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IS]취중연가
오리무라씨의 차에 올라타고서는 집으로 되돌아가는 길의 자신은
가만히 그녀의 옆에 앉아서는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사흘간의 일들을 되돌이켜 보았다.
갑작스러운 여자 유카타를 입게 된 것이라던지
전통 마을에서 그녀에게 첫 키스까지 빼앗긴 것이라던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남동생분과 그 친구분을 만난 것이라던지
하나같이 자신이 예상치 못한 일들의 연속이었으며
그 끝에서야 간신히 되돌아갈 수 있게된 자신.
덩달아서 시선을 팔로 돌렸는데 상처투성이였던 팔은
온천이 정말 효과가 있었던 것인지 통증이 없어졌으며 상처도
대다수 흔적도 남지 않은채 사라졌다.
반대로 말하자면 꽤나 깊게 손톱이 파고들었던 상처는 그 흉이 남았지만.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금 고개를 돌려서
창밖의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는 자신은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리무라씨를 따라서 이 온천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고맙다."
"---?"
그렇지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것은 자신이 아닌 오리무라씨.
운전을 하셨기에 앞만을 바라보고 계셨지만 그녀는 분명
자신에게 감사인사를 전하였으며 입에는 은은한 미소까지 짓고 계셨다.
하지만 어째서 자신에게 감사를 표하시는 것인지 전혀 이해를 못하기에
그녀를 계속해서 바라보는 자신.
솔직히, 지금만큼 말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은 드물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만큼 오리무라씨에게 물어보고 싶은 갈망이 가득한 자신에게 그녀는
차를 운전하시면서 자연스럽게 말했다.
"억지로 데려온 것인데 도망치거나 하지 않아줘서 말이다."
"...."
"솔직히, 여자 유카타를 입게 되었을때는 곧바로 도망치는게 아닐까
걱정을 하기도 했었는데, 다행이 너는 되돌아가지 않고
나와 함께 주말간 이곳에 있어준 것이 아니더냐?"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교차로에서 신호에 걸리자
부드럽게 정차를 하시면서 한숨을 내쉬지만, 입가의 미소는
전혀 잃지 않으신채로 계속해서 앞을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그리고 여관에서 있었던 일이나, 전통마을에서의 일들 또한
유쾌하고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데도, 너는 나를 위해서
참고 또 같이 동행해준 것이니 고맙다고 인사를 해주고 싶었다."
그러면서 자신을 한번 바라보시는 오리무라씨의 눈은
정말 순수하게 자신에게 감사함을 표출하고 계셨다가
이내 신호가 바뀌자마자 곧장 차를 출발시키셨다.
부드럽게 출발하는 차량의 내부에는 다시금 정적이 감싸였으나
그것은 아까와는 다른 분위기의 정적이었다.
조금 전 차안에 깔린 정적이 무언가 불편함을 나타내는 정적이었다면
지금 차안에 깔린 정적은 서로를 배려하는 정적.
동시에 자신은 그것에 어떻게 해야할까?
과연 어떻게 그녀에게 대답을 해야할까?
자신이 그녀에게 감사를 표할 방법,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표할 방법.
달리는 차안에서 풍경을 바라보면서 자신은 그것에 대해서 고민을 할 뿐이었다.
*
"....."
IS학원의 기숙사에 도착한 자신은 곧장 정좌를 하면서
가만히 눈앞의 심판자들의 심판을 기다리는 죄인신세를 면치못했으니
주말간 라우라와 함께 단둘이서 온천여관으로 간 것을 들킨 것.
아니, 솔직히 출발할때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기에
마음 속 한켠에서는 들킬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자신이었다.
그래,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과연 어떻게 그것을 들킬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은 라우라와 함께 온천여관에 놀러간 것을 들킨 상태.
"그래서, 이치카. 할 말은?"
"에에....호, 혹시 어떻게 아셨는지 알 수 있을까?"
자신을 향해서 링잉이 발언권을 주자, 그것을 변명보다는
생애 마지막 궁금증이 될 수 있는 것을 해결하는데 쓰자고 생각하여
그녀들에게 질문을 하였다.
과연 그녀들이 어떻게 자신이 온천여관에 놀러간 것을 알까?
그리고 라우라와 함께 간 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
허나 이내 세실리아가 내민 핸드폰의 화면에서 자신은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으니----.
"이, 이건---."
"네, 아주 잘 찍혀있죠?"
누군가가 SNS에 올린 라우라와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으며
그 배경은 전통 마을의 그것이었는데 마치 한폭의 그림처럼
정말 사이 좋아보이는 자신들의 모습은 찍은 이를 다른때라면 칭찬하고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칭찬은 커녕 원망만이 생길뿐이었다.
아니, 이거 초상권 침해라고! 하다못해 모자이크 처리를 해주던지!
어떻게 저렇게 핀포인트로 찍어서 올리는건데!?
마음속으로 사진을 찍은 이를 향해서 따지는 자신이었으나
그것과는 별개로 자신의 눈앞의 여성진들에게는 단 한마디도 못하는 자신.
"자아, 그러면 이치카를 어떻게 할까?"
"나누는게 어때? 사람 수만큼 말이야."
"그거 좋겠네요. 더이상 연적이 늘어나는 것도 싫고, 이치카씨를 빼앗기는 것도 싫으니---."
"아니아니! 어째서 그렇게 되는건데!? 내 의사는!?"
"너한테 그런게 있을 것 같나?"
갑작스럽게 흉흉하게 흘러가는 대화에 자신은 서둘러서
항의를 내뱉었지만 그것에 되돌아오는 것은 자신을 할 말 없게만드는
호우키의 날카로운 시선과 죽도였으며, 다른 사람들 또한 자신을
날카롭게 째려보면서 조용히 하라고 했다.
어, 어떻게 해야하는거지? 이대로라면 정말로 사람수대로
토막나서 나뉘어질 것 같은데----.
정좌상태에서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자신이었으나
도저히 자신의 머리로는 답이 안나오는 상황.
결국 자신은 분리가 되는 인형마냥 토막이 나는 것인가, 싶었으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던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까지는 아니지만 생각치 못한 곳에서
도움의 손길이 나타났다.
"잠깐, 모두. 기다려보거라."
"....뭔가요, 라우라씨. 설마하니 본인은 여행을 갔다고 이치카씨를 변호하려는건가요?"
"설마. 내가 하려는 것은 변호가 아닌 사실을 말하는 것뿐.
나와 신부가 온천여관을 간 것은 어떠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헤에----주말에 온천여관에 단둘이 갈 정도로 대단한 '사실'이야, 그거?"
갑작스러운 라우라의 말에 모두들 그녀의 입에서 나온 '사실'이라는
단어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인지 조금전까지 풍기던
흉흉한 분위기가 조금은 줄어드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직은 방심할 수 없었다.
언제 어떻게 그녀들이 다시 자신을 토막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자신은 부디 라우라가 그녀들을 잘 설득하거나 주의를 끌어주길 바랬으며
자신의 바램대로 라우라는 그녀들에게 무슨 사진을 건내면서 말을 이어갔으니---.
"교관의 남자,에 대한 사실이다."
".....에?"
그리고 그것은 폭탄이 되어서 되돌아왔다.
아니아니, 라우라! 그거 누나가 비밀이라고 했잖아!?
"신부, 진정해라. 교관이 비밀로 하라는 것은 상대에 대한 정보이지
교관에게 남자가 있다는 사실에 대한 것을 숨기라는 말은 없었다."
"....그, 그런가?"
어라? 뭔가 아닌 것 같은데? 아니, 맞는건가?
라우라의 말에 순간 당황하는 자신은 그녀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하는 아리송한 느낌을 받았으나 그것과는 별개로
자신의 반응과 라우라의 말에 모두들 누나에게 남자가 생겼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으면서 남아있던 흉흉함 마저 사라졌으며 라우라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뭐 자세한 것은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교관에게 남자가 생긴 것이
확실했으며, 그것을 확인하러 갔다온 것이다."
"그, 그런거라면 확실히---."
조,좋아 라우라 화이---.
"아니 잠깐만. 그러면 왜 둘이서 전통 마을을 그냥 돌아다니는거야?
치후유 언니를 뒤쫒는게 아니라?"
"신부가 데이트 신청을 해서다."
"라우라---!!!"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배신을 맞은 자신은 이후 모두의 진심어린
공격을 어떻게든 피해내면서 도주하였으며 간신히 죽지 않고 버티어냈다.
.....진짜 내 명줄이 길긴 길구나----.
*
멘션에 도착한 자신은 하지메를 입구에서 내려주었으나
어째서인지 차에서 내린 뒤에 꼼짝을 안하는 그.
"뭐냐, 뭐라도 놓고온 것이 있는거냐?"
딱히 그가 놓고 올 만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였으나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질문을 하지만 하지메는 그것에 고개를 저으면서
이내 메모장에 무언가를 적어내리기 시작하였다.
작별 인사를 정하느라 그런 것인가,싶었던 자신은
이내 그가 자신에게 메모장으로 인사를 하길 기다리며 IS학원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였다.
[카드키.]
"응? 아아, 그러고보니---."
자신은 그제서야 자신이 그의 현관의 카드키와 멘션의 카드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떠올려서는 그것을 그에게 되돌려주려고 했다.
이것은 자신이 아닌 그가 가지고 있어야할 물건이었으며
깜빡하고 있었던 것이지만, 이제 되돌려 줘야할 물건.
그렇기에 그것을 꺼내려던 자신에게 그는 다음 메모장을 내미는데---.
[맡길게요.]
"....에?"
[그러면 이만,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것을 끝으로 되돌아가는 하지메.
동시에 그가 마지막에 내민 메모장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은
어느샌가 다가온 뒷차의 경적에 놀라서 출발하기 전까지
그 자리에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자신은 입가에 그와 키스했을때와 비슷한 미소가 걸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뚜르르르르----.
뚜르르르르----.
"아, 행님! 전에 말씀하신 물건이요. 찾은거 같은데요?
예? 아,예예. 걱정마세요. 고객이 주문한 것에 딱 맞는 것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이 일을 한두번 해봅니까?
예. 예. 주소는 나중에 보내드릴테니 그러면 이만."
찰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