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연등제 당일.
도령은 평소보다 수수한 차림새를 하고 나타났다. 평범한 복장이긴 하나 저 흰 달걀 같은 얼굴을 까놓고 다녔다간 가는 길목마다 유성처럼 이목이 쏟아질 테니 암만 봐도 복면을 쓰길 잘했다.
이마에 삐딱이 둘러맨 띠와 허리에 대강 걸친 요대가 유일한 흠이었다. 모로 보나 훤칠한 허우대인데 살면서 제대로 된 양갓집 예절을 교육받을 틈이 없었기 때문일까.
“그렇게 매는 것이 아니지요.”
나는 갸웃하는 도령의 등 뒤로 돌아가 길이도 짝도 다른 요대를 바로 묶어 주었다. 매무새를 바로잡아 줄 동안 그는 기분이 좋은지 얌전히 서 있었다.
연등제는 초저녁부터가 백미였다. 장터의 규모는 크지 않았으나 좁은 골목마다 등롱을 줄줄이 매달아 두었고, 각양각색의 꽃 모양 등잔이 축포처럼 하늘을 수놓았다.
해가 완전히 지면 소루강 하류에서부터 마을을 관통하는 길을 작은 수레가 돈다. 물론 그 수레에도 반딧불을 채운 화사한 등이 주렁주렁 걸려 있고, 수레 위에는 거뭇한 돌을 깎아 만든 신상을 볼 수 있었다.
소루강 신을 형상화한 물고기 석상.
잘그락, 잘그락, 찰랑, 찰랑. 함께 매달아 둔 수천 개의 방울이 바람을 따라 일시에 부딪힌다. 관등하던 사람들은 제 앞으로 수레가 지나가면 석상을 향해 합장했다.
“뭐야?”
“앞에서 나눠 주던데요.”
행사가 시작되는 길목 입구에서 나눠 주는 주머니 안에 쌀가루를 솔솔 뿌린 느티떡과 소금에 볶은 콩이 한 주먹씩 들어 있었다. 우리는 그걸 먹으면서 돌아다녔다.
“도령, 저기 보세요.”
구름다리가 뜬 연못에는 이달 성인이 되거나 탄생일을 맞은 아이들을 위한 등롱제가 한창이었다. 그들의 등은 더 크고, 화려하게 꾸며 특별함이 돋보였다. 한 명씩 차례로 나와 이름과 소원을 새긴 천등(天燈)을 하늘 멀리 날려 보내는 중이었다.
빛 조각이 흩뿌려진 도령의 얼굴이 내 시야에 담겼다. 생전 처음 보는 표정으로, 그는 오색의 하늘을 지켜보고 있었다. 긴 속눈썹에 걸린 아름다운 밤의 귀퉁이. 콧잔등에 희게 내려앉은 반달.
수십 개의 염원이 날아오른 밤 풍경은 내가 무릿매골을 떠난 뒤에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만한 장관인 것을. 높이 쳐든 그의 눈은 왜 이리 허해 보이는지 모르겠다. 야밤이라 감성이 찼나.
나는 헛기침을 하고 고개를 돌렸다.
“도령은 연등제가 처음이시겠네요.”
아무 말이나 내뱉고 보니 한발 늦은 깨달음이 찾아왔다.
“그러고 보니 도령도 곧 성인식을 할 텐데. 탄생일이 언제입니까?”
“칠석.”
“그렇다면 곧 아닙니까?”
저기 모인 애들은 다 7월에 태어난 애들이다.
“나는 호적에 올라가 있질 않아서. 등롱에 써 붙일 이름도 없고.”
나는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덜 부순 콩 쪼가리를 급히 삼킨 나머지 사레가 걸렸다. 매섭게 기침을 뱉고 입술을 닦고 있으니 도령이 내 등을 두들겨 주었다.
계속 도령으로만 불러 대느라 이름 같은 건 생각도 못 했다. 이제 병도 나았겠다, 어련히 부모에게 이름을 받고 잘 사는 줄 알았는데.
“그럼…… 글방 사람들은 도령을 어찌 부릅니까?”
물었더니, 대답 대신 낮게 어깨를 흔들며 이상한 소리로 웃었다. 구름다리 아래의 맑은 수면 위로 기괴하게 흔들리는 도령의 모습이 비치더니 어느 순간 웃음이 뚝 끊겼다.
“더 볼 것도 없군. 집으로 가 이만 쉬어야겠어.”
“도령, 잠깐만요. 예서 잠시만 기다리세요.”
나는 도령이 붙잡기 전에 냅다 장터로 뛰어갔다. 매대를 뒤져 적당히 값나가는 등롱 하나, 소원 적을 종이까지 사느라 얼마 없는 용전까지 모두 털었다.
6월 한 달 동안 여기저기 끌려가서 뼛골이 빠지도록 일을 하였더니 비싼 건 힘들지만 자그마한 연등 하나는 사 줄 여유가 있었다. 무릿매골 제일가는 거부의 아들이 쓸 성인식 등잔치고는 한없이 초라했지만.
등 안에 푸른 불씨를 담았다. 매콤한 향내가 옹골진 연꽃 안에서부터 호르르 올라온다.
“뭐 하러 이런 걸 사 와?”
숨을 고르며 도령에게 건네주자, 그가 오지랖이라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받지 않으려는 손을 억지로 붙잡아 부득부득 등롱을 쥐여 주었다.
“소원 빌어야지요.”
“그런 거 없어.”
“천등이 아니라서 하늘로 날려 보내진 못하겠지만, 강가로 띄워 보내면 되지요.”
“됐다니까.”
“그럼 계속 청승을 떨으시겠다?”
저렇게 하고 싶어 하면서. 시선이 내도록 팔각정에 꽂혀 있었으면서. 뒷말을 간신히 삼켰다.
도령은 무표정하게 날 쏘아보다가, 연꽃을 띄운 강으로 자박, 자박. 내키지 않은 걸음을 옮긴다. 일렁이는 푸른 불꽃이 도령의 턱 아래로 짙은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는 내게서 건네받은 종이 쪼가리에 무언가를 깨작깨작 적기 시작했다.
“빌 소원 없담서 오래도 쓰시네. 무얼 빌었습니까?”
은근슬쩍 물었으나 도령은 뭘 그런 걸 물어보냐며 새치름하게 고갤 돌렸다.
곧 연등이 소원을 싣고 강물을 따라 흘러갔다. 저 끝이 어디에 닿을지 모르겠으나 도령의 것과 한날한시에 띄워진 연등들이 몸을 붙였다 떼었다 나란히 떠내려가는 걸 보니 가는 길은 외롭지 않겠다.
“도령, 아까 받은 콩 남은 거 있지요?”
“응.”
때마침 마을을 돌던 화려한 수레가 우리 앞을 지나갔다. 수레는 중간중간 멈춰서 봉납물을 받았는데, 돈 있는 자는 엽전을 내고, 없으면 없는 대로 골목 입구에서 받은 콩을 넣고 저 끔찍스럽게 생긴 물고기 신에게 감사 인사를 올리는 식이었다.
솔직히 사람 잡아먹는 신에게 콩 한 쪽도 주기 아까웠지만 이렇게 앞을 지나가는데 무시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싫은 내색을 숨기고 소금 볶은 콩을 물고기 입에 던지려는데. 어째 옆통수가 따끔거렸다.
“사람을 잡아먹는 신이라며 싫어했잖아. 한데 공물을 바치고 평안을 빌어?”
향긋한 숨이 귓가로 쏟아져 내렸다. 돌아보니 긴 소맷자락을 입가에 댄 도령이 내가 하는 짓을 지켜보며 내 어깨에 턱을 얹고 있는 게 아닌가. 솜털이 다 일어날 만큼 놀랐지만 내색을 삼갔다.
“왜?”
“그런 말, 뭇매 얻어맞기 십상이니 다른 곳에서는 하지 마세요.”
“어째서?”
“사람들은 인신 공희에 대해 잘 모릅니다. 혹은 알고도 모른 체하거나 잊었겠지요. 염원을 귀담아 준다는 전설 하나를 믿고 지금껏 소루강 신을 모시는 것이니까요. 입에 담기도 끔찍하고 부끄러운 악습을 구태여 저들끼리 떠들고 다니겠습니까? 없는 듯 잊는 것이지. 그리하여 저들이 믿고 싶은 부분만 남게 되는 겁니다.”
도령이 반질반질한 눈을 깜빡였다.
“그것도 신이라고, 참. 실상은 신일지 요귀일지 알게 무업니까?”
뱉어 놓고 뒤늦은 후회가 찾아왔다. 도령이 여타 사람들과 다르게 소루강 전설에 현혹되지 않은 듯하여 주제넘게 입을 놀렸나. 결국엔 그도 이곳 사람인 것을. 그것도 누구보다 소루강 신을 신봉하는 기씨 대감의 아들인 것을.
“그래, 알 게 뭐야. 또 요귀면 어떻고?”
한데 도령의 입이 헤벌쭉 벌어져 있었다. 갑자기 왜 저런다. 저런 모습을 보면 매병 후유증이 남았구나 싶기도 하고.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등 뒤로 섬뜩한 기운이 일렁였다. 다급히 뒤를 돌아보니 음험한 시선이 도령의 발뒤꿈치까지 길게 뻗어 있었다.
접때 쫓아내었던, 도령의 몸을 먹으려는 그 요귀인가. 하면 왜 공격하지 않고 숨어서 지켜보고만 있지. 간장이 더 쫄깃하게 오그라붙어야 씹는 맛이 있다 이건가.
그리 생각하니 뒤통수로 사정없이 긁히는 시선이 오싹했다. 불안감에 그의 손목을 살짝 쥘 때였다.
“저건 뭐지?”
도령이 유달리 크고 화려한 가마를 검지로 짚었다. 그것은 행렬을 따라 우리 앞을 이동하는 중이었다.
“아기보살이에요. 진짜 아기일 줄은 몰랐지만.”
붉은 천이 달린 가마 안에는 피둥피둥 살찐 다섯 살짜리 남자아이가 타고 있었다. 살만 쪘지 눈이 퀭하니 수척하다.
“고작 다섯 살 난 아이의 몸에다가 새타니처럼 귀신을 받는 것이랍니다. 참 몹쓸 짓이지요. 죽지도 못하고, 사지는 의지 없이 조종당하고……. 아이만 불쌍하게 되었어요.”
그때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었다. 사족을 미친 듯이 떨면서 경기를 일으키니, 가마꾼들도 구경꾼들도 놀라 까무러칠 정도였다.
“아이고 보살님, 보살님! 왜 이러시어요!”
선두에 선 무당이 달려와 아이를 달래도 그칠 기미가 없었다. 한데 아이의 시선이 가리키는 방향이 묘했다. 무고한 도령을 힐끔대며 방울처럼 떨고 있었다. 혹 아까의 음충한 기척이 원인인가.
“도령, 이만 집에 갑시다.”
왜인지 모르게 기분이 나빴다. 사람들의 관심도 점점 한 곳으로 모아지고 있었다. 옆에서 아이와 눈싸움하던 도령이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버들아, 너도 보여?”
“예?”
붉은 입술이 쩍 갈라지며 웃는다.
“저 애가 무얼 보고 떠는지, 너도 보이느냔 말이야.”
그는 뜻 모를 소리를 중얼이더니 정녕 미친 사람처럼 킬킬대며 주위의 이목을 끌고 있었다. 머리를 한 대 치고서라도 제정신이 시급했다.
사람들이 우릴 보며 손가락질할 즈음, 나는 이미 그를 잡아끌고 도망친 뒤였다.
이게 다 도령 몸에 붙은 요귀 탓이다. 그것들이 질기게도 사냥감의 냄새를 따라다니는 통에 아기보살 눈에도 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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