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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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 아파아아아!
틈을 놓치지 않고 벗어나고 싶었으나 물속에서 오래 버틴 몸이 축축 꺼지고 있었다. 요귀들이 몸을 비틀며 다가오려는 것이 보인다. 오다가, 닿을락 말락 하다가, 자꾸만 아래로 끌려 내려간다.
저 강 밑바닥에 무언가가 있긴 하구나.
생각할 때, 시선이 마주쳤다. 거품 섞인 물보라. 그 사이를 헤쳐나온 감파란 눈동자가 보였다.
혼란에 허우적대는 것은 나뿐인 듯, 도령의 시선은 차분하고 또 고요했다. 나도 모르게 그를 부르려고 입을 연 순간에 공기가 한 움큼 빠져나갔다.
‘웁, 숨 막혀…….’
의식이 떨어질 듯 말 듯 하면 어김없이 붉은 실타래가 나타난다. 물결을 따라 수초처럼 나풀거리는 저것이 실이 아닌 사람의 머리카락임을 이제야 깨달았다. 나와 거울상처럼 닮은 붉은 눈을 가진 여자의 환시.
그래, 꼭 내가 아플 때, 의식을 놓을 때만 나타나서는 마치 내 죽음을 바라는 것처럼…….
‘이미 주인 있는 육신인데 남처럼 행세해야 쓰겠어! 그러다 제 몸도 못 찾고 벌레만 드글드글 꼬이지! 네 운명도 참 딱하구나, 아이야.’
“푸, 하!”
의식이 넘어가려던 찰나에 누군가 내 팔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참았던 숨을 크게 터뜨렸다. 모자란 만큼 허파 가득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나는 바닥에 패대기치듯 뭍으로 떨어졌다.
“도령!”
도령은 그새 정신을 잃은 채였다. 허리를 수그려 사내의 가슴팍에 귀를 기울였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희미한 약동에 왈칵 정신이 들었다. 혈색이 빠져나간 양 뺨을 붙들었으나 내뱉는 숨결이 없다.
나는 도령의 턱을 젖히고 입술을 포개어 숨을 불어 넣었다. 넣어 주고, 어설프게 가슴팍을 누르길 반복하였다. 그렇게 떨리는 손발로 도령을 붙들고 있기를 한참, 안은 몸이 움찔 떨었다. 우리의 입술이 붙은 차였다.
“정신이 드십니까?”
나는 급히 상체를 일으키고 거세게 숨을 토하는 그를 부축했다.
“천 년은 감수했습니다.”
이마에 땀이 송송 맺혔다. 짹짹, 새 지저귀는 소리와 시야를 찌르는 맑은 햇살. 지극히 온화하고 평온한 풍경 속에서, 도령은 물을 뱉고 나는 뒤늦게 온몸을 떨었다.
그가 흠뻑 젖은 머리를 감싸 쥐고 낮게 신음했다.
“하마터면 생일이 기일이 될 뻔했지 뭡니까. 조금만 늦었어도…….”
“버들아.”
그 뒤엔 넋을 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삽시간에 벌어진 일이라 저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조차 파악을 못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기어서 그에게 다가가, 물에 젖은 그의 어깨를 꼭 감싸 안았다. 그는 당기는 대로 내 품에 끌려오더니 작게 숨을 고르며 물었다.
“왜 날 구했어?”
복장이 터져나갈 소리였다.
“그럼 물에 빠져 죽어 가는 데 내버려 두고 갈 길 갑니까? 구해 주어 고맙다고 인사는 못 할망정!”
“넌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거야. 그것들의 심기를 건드려서.”
“그게 무슨…….”
도령이 차갑게 식은 팔로 내 목을 끌어안았다. 저보다 더 와들와들 떠는 나를 위로해 주듯이 등을 두드리기까지.
이 사태를 벌인 게 누군데, 죽을 뻔한 게 누군데 사람이 저리 태연할 수가 있지? 속이 부글부글 올라오는 느낌은 오랜만이었다.
“내가 해서는 안 될 짓을 했다니. 설마 놈들이 요귀인 걸 애초부터 알고 있었습니까, 예? 알면서도 어울린 거요?”
도령의 어깨를 붙잡아 떼고 추궁했다.
“진정 알면서도…….”
“그래.”
“왜요? 외로워서?”
“…….”
“정말, 단지 그뿐인 이유로 사람 아닌 것을 곁에 끌어들였다고요?”
분노와 황당함이 극에 달하면 화도 나질 않는다던가. 피가 식을 만한 분노가 무엇인지 알겠다. 남들은 피하려고 기를 쓰는 요귀를, 몸이 약한 걸 스스로가 알면 더 조심해야 할진대 그러긴커녕 무어? 외로움을 달래려고 요귀를 제 삶에 끌고 들어왔다고.
“혹시 명을 재촉하는 취미가 있으십니까?”
서릿발 같은 목소리로 물으니, 그가 슬쩍 눈을 비꼈다.
“도령이 지금 무슨 짓을 하였는지 알고는 있습니까? 그들이 요귀란 걸 알면 한시바삐 떨칠 생각을 해야지 겁 없이 어울리는 게 가당키나 해요?”
“털어 내려 했어. 이제 네가 있으니.”
“해서 털어 낸 결과가 이겁니까? 속수무책으로 물고기 밥이 되는 것이요?”
뺨이라도 내준 것처럼 눈가가 시큰거렸다. 누구는 하루라도 살아 보려고 애쓰는데, 누구는 저승길도 상관없단다. 제 명줄을 우스개로 아는 인간이 있었다.
“내가 쫓아내려 하니 그럼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들어 달라 하여서. 물가로 오라길래 갔어. 놈들의 뜻을 들어주지 않으면 원한을 살 테니.”
기가 차 헛웃음이 나왔다. 목숨 걸고 구해 놨더니 무어. 요귀와 어울리는 도령보고 홀로 전전긍긍했더니, 실은 다 알고 있었다고. 심지어 오늘 물가로 이끈 것조차 요귀의 뜻이었다고.
도령이 조심스레 손가락을 가져와 내 눈물을 덜어 냈다. 나는 그를 세게 밀쳤다. 화가 나는 한편 그렇게 해서라도 외로움을 달래고자 했다는 데 생각이 미치니 마냥 윽박지를 수도 없고. 가슴이 답답하면서 아프고. 내가 나를 모르겠다.
“저들은 도령이 주검이 될 때만을 기다리며 영혼을 빼앗을 작정이었어요. 청 한 번 들어주면 쉽게 떨어져 나갈 줄 아셨습니까?”
도령의 무모한 짓만 상기하면 치가 떨릴 정도였다.
”그러다 자칫 죽으면요.”
그의 표정이 씻겨 나갔다. 정말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마냥. 죽으면 죽는 대로 살면 사는 대로.
“너와는 상관없지 않아.”
나는 넋 나가 주저앉은 그의 목깃을 틀어쥐었다. 그는 순순히 잡혔다. 정신 차리라고 뺨이라도 치고 싶은데, 멱살을 쥐고 흔들고 싶은데 공허가 쌓인 저 눈이 거슬렸다. 너도 날 탓하느냐며 묻는 저 눈에 대고 도저히 욕을 하지 못하겠다.
“왜요, 대감께서 가문의 명예나 실추시키는 못난 종자라며 핍박한답니까? 차라리 없어졌으면 좋다고 해요? 그리하여 반평생을 앓다가 겨우 보전한 몸 이리 쉽게 내버립니까?”
“버들아.”
“이 미친 농간이 전부 도령 스스로 자초한 일인지도 모르고 나는, 당신이 잘못될까 봐 온종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는데. 기껏 다 죽어가는 거 구해 놨는데. 한참 미련한 짓이었습니다. 관상이니 무어니 들먹이며 요귀들 떼어 내려 하였을 때 저를 퍽도 우습게 보셨겠습니다.”
나는 손을 털어 버렸다. 그를 혼자 두고 냉담히 돌아섰다.
자박, 자박. 자석처럼 따르는 발걸음에도 한 번 돌아보는 법 없이 집까지 걸었다. 어느 순간부터 더는 따라오는 소리가 없었으나 등을 찌르는 시선만은 여실히 느껴졌다.
물에 한 번 빠지고 나니 알겠다. 저 사람은 죽든 살든, 제 목숨 귀한 줄 모르고 죽음도 거저 받아들일 이였다. 그런 인간을 살리겠다고 나는…….
“내가 죽는 게 무서워?”
뒤에서 속살거리는 말을 무시하려고 했다.
“버들아. 내 아버지는. 내가 물에 빠졌을 때 두 손 놓고 지켜보았어.”
저절로 몸이 돌아갔다. 벌어진 거리만큼 작아진 도령이 시야에 비쳤다. 길게 난 물 자국은 뚝 끊어져 있었다. 심장 귀퉁이를 쪼개 놓는 소리를 하고선 더는 다가오질 않는다.
“정말 이상해, 넌.”
“이번은 도령이 잘못한 거예요.”
“너는…….”
꺼져 가는 목소리가 귓가를 할퀸다. 그다음 말은 듣지 못했다. 도령이 잘린 한마디를 남기고 떠나 버렸으니까.
이제는 다 모르겠다. 쓸모없는 자식은 죽어도 상관없다 여기는 대감이나 바람 앞의 등불 같은 도령이나. 단단히 비틀리고 꼬인 집안이었다. 심중이 저리 뒤숭숭하니 요귀가 둥지를 트고 알을 까겠지.
물귀신 꼴로 집으로 돌아가니 부엌으로 향하던 어머니가 우뚝 멈춰 섰다. 또 무슨 사고를 쳤니. 한심함을 담은 눈빛으로 고개를 젓고 말 뿐이었다.
속이 상한 채로 잠든 그 밤에는 흉몽을 꾸었다. 죽은 오라버니는 나와 함께 꽃을 뿌리며 웃고 떠들지 않았다. 피 섞인 구멍 뚫린 눈으로 나를 지켜보며 입을 움직였다.
내가 죽은 것은 너 때문이라고.
버거운 악몽이었다.
* * *
그는 씩씩대며 떠난 버들이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아래로 시선을 미끄러뜨렸다. 손바닥을 적신 물에 검은빛이 흐릿하게 섞여 있었다.
“…….”
그는 검은 액체를 찍어 혀끝에 대보았다. 요귀의 독액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한참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물에 푹 젖은 그대로 방향을 틀었다. 지극히 무표정한 얼굴은 방금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변변한 표정이 없었다.
기 도령. 사람들은 그를 그렇게 불렀다. ‘그’는 그 이름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거, 거기 뉘시오?”
어둑한 밤중에 신당에 찾아드니, 아기보살이 놀라 물었다.
“오늘 영업은 끝났소만.”
느닷없이 들이닥친 괴인에 아기보살이 겁을 집어먹고 뒷걸음질 쳤다. 피둥한 젖살을 달고 걸쭉한 사내 목소리라. 도령이 입술 끝을 비틀며 허리를 숙였다.
“너는 알고 있지?”
“너, 연등제 때 그, 그…….”
“버들이한테 무얼 봤지 않아. 나 때문에 까무러친 것만은 아닐테고, 응?”
“저, 저리 가! 다가오지 마! 히, 끅……!”
사내의 등 뒤로 검은 기운이 일렁이자 아기보살은 실신하기 직전에 다다랐다. 궁지에 몰린 아이가 울기 위해 입을 한껏 벌렸으나 멱살이 잡히는 것이 먼저였다.
“실성한 혀부터 도려낼까.”
“잠깐, 잠깐! 원하는 게 무엇이오! 말만 하면 들어줄 터니 이것 좀 놓고 얘기하시오!”
사내에게서 거무튀튀한 악기가 뿜어져 나올 때부터, 아기보살은 투항만이 답임을 깨달았다. 사내가 사방으로 뿌리는 요기는 일개 잡귀가 감당할 만한 수준이 못 되었다.
아이 안에 숨어 있던 귀신은 숨을 꺽꺽대며 몸을 버리고 떠날 기회만을 노렸다.
“버들이한테서 무얼 봤는지 고해.”
“조, 조상신! 그 애의 몸에 조상신이 붙어 있는 걸 봤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