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사실 내가 질렸다. 곱게 자란 온실 속 잡초 같은 사내란 참으로 피곤한 종자였다. 나 몰라라 뻗자니 어머니 일거리만 늘어날 듯하여 꼬박꼬박 응했는데, 언제까지 이 짓거리를 해야 하나 싶었다.
“차라리 그만치 썩어나는 돈으로 수도에서 명의를 불러오면 될 텐데요. 잘살잖아요, 그 댁.”
어머니는 대답이 없으셨다. 필히 무언갈 아는 눈치인데 내가 어리다고 귀띔해 주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다가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그 애, 곧 죽을 거란다.”
“예?”
얼마큼 사느냐 물었더니 반년도 못 갈 거란다. 그리 말하는 어머니의 투가 몹시도 냉랭해 두 번 놀랐다.
나는 벙쪘다. 찝찝한 기분은 덤이었다. 어머니 뒤꽁무니 붙어 다니며 도령과 알고 지낸 지 한 해. 미운 정도 못 붙을 사이었으나 마음이 거끌거끌했다.
‘이름도 못 받고 죽을 팔자라니.’
모난 돌은 정으로 두들겨서라도 둥글게 만들어야 한다는 나의 철칙은 기세를 잃었다. 부지불식간 측은지심이 들어 이다음 날엔 잘해 주어야겠다 다짐하고 인심을 발휘해 청밀을 바른 밀떡을 챙겨 갔다. 어머니 몰래 훔쳐 온 제사 음식이었다. 들키면 그날로 내 상이 되겠지.
“이게 무언데.”
“몰래 빼돌린 거. 잡숴 보시라구요.”
붙어 있는 기간이 오죽 기니 종종 말끝이 짧아졌다. 도령도 토막 난 내 예의를 일일이 꼬집지 않았다.
슥, 밀떡 단지를 구멍 앞에 가져다주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오라는 손은 없고 떡은 제자리에 주위로 휑한 바람만 분다. 구첩반상 차려 먹었을 대부호 아들에게 평민의 간식이 어디 가당키나 하겠냐마는. 역시나 놈은 손도 대길 꺼려했다.
나도 성의나 보인 것이지 먹어 주길 기대한 건 아니다. 하지만 정작 입도 안 대는 꼴을 보니 약간 섭해져 입술을 비쭉였다.
“싫으면 버리세요.”
“그런 게 맛있어?”
“꿀을 발랐으니 쓰진 않겠지요.”
어거지로 약초를 씹을 때마다 당과를 찾던 게 떠올라 가져온 건데. 고운 밀로 손수 찧은 정성이 우습게도, 놈은 거지새끼들이 집어 먹는 살점 붙은 뼈다귀 보듯 대놓고 질색했다.
나는 일평생 구경도 못 해 본 귀한 당과만 잡숴서 문양도 색도 없는 밀떡은 시시한 모양이지. 그런데 뒷말이 가관이었다.
“용하다 하여 불렀건만 엽전만 받아먹고 하는 일은 없구나. 이런 것이나 가져다 달라고 내 병을 맡긴 것은 아닐 텐데.”
작일 들었던 서글픈 곡조,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가여운 운명. 해서 잘해 주고 싶었는데 이놈에겐 연민조차 사치였던 것이다.
“주는 약이나 제때 들고 말을 하시지.”
“1년째 달고 사는 약인데 효험은 쥐꼬리만 하나?”
휙 팽당한 밀떡이 마당에 흩어졌다. 꼭 험하게 밟힌 눈송이마냥 죄 터져 모래로 뒤범벅이 되어서는. 저걸 만들어 보겠다고 절구 앞에 바친 나의 시간이 허망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평민이라 양인에게 언성 높일 깜냥이 못 되었다. 하물며 저 이는 아픈 사람이지 않나. 감정이 들쭉날쭉만 하다고 합리화하면, 그래. 어떻게든 이해가 끌어모아졌다.
나는 심호흡하며 마음을 다독였다.
“그 무당도 별것 없구나.”
독 바른 조롱이 귀를 핥아 댔다. 콕콕 쑤시고 차 대도 나는 발언권이 없었다. 참는 수밖에.
“아니야?”
그러고, 까무러칠 뻔했다. 숨을 삼킨 채 나를 빤하게 응시하는 검푸른 눈알과 시선을 맞댔다. 목소리만 흘려주던 도령이, 핏줄 돋은 팔뚝만 간당간당 꺼내던 도령이.
찢어진 구멍에 귀신처럼 붙은 눈이 일견 오싹했다. 히죽, 눈꼬리가 웃었다. 붓꽃처럼 빠진 사늘한 눈매가 나를 가뒀다. 어여쁜 모양새 안에 든 것은 한여름 오한이 일만치 을씨년스러운 눈이었다.
그렇지 않다고, 내 어머니는 실은 수도에서도 모셔 가려고 아우성치는 대단한 귀인이고 애당초 길을 잘못 든 건 너라며, 너는 의원을 찾아가야 한다고 반박해야 하는데. 나는 그만 얼어붙었다. 범 앞에 던져진 당구마냥 쪼그라들고 말았다. 하필 그 순간, 그런 것들이 떠올라서.
입꼬리만 찢어 웃는 기씨 대감, 왁자한 수다는 들리는데 사람 그림자는 없는 장지문이 수십 개, 바깥세상은 어지러운데 파도 파도 재물이 쏟아지는 기씨네 담장 안.
한순간 그런 것들이 저 냉랭한 시선 위로 스친 탓이다. 이상하고 괴이쩍은 양면.
내가 말을 잃자 도령은 눈을 거뒀다.
“장난은 그만두시지요.”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내 반응이 아주 웃기다는 듯 낄낄 배를 잡는 소리가 들렸다.
“도령.”
또 나를 놀렸구나. 하기야 놈이 저리 괴상하게 구는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닌데.
나는 무릎 위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득그득, 고막을 괴롭히는 이 갈리는 웃음은 여전히 환청처럼 넘나들고 있었다. 문골을 갉아먹는 소음은 형체 없이 부유하다 한참 만에 내 귀에서 떨어져 나갔다.
“가, 오늘은 이만 되었으니 이만 가.”
내가 홀린 그 요사한 목소리로, 도령은 축객을 노래했다.
* * *
내 하루의 시작은 새벽 닭보다 일렀다. 아슴푸레한 여명을 눈꺼풀에 주렁주렁 매달고 연무에 힘쓴다.
나는 분명 무녀의 딸이지만, 어머니는 내가 무녀로 살길 원치 않으셨다. 업의 굴레는 당신 하나로 족하다고, 어딜 가서도 내가 풍림 홍운영의 후손이라 떠벌리고 다니지 말라며 발각되는 날은 너 죽고 나 죽는다며 쌍심지를 켰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검을 익혀라. 네 몸을 지켜.’
처음엔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억울했다. 유독 내게 냉정하고 엄하신 어머니라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도 없었다.
내 성격은 어릴 적부터 음전함과는 거리가 멀어 오지랖 넓은 고향 사람들이 ‘저 녀석 시집은 갈는지.’ 하며 나를 놀려 대곤 했었다.
어머니는 나다니길 좋아하는 내 성격도 치를 떨 만큼 싫어했다. 왜 얌전히 집에 붙어 있질 못하냐며 별것도 아닌 일로 호되게 회초리질당하던 밤이면, 이불을 쓰고 눈이 불어 터질 때까지 울다 북어 눈으로 아침을 맞곤 했다.
한데 내 조상의 만행을 듣자니 어머니의 불안이 십분 이해 갔다. 신분을 들켰다간 어머니와 사이좋게 지옥 문턱에서 인사 나눌 처지였으니까.
나의 조상은 100년 전 봉마 전쟁 때 요귀 퇴치에 몸을 불사른 무녀 풍림의 홍 가요, 함자는 운영인 분이었다. 고릿적 사람들에겐 나비 무녀로 더 알려졌다 하더란다.
아홉 개의 풍목(楓木)으로 에워싸여 추분절마다 단풍이 사그락사그락 피리 우는 소리를 내는 풍림은 나와 어머니가 정박한 무릿매골에서 수백 리나 떨어진 외지라 다섯 살 이후로 가 본 적은 없었다.
요절도 숱하고 재해를 온몸으로 막는 업인지라, 무녀들의 삶은 대개 그렇듯 신산했다. 찢어지고 흩어지니 조상의 뿌리만 기억할 뿐.
풍림은 상상 속의 아득한 골짜기였다. 능선을 따라 병풍처럼 둘러쳐진 붉은 나무는 단풍이기도, 수백 마리 붉은 나비가 나무 위에 내려앉은 장관이기도 했다.
홍운영은 붉은 잎사귀 사이로 장도를 끌며 호접무를 추었다. 그렇게 바람을 쓸고 일으켜 요귀의 살을 찢어 봉하는 식이었다. 현란하게 휘몰아치는 붉은 파도가 말도 못 하게 웅장했더란다.
나의 조상은 대대로 모친의 성을 따르며 무녀의 숙명을 업고 살았다. 혁혁한 공을 세워 왕의 신임을 얻고 세를 불리니 과거에는 남부러울 것 없는 명문가였다지. 그래, 여기서 그쳤으면 좋았으련만.
봉마 전쟁 당시 백겁의 악의를 품은 대요귀를 잠재운 게 홍운영이었는데, 우스운 건 그놈을 풀어 준 것도 홍운영이었다.
연민을 품었다고 했다. 그 버러지 금수만도 못한 것의 무엇을 동정해 천하의 홍운영이 이성을 잃었을까.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재앙에 살을 갈아 나라를 구제한 수많은 퇴마사들이 우스운 꼴로 팽개쳐졌다. 듣는 나도 어처구니가 없을진대 당한 이들은 얼마나 기가 막히고 억울할까. 억울함에 삼도천도 못 건너고 떠내려갔을지도 모른다.
배은망덕한 요귀는 풀려나자마자 홍운영을 해쳤고, 300여 채의 가옥을 박살 내었으며, 왕의 부모와 공주를 잡아먹고서야 제압되었다. 홍운영이 목숨을 대가로 펼친 봉마술이었다.
왕 일가가 반 몰살당했으니, 내 가문은 나라를 팔아먹은 것과 진배없는 대역 죄인이 되어 있었다. 풍림 홍가의 비운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네 출신을 절대 들키면 안 된다. 머리카락을 잘 간수해야 해.’
우리네 가문 대대로 새붉은 머리칼을 가진 아이가 드물게 태어나는데, 하필 그게 나였다. 그걸 숨기려고 어렸을 적부터 닳도록 반물 염색을 해 왔었다.
“휴.”
어머니의 당부를 곱씹으며 주저앉았다.
지금 내 나이가 열일곱. 속에 들들 끓는 피는 어서 너도 무녀의 도리를 다하여라 부추기는데. 실상은 사내 연기를 하며 언제 들킬지 몰라 아등바등하며 하루하루 연명하는 것이었다.
이름도 홍사혜 놔두고 태명을 그대로 써 버들이 되었다. 참 기구한 팔자이지 않나.
옹달샘에 비친 용모를 슥 하고 훑었다. 피부는 매끄럽고 눈코입이 어디 빠지는 구석 없이 어여쁜 건 어머니를 닮았다. 한데 송충이처럼 시꺼멓게 칠한 눈썹과 짧은 단발이 영락없는 사내아이 꼴이었다.
“이대로 피부도 갈빛으로 태워 쐐기를 박아 버릴까?”
피부가 흰 탓에 계집애 아니냐며 놀림 받을 때마다 어찌나 간담이 오그라드는지.
“시원한 계곡물에 멱이라도 감고 가면 좋을 텐데.”
애석하게도 해가 뜬 방향을 보니 여유 부릴 턱이 없을 듯하였다.
“나뭇동 딱 50개만 더 베고 가자.”
나는 그쯤 잡생각을 멈추고 주먹밥을 삼켰다.
스릉. 면적이 넓은 장도를 들어 보았다. 누가 홍운영 핏줄 아니랄까 봐, 검무는 못 추어도 칼질이 체질에 맞아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