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이,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아이고, 대감님.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일이랍니까. 소루강 신이 지켜 주시는 무릿매골에 요귀라니요!”
이장을 선두로 대문 바깥에 밀려나 있던 사람들이 콩나물시루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한쪽은 기 대감을, 다른 쪽은 어머니를 부축했다.
나는 난리 법석을 등진 채 아까 도령의 전각에서 보았던 이상한 것을 떠올리곤 그리로 달려갔다. 거기에서 요력이 미미하게 느껴진 탓이다.
‘설마 아니겠지.’
“도령!”
그곳만 백화난만하였다. 마치 다른 공간으로 발을 디딘 것처럼, 어수선한 난리 통 속에 홀로만 늦봄의 경치를 찬연히도 뽐내고 있었다.
화엽이 핏자국처럼 낭자한 대청마루에, 그 연분홍색 구름다리 같은 곳에, 자색 도포를 걸친 도령이 강에 띄워진 나룻배처럼 사붓이 누워 있었다.
그는 긴 속눈썹을 내리깔고 미동이 없었다. 무엇이 뺨을 긁고 지나갔는지 창백한 볼에 피가 맺혀 있었고, 주위로는 아까와 다른 요귀들이 발톱을 세우며 침을 삼키는 중이었다.
“도령, 정신 좀 차려 보시오!”
힘없는 숨소리는 날개 부러진 새처럼 생기도 역동도 없어 나를 더럭 겁먹게 했다. 주변에 떨어진 굵직한 조각을 잡았다. 그 하찮은 무기로 벌레처럼 기어 오는 요귀의 어깨를 밀어내고 이마를 찍었다.
요귀의 목덜미에 깊이 쑤셔 넣은 기와 조각을 거칠게 빼자 검은 피가 쏟아지며 머리통이 덜렁덜렁 흔들렸다. 징그럽게 웃는 얼굴이 툭, 떨어져 발치를 구르니 차마 볼 수 없어 질끈 눈을 감았다.
“으음…….”
“정신이 드십니까?”
비실거리는 소리에 다급히 눈길을 틀었다. 흰 가지처럼 뻗어 온 섬섬옥수가 나의 발뒤꿈치를 살며시 더듬고 있었다. 나는 무언가를 애타게 찾는 것처럼 흐느적대는 도령의 손을 얼른 잡아 주었다.
도령의 감긴 눈꼬리가 초롱꽃처럼 벌어졌다. 작약의 색을 묻힌 입술과 감파란 눈동자. 그와 대비되는 흰 피부가 어스름한 달을 떠오르게 하는 사내였다. 상황을 잊은 내 눈이 낯선 얼굴 앞에서 잠깐 굳었다.
“다친 곳이 없어 다행입니다.”
사내가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그 반달 진 모양새가 서화에서 보던 것 이상으로 요요해 나도 모르게 한가로이 감탄이나 뱉을 뻔했다.
“위험하니 도령께서는 안으로 피신해 꼼짝 말고 계세요.”
“너는?”
기절하다 깬 도령은 사태 파악이 느렸다. 이 상황을 무슨 재미난 놀이로 착각하는지 호기심을 갖고 주위를 유유히 둘러보기까지 한다.
“요귀가 우리를 잡아먹으려 하고 있어요.”
“같이 숨자.”
마치 숨바꼭질이라도 하는 양, 손을 내밀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저것들은 사특한 괴물입니다. 내 한 몸 구제할 순 있으나, 아직 수련이 부족해 도령까지 보호할 여력이…….”
그때 머리를 잃었던 새끼 요귀가 기세를 회복하고 이제는 세 마리가 되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이판사판. 나는 아까 무의식적으로 무언가를 해낸 나를 믿어 보기로 했다. 어머니를 보호하고자 요귀에게 목검을 던진 순간, 그 날아간 힘은 온전히 내 완력이라 할 수 없었고, 미약하지만 내 팔을 떠미는 바람의 인도를 느꼈다.
지키고 싶은 게 있다면 힘을 얹어 주겠다는 듯이 신내림을 거부한 나를 도왔다. 어떻게 되어 먹은 상황인지 모르겠지만 도와준다니 해 보는 수밖에.
“잠시만 비켜 계세요.”
굴러다니는 뾰족한 나무판자를 집었다. 그리고 공중으로 뜬 그림자를 향해 그것을 검처럼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강물에 던지면 뜨고 말 나뭇조각의 중량이 아니었다. 아까처럼 묵직한 바람이 팔을 감싸고 나무와 이어진 내 손등을 지탱하는 것이 느껴졌다. 던져야 할 방향을 알려 주지는 않았으나 코앞까지 달려든 새끼 요귀들의 머리뼈를 부술 정도의 위력은 내었다.
콰앙!
저질러 놓고도 어안이 벙벙하다 못해 의심스런 광경이었다. 내가 던진 것이 판자인지 창칼인지. 나뭇조각은 요귀들의 몸뚱어리를 무작하게 뚫었고, 그것은 두 번 부활하지 못하고 공중에서 분해되었다.
살점 하나 남지 않은 완전한 소멸은 나의 의지라기보다 내 오른팔을 제멋대로 쥐락펴락한 신의 뜻이었다. 한 번 휘둘렀을 뿐인데 팔 전체가 덜덜 떨렸다.
“와.”
짝, 짝.
어설프게 손바닥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똑바로 자리에 앉은 도령이 몹시도 진귀한 것을 보듯 입까지 살짝 벌리고 웃고 있었다.
감탄하며 내 소행을 구경하다가, 손을 뻗어 내 뺨에 붙은 것을 조심스럽게 떼어 주었다. 꽃잎인 줄 알았는데, 언제부터 모여들었는지 모를 붉은 나비였다.
“방금 뭐야?”
“들어가랬는데 여태 지켜보고 계셨습니까? 뺨에 그 핏자국은 또 어쩌다가…….”
“모르겠어. 어디에 긁혔나 봐.”
“요귀 짓이라면 당장 치료해야 해요. 놔두면 독이 곪으니까.”
그는 꼭 제 몸에 난 상처가 아닌 것처럼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답답한 나머지 허리춤에 차고 있던 동그란 주머니를 끌러 건넸다.
“우선 이 약초를 환부에 올리세요.”
그는 자신이 사로잡은 붉은 나비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저대로 두면 치료는커녕 내도록 누워 감상에 여념이 없겠다.
나는 직접 약초를 올려 주고자 도령의 어깨를 바로 일으켜 툇마루에 앉혔다. 자세히 보니 뺨에도, 목덜미 아래에도 날카로운 파편에 찔린 듯한 상처가 드문드문 나 있어서, 양해를 구하고 옷깃을 조금 벌렸다.
“그냥 제가 이 자리에서 약초를 찧어 드릴 테니 깨끗한 면포가 있거든 좀 주세요. 상처는 제때 치료해야 탈이 안 나니까요.”
“네가 이 나비들 불렀어?”
의지 잃은 사람처럼 벽에 기대 앉혀져, 내가 쇄골까지 목깃을 들추든 말든 그의 표정은 불편한 기색 없이 맑았다.
“이제는 대놓고 보여 주기로 한 거야?”
“뜬금없이 무슨 소릴, 가만히 있어 보세요. 기껏 올려놨더니! 그리 움직이시면 약초가 다 흘러내리잖습니까?”
나비 한 마리가 마치 어여삐 여겨 달라며 애교를 부리듯 내 콧잔등에 앉았다가, 손사래 치니 도로 뺨으로 옮겨가며 주변을 날아다녔다.
도령의 손이 천천히 그리로 뻗어지고, 연약한 나비가 순식간에 잡아채였다. 매섭게 파들거리던 날개는 곧 내 눈앞에서 물 먹은 종이처럼 부드러이 찢겨 나갔다.
“역시 무당의 아들은 다르구나.”
도령은 눈을 휘며 손에 묻은 날개 부스러기를 털어 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행동에 위화감이라고는 조금도 없어, 순간 내가 잘못 본 줄로 착각했다.
“너도 다쳤지 않아.”
멍하니 얼어붙은 나를 해사한 말씨가 깨웠다. 부르튼 살갗 위로 냉랭한 감촉이 닿아 있었다. 걱정스러운 시선이 한 번. 이윽고 천천히 손을 움직여 무언가를 지워 내듯 내 뺨을 엄지로 슥슥 문질렀다.
뺨에 피가 묻은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그는 내 볼에 묻은 핏자국을 조심스럽게 닦아 낸 뒤 다른 쪽 뺨으로 옮겨가 같은 짓을 반복하였다.
“이거 봐. 너도 다쳤지. 그렇지.”
“아, 조금…….”
수련과 잡역을 겸하느라 바깥바람에 시달린 내 피부는 부드러워질 틈이 없었다. 그와는 정반대로 사내의 손은 비단보다 곱고, 옥석처럼 차가웠다.
나는 어쩐지 조금 민망해져, 요귀의 발톱이 할퀴고 지나간 자리를 대수롭지 않게 소맷자락으로 훔쳤다.
“별거 아닙니다.”
“그리고 여기.”
자못 심각한 눈길이 이번에는 내 목 뒤로 넘어갔다. 옷깃을 들춰 보니 각다귀의 흔적처럼 붉은 반점이 두 개 찍혀 있었다.
“이런 것쯤이야 금방 치료할 수 있으니 염려치 마세요.”
긴장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니, 이번에는 팔다리가 풀렸다. 긴장 풀린 손발이 제멋대로 떨었다. 나는 체면을 잊고 널브러졌고, 도령은 그런 나를 물끄러미 구경하다 부엌으로 들어가 작은 대야를 가져왔다.
차가운 물수건이 내 이마를 훑었다. 하늘이 보여야 할 자리에 혼을 쏙 빼놓는 미려한 사내의 얼굴이 드리워졌다. 상당히 가까운 거리라, 나는 옆으로 눈길을 틀었다.
“이제 되었어요.”
도령은 내 눈코입이 물기로 흥건해질 때까지 지칠 줄 모르고 물수건으로 문대다가 내가 한 소리 하자 떨어져 나갔다. 그러더니 이제는 마른 면포를 가져와 그릇 닦듯 정성껏 닦기 시작했다.
“어차피 집에 가면 다시 소독해야 할 텐데 번거롭게…….”
“가만있어 봐.”
얼굴을 훑는 손길이 부드럽고 세심했다. 코앞을 배회하는 얼굴은 옥으로 깎은 난처럼 곱고 섬세했다. 입은 부드럽게 웃는 데 비해 눈은 차갑게 굳어 있다. 따스한 건지, 냉랭한 건지 감이 잡히지 않는 묘한 인상.
얼결에 그의 무릎을 베게 된 나는 도령의 나붓한 손길이 얼굴 이곳저곳을 문지르고 쓸 동안 바짝 숨을 참고 있어야만 했다.
* * *
하루가 어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몸은 녹록지 않은데 정신은 뚜렷하고 머릿속에 든 잡생각은 여울처럼 넘실거리니.
도령의 손끝이 닿은 뺨은 미적지근하니 식어 버렸다. 나는 먹빛으로 은은한 구름을 멀거니 보았다. 그 구름이 모여 누군가의 얼굴이 되고 빠르게 흩어져 버린다.
난생처음 눈앞에 오롯이 나타난 도령은 손끝부터 발끝까지 모난 게 없는 옥판처럼 고운 사내였다. 가까이에서 시선을 맞대는 바람에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인상만 보면 장난치길 좋아하는 어린 한량인데, 눈매는 범처럼 또렷하고 매서운 구석이 있었다. 내려다보는 시선은 강물의 색을 담고 있었다. 어둡고 잔잔하고 한없이 깊은.
서늘한 얼굴로 부드러운 몸짓을 보였다. 내가 도령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할 수 있는 건 귀신도 홀릴 미색의 사내가 몸 곳곳을 찌르면서 ‘여기는? 여기는 어떠해.’ 물을 때마다 ‘예, 아니요’ 답하는 게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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