문에 기대서 있었다. 발은 문턱에 걸치고 아까보다 몸을 앞으로 죽 뺀 자세로. 끝이 올라간 입술에는 이상한 연녹색 나뭇잎 같은 걸 물고 있느라 발음이 뭉그러진 채였다.
긴 손가락이 바늘만 한 문 틈새를 가리킨다. 엎어진 음식과 식기로 난장인 풍경이 내 눈에도 보였다.
“버들이라고 하였나.”
놈의 길게 휘어진 손가락에 손목이 빈틈없이 휘어잡혔다. 요희의 눈동자에, 퇴마사에게 잡혀 질질 방 안으로 끌려가는 내가 보였다. 겁먹은 입술로 손톱을 뜯는 요희의 모습을 끝으로 미닫이문이 닫혔다.
나는 뒤꿈치에 힘을 줬다. 반사적으로 나를 틀어잡은 놈의 손목을 두 동강 낼 뻔했으나 이성을 동원해 충동을 막았다.
‘이건 기회야.’
사람의 살갗을 타고 기운이 가장 잘 전해지는 법이다. 나는 교묘히 손을 돌려 검지와 중지를 퇴마사의 손목에 붙였다. 그것이 새벽의 풍경 소리처럼 맑든, 구정물처럼 탁하든. 제각기 타고난 기운을 받아들일 준비를 마쳤다.
한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흘러 들어오는 것 없이 썩은 고목을 더듬대며 마른 수맥을 찾는 듯하였다.
‘어째서?’
장판에 마구잡이로 쓸린 발뒤꿈치에 상처가 났는지 따끔거렸다. 눈치챈 퇴마사가 힘을 풀고, 한참 늦어서야 놓아주었다.
나는 상대방에게서 무엇 하나 건질 수 없어 당황한 참이었다. 그가 힘을 풀자마자 손등을 치며 떨어져 나왔다. 후려 맞아도 물렁하게 웃고 있는 사내를 등지고 서둘러 어질러진 방을 치우기 시작했다.
“손이 야무지네.”
그가 느닷없이 칭찬을 던졌다. 어쩐지 내 시선을 붙잡으려고 던진 말 같아 수그린 고개를 들었다.
“한데 다들 모르나 봐.”
달게 잠긴 목소리. 비틀린 입술. 무슨 소리인지 따져 물을 겨를도 없이, 저 시선에 꿰인 순간 영문 모를 불안함을 느꼈다. 기를 쓰고 피하던 문제가 뭉텅이로 발치에 던져져서 앞길을 막는 기분이었다.
“네가 여인이란 걸 아는 건 나뿐인 듯한데.”
탑처럼 쌓인 그릇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그 짧은 순간 놈이 나를 뒤로 살짝 밀쳐 날카로운 파편이 발등에 쏟아지는 참사를 면했다.
“뜬금없이 무슨 소리입니까?”
“뜬금없는 소리일까?”
낮은 휘파람 소리에 전신이 바짝 수축했다. 어디서 배웠느냐고 내가 닦달하던 그 노랫가락.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근래에 매일같이 꿈속에서 만나더니 이제는 현실과 혼동하는 지경까지 이른 건가.
“누구야, 너.”
잃을 뻔한 경계심을 끌어모으고 공격 태세를 갖추었다.
“네 모습을 한 이는 분명 내가 보는 앞에서 죽었다. 너는 누구지? 사람 탈을 뒤집어쓰고 다니는 비루먹은 요귀인가? 하면 이 자리에서 당장 봉해 주겠다.”
“비루먹은…… 요귀라.”
그가 천천히 내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먹잇감을 가운데에 밀어 놓고 냄새를 맡는 짐승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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