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마을 사람들은 경외 섞인 눈으로 사체 앞에 선 두 명의 무녀에 대해 수군거렸다. 얼굴을 가린 붉은 비단. 한쪽은 육척장신의 검은 머리고, 다른 하나는 키가 작으나 풍기는 기세만큼은 범상치 않은 붉은 머리칼의 여인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작은 무녀가 사왕의 휘하로 들어간 무녀원의 마지막 열여덟 번째 무녀임을 알아보았다. 연치가 가장 어리다 하였나. 특이한 생김새가 단박에 이목을 끌었다.
정수리부터 늘어진 머리칼은 아름다운 홍매화 빛에, 끄트머리는 하늘거리는 백발이라. 밀국에서 둘 없을 오묘한 머리 색이라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다.
그녀의 뒤로 붉은 나비 떼가 은하처럼 유유히 흐르는 장관은 또 어떻고. 바람을 일으키며 요귀의 몸통을 난도질하던 그 영물이었다. 사각사각. 수백 쌍의 날개가 부딪치는 소리가 아름답고도 괴괴하다.
“소문대로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군요.”
현란한 검무를 본 자들은 매양 입을 모아 경탄을 뱉는다. 다들 어린 무녀의 정체가 궁금하여 기웃거렸으나 누구도 비밀스러운 여인의 얼굴은 본 바 없으니, 무성한 소문은 밀국 왕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아우인 사왕에게 여인에 대해 캐물었으나 사왕은 대답 대신 미소로 일관할 뿐이었다. 그녀가 반역자의 후손이라는 사실은 진원과 사왕만이 공유하는 엄비였다.
“한데 그 옛날 홍운영도 붉은 나비 떼를 끌고 다녔다던데.”
“예끼, 이 사람. 그 악랄한 여자의 자손이면 사왕이 거둬들였겠어? 지금쯤 모가지가 날아갔겠지.”
웅성이는 소리를 뚫고 곡도 한 쌍을 허리춤에 맨 작은 여자가 사박사박 걸어 나왔다. 걸음마다 질척한 피의 길이 뚝뚝 그어져 인상을 찌푸릴 법한데도 구경꾼들은 넋 놓고 지켜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가장 앞에 서 있던 촌장이 입을 열기도 전이었다. 굳은살이 밴 새하얀 손이 앞으로 내밀어졌다.
“아.”
사왕의 무녀는 무상으로 민간을 구제하는 단체가 아니었다. 원하는 대로 퇴치를 해 주었으니 응당한 값을 치르란 뜻이었다.
“예, 예…… 어서 이쪽으로 오십시오. 다과상을 미리 준비시켜 놓았으니 천천히 드시다가…….”
“되었으니 이 자리에서 값을 치르시오. 갈 길이 바빠서.”
고저 없는 목소리는 별다른 감정을 담지 않아도 싸늘하게 들렸다. 키가 큰 흑발의 무녀가 뒤에서 감시하듯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미 보수 협의를 끝낸 터. 흉작은 면했으나 마을 사람들의 재산을 바득바득 그러모아 상당한 양의 대가를 피의뢰자에게 바쳐야 했다.
그래도 요귀에 의한 인명 피해와 농작물 피해가 없으니 그것으로 안심할 일이라며, 촌장은 힘 빠진 손으로 은자를 꽉꽉 눌러 담은 나무 단지를 건넸다.
작은 무녀는 그것을 받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일행과 자리를 떴다.
* * *
추분이 되니 햇발이 옅고 낮의 길이가 짧아졌다.
마을에서 벗어나자마자 촘촘한 어둠이 발밑으로 깔렸다. 이런 촌구석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싶지 않았으나 방을 얻고 명일 이른 아침 무녀원이 있는 수도로 출발하는 수밖에 없었다.
진원은 슥 눈을 내리깔았다. 그보다 살짝 뒤에서, 오는 내내 한마디도 없이 따라오는 제자가 보였다.
홍사혜. 열일곱에 무녀원에 감금되어 3년 만에 바깥출입을 허락받은 자. 확실히 그 홍운영의 후손인지 배움이 빠르고 품은 신력이 예사롭지 않다.
‘그 신마저 잃었다 되받은 것이라 하였지.’
진원이 10여 년 만에 무녀원 밖으로 나간 것에 비하면 턱도 없을 만큼 짧은 시간이었다. 물론 그 3년의 시간은 예의로라도 ‘고생했다’며 어깨를 두들겨 줄 수 없을 만큼 기박하였지만 말이다. 그 역경으로 한때 머리가 희게 세어 버린 적도 있지 않나.
수련 도중 홍사혜는 명줄을 건 수십의 위기와 싸웠다.
독충에 당해 왼쪽 얼굴 전체가 마비될 뻔한 위기를 간신히 넘겼다. 밤낮으로 토혈을 하고 전신에 붉은 종기가 부풀어 독과 피고름을 빈 그릇이 가득 차도록 빼야 했는데, 진원은 그때 정말 홍사혜가 잘못되나 싶었다. 이대로 가다간 죽을 수도 있겠다고.
그러나 사혜는 아득바득 살아남았다. 열흘 간 정신을 잃다 깨어나 한다는 말이 내가 죽이려던 놈은 어찌 되었느냐, 제대로 처리한 게 맞느냐 독기를 품고 캐물었다. 진원은 말을 잃었다.
그뿐일까. 열아홉에 사왕의 명으로 버거운 요귀와 싸우다가 오른쪽 허벅다리부터 발목까지 산산이 으깨졌는데, 치유사가 100일 밤낮을 노력한 끝에 겨우 다리 한쪽을 복원해 놓았다.
그 모든 과정을 진원은 두 눈 뜨고 곁에서 지켜보았다.
“할 말이라도 있으십니까?”
시선을 느낀 홍사혜가 건조한 음성으로 물었다. 아직도 가끔씩 다리를 전다. 날이 궂은 날은 무릎 아래 정강이가 아프다며 신경질을 부렸다. 그때마다 진원은 대거리하는 대신 고통을 완화시키는 환약을 시비를 통해 보내 줄 뿐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아이를 볼 때마다…….
“뭐요.”
“…….”
“다음 의뢰가 많이 고되어 이리 선뜻 말을 못 꺼내고 있습니까?”
“아니.”
빈말로라도 살갑다고 포장할 수 있는 사제 관계는 아니었다. 그녀를 잡아 무녀원에 처박은 이가 진원이었으니까.
마찬가지로 사혜도 그에게 가르침을 사사하긴 하였으나 딱히 스승 대접을 해 주는 것도 아니라. 저와 닮은 여자의 붉은 눈은 찌르기만을 엿보는 칼을 품고 있었다.
“투숙을 해야겠다.”
주막을 턱짓하자 사혜가 인상을 쓰고 앞장섰다. 그 뒤를 진원이 묵묵히 따랐다. 주모는 같은 여인끼리 한방을 쓰면 될 것을 왜 각방을 잡느냐 의아해하며 물었으나 두둑한 엽전 주머니를 받고 고분고분 군불을 땠다.
사혜는 가끔 이해할 수 없었다.
‘남들 눈엔 저자가 여인으로 보이나 보지.’
하기야 그녀도 속아 넘어갈 뻔했으나 가까이에서 보면 태가 뚜렷한 것을. 어딜 봐서 저 키에, 저 목소리가 여인인지 모르겠다.
진원은 그녀보다 다섯 살이 많았다. 언제 무녀원에 들어왔는지 모르겠으나 체제에 익숙한 것으로 보아 아주 오랫동안 무녀원 생활을 했으리란 사실만 유추할 뿐.
식사는 각자 해결했다. 저녁 어스름이 깔릴 무렵 사혜가 그의 방문을 두드렸다. 진원은 단정한 복식을 하고 앉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비롯한 무녀원의 남자 퇴마사가 왜 다들 분을 바르고 웃기지도 않는 치마를 두르는지 따로 물어본 적은 없다. 그녀 또한 사내 탈을 쓰고 인생의 절반을 보냈으니까.
사왕이 멀쩡한 사내를 여장까지 시켜 가며 등 뒤론 무슨 계책을 꾸미든 불필요한 사정에 관심 두고 싶지 않다.
“와서 앉아라.”
진원이 손짓했다. 사혜는 방석과 방석 사이에 익숙한 함을 발견하고 싸늘히 얼굴을 굳혔다. 열린 나무함 안에는 치 떨리는 붉은 실과 날카로운 가위, 연고가 들어 있었다.
“치료는 해야지.”
사혜는 습관적으로 답답한 눈두덩을 긁었다. 가려워 긁다가 실이 뜯겨 피를 볼 때도 잦았다. 오늘 아침에도 소세를 하다 잘못 건드려 피며 고름이며 주륵주륵 난리가 났는데, 그걸 진원이 본 것이다.
사혜는 진원의 손에 들린 날카로운 기구를 응시하다 겨자 먹는 심정으로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입술을 깨물고 눈을 감았다. 스스로 치료하고 싶으나 눈을 감고 행해야 하는 일인지라 도움이 필요했다.
동료 무녀를 시켜도 될 것을, 무녀원에 있을 때도 진원은 늘 그녀를 직접 치료해 주었다. 하기야 독충에게 당하고 다리가 분질러졌을 때도 수시로 병상을 찾아왔던가. 염려하는 말 한마디 없이.
사혜는 눈살을 찌푸렸다. 도톰한 눈두덩에 펴 발라진 물컹한 고약 냄새가 썼다. 신묘한 약이다. 불에 지진 듯 따끔거리는 통증도 잠시, 고름과 함께 살에 엉겨 붙어 있던 실밥이 흐물흐물해졌다.
“자고 일어나면 완전히 녹아 없어질 거다. 실밥 자국은 당분간 남이 있을 테지만.”
깜빡, 깜빡. 누런 고약이 실에 엉겨 붙어 전보다 앞이 흐릿했다.
“잘 흡수되어야 하니 손대지 마라.”
할 일이 끝나자마자 고개만 까딱이고 돌아서려는 사혜를 그가 멈춰 세웠다.
“아직도 그걸 갖고 다니는구나. 벗의 유품이라 하였지.”
“뒷조사를 하였습니까?”
그가 지적한 것은 사혜의 목에 걸린 목걸이였다. 도령이 그녀와 어울린다며 선물로 준 홍보옥을 줄에 꿰어 여태 목걸이처럼 걸고 다녔다. 다른 이가 쳐다보는 것도 싫어, 사혜는 목걸이를 감추듯 덮었다.
“그때, 네가 살리려던 아이였나.”
진원은 팔짱을 끼고 벽에 등을 기댔다.
이 인간이 나를 떠보려 작정하는가. 기운혁에게 뻗은 손을 제압한 건 다름 아닌 눈앞에 있는 작자인 것을. 사혜가 앙심을 품고 노려보니 진원이 한숨을 뱉으며 먼저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의심 가는 보고가 들어왔으니 한번 읽어 봐라.”
한 마디만 더 보태면 ‘무녀원은 좀 지낼 만하냐’는 개소리를 지껄였을 때처럼 저 놈팡이의 턱을 들이받으려 했다.
사혜는 아랫니를 깨물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진원이 품속에서 누리끼리하게 변색된 종이 예닐곱 장을 펼쳐 보여 주었다. 핵심만 짚어 주려는 듯 표시까지 해 두어서 읽는 데 시간이 오래 지체되진 않았다.
“누굽니까? 이 사람.”
“반년 전부터 수도를 떠들썩하게 한 귀인이다. 사왕께서 주시하고 있지.”
푸른 눈을 가진 퇴마사. 알려진 바라곤 그것뿐이었다. 무찌르지 못하는 요귀가 없을뿐더러 그가 다녀간 지방에는 한동안 요귀의 ‘요’ 자도 나오질 않는다 한다.
‘말이 되나.’
무릇 한 번 요귀가 엎고 간 자리는 기다렸다는 듯 다른 놈이 끼어들어 둥지를 틀기 마련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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