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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10/86)

10화

그날 나는 어머니께 된통 깨졌다. 이 시간까지 장터를 쏘다녔냐며, 윤후에게, 난희에게, 아라에게 혼이 빠져라 물어보고 다녔다며 겁대가리 상실한 년 소리를 들었다.

내 얼굴에 덕지덕지 붙은 상처에 대해선 ‘칠칠치 못하게 자알하는 짓이다!’라며 등짝을 아프도록 세게 후려치셨다. 나는 벌로 저녁을 굶게 되었다.

이부자리 위, 차갑게 돌아눕는 등을 보면서 나는 쏘아붙였다.

“어머닌 나 안 사랑하지?”

“쓸데없는 소리.”

“한데 왜 다쳤냐, 혹 누구랑 싸웠느냐, 그런 걸 한 번을 물어 준 적이 없어요, 어째.”

나는 나대로 서운했고,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구르고 다니는 딸년 때문에 성이 나 있었다. 비단 이번 일뿐일까. 오늘 같은 날이면 나는 잠 들기 전 허공에 대고 묻는 것이다.

어머니가 나를 사랑하실까. 버릴 수 없어 억지로 끼고 사는 걸까. 한 번도 사랑 비슷한 말을 들은 적 없단 걸 그 밤에 깨달았다.

“또 대답 안 하시지.”

“시끄럽고 잠이나 자!”

배고 등이고 허벅지고, 대장간 놈에게 얻어맞은 곳보다 한 대 맞은 등이 열 배는 더 아팠다. 왜 이제 와서 눈물이 핑 돌 만큼 서러운 건지.

주린 배를 도닥이며 억지로 눈 붙이던 그 새벽은 유독 길었다.

* * *

바야흐로 제사의 마지막 날이었다. 무릿매골의 모든 이들은 참석할 의무가 있었기에 나도 제사가 치러지는 강가로 터벅터벅 향하던 때였다.

길모퉁이에서 목검을 든 윤후와 만났다. 어제 내가 버린 그 목검을 사내가 전해 주라고 해서 직접 찾아왔단다. 의욕을 잃은 내게는 그다지 쓸모없는 것이었으나 여기까지 와서 집으로 돌아갈 순 없어서 짐처럼 허리에 찼다.

“생각 있으면 찾아오라고 하셔.”

내 기세에서 진심을 읽었다며 제대로 알려 주겠다나, 뭐라나. 물론 내가 그 사내를 찾을 일 따위는 없을 것이었다. 윤후는 어제 일로 할 말이 많은 듯 뭉그적댔으나 나는 갈 길이 바빠 먼저 떠났다.

이번 제사에서 무당인 어머니는 중요한 위치를 꿰찼다. 새벽부터 집을 나섰고, 나는 어머니가 두고 간 제의 도구를 들고 뒤따르는데 마침 기씨 댁 굿해 주느라 빠진 물건이 있어서 그 집부터 들러야 했다.

조용한 대문간 앞에 걸음을 세웠다. 굳건히 닫혀 있던 대문이 웬일로 빼꼼 열려 있었다.

“벌써 비복들 끌고 상 차리러 가셨나.”

대감은 물론 그 많던 종들까지 싹 자취를 감추고 썰렁한 마당이 몹시 낯설었다. 마당 어귀에 행랑처럼 쓸쓸히 붙은 도령의 전각은 귀신이라도 들린 것처럼 으스스하였다.

하물며 주전부리를 이고 종종걸음치는 흔한 계집종도 간데없고, 돌아보는 곳마다 사람 냄새 없이 살풍경하니. 비끗 열린 나무 문은 푹푹 찌는 열기만 뱉는데, 순간 집을 잘못 찾아왔나 착각이 들 정도였다.

기이하리만치 고요하다. 나는 부러 바작바작 신발을 끌며 요란스럽게 걸었다.

‘이리 조용할 수가 있나.’

바스락.

소리가 들렸다. 못에 둘러싸인 누각 쪽. 바람을 타고 귀로 스며든 소리였다.

화사한 꽃밭 정중앙에 말라비틀어진 나무처럼 생긴 것이 눈 비비고 봤더니 대감이었다. 어깨를 구부정하게 말고 뒷짐 진 채, 하염없이 위만 올려다보는데 그 눈빛이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괴괴했다.

“대감님, 예서 뭐 하십니까?”

제단 차리러 가신 게 아니었나. 정신이 빠져 하늘을 올려다보는 노인을 소리 높여 부를 때였다. 내 눈에도 나뭇가지 위에 일렁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악의로 가득 찬 불투명한 검은 연기.

빈 가지가 매섭게 떨리기 시작했다.

뚜득.

이번엔 굵다란 나무 밑동이 불길한 소리를 내었다. 자라처럼 목을 내밀고 침만 흘리는 노인은 제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자각할 정신도 팽개친 것 같았다.

“대감님!”

달려가, 팔을 내뻗어 대감을 밀쳤다. 어딘가에 묶여 있던 듯한 바람이 한꺼번에 불어 닥친 건 그때였다.

노인의 몸이 바람에 쓸려 가고, 우람한 나무의 허리가 벼락을 맞은 것처럼 두 동강 나 버렸다. 땅이 패이고 짙은 흙먼지가 올라왔다.

나는 그 정신없는 틈에서 늘어진 대감의 가슴에 귀를 대 보고 어깨도 흔들어 보았다.

“대감님, 정신 차려 보세요!”

벼락에 맞은 것도, 도끼로 내리찍힌 것도 아닌데 멀쩡한 나무가 느닷없이 부러져 사람을 덮쳤다. 일전에 이러한 기현상을 본 바 있었다. 나무를 건드린 것들은 요물 짓이 분명했다.

내 안색이 하얘졌다. 좌우지간 인심 좋기로 자자한 대감에게 요귀가 붙는 이유가 무어란 말인가?

나는 대감을 뒤로 밀치고 높은 가지 위에 앉은 네댓 마리의 새끼 요귀들을 살폈다. 빌어먹게도 다섯 살 아이의 형체였다. 눈은 시뻘겋고, 그림자처럼 까만 형체는 내 허리춤에도 닿지 않는 키였으나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영락없는 어린애였다.

사람 흉내를 내는 저딴 것이 요귀라니.

“사, 살려…… 그만 괴롭, 흐, 저리 가. 자, 잘못, 악!”

엎어진 대감이 흐느꼈다. 한참 전부터 제정신이 아닌 인간이다. 나는 그 절박한 호소를 알아들을 길이 없었고, 의아할 틈도 없었다. 천진한 아이처럼 저들끼리 귀엣말을 하며 꽃봉오리 같은 웃음을 터뜨리던 요귀들이 돌연 수캐처럼 이빨을 드러내고 달려든 탓이다.

그악하고 흉물스런 외관에 노인의 눈이 기어코 돌아갔다. 내가 달려드는 요귀의 턱주가리를 발로 차고 칼등으로 옆얼굴을 치기도 전에 게거품을 물고 졸도해 버렸다. 심약한 반응에 놀란 내가 급히 달려가 코 밑으로 손가락을 대 보니 다행히 숨은 붙어 있었다.

키들키들.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던 요귀들이 땅으로 꺼지고, 그림자가 되었다가, 삽시간에 열로 불어나 주위를 동그랗게 에워쌌다. 그러고는 저들끼리 손을 맞잡고 먹잇감을 두고 어슬렁대는 짐승처럼 느리게, 느리게 원을 그리며 춤추듯 돌았다.

―죽어.

―주주죽죽어도 싸.

톱날 같은 목소리로 노래인지 곡인지 모를 뒤숭숭한 가락을 불렀다. 소름이 종아리부터 어깨까지 쭉 돋아났다. 무녀 피를 이은 나만이 알아듣는 목소리였고, 놈들도 그걸 아는지 대감 대신 나를 보며 기분 잡치게 웃고 있었다.

―비켜.

―저놈에게서 떠떠떠떨어지란 말야.

―당장 비키지 않으면 너까지 갈기갈기 찢어 죽여 버릴거야.

밖으로 빼어진 요귀의 혀가 아래턱까지 길게 내려왔다. 저 송곳 같은 혀로 내 내장을 뚫고 뼈를 발라내는 데 한치 주저함도 없으리란 걸 알고 있었다.

“대감님, 거기 계십니까!”

절묘한 순간에 대문이 부서졌다. 웅성이는 소음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다.

허둥지둥 돌아온 종들은 하나같이 넋을 빼다 온 표정으로 다급히 달려와 내게 사건의 경위를 물었다. 그러다가 아이 형상을 한 요귀들을 보고 얼굴이 푸르게 죽어서 고함을 지르며 도망치기 바빴다.

“어머니를 모셔 와야겠어요.”

나는 가진 거라곤 보잘것없는 영안뿐인 새끼 무녀에 불과했다. 신내림을 거부했으니 무녀라고 부를 수도 없어 저것들을 상대할 깜냥이 못 되는데, 낌새를 보아하니 놈은 성가신 나부터 족칠 눈빛이었다.

―무무무무무녀.

―무녀다.

귓가에 방울처럼 부딪히는 낭랑한 목소리가 그렇게 섬뜩할 수가 없었다. 열 쌍의 붉은 눈알이 위로, 아래로, 옆으로, 아래로 경기하듯 따그르르 구르다가 짜 맞춘 듯 한곳에 고정되었다.

아이들이 서로서로 잡은 손을 놓았다. 갈퀴처럼 다듬어진 손톱이 땅에 박히더니 열 걸음 앞에서 푹푹, 차례로 치솟으며 가까워졌다. 나는 보잘것없는 목검을 더듬으며 유인하듯 반대 방향으로 달려 나갔다.

‘쫓아와라.’

내가 이래 봬도 다리 둘 달린 망아지 소릴 듣고 살았다. 지쳐 나가떨어지기 전까지 요귀의 술래잡기 상대로는 부족함 없는 달리기 솜씨라 이거다.

그렇게 혼이 빠져라 달릴 때였다. 문득 시야에 요귀보다 기이한 것이 잡혔다.

도령의 전각 앞에 우두커니 뿌리 내린 사내의 뒷모습. 호리호리한 형체는 흙에서 올라온 연무처럼 흐리고, 목은 비스듬히 기울어졌고, 아래로 연남색 천 자락이 하늘하늘 흔들린다.

황급히 눈을 비비고 다시 봤을 때 그것은 홀연히 사라진 뒤였다.

“버들아!”

소식을 듣고 달려온 어머니는 급히 불태운 부적을 공중에 뿌렸다. 시뻘건 불티가 삽시간에 요귀의 살점을 살라먹었다. 이빨을 드러내며 고통에 울부짖는 목소리가 처절했다.

―주주주주죽이지 마.

―살려 줘, 제발!

겉모습만은 다섯 살 사내아이였다. 눈물 범벅된 뺨을 양손으로 덮으며 허리를 숙이고 사람처럼 우는 것이다. 어머니는 자신이 공격이라도 당한 것처럼 고통스럽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우우우리가 불쌍하지도 않아?

―무녀야, 무녀야.

요귀가 틈을 놓치지 않고 어머니의 배를 가르기 위해 두 팔을 펼치고 날아왔다.

나는 쥐고 있던 목검을 있는 힘껏 던졌다. 때려 맞추듯 던진 건데 놀랍게도 정통으로 이마를 맞은 아이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담장 밖까지 나뒹굴었다. 충격을 못 이긴 목검은 열두 조각으로 부러져 버렸고, 어머니는 그 틈에 정신을 다잡으셨다.

묵언으로 신어를 뱉어 악을 쓰는 어린 요귀들을 남김없이 봉했다. 불로 야금야금 태우는 대신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바람으로 육신을 찢어 놓았다.

“어머니.”

어머니는 쓰러져 울고 계셨다. 아까 살려 달라고 울었던 아이처럼 무릎을 꺾고 안쓰럽게 몸을 떨고 있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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