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화 〉[IS]취중연가
"무, 무슨 일이냐 마리나?"
"에? 뭐가 말이야?"
당황스러운 자신은 마리나에게 질문을 하지만 조금전과는 다르게
아무일 없다는 듯이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평상시의 그것과 동일했다.
하지만 조금전의 모습이 전혀 잊혀지지 않는 자신.
평상시에 보여주는 표정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오직 무표정함에 딱딱함만이 있는 얼굴 표정의 그녀.
도대체 무슨 일인가,하고 상황을 판단하려고 하니
생각해보면 마리나의 말에서 이상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몇일전, 수학여행지 관련해서 출장을 갔다온 뒤부터
단 한번도 그녀는 자신을 새언니,라고 부르지 않았다.
평상시라면 질릴 정도로 불렀을 그것이었는데 그녀는 한번도
부르지 않았으며 하지메에게도 오빠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하지메도 마찬가지였던 것인지 자신을 향해서
시선을 보내는가 싶더니 메모장에 무언가를 적어내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0과 1의 불규칙적인 반복.
낙서나 그런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으나 무언가 진지한 표정의
하지메였으니 그는 그것을 한참을 그걸 적어내리는가 싶더니
마리나에게 그것을 내밀었다.
동시에 마리나는 그것을 바라보면서 한참을 가만히 있는가 싶더니
자신들을 바라보는데----.
"오리무라 이치카는 일본 표준시 9시24분 현재.
영국의 올코트 가에 도착하였습니다."
"하지메?"
[혹시나해서 기계어로 질문했는데, 아무래도 맞는것 같아요.]
자신을 바라보면서 기계어를 사용했다고 말하는 하지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전에 얼핏 컴퓨터전용 언어라는 것을
들은 적이 있던 자신이었으며 지금 상황을 보면 그것이 맞으리라.
동시에 마리나가 보여주는 반응을 보자면
아무래도 하지메와 자신의 추측이 맞는 것이겠지.
지금 마리나는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들에게
대역을 두고서는 사라진 상태였다.
어째서 그렇게 한 것인가? 무슨 이유로 그러한 것인가에 대해서
의문이 드는 자신이었지만 일단은 중요한 건 마리나가
자신들의 곁을 떠나서라도 해야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하지메에게로 시선을 돌리니 보이는 것은 무언가 걱정스러워하는 그의 표정.
"괜찮을거다."
"----."
그런 그를 끌어안아주는 자신은 마리나는 괜찮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분명 마리나라면 괜찮을 것이리라.
어린 아이의 외모기는 하지만 타바네가 만든 AI.
타바네수준까지는 아닐지언정 그에 준하는 비범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것이며
문제가 생겨도 그것을 헤쳐나올 것이리라.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리라.
"무언가 이유가 있어서 지금 곁에 못오는 것이지 별 다른 문제가 없을것이다.
"...."
[네.]
자신의 말에 짧게 대답하는 하지메였지만 아직 불안감이 사라지지는 않은 듯했다.
하기사 자신이 생각해도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
여동생이라고 생각하면서 친하게 지냈던 아이가 갑자기 사라진다면
그 누구라도 그러할 것이리라.
거실의 소파에 앉아서 불안감을 띄는 하지메는
마리나의 더미를 바라보며 걱정어린 시선을 내는 한편
자신은 그것에 조금은 질투심을 느꼈으며 궁금증이 일어났다.
과연 자신이 사라져도 이렇게 걱정해줄까,하는 의문.
물론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서 사라지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아무리 궁금해도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서 하지메에게 걱정을 불필요하게
끼치고 싶지 않았으며 동시에 자신은 사라지지 않으면 되는 일.
사실 생각해보면 자신이 하지메의 곁을 떠난다는 것은
반대로 자신의 곁에서 하지메가 없다는 것인데 그것을 자신이 참을 수 있을리 없었다.
하지메를 두고 어디 먼 곳에 오랫동안 떨어진다니, 끔찍하군 그래.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하지메를 품안으로 당겨서는
끌어안았으니 갑작스러운 자신의 행동에 하지메는 당황하지만
이내 자신을 끌어안아주기 시작했다.
누가 무어라 말해도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면서 믿어주는 것.
그것이 사랑하는 커플의 모습이었으며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들의 모습.
다른 어떤 커플과 비교해봐도 못하지 않을 것이라 자부할 수 있는 애정이 있으리라.
"그건 그렇고, 하지메."
[왜그러세요?]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오늘부터 이치카가 없다."
"...."
한편, 하지메가 아직 눈치채지 못한 일을 상기시켜주는 자신이었으니
자신의 눈을 바라보면서 무언가 떨리는 눈동자를 보이는 그는
설마,하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아아, 그런 눈빛을 보내지 말거라 하지메. 그런 눈빛을 보내면---.
"하암--."
"----."
귀여워해주고 싶어지잖은가?
동시에 자신은 주저않고 하지메의 목덜미를 깨물어주면서도
밤에 치를 거사를 대신하여 전희를 즐기도록 하기로 했다.
*
"풀----어-----줘----."
핸드폰의 화면에 나타나는 마리나는 방안에 있는 아메미야 회장에게
자신을 해방시켜달라고 늘어지는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으니
아메미야 회장은 그러한 AI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고민을 했다.
이전날 그녀는 스스로의 손으로 버린 자식과 만났다.
모친과 자식이라는 관계로 만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소년.
절대로 스스로를 모친이라고, 소년의 엄마라고 밝힐 생각이 없던
그녀였는데 생각치도 못한 만남에 당황해버렸다.
허나 그것도 잠시, 그녀는 차분하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으며
소년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래. 회장, 유즈루와 소년, 하지메는 절대로 가족이 될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인정하고 수긍하며 납득한 상황.
그렇기에 둘은 깔끔하다고는 하기 힘들지만 별 문제없이 헤어질 수 있었다.
도중에 생긴 상처들은 어쩔 수 없는 일이며 주변인들의 폭언이나
질책들이 따라왔지만 상관 없었다.
중요한 것은 당사자인 유즈루와과 하지메였으며 그 둘이 서로 납득했다면
끝난 일이라고 그녀는 생각하면서 술잔을 들어올렸다.
나중에, 적당한 때를 봐서 풀어주자고 생각하는 그녀.
어차피 그녀가 보았을때 그녀가 회장직에 남아있을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녀의 생모인 여사는 그녀를 아메미야 사의 회장으로 영원히 앉혀둘 생각이 없었으니
남동생이 나이가 차면 곧장 유즈루를 회장자리에서 밀어내리란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는 그녀.
머지 않아서 끝날 준비였으니, 그 끝을 완벽하게 맺듭짓기 위해서
계속해서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일주일."
"응?"
"일주일 뒤에 풀어주마."
그렇기에 시끄럽게 굴고 있는 마리나에게 말하는 유즈루.
다른 사람이 있을때는 말하지 않지만 자신 혼자만 있을때는 지겨울 정도로
말하는 녀석을 향해서 말하니 곧장 입을 다무는 마리나.
답답한 핸드폰 안에서 갇혀지내길 몇일째.
그런 상황에서 일주일이나 더 갇혀지내라니, 이 무슨 끔찍한 소리인가?
하지만 동시에 그 시간만 버틴다면 그녀는 다시금 자유가 된다.
속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이득인지 계산을 해보는 그녀.
다만, 그 계산은 다른 이들이 보아도 오래갈 수 없었던 것이니
그녀가 가진 패는 전무, 오직 상대의 조건에 따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마리나 또한 그것을 자각하고 있었기에 한숨을 내쉬면서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일뿐었다.
유즈루는 그것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금 업무에 집중하였다.
그래, 얼마 안남았다.
유즈루에게 있어서 이 모든 것이 끝을 고할 순간은 얼마남지 않았다.
지긋지긋한 회사와도, 정계의 인물들도, 여사와의 연도 끝이 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한편, 책상에 올려진 사진을 바라본다.
유즈루의 죄악의 상징, 절대로 지울 수 없는 과거.
프리지아 꽃밭에 하지메를 버리기 전에 마지막을 찍은 사진.
실수로 두장이 출력된 사진 중에 하나를 하지메의 곁에 두었던 그녀는
다른 한장을 챙겨가지고 왔다.
몇번이고 버리고 싶었으며, 버릴려고까지 하였지만 차마 그러지 못한 사진.
볼때마다 괴롭고, 볼때마다 힘들지만 그럼에도 버리지 못한다.
어느샌가 시선은 사진으로 향해졌으며, 그때의 일을 떠올리곤 하는 그녀.
"다시는 찾지 않아도 돼. 다시는 말하지 않아도 돼."
하지메를 버릴때 했던 말을 중얼거리는 유즈루는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모르는듯 했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는 스스로 중얼거리는지도 모르는듯 했으니
시선은 사진에서 그 옆 꽃병에 있는 프리지아로 향해져있었다.
과연 무슨 생각으로 아이에게 말한 것인지, 어떠한 것인지는
유즈루만이 알 수 있었으나 그녀는 다른 이들에게 그것을 말할 생각이 없었다.
다른 이들에게 말할 만한 일도 아니었으며, 그 말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한들
하지메를 버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그녀.
실제로 어떠한 이유가 있다고 한들 그녀가 하지메를 버렸다는 사실은
뒤엎을 수 없는 진실이었으며 그녀 스스로도 당사자의 앞에서 말했다.
"......훗."
돌연 유즈루의 입에서 나오는 웃음소리.
그것은 조소일까? 헛웃음일까? 아님 다른 것일까?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모를 것이며, 알고 싶지도 않을 것이리라.
다만, 한가지는 확실했다. 그녀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무슨 일을 겪는다고 한들 그녀는 과거로 돌아간다고 한들
하지메에게 한 일을 바꾸거나 하지는 않으리라.
그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의 선택이니까. 최선의 방법이니까.
아메미야 유즈루가 할 수 있는, 사이토 하지메에게 행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였던 것이니까.
유즈루는 볼펜을 들어올려서는 다시금 업무에 집중하면서
결제서류들을 거침없이 처리해나갔으며 남은 일주일 동안
마무리 지을 일들에 대해서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그래, 일주일. 일주일 뒤에 모든 것은 끝난다. 모든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