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내가 더 묻기도 전에 그는 이미 내가 독 안에 든 쥐라고 여긴 모양인지 거칠게 패대기쳤다. 무녀원의 종들이 모랫바닥을 구르는 내 곁으로 달려와 에워싸는 순간에도 좀처럼 그자에게 눈을 뗄 수 없었다.
무녀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는 눈가를 찌푸리고 제가 다져 놓은 강물의 산을 바라보다 낮게 욕을 뇌까렸다.
퍼석!
이번에는 강물 속에 숨은 날카로운 지느러미 같은 게 튀어나와 사정없이 사람들의 팔다리를 뚫었다. 검은 강물이 순식간에 핏빛으로 물들었다.
무녀가 고개를 까딱였다. 무녀의 눈짓을 즉각 알아먹은 가면 쓴 종들이 어머니를 밧줄로 싸매고 발 빠르게 떠날 채비를 하였다.
지금의 사태를,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람을 구할 숙명을 타고난 퇴마사가 아닌가. 요귀로부터 무력한 그들을 비호하고, 요귀의 원념을 달래 천도시키는 것이 그들의 소명이 아니던가.
한데 사왕의 무녀는 수백의 사람이 떠내려가는 참상을 이웃집 불구경 보듯 하였고, 피 맛을 보고 날뛰는 강의 요귀를 제압할 의지도 없어 보였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와 어머니를 잡아 떠났다. 처음부터 우리가 목적이었던 것처럼. 변방의 작은 시골 마을 따위 몰살되든 말든 일없다는 듯이.
지옥도로 돌변한 무릿매골이 점차 작아진다. 시퍼런 강물이 내 명치에 가득 들어찬다. 피로 물든 강에 잠겨 죽어 가는 이들 중 아는 얼굴이 많았다. 꼬박꼬박 먹을 것을 챙겨 주던 아라, 귀한 장신구를 몰래 주머니에 찔러주던 난희, 눈 마주칠 때마다 코를 문지르며 웃던, 나를 좋아한다던 윤후, 그리고 기운혁.
저를 잊지 말라며, 나의 마음 한 자락까지 함께 앗아 간 사내.
모두가 파도에 휩쓸려 침몰한다. 또 얼마나 많은 원념들이 소루강에 쌓일 것인가. 부덕한 물에 잠겨 죽을 것만 같았다. 스산한 밤공기가 얼어붙은 뺨을 아프도록 할퀴었다.
어디로 끌려가는지도 모르는 채,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 *
“도와줄게.”
“…….”
“내가 널 도울 수 있어.”
아, 또다. 새빨간 머리카락을 가진 그 여자다. 나는 이것이 의식 없이 꾸는 환몽임을 알았다.
등을 돌린 여인의 맞은편에는 키가 큰 사내가 서 있었다. 음지에 숨은 것인가, 내 눈에 뵈질 않는 것인가. 새까만 머리칼의 사내는 얼굴이 없었다.
“그러니까 더는…….”
무의식중에 팔을 뻗었다. 대체 너는 누구인데 자꾸 눈앞에 나타나냐고. 사당 할매의 말대로 내 몸을 차지하고자 내가 죽기만을 기다리는 거냐고. 정체 모를 여자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
그때,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분명 눈이 마주쳤는데 내 의문을 알면서도, 여인은 조용히 입을 버끔거릴 뿐이었다. 시린 붉은 눈동자가 뼛골까지 스며든다.
말 없는 사내가 여인의 어깨에 손을 올린 순간, 여인의 머리카락이 길게 휘엉키며 붉은 나비 떼가 화르륵 날아올랐다. 시야를 덮친 징그러운 나비 떼를 피해 팔등을 올린 나는 벼랑에서 굴러떨어지는 기분을 느끼며 정신을 차렸다.
“우욱…….”
환몽을 꾸고 나면 언제나 지독한 오심이 일었다. 나는 헛구역질을 막으려고 손을 꿈틀거렸으나 올가미로 단단히 묶여 움직이질 않았다.
“으, 하아…….”
나는 숨을 몰아쉬며 푸른빛을 띠는 어두컴컴한 동굴에서 눈을 떴다. 기절한 이후로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거지.
바닥에 머리를 박고 헐떡이다가 냉랭한 시선을 느끼고 상체를 일으켰다. 오는 내내 있는 힘껏 몸싸움을 벌였던 사왕의 무녀가 오만하게 다리를 꼬고 포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제 꼼짝없이 죽는 건가.’
고개를 흔들어 어머니를 찾자 사내가 교활한 웃음을 띠었다.
“일어나.”
손속에 조금의 자비도 두지 않는 막돼먹은 작자였다.
나는 또 눈이 가려져 어딘가로 호송되었다. 며칠 동안 기절했다 깨어난 모양인지 근육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아 도살장에 끌려가는 가축처럼 질질 끌려갔다.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찬 처형장에서 목을 잘라 나와 어머니의 머리를 보란 듯 효시할 작정인가.’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바깥의 공기와 사람들의 분노 섞인 함성은 들리지 않았다. 몇 개의 문턱을 넘고, 복도를 지난 뒤에야 눈을 가린 천이 거칠게 벗겨졌다.
나는 금과 호박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너른 방 안에 밀쳐졌다. 속을 뒤집는 향내가 났다. 한 남자가 주렴에 가려진 채 옥좌에 앉아 있었고, 나는 본능적으로 그가 사왕임을 깨달았다.
“더러운 핏줄을 타고난 새끼 무녀구나.”
웅웅. 낮은 울림이 주렴 너머로 기어 나왔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사왕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음습한 기운이 두려웠으나, 나는 공포를 떨치고 잔뜩 쉬어 갈라진 목을 돋웠다.
“나와 어머니를 어찌할 셈이오!”
죽일 작정으로 끌고 왔다면 내실에서 그를 만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처형대면 모를까. 답은 하나다.
‘이자가 내게 바라는 것이 있구나.’
하여 즉결 처형을 하지 않고 살려 둔 것이리라. 하면 어머니께서도 어딘가 감금되어 살아 계실 것이다.
“맹랑한 계집. 네 형제들처럼 죽고 싶은 건가.”
“죽기를 바랐다면 진즉 목을 걸어 마땅하겠지요.”
톡톡, 신경질적으로 옥좌를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잠시 뒤 주렴이 걷히고 십수 명의 종을 매단 사왕이 거만하게 단상 밑단을 밟았다.
흉한 흉터가 얼굴 절반을 덮은 사왕이 주름진 손으로 내 턱을 후려치듯 움켜잡았다. 손가락에 걸린 차디찬 금속 반지가 볼 끝을 아프도록 눌렀다.
“원한다면 네 어미와 사이좋게 저승 문턱을 밟게 해 줄 수 있지.”
늙은 왕의 악력은 혈기 넘치는 약관 사내의 것과 견줄 만큼 강했다.
“선택하라. 내게 충성을 바칠 것인지, 목을 내어놓을 것인지.”
“……무슨 뜻으로 하는 말입니까.”
이자가 지금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건가. 뜻밖의 가로에 상황 파악이 단박에 되질 않았다. 턱을 움켜쥔 손이 서늘함을 남기고 떨어진 뒤에야 이쪽으로 다가오는 또 다른 움직임을 알아차렸다.
“반역자는 들어라. 100년 전 봉인된 마제(魔帝)가 눈을 떴으니, 그놈을 잡아 멸살하는 자는 구국의 영웅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 내리었다. 나는 밀국의 영웅이 되기를 원한다.”
“…….”
“놈에게는 홍운영이 입힌 상흔이 남아 있다. 요기에 덮여 범인은 그 상처를 볼 수 없으나 그 여자의 핏줄은 볼 수 있다고 하더군.”
매서운 눈동자가 눈앞에서 나를 꿰뚫었다.
“찾아 멸하라. 그리하여 네 업으로 내가 영웅의 반열에 오른다면, 홍운영부터 이어진 죄의 굴레를 벗겨 주겠다.”
100년 만에 기지개를 켠 괴물을 봉하는 일.
내가 해낼 수준의 일이 아니었다. 사왕은 내가 녀석을 찾아 죽여 주길 바랐다. 나는 도중 죽든 말든 쓰고 버릴 패고 어머니는 인질인 것이다. 협상도 거래도 아니다. 죽기 싫으면 닥치고 따르라는 협박이었고, 당연하게도 내게는 선택의 여지 따위 없었다.
침묵에서 긍정을 읽은 사왕은 몹시 흡족하다는 듯 괴괴히 웃으며 내 머리통에 손을 올렸다.
“이제 네 육신은 짐의 소유이다.”
붉은 실밥 자국이 흉하게 진 무녀들이 작은 함을 들고 질서 정연히 도열했다. 철컥, 철컥. 거슬리는 쇳소리는 그 함 안에서부터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즉시 매섭게 뒷목을 가격당했다. 나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고, 다시 깨어났을 때는 시야가 절반으로 줄어 있었다.
신음하며 바닥을 기었다. 눈이 제대로 떠지질 않아 힘주어 눈꺼풀을 움직였을 때 생살을 바늘로 누비는 격통이 몰려왔다.
진원이란 자가 내 앞에 낡은 면경을 떨어뜨렸다. 그 뿌연 유리에 눈물과 눈곱이 잔뜩 낀 채 실로 너덜너덜한 눈꺼풀이 보였다.
나는 바르르 떨며 엎어진 몸을 일으켰다.
“갈아입을 옷이다.”
어머니의 안부를 묻고 싶었다. 사왕 앞으로 끌려갔을 때 분명 어머니는 곁에 없었는데. 고통이 극심하여 꺽꺽대는 소리도 나오질 않았다.
“너는 네 신기를 능숙히 다룰 때까지 이곳에서 혹독히 수련하며 기운을 닦는다.”
내 눈을 이 꼴로 만들기도 모자라 어머니까지. 분노가 극에 달해 머리가 하얗게 벗겨지는 기분이었다.
이를 갈며 몸부림쳐 봤자 진원 저 악랄한 자의 눈에는 한갓 벌레가 꿈틀대는 꼴로 보일 테지. 연거푸 숨을 게워 내며 속에서 끓는 천불을 겨우 추슬렀다.
“진원. 내가 앞으로 너를 담당할 것이니, 이름은 알아 두거라.”
무표정한 사내의 붉은 동공이 가늠하듯 나를 위아래로 느리게 훑었다.
“어머니는…… 어머니는, 어디에 계십니까.”
“네 어미는 따로 마련된 별실에서 지낼 테니 염려할 필요 없다. 네게 주어진 일만 잘 처리하면 어련히 상봉하게 될 것을.”
꾹, 길쭉한 검지가 내 왼쪽 어깨를 밀어 눌렀다. 코앞까지 다가온 진원의 얼굴에 검침한 미소가 걸렸다.
“수련의 강도가 말할 수 없이 고될 테니 각오 단단히 하거라. 다들 사왕의 총애를 얻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거든.”
비웃음이 가신 얼굴은 이제 차갑게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목적을 이루기도 전에 죽고 싶지 않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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