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IS]취중연가
"역시, 남자가 생긴거 맞겠지?"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 신부?"
"아니 라우라 나는 신부가.... 하아, 아니야."
아레나에서의 연습을 마치고 방으로 향하는 자신은 곁에서 걸어가는 라우라의 말에
지적을 할까, 하지만 이내 포기하고서는 발걸음을 계속해서
옮기면서 계속해서 치후유 누나의 상태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남자가 생겼냐는 질문에 민감할 정도로 반응을 하는 모습이나
평소보다 더 강하게 폭력적으로 변하는 모습으로 보아서
분명 남자와 관련된 일인 것은 확실했으니 다른 사람의 눈은 몰라도
자신의 눈은 속일 수 없었다.
최근 인터넷으로 남성에게 줄만한 선물이라던지
남성의 심리를 성교육이라는 핑계로 자신에게 물어본다던지
매일 밤마다 나가는 것과 모두가 자신에게 달라붙는데도 그냥 바라보는 것을
종합해보면 드디어 누나도 관심이 가는 남자가 생긴 것이겠지.
아아, 드디어 누나에게도 봄이 찾아온 것이구나.
서른이 다되어가는데 연애경험이 한번도 없는 누나기에 마음속으로
반쯤 누나가 결혼 하는 것을 포기하고 있었는데 정말이지 생각치도 못한일이
자신에게 일어난 것이니 자신으로써는 너무나도 행복했다.
"흐흐흥---."
"기분 좋아보이는군. 교관에게 남자가 생긴게 그리좋은거냐?"
"뭐, 누나도 누나만의 행복을 가졌으면 하니까 말이지."
한편, 자신의 상태를 본 라우라는 자신에게 당연한 질문을 하는데
그것에 자신 또한 당연한 대답을 내뱉으면서 복도의 코너를 돌았다.
샤르에게도 말했지만, 자신은 누나가 행복해졌으면 하는 마음이었고
그 상대가 괜찮은 사람이며 서로 진심이라면 곧바로 결혼을 허락해줄 생각뿐이었다.
누나가 떠나면 쓸쓸하긴 하겠지만, 그보다 더 기쁠테니까.
하지만 과연 어떤 사람일까, 누나의 마음을 훔친 사람은.
수많은 남자들의 청혼이라던지 작업을 거절한 누나이니만큼
어지간한 능력으로는 그녀를 반하게 할 수 없을텐데---.
대기업의 중견? 아니면 패션모델? 그도아니면 배우?
어쩌면 누나와 같은 교사직의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과연 어떠한 사람이 자신의 미래의 매형이 될지 궁금해하는 자신은
머릿 속으로 누나가 행복해지는 미래를 그려나가면서 조카들도 빨리
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신부, 미안하지만 지금 짓는 미소는 조금 기분나쁘군."
"에에? 나 엄청 기분 좋은데, 미소가 이상한가?"
"아아, 평상시에 짓는 것과 다르게 엄청 멍청하고 바보같다."
너무하네 라우라. 나는 진짜 기분좋은데 말이야.
자신은 그녀의 말에 상처를 입지만 그럼에도 기분이 좋은 것은
변하지 않았기에 계속해서 미소를 지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보니 누나가 아직 안돌아온 것 같은데----.
뭐, 데이트하다보면 늦을 수도 있는 일이니까 상관없겠지.
*
여성, 그러니까 오리무라 치후유씨라고 했던가?
조금전까지 집에 있던 그녀가 자신과의 대화를 어느정도 마무리 짓고선
돌아간 뒤에 적막이 찾아온 집안에서 한숨을 내쉬면서 별다른 일이 없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혹시나 자신을 협박하거나 하면 어떻게 해야할지 걱정했지만
그런 일은 전혀 없었으며 그녀는 자신에게 사죄와 함께 피해보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자신은 그런 것을 바라지 않았으며, 이렇게 찾아오지는 말아달라고
부탁을 하면서 사진을 삭제해달라고 말함과 동시에 그때의 일은
비밀 엄수해달라고 이야기했다.
타인에게 이야기할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한 것이었으며 사진은 이미 옛날에 지웠다면서
핸드폰을 자신에게 내미는 그녀였었다.
그건 그렇고 정말이지 태풍이 지나갔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 재난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본다면 아무래도 그녀는 교사직인 것 같았으며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남동생이 있는 것 같았다.
직접적으로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말하는 투나 행동거지, 그외의 것들을
근거로 종합해보면 아마 맞으리라.
그렇게 자신은 그녀가 자신에게 주고간 화과자와 그녀가 마신 찻잔을
정리하고 들어가서 자려고 했다.
Rrrrr----. Rrrrr----.
"....."
돌연 울리는 핸드폰이 아니라면 말이다.
아니, 핸드폰이 울리는 것 자체는 이상하지 않다.
연락을 주고 받는게 핸드폰이며,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 알람이 있는 것이니.
자신이 의문을 품는 것은 핸드폰의 알람이 메일이 아닌
통화가 왔다는 것을 알리는 그것이었기 때문이었으며
핸드폰 번호를 아는 이들 중에 자신의 장애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
광고전화인가,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것들이 오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
도대체 누가 자신에게 전화를 건 것일까,하는 의문을 느낀 자신은
일단 보이스웨어라도 사용해서 상대에게 자신의 특수성을 알리자
생각하면서 핸드폰의 통화버튼을 눌렀다.
[안녕? 말못하는 벙어리씨?]
그리고 들려오는 것은 자신에 대한 매도.
아니, 매도라고 하는 것은 조금 어폐가 있으리라.
매도,라는 것은 상대방을 깍아내리고 욕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만
전화의 상대는 자신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는 것처럼 무기질 적인
목소리로 말을 걸어오고 있었으며 벙어리,라는 호칭은 그저 자신을 그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용건만 간단히 말하도록 할께. 치짱을 경찰에 신고하는 순간
너의 인생을 그대로 망가뜨려줄거야.
물론 믿거나 말거나라고 평상시에는 이런 말도 안하겠지만
이번에는 치짱이 잘못한 것이니까 상냥하게 타바네씨가 전화로 알려주는거야.]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자신은 당황할 수 밖에 없었으니
그것은 그녀의 입에서 나온 타바네, 라는 이름때문이었다.
상대의 이름을 듣자마자 머릿 속에 떠오르는 것은
세계를 뒤집어놓은 '백기사 사건'을 일으키고 IS의 창시자인 시노노노 타바네.
흔히 말하는 천재 중의 천재이며, 동시에 국가에 지명수배를 받은 여성이었으며
만약 정말로 전화상대가 그 시노노노 타바네라고 가정한다면 자신에게 일어났던 '그 일'을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며 그녀의 말대로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것 또한 그녀에게는 무척이나 쉬운 일일 것이다.
자신은 전화 상대의 이름과 목소리를 듣자마자 엄청난 중압감을 느끼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버릇대로 손을 들어올려서 자신의 목을 매만지며 어떻게든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그러고보니, 그 손. 치짱이랑 대화할때도 했던거네?]
하지만 이것은 다른 때라면 몰라도.
[왠지 기분 나빠.]
지금 이 상황에서는---.
[벌을 줘야겠네. 날 기분나쁘게 한 벌을.]
해서는 안될 짓이었다.
전화기의 건너편에서 무기질적인 목소리로 자신에게 기분 나쁘다고 말한 그녀.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서 자신의 집의 전기가 전부 나가버렸다.
아니, 자신의 집뿐만이 아니었다. 창문 밖에 보이는 주변 일대가 전부 동시에
정전을 일으켰으니 글자 그대로 어둠이 내려앉아버린 마을.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자신은 당황하면서 목을 만지던 손에 힘이 들어가지만
이내 전화기 건너편의 상대방은 자신을 향해서 말하였다.
[다음에도 치짱앞에서 그걸 하면 더한걸 저지를거야.]
그것은 협박. 마음에 들지 않으니 하지 말라는 그녀의 협박이었다.
동시에 자신은 그녀가 정말로 시노노노 타바네라는 것을 확신하면서
손을 빠르게 내리며 전화 너머의 상대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멍청하지는 않은 것 같아서 좋네.
그릭 다시 한번 말하지만 치짱을 경찰서에 신고하거나 한다면
너의 인생을 글자그대로 박살을 내줄거야.
너가 아무리 소리치고 사실대로 말해도 거짓말쟁이로 만들 수 있다고, 타바네씨는?
술취한 여성을 집으로 데리고와서 강간한 녀석으로 신문에 실린다면
지금 고용된 회사에서도 짤릴테고, 다른 어느곳에서도 너를 받아주지 않겠지?
덩달아서 너가 하는 모든 일, 하려는 모든 것을 훼방을 놓을거야.
그러니까 잘 알아듣고 세겨 들어. 알았으면 손을 들어올려. 아니면 전화기를 끊어버리고.]
무기질적이면서도 확실한 의지가 담긴 목소리로 말하는 시노노노 타바네였으며
그것에 자신은 아무런 저항이나 반항도 생각하지 못한채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올릴 수 밖에 없었다.
[좋아. 오늘은 이정도로 할까? 하지만 명심해.
수상한 행동을 하면 곧바로 나는 움직일거니까.]
그 말을 끝으로 끊어지는 통화였으며 전화기는 종료음을 울리면서
더이상 상대방과 연결이 끊겼다는 것을 알렸지만 자신이 느끼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으며
털썩하는 소리와 함께 자신은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아아, 너무나도 섵부른 판단이었다.
멘션 앞에서 그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경비의 말을 무시하고서
그녀를 돌려보냈어야했으며 오늘도 그녀를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오지 말았어야했다.
아니, 어쩌면 만취했던 그녀를 그날 그냥 내버려두었어야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지금 이순간에도 어디선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지 모를 시노노노 타바네의 감시를 피해서
떨리는 몸을 이끌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너무나도 불안하고 너무나도 두려운 상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시노노노 타바네의 경고와 협박.
그것을 느끼면서도 자신은 동시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오리무라씨를, 그녀를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것.
마냥 자신이 그녀를 경찰에게 신고를 했다면 아마 그 순간
자신의 인생을 끝장났으며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놓여졌겠지.
그녀를 잊고, 그녀가 한 짓을 잊고 지내기로 한 것에 대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자신은 이불을 두려움에 떨고 있는 몸에 두르면서
어떻게든 떨림이 멎길 바라면서 눈을 감으며 혹시 이 모든게 꿈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제발, 제발 꿈에서 깨어나기를 이 지독하리만치
무서운 상황이 제발 악몽이고 이것에서 깨어나길 바라고 바라는 자신은
침대에 누운채 눈을 감고서는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빌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