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5/86)

5화

“어디서 그런 걸 배웠지?”

“어머니께서 호신술로 검을 익히라 하셨습니다. 춤은 나라를 떠돌 때 기녀에게 배운 것이고요.”

“볼 만 하구나.”

만족한 도령이 역으로 그림 같은 미소를 돌려주니 그것이 내게는 퍽 삼삼한 눈요기였다.

“이리 가까이 와 봐.”

그는 검에 집착하는 얼굴로 내게 손짓했다. 가까이 오라는 명령에 나는 애먼 뒤통수만 매만졌다.

검 손잡이가 땀에 절어 있었다. 겨드랑이 아래는 또 어찌나 후텁지근한지. 비록 내 용모가 사내이나 속 알맹이까지 땀내 나는 몸을 고귀한 분께 서슴없이 들이댈 만한 배짱은 없었다.

밀려오는 민망함에 요지부동했다. 도령은 무얼 망설이냐는 듯 재차 손을 팔랑거렸다. 결국 내게서 검을 받아 가고는 이리저리 주의 깊게 살피더니 물었다.

“파마의 문양이네.”

“어찌 아셨습니까?”

목검 손잡이 끝부분에 조그맣게 새겨 두었는데.

“옛적에 본 기억이 있어.”

도령의 스승이라곤 임영뿐이니 그치가 전수한 지식이렷다. 참 별걸 다 알려 주는구나 싶었다. 무속인이 될 것이 아니라면 굳이 배울 필요가 없는 부분이었으니 말이다.

내 재주가 꽤 마음에 들었는지, 도령은 전보다 더 관심을 주었다. 

“네 얘길 해 봐.”

“무슨 얘길 말입니까?”

“어떻게 사는지. 세상 구경을 시켜 준다지 않았어. 나는 궁금해. 사람들이 뭘 먹고, 뭘 입고. 어찌 밥 빌어먹으며 사는지. 그러니 네 이야기를, 바깥사람들의 이야기를 해 달라는 거지.”

정담 한 마디 없는 투박한 관계이던 우리는 점점 대화다운 대화의 물꼬를 텄다.

나는 땀을 훔치며 눈썹을 찌푸렸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 그럼. 특별할 게 있나요. 우리네 서민에게 으리으리한 담쌓고 사는 부잣집 도령의 게으른 삶이 더 흥밋거리랍니다.”

“음.”

“올해는 흉작이지만 어찌저찌 살아갑니다. 도령은 적어도 끼니 걱정할 필요는 없으니 복 받은 게지요.”

“흉작? 처음 듣는 소린데.”

“그러시겠지요.”

세상과 담쌓고 사는 댁이 뭘 알까. 도령은 내가 미끼처럼 던져 주는 바깥세상 이야기를 받아먹으며 귀 기울였다.

“그러니까, 그 흉작이 요귀 탓이란 거지. 너도 본 적이 있나.”

“물론이지요.”

“해서 어떻게 했어. 도망쳤어?”

“도망을 쳤긴 쳤는데요. 난데없이 앞으로 뛰어든 요귀 탓에…….”

도령의 흥미를 붙드는 것은 어쭙잖은 유혹도, 음식도, 향긋한 봄바람도 아닌 세간의 사정, 그리고 나의 이모저모였다.

할 얘기가 떨어지면 종종 주변인 이야기를 돌려가며 해 주었는데, 그 이후 내 친우에 대해서도 자주 물었다. 어쩌다 알게 됐냐며 그 애들도 네 검무를 아느냐는 등, 걔네들과 무얼 하며 노느냐는 등.

그리 궁금하면 나오면 될 텐데 저 좁은 방 밖으로 발가락 하나 뻗질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것이 못내 아쉬웠다.

‘차라리 함께 나와 뛰놀자고 해 볼까.’

한데 내가 감히 양반집 자제에게 흙바닥을 구르자고 할 처지는 아닌 것 같았다. 결국 맥없이 입만 다시다가 다음을 기약했다.

* * *

시간은 봄비처럼 짧게 머물다 떠나갔다. 때는 유록빛 잎사귀가 볕 아래 한들거리는 5월의 끝자락.

“홍사혜.”

내 신내림이 머지않을 때에, 어머니는 나를 잡아 마당 뒤뜰로 끌고 가셨다. 오늘 캐 온 풀과 약재들을 손톱에 풀물이 들도록 다듬고 있던 와중에 난데없이 끌려 나갔다.

“네 나무를 기억하니.”

거기엔 1년 전보다 훌쩍 자란 단풍나무가 심겨 있었다. 어머니께서 풍림을 떠나실 적 내 몫으로 받아 둔 신목이었다.

“이제 곧이구나.”

돌아오는 가을, 나는 신을 받게 된다. 사내 탈을 써도 본질은 못 바꾸니 신내림을 거부하면 필히 내 몸에 탈이 날 거라고 했다.

“신을 받으면 저도 어머니처럼 무녀가 되는 것이지요?”

검무도 출 수 있고, 바람도 부리고, 하여간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온갖 술수를 다 부릴 수 있게 된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데 나를 내려다보는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 냉엄한 시선에 절로 어깨가 말렸다.

“베어라.”

“예?”

어머니는 내 손에 도끼를 쥐여 주셨다.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놀란 나머지 도끼를 떨어뜨려 하마터면 내 발목을 썰 뻔했다.

“네가 신내림을 받을 일도, 무녀가 되는 날도 없을 거야.”

바윗덩이처럼 단호한 목소리. 나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지금껏 무녀가 아닌 내 생을 생각해 본 바가 없는데, 느닷없이 그 길이 옳지 않다니.

어머니가 쫓기듯 내 등을 떠밀어 나무 앞에 데려다 놨다. 내 손에 쥐어진 것은 언젠가 자유롭게 다루리라 기대를 품은 곡도도, 금방울과 불씨 넣은 잿주머니도 아닌, 내 뿌리를 잘라 낼 날카로운 도끼날이었다.

“신병은 나흘만 버티면 가라앉는다. 그 후 떠나자. 아라한에 외국인이 많다던데 그리로 가면 좋겠다. 어쩌면 그곳엔 붉은 머리카락이 흔할지도 모르니.”

아라한. 배를 타고 스무 날을 건너야 한다는 먼 이국 땅.

그 한마디에 저절로 손발이 떨렸다. 어머니가 내 근간을 잘라서라도 행하려는 게 무엇인지 모를 만큼 미숙하지 않다. 강제로 신을 받지 못하게 해 무녀 뿌리를 잘라 내려는 것이다.

아는데도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언젠가 이 나무가 너를 지켜 줄 신이 되어 줄 거라던 어머니의 말씀도 똑똑히 기억났다. 아름다운 단풍이 무르익은 가을, 바람을 타고 찾아올 것이라고.

“어서.”

“…….”

“어서 베지 않고 무얼 해?”

단호한 목소리가 거듭 반복되고 나서야 무거운 도낏자루를 들어 몸이 휘청거리도록 나무를 내리찍었다. 쿵, 쿵. 머리가 다 울렸다. 분명 찍는 건 나뭇동인데 충격은 내 골통으로 쏟아졌다.

내리쬐는 태양 아래에서 힘겹게 도끼질을 반복한 끝에야 신목의 꼿꼿한 허리가 무참히 잘려 나갔다.

쿵, 더러운 흙바닥에 드러누운 나무 옆에 나도 헐떡이며 엎어졌다. 함께 쓰러져 내 도끼질에 죽은 신목을 망연히 보고 있노라니, 어머니의 묵직한 음성이 떨어졌다.

“가을쯤 떠나는 게 좋겠다. 무릿매골은 오래 터를 잡기 좋은 땅이 아니니 가능한 서두르는 편이 좋겠지.”

예상보다 턱없이 이른 출발이었다. 나는 묻지 못하고, 늘 그랬듯 냉랭히 앞서가는 어머니의 뒷모습만 멀거니 바라보았다.

* * *

신병이 덮쳐들었다. 신목을 자른 후 잠이 늘고 몸은 축축 까라지더니만. 밭일을 돕다가 혀를 물고 정신을 잃은 것이 사실 열사병이 아니라 열병 때문이란다. 그리고 그 열병은 신병의 첫 징조라는 걸 추후 알았다.

다음으로 들이닥치듯 찾아온 것은 달갑지 않은 괴상한 환청과 환시였다. 잠에서 깨어나면 검은 아지랑이 같은 것이 허공을 떠다니고, 눈을 감으면 소름 끼치는 이명이 울린다. 때때론 새빨간 실타래 같은 것이 잡아먹을 듯 내 위로 쏟아졌다.

‘……뭐지?’

이 방에는 나밖에 없는데.

정체 모를 온갖 목소리와 싸우던 나는 딱 나흘 만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묵묵히 내 머리에 물수건을 올리고 약을 입가에 넣어 주는 어머니가 덜 깬 정신에 가장 먼저 박혀 들었다.

“깨어났구나.”

혼절해 있다 깨어난 딸을 대하는 투가 심히도 무덤덤해 서운함이 잠깐 들었으나 나는 곧 반듯한 자세로 앉았다. 어머니는 미지근한 물수건을 방바닥에 내려놓고 잠깐 나를 살피다가 서툰 손길로 등을 쓸어 주었다.

“기운을 되찾았으면 나가서 좀 걷자.”

오늘은 죽은 오라버니의 기일이었다. 해마다 빠짐없이 제사를 치르는지라 나도 두들겨 맞은 것처럼 시큰한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겨우 물을 목구멍으로 넘긴 뒤 어머니의 부축을 받으며 햇볕이 무르익은 땅을 밟았다. 침상 신세를 오래 져 엉덩이와 등이 배기고 근육은 물렁하고, 위가 놀랄까 세 끼를 죽으로 때웠더니 그새 몸이 병든 닭보다 못 쓰는 처지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소루강 강둑을 따라 걸었다. 그 끝에 오라버니를 기리는 작은 나무 제단이 있었다. 나는 향을 피우고 음식을 늘어놓는 어머니를 조용히 도왔다. 정가운데에 세워 둘 초상도 없어서, 너른 강만 보고 제를 올려야 했다.

“이거. 네 오라버니가 너 태어나는 날 손목에 묶어 주려고 만든 거다.”

어머니가 내민 것은 붉은색 끈목이었다. 벌매듭이 져 있고, 끝에 오색의 조약돌이 달린 어여쁜 장신구.

“이제야 전하는구나.”

나는 망부석처럼 서서 어머니가 건넨 것을 받아 들었다.

“오라버니가 저를 위해서요?”

“그래.”

본래라면 일찍이 내 것이었을 물건이 열일곱 해를 돌아 내게로 왔다. 왜 지금?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오라버니가 남긴 유품. 속이 먹먹한 것도 같고, 방금 먹은 죽이 체할 듯 울렁이고. 기분이 이상했다.

“뱃속에서 꼬물거리기 전부터 널 몹시 귀애하였으니, 죽어서도 널 지켜 줄 거다.”

아, 어머니는 나의 수호목을 잘라 낸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를 무녀로 만들지 않기 위해 과격한 방법을 썼다는 것에. 이타심이라고 믿었던 이기심을.

그러나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 못 할 것도 아니고, 만일 내가 딸을 두었어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으리란 확신이 없었다.

“해가 떨어지면 잡귀가 모이니 어서 치우자.”

어머니는 손등이 축축해지고 나서야 슬픔을 갈무리했다. 어머니는 제단에서 오라버니의 안식을 빌었고, 나는 슬픔이 얼른 어머니 곁에서 떨어졌으면 하고 빌었다.

가는 동안 반갑지 않은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더니 집 근처에 다다랐을 때는 폭우로 변해 있었다.

저 멀리 포목점에서 막 떼 온 개나리색 비단을 안고 어머니와 뛰어가는 여자애가 보였다. 젖을세라 소중히 품은 연노랑 천도 부럽고, 제 어미와 다정히 빗속을 뛰어가는 모습도 심술이 날 만큼 부러웠다.

좀처럼 하지 않던 헛된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 볼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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