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길쭉한 나무가 시원시원히 썰리더니 순식간에 장작 묶음이 되었다. 나는 그길로 나무를 지고 마을을 순차하러 갔다.
“아이고 잘생긴 버들이, 항상 고마우이.”
이 장작들이 다 어디로 가냐면, 열 묶음을 패면 두 묶음은 우리 집, 나머지 여덟 묶음은 이웃집 마당에 무상으로 배달된다.
내 심보가 기씨 대감처럼 퍼 주길 좋아해서? 우리 집이 넉넉해서?
아니. 이방인인 우리 모녀가 무릿매골에 섞이기 위해서였다.
“버들아, 시간 나면 밭일 좀 거들어 주련. 막손이가 발가락을 접질려서 일손이 부족한디, 응. 버들이처럼 힘센 젊은이가 도와주면 딱이겠어.”
“예, 그럴게요. 아주머니. 언제까지 가면 되어요?”
말라비틀어진 손목 어디를 보아 힘이 세다 보시는지 모르겠다만. 나는 불만은 눌러두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저녁 전까지만 와 주어.”
무릿매골 사람들은 1년 전 이곳에 불현듯 터를 잡은 우리 모녀를 탐탁지 않아 했다. 외지인에 배타적인 습성 탓이었다.
어찌나 배척하는지, 처음 몇 달은 눈칫밥 먹느라 고생했다. 대놓고 흘겨보고 수군대고. 차례를 기다리면 밀치고 새치기하는 아낙이며 영감들이 어머니를 고생시켰다. 품앗이도 없고, 잔칫상은 언감생심 구경도 못 해 보고.
해서 어머니와 나는 무상으로 마을의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왔다. 우리 집 구들엔 늘 바느질감이 탁상 다리만큼 쌓여 있었고, 농사철이 오면 발바닥이 벗겨지도록 이곳저곳 뛰어다녔다.
굿이나 점괘도 봐 주고, 젖먹이 애도 돌봐 주고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그리해서라도 이웃들과 정을 쌓아야지 어쩌겠나. 그게 익숙한지, 이제는 마을 사람들이 대가 없이 요구하고 알겨먹으려 드는 일이 잦아졌지만.
그래도 어머니와 나를 전처럼 가자미눈 뜨고 보질 않으니 다행이었다. 비록 마을 외곽의 빈촌에서 궁상맞게 살고 있으나, 이제 나와 어머니는 당당한 무릿매골 거민 대접을 받으니 말이다.
“부탁한다, 버들아.”
“예, 그럼 해 기울기 전에 들를게요.”
“얼굴도 곱고 착하기도 하지. 아주 1등 신랑감 아니겠어.”
지나가던 아랫집 아낙이 고맙다며 품삯으로 사과 한 알을 건넸다. 팔다 남은 떨이처럼 보였다.
“어느 처자와 혼인할지 참말 궁금해.”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데 혼사는 무슨요.”
“왜. 너도 이제 열일곱이니 선을 봐야 쓰지. 내가 중신아비 노릇은 톡톡히 할 수 있는디. 우리 집 많이 도와줬지 않아. 나는 은혜를 갚는 까치라 이거여.”
이번에는 커다란 암소를 세 마리나 키우는 영감이 서슴없이 등을 치고 지나갔다.
“아하, 그런가요.”
“네 얼굴이면 홀랑 낚아 먹을 계집이 수두룩할 텐데. 그거 아느냐, 연혜가 너 오가는 곳만 풀 방구리마냥 드나드는 거. 보통 정성이 아니라니까, 응.”
영감은 무릿매골에서 소문난 마당발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귀도 밝고, 눈도 밝고.
“혼사 전에 양껏 즐기고 싶단 뜻이여? 나도 젊을 적 힘 좀 써서 이해는 하는데. 해도 임자 있는 부녀자는 건들면 안 돼. 그랬다간 마을에서 쫓겨날 테니까. 알아들어?”
또 입담이 참 저렴하였다.
“참한 새색시로 알아볼 테니 생각 있음 꼭 말하고.”
당장 귀를 씻어 내고 싶었다. 휘두를 아랫도리 같은 것도 없고 그따위 것 수레째 쌓아 줘도 안 가져요, 영감님. 그렇잖아도 한평생 사내로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야 할 생각에 억울하고 답답한데 불구덩이에 섶을 던져 줘도 유분수지.
나는 누런 뻐드렁니를 드러내며 웃는 영감을 무지르고 앞서 걸었다. 어머니만큼 마을 사람들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정떨어진다는 의미가 대강 납득은 갔다.
어머니는 겉으로 싹싹한 척 사람들을 대했으나 실상은 몹시도 싫어했다. 싫어하다 못해 가슴 속에 악다구니를 썩히고 있었다. 요귀보다 사람들을 더 증오했으니 말은 다 했다. 아마 자식을 잃은 뒤부터였을 거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다섯 살 차이 나는 오라버니가 있었는데, 어디서 소문이 난 건지 홍운영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뭇매를 맞고 잡혀갔다고 했다. 고작 다섯 살 어린애를 정신 못 차리게 뺨을 때리고 질질 끌고 가 제물로 바친 거다.
어머니는 당시 나를 잉태 중이셨다. 산달을 앞두어 끌려간 아들을 쫓아 달려가지도 못하고 빗속에서 엎어져 통곡하였다.
그 뒤로 어머니는 슬픔을 명치에 얹어 두고 사셨고, 자식 잃은 충격에 나를 낳고도 돌보지 못하였다. 사람을 구하기 싫다며 무녀도 때려치우고, 어깨에 짊어진 모든 책임을 팽개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까지 남은 생을 아들을 찾는 데 쓰다가 내가 두 돌이 지날 무렵 산길에서 추락사했다.
그것이 친어머니보다 이웃집 손에 큰 날이 잦았던 내가 아는 가족사였다. 이따금씩 나를 원망스럽게 바라보는 어머니 앞에서 나는 늘 죄인이 될 수밖에.
“안 들어가시오?”
정신 차리니 어느덧 까칠한 도령네 대문 앞이었다. 비질을 하던 청지기가 안 들어가고 뭐 하냐는 양 치우듯이 내 쪽으로 먼지를 털었다.
“도령.”
잠깐 숨을 고른 뒤 그를 불렀다. 잠시간 오늘 치 투정을 가늠해 보았다. 이번에도 약사발을 함부로 뒤엎으면 문풍지를 부수는 시늉이라도 내리라.
그는 대답 대신 사그락 소리를 내며 방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오늘은 내 인사를 받아 줄 기분이 안 나는 모양이지. 나도 허공에 대고 지껄이는 대신 시간 낭비 않고 부엌에 가 약부터 달였다.
도령의 전각은 안채와 외따로 떨어져 상을 내오는 종들을 제외하고 오가는 이가 극히 드물었다. 하여 전각에 딸린 쥐 알만 한 부엌에서 누구를 욕하던 듣는 이가 없었다. 이 유일한 숨구멍에서 얼마나 도령을 까댔는지.
부채질하며 끓는 약탕기를 노려볼 때였다.
툭!
후미진 뒤뜰의 싸리문 근처에서 울린 소리였다.
앵두가 막 익어 가는 늦봄인데 감이 떨어질 린 없고. 설마 도둑일까. 대감 댁 보안이 그리 취약하진 않을 성싶다만, 고래 등 같은 기와집에 눈 돌아간 어느 간 큰 도둑놈이 집기라도 훔치려고 숨어들었을 수는 있겠지.
나는 부채를 그대로 쥐고 마당으로 살금살금 건너갔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소리 난 곳에 연분홍 빛깔의 보자기만 달랑 놓여 있었다.
보자기 끝이 바람에 춤추듯 살랑거렸다. 담장 너머로 누가 던지고 간 모양인데. 나는 미심쩍게 부채로 찌르다 문득 스친 생각에 매듭을 끌러 보았다.
거기엔 쫀득한 백설기, 망개잎을 싼 망개떡, 연꽃을 넣은 꽃전까지 온갖 푸짐한 주전부리가 잔뜩이었다. 게다가…….
[어제는 포목점에 들른다더니 왜 안 왔니? 애가 닳아 아주 혼났어, 버들아!]
수신인 불명의 연서는 덤이었다. 농가의 수린인가, 당혜 장수 딸 아라인가. 저 아래 양갓집 규수 난희일 수도 있겠다. 그도 아니면 나랑 눈만 마주치면 도망치던 윤후?
머릿속에 그물처럼 떠오르는 복숭앗빛 얼굴을 뒤로하고 떡 단지를 옆구리에 끼웠다. 때깔이 제법 고운 것이 보통 재료가 아닌 듯하고, 적어도 내가 도령에게 준 것보단 곱절이나 귀해 보였다.
오라, 오늘은 이거다.
“이것 좀 드셔 보시오. 나를 사모하는 이에게서 받은 건데.”
나는 젠체하며 오색찬란한 떡 뭉치를 연꽃처럼 펼쳐 문구멍에 들이밀었다.
“지겹지도 않나 봐.”
도령은 조금의 흥도 서리지 않는 투로 비웃었다.
나는 참을 인을 새겼다. 그의 말마따나 몇 해째 한약이 무용하니 이골이 날만 했다. 하나 그것과 별개로 저 자식이 약사발을 비울 동안 뜨끈한 대청에 죽치고 앉아 시간을 죽여야 하는 나는 무슨 죄지.
사람이 1년간 그 짓을 반복하면 제아무리 성인군자라도 인내심이 바닥치기 마련이다.
“소용없으니 가져가.”
돌아오는 냉소에도 난 아랑곳 않고 힘주어 말했다.
“이 세상에 재밌는 볼거리, 맛 좋은 먹거리가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그걸 모르는 도령이 불쌍합니다.”
“그래서. 얼른 약 퍼먹고 나으란 소리를 하고 싶어 이래?”
“이게 무어냐면, 귀한 연꽃을 따다 고기랑 야채랑 깨를 지져 볶은 연꽃전이란 건데, 아라네만 만들 수 있습니다. 어딜 가도 못 먹는 귀한 거지요. 내가 도령을 위해 특별히 가져온 거랍니다. 성의는 빈 약그릇으로 받지요.”
“아?”
쳐 죽일 입꼬리가 비식거렸다. 가련한 생물을 보는 듯한 시선. 덩달아 내 열의도 찬물을 뒤집어썼다.
“애쓰네.”
탕.
나는 약사발과 떡 단지를 대청에 힘주어 내려놓았다. 어제보다 나은 패기였다. 구멍 틈새로 보이는 도령의 시선은 무엇에도 닿아 있지 않았다. 그러다 웃는 듯 마는 듯 입 끝을 구부리고 물끄러미 나를 건너다보았다.
당차게 뻗은 손이 용기를 잃을 즈음, 하얀 손이 장지문을 젖히고 쑤욱 뻗어 나왔다. 떡은 제치고 약사발만 끌어가는데, 그 뼈마디가 안쓰럽도록 패인 꼴을 보니 괜한 소리를 한 듯해 입이 썼다.
“내일은 과일이라도 가져올 테니 그걸 드세요. 설탕을 뿌려 굳혀 먹는 게 요즘 유행이랍니다.”
“네 마음대로 해.”
받아 드는 척 내던지기라도 할까 봐 긴장했는데. 무슨 심경의 변화인지 그는 고분고분 말을 따랐다. 나는 마루에 기둥처럼 앉아 도령이 약 넘기는 소리를 듣다가, 사위가 어둑해져서야 집으로 향했다.
내 심지가 약한 것인지, 도령의 행동이 별난 것인지. 그렇게 화가 나다가도 말을 멈추고 먹먹한 침묵이 고이면 내가 너무했나 싶은 생각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양심 없는 도령 같으니라고. 하여간 사람이 너무 무르면 안 되는데.
어머니 따라 도망 다닌 세월이 고되어 억척스럽게 보이지만, 내 소갈머리는 사실 연두부처럼 무른 편이었다. 이렇게까지 신경 써야 할 일인가 싶다가도 일단은 모시는 주인이니 챙겨 보자, 수십 번 다짐하는 걸 봐도 답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