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그 밤엔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바닥에 가지런히 앉은 조약돌을 오라버니의 혼이라도 되는 마냥 날이 샐 때까지 지켜보았다. 괜히 손가락으로 툭툭 긁어 보기도 하면서.
오라버니와 말 한마디 섞어 본 적 없는 나도 이럴진대, 5년을 울고 웃으며 함께 산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녹아내리는 슬픔은 죽는 순간까지 떨칠 수 없을 테다.
어머니께 오라버니의 유품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 빈자리를 메울 수 없을 거라고.
* * *
“그간 배곯을 일은 없었던 모양이지.”
도령은 마당을 가르는 내 신발 끄는 소리를 구별할 줄 알게 되었다. 대청에 오르기도 전에 구멍의 천이 걷히더니, 쌀쌀한 눈이 마중 나왔다.
“그간 무얼 하다 이제 와?”
닷새 만에 본 도령은 기분이 저조해 보였다. 목소리에 묻어난 심술이 예사롭지 않았다.
“일이 많았어요.”
“내게 약을 내오는 것도 네 일이잖아. 그것보다 중한 일이 어디 있지?”
열은 떨쳤다지만 나는 여전히 기운이 없었다. 신병을 앓았을 때의 끔찍스런 환청이 아직도 머릿속에 기어 다니는 듯했다. 앓아누웠다고 해 봤자, 그러냐며 시답잖게 여길 게 뻔하고.
냉대는 어머니 한 사람으로 족했던 나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간 누가 도령께 약을 내왔습니까?”
놈은 내 말을 씹었다. 시비들이 내왔겠거니 하고 또 물었다.
“몸은 좀 어떠신지.”
“…….”
“기침은 가라앉으셨고요.”
내가 자리를 비울 동안 지루함이 독버섯처럼 자라난 도령은 아주 냉정했다.
“무얼 하며 지냈어요. 설마 나를 기다렸습니까?”
그제야 도령의 짙은 눈동자가 스륵 미끄러졌다. 감파란 테두리가 진 표면에 조각달 같은 얼굴이 떠오른다. 내가 한 번 눈을 깜빡이니, 도령이 몹쓸 거라도 본 양 속눈썹을 움찔했다.
“궁금한 게 그리 많으면 진작 나를 찾아왔어야지.”
탐탁잖은 시선이 병으로 여려진 마음을 송곳처럼 찔렀다. 평소라면 시비처럼 넘어가겠는데 몸이 힘드니 마음도 시든 풀떼기 같았다.
“앞으론 언질이라도 주고 가야겠군요.”
“한데 너 얼굴은 왜 그 모양이야.”
내 태도가 못마땅해 성을 내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가린다고 애써 가렸는데 저 귀신같은 사내의 눈은 못 속일 것이었다.
“밤낮 앓은 몰골이네.”
“지나가는 가벼운 감기래요.”
애당초 빈민촌 무당 아들의 면면을 주의 깊게 뜯어보는 이들도 없지만, 길을 오가는 누구도 내 병색을 몰라보았다. 뭐, 알아주길 바란 건 아니었지만…….
‘잠시 쉬었다고 일감을 배로 떠안길 줄은 몰랐지.’
“지금은 멀쩡해요.”
도령은 식은땀을 훑는 나를 물끄러미 보다 시선을 돌려 버렸다. 나는 이까짓 잔병은 문제 될 것도 없다는 양 씩씩하게 대청에 걸터앉아 바느질감을 내려놓았다.
“오늘은 가져온 게 없어요.”
어젯밤 어머니는 이불에 누워 일어나질 못하셨다. 아침도 얼마 남지 않은 찬거리를 이용해 겨우 밥을 해 먹었는데 도령과 나눠 먹을 간식 따위가 있을 리가.
생각해 보니 도둑도 이런 도둑이 없다. 있는 사람이 더한다고, 가진 것 없는 평민의 일용한 양식을 뜯어먹는 양반이라니.
“오늘은…….”
그래도 이렇게 울적할 때에 말이라도 섞을 사람이 있다는 게 어딘가 싶었다.
무얼 들려주어야 이 양반이 좋아할까.
있는 이야기 없는 이야기 다 짜내니 동나는 중이었다. 베갯머리송사 삼아 들은 어머니의 무용담을 마치 내 일처럼 꾸며 말하는 것도 한계였다. 내 가여운 허세는 날이 갈수록 부풀어 소설을 하나 엮을 정도가 되었다.
바느질감을 두드리며 고민하는데, 마침 그럴싸한 주제가 떠올랐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어머니께 들은 얘기인데요. 무릿매골은 강한 신이 지키고 있긴 하지만, 길한 땅은 아니래요.”
“어째서.”
각 마을에는 서낭신이 기거하는데, 무릿매골을 수호하는 신은 단연 소루강의 신이었다. 노다지 강이라 불리는 소루강. 돛만 띄웠다 하면 만선인 것도 이유이나, 기씨 댁이 소루강 물을 팔아 대부호 칭호를 거머쥐었으니 남부끄럽지 않은 별칭이었다.
대감은 뱃놀이하다 소루강에 빠진 아들을 살려 준 것도 강의 신의 안배라 믿었다. 소루강을 향한 기씨 대감의 신봉이 어찌나 각별한지, 매년 거하게 제사를 올릴 정도였다.
그 소루강의 신봉자의 아들 앞에서 할 얘기인지, 본론을 앞세우기 전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오래전 무릿매골에 인신 공양이 성행했다는 걸 아니.’
‘그건 100여 년도 전에 금지된 악랄한 풍습 아닙니까?’
‘산목숨을 바치고 소루강 신께 염원을 빌면 능히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만파 했었다. 그 탓에 어린 자식, 늙은 부모 할 것 없이 오랜 세월 수백이 산 채로 소루강에 던져졌지. 그리하여 누구는 소원을 이뤘다더라 하는 풍문이 돌지만, 인간의 탐욕을 부추기는 신을 섬겨 마땅한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 신의 영기가 아무리 강력하다 해도 말이다.’
나는 지난날 들었던 어머니의 말을 그대로 읊어 주었다.
“그것 말고도 무릿매골이 위험한 이유가 또 있는데요.”
“무언데.”
“산 제물이 된 불쌍한 이들의 원혼이 저 강의 깊이만큼 쌓였다고 합니다. 저 강바닥에서 지독한 악취가 끓는대요. 요귀들은 인간의 원념과 부덕, 악의에서 태어나지 않습니까. 언젠가 이 땅에 강력한 요귀가 탄생한다면, 첫 시발점은 무릿매골이 될 거라고 합니다.”
“그게 언제인데?”
도령은 흥이 서린 눈으로 물었다.
“모릅니다. 충분히 요기를 쌓으면 기어 나오겠지요. 그때 닥칠 재앙이 입에 담기도 버거울 만큼 끔찍하다고 하더랍니다. 영영 물 밑에서 머리 박고 잠이나 잤음 싶은데.”
말을 하면서도 나까지 뒷덜미가 스산해지는 괴담이었다.
악의가 붉을수록 거대한 요귀가 탄생한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100년 전 봉마 전쟁 때 대부분의 상급 요귀는 봉해지거나 소멸하여, 한동안 뜨문뜨문 출몰하는 요귀는 창칼도 닦지 않은 군졸들도 때려잡을 하찮은 수준이었다.
그 불안정한 평화가 머잖아 완전히 침몰하리라는 예견이었다.
“많이 어지러운 때래요.”
나는 도령에게 세상사 어떻게 돌아가는지 좀 알고 살라는 의미로 일러 주었다. 아닌 게 아니라 작금의 세태가 그러했다. 인간의 욕망은 한계를 몰랐고, 금수만도 못한 치들이 나라를 어지럽혔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 날을 겨누고, 모리배들은 감투와 보화를 탐하며 다툼이 끊이질 않아 전운이 넘실댔다. 방방엔 요물이 속출해, 사람이 죽네 마네 한다는 풍문까지 나돌았으니.
이레 전엔 살인 사건도 났다. 집 두 채를 이웃한 주성이 짐짝 같은 언청이 아비를 살해하고 도주한 것이다. 증거 인멸을 위해 살점을 방아에 넣고 갈아 버렸다던가.
인간의 악행이 요귀를 살찌우니, 재수가 더러우면 지금쯤 어디선가 새끼 요귀가 자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런 이야기, 선인마냥 세속에 무심한 도령은 알 리 만무하겠으나.
“도령?”
“듣고 있어.”
내 진지한 이야기를 그는 농담쯤으로 여기는 듯하였다.
나는 내 만담을 좋아하는 도령에게 그간 떠돌던 마을의 특이한 풍습이나 인정머리 없는 이웃들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비록 농을 쳐도 좀처럼 웃지를 않고, 감동을 보태 얘기해도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무감하게 경청만 했지만 늘 내게 귀를 기울이는 것만은 느껴졌다.
그는 내 목소리에, 행동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 느낌은 오랜만이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내게 오롯한 관심을 쏟는 것은.
어느덧 해가 저물고 있었으나 만담은 그칠 줄 모르고 이어졌다. 내가 이리 수다스러운 사람이었나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듣기론 무릿매골에서 갓 태어난 새끼 요귀를 본 사람들도 있다고 하던데, 혹 보셨는지요? 아, 실수를. 그쪽은 방구석에 칩거 중이지요. 잠시 잊었지 뭡니까. 그 좁아터진 데 무어 좋다고 안에서 궁상을 떠는지는 모르겠다만. 여하간 그래서 며칠 전에 이장님 댁에서 회의를 하였는데요. 통금 시간을 정해야 할지 말지에 대하여…….”
나중 가서는 외려 내 지루한 수다를 끈기 있게 참아 주는 도령에게 내가 다 고마울 지경이었다.
* * *
“그러고 보니 너 전에도 비슷한 걸 받았지.”
가까운 곳에서 심드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난희가 또 서신을 보냈길래 기둥 뒤에 숨는다고 숨어서 조용히 읽는 중인데 그걸 도령이 본 모양이었다.
“사모하는 이한테 받았다던가.”
문구멍에 붙은 새까만 눈이 물었다. 나는 급히 연서를 접어 헐렁한 바지 주머니에 욱여넣었다. 이후 아무 일도 없다는 양 걸어갔으나 그는 궁금한 것은 알아낼 때까지 캐야 직성이 풀리는 성정이었다.
“어떤 느낌이야?”
“예?”
“연모를 받는 것은.”
글쎄, 이것이 과연 진실된 연모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사랑 없이 큰 건 나도 매한가지라.
하물며 난희며 아라가 좋아하는 것은 사내아이 버들이지 내 속 알맹이가 아니었다. 그들이 서신에서 질리도록 칭찬하는 것은 복사꽃처럼 고운 얼굴, 또는 자기네 부모님 일감을 도와주어서 고맙다는 인사치레였다.
사실은 자기들이 사내가 아닌 여인을 연모했다는 사실을 알면 아마 날 거들떠도 안 볼 것이 분명한데.
그렇다고 걔네들이 싫은 건 아니었다. 다만 속고 속이는 관계라 내가 불편함을 느낄 뿐.
“모르겠어요.”
“말이 돼? 저 좋다는 서신을 잔뜩 받으면서.”
도령은 읽어 보고 싶다고 말했다. 물론 나는 주지 않았다. 거절에도 굽히지 않고 네가 좋다던 여인들이 어느 댁 누구냐, 나는 연모를 품은 적도, 받아 본 적도 없는데. 무슨 말씨로 애간장을 태울지 궁금하다. 하며 어찌나 귀찮게 들붙는지.
하지만 이 낯부끄러운 것을 절대로 보여 줄 수는 없었다. 도령은 나와 입씨름하다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졌다. 승리한 나는 도령을 버려 두고 전각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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