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 〉[IS]취중연가
아직도 떠오른다. 어린 시절 여사에게 온갖 구박과 비난 욕설을 듣는 자신,
매 순간순간이 지옥 같았으며 숨쉬는 것 조차 불편했다.
자신이 모든 생각과 행동 모든 것이 통제되었으며
오직 여사가 원하는 형태로 바뀌게끔 만들려고 했다.
그것이 싫었다. 너무나도 싫었다.
자신은 여사의 도구가 아닌 아메미야 유즈로라는 자신으로 살아가고 싶었으며
여사의 의지에 저항하고서 맞서 싸우려 했으니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능력이 있어야했다.
무슨 일을 하고 어떻게 하더라도 그녀가 아무말도 못하게 하기 위해서
능력이 있고 재능이 있어야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부 부질 없는 짓이었다.
그래, 모든 것이 부질 없는 짓이었으니, 자신이 그렇게 한다고 한들
여사가 자신을 자유롭게 할리 없었다. 오히려 좋은 도구라면서
좋아하면 좋아했지, 자신을 풀어줄 생각따위는 하지 않을터였다.
허나 그때의 자신은 그것만이 진실이라 생각하면서
피나는 노력을 했고, 여사가 못하는 것을 해보였다.
전교에서 1등을 하고, 도대회 체육대회에 출전해서 수상을 하기도 하고
자신이 할 수 있고 해볼 법 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전부 했다.
오직, 오직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내려고 했다.
허나 주변에 자신을 이용해먹으려고 하는 자들이 다가오면 쳐냈다.
자신에게 아부하는 자들은 전부 날려버렸다.
아메미야,라는 이름을 보고 다가오는 자들은 많았지만 자신을 자신이라
봐주는 자들은 전무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자신이 다니던 학교는 소위 아가씨 학교라는 곳.
모든 이들이 자신의 능력과 함께 좀더 위의 단계로 올라가기 위해서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곳이었으며 그곳에서 조금이라도 강한 파벌에
들어가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이득이 되는 파벌로 들어가려고 노력했다.
허나 자신은 그러지 않았다.
그 속에서 자신은 자신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싸웠다.
모든 것은 혼자만의 힘으로 해내야만 한다는 생각 하나로 인해서 말이다.
그렇게 중등부를 졸업할때쯤에는 개개인의 능력으로는 자신을 이길 사람은 없었다.
가문이 힘을 빌리면 이길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콧대높은 아가씨들은
자신에게 스스로의 힘으로 이기려고 하였다.
아니, 어쩌면 가문의 어른들에게 모지리라고 혼나기 싫어서
스스로의 힘으로 싸울 수 밖에 없던 것일까?
허나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래,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자신은 그저 여사에게 자유로워지고 싶었기 때문이었으니까.
하지만----.
"맞선이다."
".....네?"
"네녀석을 자기 아들과 결혼하고 싶다는 사람이 있더군.
대기업의 사람의 자제니 우리 회사에 도움이 될 것이다."
여사는 그런 것 따위 신경쓰지 않다는 것을 그때 알아차렸다.
자신은 그제서야 눈치챘다. 너무나도 웃기게도, 그전에도 눈치챌 수 있던 것을
그 말을 듣고나서야 눈치챌 수 있었으며 자신은 자리를 박차서 나왔다.
여사의 앞에서, 거실에서, 저택에서 빠져나와서는 달렸다.
어디를 가는 것인지, 어디로 가야하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저 여사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생각치 않는 그 여자에게서 멀어지고 싶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어디까지 달려온 것일까?
주변의 풍경은 집주변이 아닌 심야의 거리였으며
화려한 네온사인과 수많은 인파가 뒤섞인 그 안에서
각자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자 무언가 자신의 안에서 망가졌다.
그래 망가졌다는 말이 맞을 것이리라.
자신의 마음은 그때 어딘가 망가졌으며 아무래도 좋았다고 생각했다.
일선을 넘자. 여사에게 엿을 먹이자. 그녀의 뜻대로 되지 않게끔 하자.
상품의 가치를 망가뜨려주자.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은 근처의 지나가던 남자를 붙잡았다.
상대는 아무나 좋았다. 하지만 복수니까, 어디에 사는 누군지도 모를 남자가 좋았다.
덩달아서 개인적인 취향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골라서 붙잡은 자신.
그 뒤의 일은 간단했으니, 여사가 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스스로의 가치와 품격을 떨어뜨리는 일을 했다.
사랑도 애정도, 마음도 진심도 없는 그저 하룻밤의 불장난.
이름도 사는 곳도 모른다. 나이가 몇이고 어디 출신인지도 신경쓰지 않는다.
그저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으며 여사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던 자신.
짝!
"네년이....네년이 감히---!!"
뭐, 당연한 일이겠지. 자신은 노성을 내지르면서 자신에게 화를 내는
여사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미소지었다.
처음으로 상쾌했으며 더 나아가서는 쾌락까지도 느끼는 자신.
자신에게 들어왔던 혼담은 그것으로 파탄났으며
여사는 자신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 아냐면서 소리를 쳤지만
그것에 자신은 미소를 지으면서 기뻐했다.
알다마다, 그녀에게 반역을 저지른 것이지 않은가?
할 수 있는 반역 중에서 가장 큰 반역을.
그녀가 그렇게 아끼고 소중히하는 회사의 명예에 먹칠을 하였으며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도 못할 짓을 저지른 자신이지 않은가?
너무나도 기뻤으며 즐거웠다. 그래, 이 순간만큼은 자신이 승리자였다.
다른 무엇도 아닌, 여사에게 자신은 승리한 것이리라.
하지만----.
"우웁!!"
이변은 돌연히 일어났다. 헛구역질. 매번 먹던 것이 역해졌다.
몇달째 나오지 않은 생리와 최근 들어서 늘어난 식욕이었으나
편식을 하게되고 몸이 뜨거워지는 등의 이상현상.
순간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하나의 현상에 자신은 저도 모르게
편의점으로 향했으며 '그것'을 사버렸다.
임신테스트기. 아니겠지, 아닐 거라면서 생각하는 자신은
화장실에서 그것을 사용해보았으며 사용법을 몇번이나 확인하였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두개의 줄. 그것의 의미는 임신.
"...하...하하....하하하하----."
웃음 밖에 안나왔다. 그래, 웃음 밖에 나오지 않은 자신이었으니
설마 처음 한번으로 임신을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눈앞의 일은 현실이었으니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게 되는 자신.
들키면 안된다. 어떻게든 자신 혼자서 해결해야한다.
그렇기에 주변을 몰래 수소문하면서 해결방법을 찾기 시작하는 자신.
다른 사람들에게는 돌려서 말하거나 하면서 스스로의 일에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서 움직였다.
분명 다른 이들에게 말하지 않았으며 다른 이들에게 들키지 않았다고 자부했다.
평상시와 다르다고 한들, 그것은 다르지만 할 뿐, 틀리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임신한거냐?"
"...."
"지워라. 병원은 내가 찾아두마. 쓸데없는 짓을 저지르니까 그런 것 아니냐.
천치같은 놈. 그러니까 네녀석이 아둔하고 모지리라는 거다."
여사는 그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말했다.
지우라고. 자신에게, 자신의 몸안에 있는 아이를 지우라고.
그리고 그날밤 자신은 집안의 현금과 금품들을 가지고 도망쳤다.
어째서 그런 것인지 그때의 자신은 알지못했고 지금의 자신도 알지 못했다.
도망쳐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야반도주를 한 것이었다.
그 뒤로 여사가 찾지 못할 곳으로 멀리 도망친 자신은 어느 산속의 폐가에
몰래 들어가서 혼자서 생활을 하였다.
학교도 안가고, 남들과 만나지 않은채 홀로 지내는 삶.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어른도 하기 힘든 생활을 여중생이 혼자 해낸 것 아닌가?
타인의 도움 없이 혼자서 지낸 자신은 서점에서 구한 임신관련에 대한 책을 읽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여사에게 들키지 않게끔 조심했다.
동시에 자신의 배는 날이 가면 갈 수록 부풀어왔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무거워지는 자신의 몸이었고
몸안에 잉태된 자그마한 생명을 느끼게 되기 시작하면서 자신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과연 자신이 잘 키울 수 있을까? 아직 학생인 자신인데?
혹시 혼자서 못키우면 어떻게 하지? 버려야하나? 아니면 여사의 말대로 지워야하나?
날이 지나면 지날수록, 배가 커져가면 커져갈수록 불안해지는 자신.
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다는 것이 이토록 괴로운 일인가?
학원에서 홀로 싸워왔을때나 집안에서 자신의 편이 없었을때도
느끼지 못하는 고독함으로 생기는 괴로움.
어째서 느끼지 못한 것인가? 어째서 알아차리지 못한 것인가?
자신의 어리석음을, 여사의 말대로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해서
스스로 자책을 하는 자신.
허나 그렇게 괴로워하는 사이에 때는 다가왔다.
미친듯이 배가 아파왔으며 혼자서 움직이지도 못할 것 같은 자신.
이대로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싫어. 아프기 싫어. 괴롭기 싫어.
살고 싶다는 각오와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간절함 때문이었을까?
어떻게든 인근의 병원으로 향한 자신은 그곳에서 수중에 남은 돈의 태반을
지불하는 것으로 간신히 출산을 치룰 수 있었다.
난생 처음 겪은 출산의 고통.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운 그것에
자신은 정신을 놓을 것 같았으며 한시라도 빨리 이 순간이 끝나길 빌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서나 간신히 끝난 고통의 순간.
드디어 끝났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은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하나 생각했다.
수중에 남은 돈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혼자 살기도 빠듯한 그것에 이제 일자리라도 알아봐야하나, 싶었다.
허나 자신같은 학생을 받아줄 곳이 과연 있을까?
그렇게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서 생각하던 도중에
출산이 끝난 간호사가 자신의 침대에 다가오더니 아기를 곁에 눕혀주었다.
"아----."
감탄, 그것은 감탄. 조금전까지의 고통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눈 녹듯이 사라졌으며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자신의 곁에 누워있는 자그마한 아이. 자신의 자식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다름 아닌, 자신의 몸속에 있었고 자신이 낳은 아이.
그 아이를 보게되자 자신이 느꼈던 불안감과 공포는 사라졌다.
힘내자, 이 아이를 위해서 힘내자. 그렇게 생각했다.
이 아이와 함께라면 상관없다고, 이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자신.
"어딨는거야! 그녀석은!!"
"여사님 진정하세---."
"진정!?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도대체 우리 회사에, 아메미야 사가 얼마나 치욕을 받았는지 알아!?"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여사의 목소리.
그것을 듣자마자 자신은 본능적으로 아기가 위험하다고 느꼈다.
여사는 분명, 분명 이 아이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죽일지도 모른다.
나의 소중한 아이를, 자신의 단 하나뿐인 아이를 자신에게서 뺏어갈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다시 도망쳤다.
성치도 않은 몸을 이끌고 병원을 빠져나와서 도망쳤다.
품안에서 곤히 자고 있는 아이를, 이제 다시는 못볼 아이를 품안에 안고
자신은 여사에게서 벗어났다.
안다, 이것이 얼마나 최악의 선택인지. 이 아이에게 얼마나 가혹하고 잔인한 일인지.
하지만 자신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너무나도 소중하기에 자신은 가장 잔혹한 선택을 해야만 했다.
"미안해."
품안의 아이를 끌어안으며서 자신은 사과했다.
"엄마가, 미안해."
다시는 못만날거라 생각하면서.
"엄마가, 너무 미안해."
사랑다운 사랑을 주지 못할 것을 생각하면서.
"엄마가, 정말로 미안해."
아이의 곁에 있어줄 수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면서.
그래, 이것만이 아이를, 자신의 소중한 아이를 지킬 수 있는 유일의 방법.
다시는 못만날 것이며 아이는 자신을 못알아볼 것이리라.
아마 신이 있다면 자신은 그 신을 저주하리라. 어째서 이런 잔혹한 운명을
자신에게 내린 것이냐면서, 어째서 자신이 이런 선택을 내릴 수 밖에 없게끔 만든 것이냐면서.
도착한 프리지아 꽃밭. 천진난만이라는 꽃말을 가진 그 꽃밭을 보자
자신은 그 뒤에 보이는 교회를 발견했다.
신을 저주한다. 하지만, 하지만 동시에 신이 자신에게만 잔혹하길 빌었다.
프리지아 꽃밭의 안으로 들어가면서 자신은 간절하게 빌었다.
신을 저주하고 증오하지만, 동시에 간절하게 기도했다.
부디, 부디 이 아이만큼은 아껴달라고. 자신은 지옥에 떨어져도 괜찮으니까
제발 이 아이만큼은 굽어살펴달라고.
"다시는 찾지 않아도 돼. 다시는 말하지 않아도 돼."
아이를, 오늘 하루밖에 못 안아준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으면서
자신은 아이에게 말했다. 부디, 부디 간절함을 담아서.
평생동안 자신을 찾지 않아도 된다고, 자신을 만나더라도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자신같은, 엄마 같지도 않은 사람을 찾지 않아도 된다고.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하더라도, 아이를 버린 자신은
이 아이에게 그 어떠한 것도 바랄 수 없었다.
감동의 재회를 바랄 수 없었고, 자신에게 엄마라고 불릴 자격도 없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그러니까, 부디....천진난만하게,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보다 더욱....
더욱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라주렴... 엄마가, 엄마가 너무 못나서...너무 어리석어서
미안해...정말로, 정말로 미안해...."
부디, 이 아이가 행복하길 바랬다.
그러면서 아이의 곁에 사진을 내려놓았다.
지하철의 사진이에서 찍은 자신. 이 아이에 대해서 잊지 말자고.
자신이 저지른 최악의 일에 대해서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찍은 사진이었는데
실수로 두 장을 인쇄하였던 자신은, 그 중 하나를 아이의 곁에 두었다.
미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은 그것을 아이의 곁에
두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해, 카나데. 엄마를 얼마든지 미워하고 증오해도 좋으니까.
부디,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주렴."
아메미야 카나데, 자신의 소중한 아이의 이름.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아이의 이름을, 다시는 만날리 없는 아이의 이름을
그리고 앞으로 자신이 다시는 부를 일이 없을 그 이름을 말하며 자신은 아이에게서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