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IS]취중연가
어두운 밤하늘과 자신을 안고 있는 누군가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며
하늘에는 달도 별도 안보이는데 유일하게 보이는 것은 노란색의 프리지아.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아무런 감촉도 전해지지 않았다.
오직, 오직 프리지아의 향기만이 풍겨왔으며 그 이외의 것은 없었다.
보이는 것은 프리지아, 풍겨지는 것도 프리지아.
세상을 가득 채울 것만 같은, 아니 이때만큼은 자신의 세계에는 프리지아만이
있었으며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라벤더도 로즈마리도 없는, 오직 프리지아만이 가득차있었으며
이내 누군가는 자신을 프리지아들 사이에 내려놓았다.
한밤중이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 일까?
상대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며 자신을 만지는 손길에서도 온기는 없었다.
=찾지 않아도 돼.=
그러나, 조금전과는 다르게 들려오는 소리. 자신의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
=말하지 않아도 돼.=
그것은 무슨 뜻일까? 찾아오지 말라는 것일까? 말을 걸어오지 말라는 것일까?
아마 그렇겠지. 자신을 버린 사람이니까, 자신이 찾아가면 방해가 될게 뻔하겠지.
버려지는 아이들에게 있어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부모가 힘들어서, 여건이 여의치 않아서, 원치 않아서, 방해가 되서.
자신은 과연 어떠한 부류에 속할까?하고 생각한 적이 몇번이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에서야 알 수 있었다. 나는 원치 않은 것이었구나.
아니, 생각해보면 당연할까? 말도 못하는 벙어리인 자식이니까.
남들과 다른, 장애를 가진 아이이니까 원치 않은 것이겠지.
자신에게서 멀어져만 가는 누군가는 그대로 빠르게 사라졌다.
사박사박하는 소리와 함께 멀어져만 가는 상대.
그리고 세상에 남겨지는 자신은, 오직 프리지아들에게 둘러쌓여져서는
혼자서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죽을 때인지, 도움의 손길을 받을 때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하지만 그 어느쪽이여도 상관없다고 무의식 중에 생각하고 있는 자신이 있었다.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저, 그저 버려졌다는 사실 하나만이 자신에게 남았으니까.
*
"....."
불쾌한 느낌과 함께 눈이 떠지는 자신.
무언가 꿈을 꾼 것 같았는데, 무슨 꿈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으니
과연 무슨 꿈일까,하는 고민을 해보지만 떠오르지 않을 것을
기억해내려고 노력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자신은 그대로 침대에서 일어나서는 화장실로 향했다.
알케니씨는 출근을 하신 것인지 안보였으나 가름은 자신의 곁에서
같이 자고 있었는데 자신이 침대에서 내려가자 자신을 따라왔다.
알케니씨를 따라갈 줄 알았는데 자신과 함께 남은 가름.
아무리 자신을 좋아한다고해도 주인을 따라가야하는게
좋은 충견이지 않을까,하는 자신은 거실을 지나쳤으니---.
"일어났지 하지메?"
[제발 부탁이니까 옷좀 입어주세요!]
주방에서 팬티와 에이프런만을 착용한 알케니씨가 식사준비를 하고 계셨으니
거실로 나온 자신에게 자연스럽게 인사하시는 것에 자신은
알케니씨에게 자신의 요구사항을 전했다.
분명 이곳이 알케니씨의 집인 것은 알고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신이 있는데 알몸인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녀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손을 저으면서
가름의 아침사료를 내어주시면서 식탁으로 오라고 말씀하셨으며
자리에 앉으시는데 도대체 자신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다시한번 그녀에게 간곡하게 부탁할까? 아니면 나가서 한동안 지낼 곳을 찾아봐야하나?
과연 어느쪽이 안전하면서 자신이 위험해지지 않을까 고민하던 찰나
코끝을 지나치는 익숙하지만 싫은 향기에 저절로 인상이 써졌으니
창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것은 프리지아가 심어진 화단.
"음? 아아, 프리지아? 이집을 살때 심어져있었어.
따로 치우거나 하기 귀찮아서 내버려뒀거든. 향기도 나쁘지 않았고."
"....."
알케니씨는 자신의 시선이 화단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시고서는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그저 짜증이 난다는 생각만이 들었으나 덕분에 머릿속이 정리되는 느낌이었고
자신은 식탁에 앉아서 아침식사를 시작했다.
알케니씨 또한 자신을 바라보면서 잘먹겠다는 인사를 하고서는
식사를 하시는데, 그녀가 만든 식탁은 서양식이었다.
토스트와 베이컨, 스크램블 에그, 약간의 잼과 우유.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식탁의 차림에 자신은 욕심을 내지 않는 한편.
알케니씨는 보기와는 다르게 대식가셨는지 토스트를 4장이나 드시고서는
식사를 끝내셨다.
"좋아, 그러면 출근해볼까?"
[다녀오세요.]
그뒤에 곧장 출근 준비를 하시는 알케니씨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은 그녀에게 손을 흔들며 다녀오라고 인사를 했으니---.
"뭔소리야, 너도 가야지?"
멍!
".....?"
어째서인지 가름과 알케니씨가 자신을 데리고 리무진에 올라타셨다.
*
"그러면 보고 부탁할게."
"네, 우선은 어제 클레임이 들어온 건들 부터----."
테마파크의 내부로 들어오신 알케니씨는 곧장
비서분에게 보고를 해달라고 하시면서 일종의 업무모드에 들어가셨는데
그동안 보여주신 것과는 무척이나 다른 모습이셨다.
치후유씨랑 마찬가지로 할때는 하시는 사람이신걸까?
한편 가름은 알케니씨의 비서씨와는 반대쪽에서 걸어갔으니
그 옆에 자신이 서있었으니, 자신은 살짝 뒤쪽에 빠져서 걸어가고 있었다.
보폭의 차이도 차이지만, 나란히 걸어가기는 조금 그런 분위기.
업무상의 일들에 대해서 자신이 듣기에는 조금 그런 일들이 있을 수 있기에
자신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에서 뒤로 물러난 것이었다.
반면, 알케니씨는 업무 보고를 들으시면서 곧장 지시를 내리시는데
회장이라는 직책에 걸맞는 모습,같았다.
딱히 회장이 어떤 느낌으로 지내는지 잘 알지 못하는 자신이니
그저 그런 듯하다고 생각하면서 넘기는데---.
"그리고 아메미야 사의 프로그램이 조금 말썽입니다.
일단 그쪽에 연락을 해두기는 했는데, 프로그래머와 계약이 끊나서
조치가 조금 걸릴거라고 합니다."
"중대한 부분이야?"
"보안쪽입니다. 큰 문제는 당장에는 안보이지만, 나중에 가서 일이 커질 수 있어보입니다."
음? 아메미야 사?
귓가에 들려오는 익숙한 회사 이름에 자신은 저도 모르게
알케니씨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메미야 사, 자신이 전에 다니던 회사의 이름이었으며 그곳의 프로그램을
자신이 몇개는 만들어냈었다는 것을 말해야할까,하는 고민.
물론 그 뒤에도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을 사용하는듯
로열티는 계속해서 들어오기는 하지만 과연 알케니씨의 회사같은
대형 기업에 제공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다.
"음? 왜그래 하지메?"
"....."
[제가, 잠깐 봐도 될까요?]
하지만, 일단은 치후유씨의 부탁이라고는 해도 도움을 받고 있으니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도와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조심스럽게 알케니씨에게 다가가서는 메모장을 내미는 자신.
"어라? 하지메, 혹시 프로그램 볼 줄 알아? 꽤나 어려울텐데?"
[아메미야 사에 프로그램을 몇개 만들었던 적이 있어서요.
혹시 제가 아는 것들이면 도와드릴게요.]
"하지메 그거 사실이야?! 그런건 빨리 말하라고!"
으어어어,하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빠르게 흔들리는 자신.
동시에 알케니씨는 무척이나 기쁘다는 듯이 자신을 바라보는데
그 이유는 아마 프로그래머를 부르는데 드는 출장비에 대한 부담이 줄어서일까?
아니면 여차하면 자신에게 부탁을 할 수 있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어느쪽이든 일단 알케니씨가 자신을 흔드는 것을
한시라도 빨리 멈추어주시길 바라는 자신이었다.
*
"....."
"새언니, 그 사진은 뭐야?"
"별거 아니다."
출장지에서 잠시 쉬고 있는 틈을 타서 사진을 바라보는 자신의 곁에
마리나가 나타나서는 질문을 하는데 자신은 그것에 사진을 주머니에
넣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리나에게 사실대로 말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마리나가 이 사실을 알면
그닥 좋은 일이 있을것 같지는 않기에 넘어가기로 하는 자신.
하지메가 버려졌을때의 사진이라고 말한다면 그녀는 분명 사진의 모친을
찾으려고 할 것이 뻔했다.
덩달아서 그 뒤의 일 또한 거의 뻔하였으니, 하지메와 만나게하거나
하지메와는 절대로 만나지 말라고 할터.
아직 고민중인 자신과는 다르게 그녀는 하지메에게 조금이라도
이득이 되는 부분을 결정해버릴 것이리라.
물론 기계이자 AI인 그녀이니만큼 냉철하고 객관적인 판단이 가능하겠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자신은 아직 갈등 중이다.
하지메의 모친이 과연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을지, 어떠한 마음으로 지낼지.
"별거 아니긴. 뭔데 그래? 새언니랑 처남군 사진은 아닌 것 같은데."
"....훗, 너는 몰라도 되는 일이다."
"그런게 어딨어? 오빠만큼은 아니지만 새언니 일에 대해서
내가 몰라도 되는건 없다고?"
"그러니까 몰라도 된다는 거다. 너가 나서면 그냥은 안끝나니까."
마리나의 말에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은 다시금 일을 하러갈 준비를 했다.
출장이라고는 하지만 내일까지만 하면 되는 일.
카게라장때처럼 몇일간 점검을 도는 것이 아닌
사전 답사형식이었으며, 나머지는 학원측에서 알아서 할 부분이었기에
크게 오래걸리거나 하는 부분은 없었다.
"흐음....그러면 모르는채로 움직이면 되는거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움직이기 위해서
애써 하지메와 내일이면 다시 만난다고 생각한 자신은
마리나가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