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6화 〉[IS]취중연가 (56/139)



〈 56화 〉[IS]취중연가

어디선가 풍겨오는 라벤더 향기에 자신은 저도 모르게 걸어가고 있었다
과연 이 향기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누가 있는지는   없었지만
자신은 마치 조약돌을 따라가는 헬젤과 그레텔 마냥
그것을 이정표로 삼으면서 따라가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주변에서 자신에게 무어라 말하는 것에도, 누군가나 무언가와 부딪히는 것도
아무래도 상관하지 않고서 그저 걸어간다.
밤인지 낮이지, 위인지 아래인지,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조차 아무래도
좋은 자신은, 그저 라벤더 향기에만 집중하는 자신.

그리고 이윽고 도착한 곳은----.


"-----."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라벤더 꽃 한송이.
그것을 보자마자 자신은 뒤로 물러났다.
등뒤에 무언가가 닿았지만 아무래도 좋았으니, 그저 마지막이여도 좋았다.
다시 한번, 생애 마지막으로 그것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기억해주길 바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은 그 한송이의 꽃을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래, 이걸로 끝이다. 끝을 내는 것이다.
다시는 외톨이가 되고 싶지 않으니까, 누군가에게 버림받는 것은 싫으니까.
마지막의 마지막은, 자신 스스로를 버리는 것으로 끝내자.
등뒤에서 들려오는 물소리와 옆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경적소리.
어느쪽으로 할지, 어떤 식으로 할지 고민하는 자신이었으나
이내 스스로를 버리는 것이니까,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은 등뒤로 몸을 넘겼다.

빙글,하고 몸이 회전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평상시라면 놀라거나 무서웠을 그것이
어째서인지 지금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래, 아무래도 좋은 느낌이었다.
아니, 어쩌면 내심 마음속으로 반기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은 눈을 감으면서 모든 것을----.


"하지메!"


풍덩,하는  소리가 들려왔으며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풍겨오던 라벤더 향기는 더욱 진하게 느껴졌으며 누군가가
자신을 끌어안는 것이 느껴졌다.
누구일까? 이 사람은? 자신을 향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상대는?


흐릿한 시야, 흐릿한 감촉, 흐릿한 소리였지만 어째서인지 냄새만큼은
또렷하게 맡을 수 있었으며, 그것은 오직 라벤더 향기만을 맡고 있었다.

"하지메! 정신 차려라 하지메!!"

자신이 좋아하게 된 라벤더 향기, 이전에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던 그것이
어느샌가 좋아하게 된 것에 의문을 품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좋았다.
더이상, 자신은 누군가에게 버려지는 것은 싫으니까.
그러니까 스스로를 버리기로 했다.

그러니까 부탁이에요. 라벤더씨.
저를, 버려지게 놔둬주세요.


*


"하지메! 하지메 정신 차려라!"


강에 뛰어든 그를 따라서 뛰어든 자신은 그가 잘못되기 전에
서둘러서 그를 끌어올려서는 곧장 둑으로 빠져나와서 그를 흔들어보면서
이름을 외쳐보지만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그는 그저 죽어버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갑자기 무슨 일인지, 무슨 소란인가 하면서
몇몇의 사람이 구경을 하러 모여들었지만 자신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직 중요한 것은 하지메였다. 하지메를 구해내야만 했다.

"하지메! 아니다! 너를 공격한 건, 죽이려고 한 건 내가 아니다!"


그렇기에 외쳤다. 자신이 아니라고. 자신은 그를 공격하지 않는다고.
진심으로, 마음을 담아서 그에게 외쳤지만 자신의 말은 그에게 닿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하는 것이냐, 어떻게 해야만 하는거냐.
나는, 나는 망가져버리려는 그를 어떻게 해야 구할 수 있는거냐?


생각해라. 생각해내는 것이다. 자살하려던 학생들에 대한 대처방법이나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을 가진 학생들에 대한 교육을 받았지 않은가!?
그것들을, 그것들을 기억해내려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그의 손.


바닥에 무언가를 적어내리고 있는 그의 손.
펜과 메모장이 아니었으며, 시멘바닥에 물기로 적어내리지만
자신은, 자신만은 그것을 알아 볼 수 있었다.
여태까지 수없이 봐왔으며, 앞으로도 그와 함께하면서 봐야하는 그것.
그의 손의 끝에 적혀져내려지는 것은----.


"웃기지 마라!"

버려지게 놔달라,는 그의 마음.
그것에 자신은 이번에는 화가 치밀어 올랐으며 그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에게 무어라 말하는거냐!

"너가 버려지게 놔달라고?! 그걸, 그걸 나한테 말하는 것이냐!
안돼! 절대 안돼! 그렇게는 못한다 하지메!"

와락,하면서 그를 끌어안으면서 자신은 외쳤다.
그래, 절대로 그렇게는 못한다. 동시에 생각했다.
이번에는 지킨다고, 구해낸다고. 이미 두번이나 실패했으며
최초에는 자신이 상처를 입혀버린 그를, 버려지게 놔달라니.
그건, 그건 자신과 그에게 너무나도 잔인한 일이었다.


"버려지게 놔달라고?!  스스로까지 너를 버리려는거냐!?
웃기지 말아라! 아아, 그래! 오히려 버려라! 너 스스로를 버려라!
하지만 이것 하나는 알아라! 내가 주울 거다! 너를, 내가 주울거란 말이다!"

주변에서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에 개의치 않았다.
신고를 하든 뭘 하든 마음대로 하라고 해라.
이 순간, 이 순간에 이 말만큼은 말해야하니까!

"다른 사람이 아무리 버리고,  스스로가 버리더라도 나는 너를 안버릴 것이다!
영원히, 영원히 놓치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너는 무엇과도 바꿀  없는 보물이란 말이다!
그러니까, 버릴 것이라면 차라리 나에게 버려라!"
"....."
"지켜준다고, 도와주겠다고 말했으면서 너가 정말 필요로 할때마다
곁에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미안하지만, 제발 부탁이니까
내앞에서 그런 말은 하지 말아라!"
"-----."
"아아, 욕심이다! 욕망이다! 너에게 한 말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 것은 상관없다! 하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너를 사랑한다! 죄악감이나 죄책감때문이 아니라!
나의 마음이 너를 갈망하고 욕망하고 있는거다!"


거기까지 말하고서는 그의 입술을 탐한다.
망가져버린 그를 구하기 위해서, 버려지려는 그를 붙잡기 위해서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자신은 그에게 키스를 하면서 그를 끌어안았다.

동시에 느껴지는 것은, 그의 온기와 생기.
조금전까지 죽어가던 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온기와 생기를 느끼자마자
키스하는 것을 멈추고서는 잠시 그와 떨어지면서 자신은
약간의 생기가 돌아온 눈을 한 그에게 말했다.

"사랑한다 하지메.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마. 너가 스스로를 버릴지언정
나는 너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


그리고 자신은, 그를 조심스럽게 끌어안으면서 무너지려던 그를
간신히 건져올릴 수 있었다.

*

『리즈무, 살아있어?』
"아아---. 살아있다."

자신은 몸을 일으키면서 온몸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눈을 떴다.
동시에 전신의 칼집에서 우수수,떨어지는 날붙이들.
젠장, 안부러진게 없구만 그래.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골목 밖으로 시선을 돌렸으나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뭐, 만화나 그런데 보면 이럴때 구하러 와주는 사람 한두명쯤은 있던데
현실과 허구는 다르다는 것일까?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몸을 일으키며 바닥에 떨어진 마스크를 주워들었다.
이미 망가진 것들은 신경쓰지 않은채 유일하게 멀쩡한 손도끼만을
등에 있는 거치대에 되돌리면서 천천히 거리로 나오자 자신을 바라보면서
놀라는 누군가.


미안하게 됐수다, 엉망진창인 모습을 보여서.
자신은 속으로 건성인 사과를 건내면서 큰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조금까지 싸운 상대의 그것.
다리쪽인가,해서 걸어가자 보이는 것은---.

"사랑한다 하지메.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마. 너가 스스로를 버릴지언정
나는 너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다리 아래의 둑에서, 언제 밖으로 나온 것인지 모를 하지메를 끌어안은채
사랑 고백을 하고 있는 오리무라 치후유의 모습이었으며 그녀의 모습에서는
어떠한 거짓도 보이지 않았다.

글자그대로, 진심으로 고백한 것이며 어찌보면 그를 자신의 것으로
속박하고 소유하겠다는 소유욕이 내보이는 그 말.

『저 누님, 진심인가 본데?』
"저러다가 끌려가는거 아닌가?"


그것에 이즈무와 자신은 한마디씩 하지만 어째서인지
사람들은 신고를 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각자의 핸드폰의 이상현상에
집중하고만 있었다.


동시에 주머니 속에서 울리는 자신의 핸드폰에 조심스럽게 그것을 꺼내는 자신.
화면에는 발신자 표시 제한,이라고 뜨는 전화 상대의 정보.
그것을 바라보면서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는 자신과 그런 자신에게 말하는 이즈무.

『받을거야? 안받으면 후회할지도?』
"시끄러."

자신은 이즈무의 말에 대답하고서는 핸드폰을 그대로 강으로 던졌다.
약정이 남아있었기에 조금은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계속해서 시끄럽게 진동하는 핸드폰 따위 필요없으니까.


그것을 끝으로 아무런 미련없이 몸을 돌려서 강둑으로 걸어가는 반면
주변의 사람들은 핸드폰이 안되는 것에 점차적으로 흩어졌으며
남은 몇명의 사람들 또한 더이상 구경거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천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잠겼네? 어떻게 할거야?』


캉,하고 이즈무의 말에 대답도 안하고 손도끼로 자물쇠를 내리찍자
불꽃이 튀면서 망가진 그것을 확인한 자신은 자연스럽게 문을 열어서
강둑으로 내려갔으며 그것에서 아직도 하지메를 끌어안고 있는 오리무라 치후유의 앞에 섰다.


이대로 손도끼를 들어올리고 내리찍으면, 하지메를 끌어안고 있는
그녀의 목숨은 쉽게 취할 수 있겠지.
머릿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은 저도 모르게 손도끼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느꼈으며----.


"경찰 순찰 돌 시간이야. 빨랑 돌아가."

손도끼를 되돌리고서는 몸을 돌려선 강둑에서, 그들의 곁에서 자리를 피해주었다.
머릿속에서는 이즈무가 시끄럽게 떠들지만 무시한다.
어차피 반절이 쓸데없는 소리, 무시해도 무방하다.
그렇게 자신은 천천히 집으로 되돌아갔으며---.

"안녕, 잭? 직접 만나는 것은 처음이려나?"
"네가 그 통화 상대로군 그래?"

집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거대 악어를 바라보면서 태평한 인사를 주고 받았다.
뭐, 사람은 포기할때를 잘 알아야한다고 하던가?
아무리 난리를 쳐봐도 눈앞의 거대 악어를 이길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자신은
그것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상대의 정체를 파악했다.

몇일전, 하지메를 인신매매하려던 일당의 정보를 자신에게 알려준 녀석.
어째서 직접 해결을 안하는 것인지 궁금했는데 이런 이유였던건가?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무저항으로 가만히 서있으며 상대에게 질문을 날렸다.


"그래서, 어떻게 할거지? 날 죽일것인가?"
"설마. 오빠의 친구를 죽일라고? 너도 오빠를 위해서 그런거잖아?
새언니를 공격한 것은 조금 마음에 안들지만....
그래도 이유는 좋은 것이니  죽일거야."
"그럼 무슨 일로 온거지? 나는 슬슬 자고 싶은데."


이건 진심. 상대에게 하도 쳐맞은 것과 함께
여러모로 피곤한 일들이 많았기에 자신은 어서 잠자고 싶었으며---.

"우리 동맹 맺지 않을래?"


상대의 말도 안되는 제안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뿐이었다.
아니, 말은 동맹 맺자고 하면서 눈앞의 거대 악어로 압박감 겸 공포감 조성하면서
고개를 끄덕이지 않으면 둔기로 후려치려고 하지 말라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