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Sloth (Bless You, Shara) - 2
“그만!”
아차싶을 정도의 순간이었다. 벌써 2mm정도 방아쇠를 당겼을 때 커다란 목소리가 울렸다. 나뿐만이 아닌 덤벼왔던 3명도 잠시 몸을 멈출 정도였다. 누구지 하고 쳐다봤더니 군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였다. 계급장도 붙어있었는데 중령이었다. 내가 가장 꺼려하는 상부인 셈이다. 이 새끼들의 대장으로 보였다. 저 한마디에 모두 멈춘걸 보니까. 그래서 중령을 쏘기로 결정했다.
“‘엔’! 당신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왔어!”
그 결정도 얼마가지 못했다. 저 남자,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차 옆에서 싸우면서도 말하지 않았던 이름이었다. 이미 나를 알고 있다는 건, 이 군부대가 심상치 않은 곳이라는 걸 증명시켜주었다. 얘기를 들어볼 가치가 있을까? 대부분 내 이름을 알고 있다면 모두 적군인데 저 중령은 무기도 들고오지 않은 채였다. 계속 날 혼란스럽게 했고 화나게 만들었다. 그가 천천히 내게로 다가왔다.
“사령관님의 지령일세. 우리랑 같이 가주지 않겠나?”
또 사령관이라는 놈이었다. 뭐하는 새끼이길래 나한테 집착하는 걸까.
“꺼져.”
“‘리버설’ 선박.”
“.....니네 사령관, 뭐하는 새끼냐?”
반전, 거절하려던 내 의사가 사라지게 만들었다. 중령놈이 입에 담았던 선박의 이름, 그건 내게 있어서 잊을 수 없는 배 이름이었다. ‘케이니’. 오랜만에내가 죽여버린 그녀가 떠올랐다. 배신을 당하고 같이 했던 팀원이 몰살당했던 배인데 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까. 거기다 내 몸에 박혀있었던 위치추적 칩까지 빼내어 선배를 내버려둔 장소이기도 했다. 나중에 삼촌을 다시 만나면서 살아있다고는 들었는데 그 이후는 모른다. 지금도 살았는지, 죽었는지.
설마 선배인걸까? 확률은 높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놈들의 사령관이 그 배의 이름을 알고 있는게 말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그 때 작전을 삼촌과 함께 지휘한 해군 사령관일지도 모르지 않겠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선배와 삼촌, 몰살되었던 팀원들을 제외하고는 군에서 날 ‘엔’으로 알고 있는 이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가 무기를 거두었다. 그 이름 모를 사령관이라는 새끼를 만나보기로. 마냥 적군으로 의심하기에는 증거가 너무 많았다.
“좋아. 같이는 가줄게. 단, 사령관이라는 인물이 내가 생각한 그 인간이 아니라면 당신들 전부 죽여버릴 줄 알아.”
“저 여자가!”
날 걷어찬 남자가 발끈했지만 다른 자들이 말렸다. 권총을 집어놓고 차로 향했다. 그리고 여전히 앞에 서 있는 3명에게 비키라는 눈빛을 보내었다. 여자와 야구배트는 잘만 비켜주었는데 걷어찬 남자는 나를 쳐다보며 눈알을 부라리고 있었다.
“......비켜. 여기서 죽여버리기 전에.”
“확실히 당신은 괴물이야. 하지만 착각하지마. 우리도 만만치 않은.”
“비키라고, 시발아!”
화가 터져서 순간 손이 나갔다. 나도 놀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아마 신기록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남자의 목을 잡아챘고 옆으로 던져버렸다. 크게 다쳤을지도 모르지만 날 화나게 한 놈이라 별로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다급히 여자가 다가가는 것만 시야에 스쳐보였을 뿐이었다. 운전석에 타고 역시나 조금 찌그러져버린 문을 닫았다. 옆에서 사라가 두 손으로 귀를 막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에게 다음 목적지를 설명해주었다.
“사라. 우리는 군부대로 갈거야. 그곳의 사령관을 만나볼 생각이야. 어쩌면 내가 아는 사람일지도 몰라.”
“......엔과 같은부류의 사람이야?”
“아니, 그 사람이라면 진짜 군인이야. 적어도 넌 충분히 좋아할 만한 인물이니까 걱정마. 나같은 개쓰레기같은 버러지와는 완전히 다른 놈이야.”
“......엔.”
“왜?”
그녀가 나를 쳐다보았다. 분명 앞을 보지 못하는 사라인데 이런 진지한 순간들만큼은 날 똑바로 쳐다보는지 여전히 풀리지 않는 비밀이었다.
“스스로를 ‘쓰레기’라거나 ‘버러지’라고 하지마.”
“사람이니까?”
아, 직감했다. 오랜만에 하는 사라와의 대화인데 머릿속 어딘가 끊어졌다는게 확실히 느껴져왔다. 거기다 이 느낌, 처음으로 사라에게 화냈던 그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노인네의 섹터에서보다 더 위험한게 끊어졌다는걸 본능으로 눈치채냈다. 막아야 했다. 주둥아리를 잘라내서라도 말하면 안되었다.
“근데 사라, 너 말이야.”
안돼. 어째선지 브레이크가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뭔가가 자꾸 나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시발, 좆됐다. 그만. 그만하라고!
“내가 ‘서울의 마녀’라는 걸 안 이후부터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은 있어?”
“엔. 난.”
“사람을 끈쩍하게 좋아하는 너한테, 사람을 재미로 죽이고 다녔던 미친 연쇄살인자는 버러지보다 더 한 쓰레기 새끼잖아. 오히려 버러지라는 단어도 순화한거지. 안 그래? 안 그러냐고? 사라.”
“......”
젠장, 입이 멈추지 않았다. 제멋대로 자꾸 씨부려댔다. 솔직히 사라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다 아는것 마냥 마음대로 말들이 쏟아져 나갔다. 그녀의 표정이 당황했다가 어둡게 굳어가고 있었다. 그리고서야 내 말을 이어받았다.
“맞아. 넌 살인자야, 엔. 날 널......미워해.”
“하하하......시발.”
아예 입을 닥치고 있어야 했다. 혀라도 깨물걸 그랬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내 말에 대답까지 해버린 그녀였다. 오죽했을까,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사라가, 진심으로. 아직 끝나지 않았던, 다음으로 이어진 그녀의 말이 끝까지 날 절박하게 만들었다.
“그럼 난 어떻게 해야하는데? 엔, 넌 살인자야. 사람을 죽인 연쇄살인자야. 그런데 날 구한건 너야. 지금까지 날 보살펴주고 지켜주고 몸까지 던져가면서까지 구해준 사람이란 말이야. 어떻게 말해야 하는건데? 솔직히 이제는 모르겠어. 엔은 미워하는지도 좋아하는지도 구별이 가지 않는단 말이야!”
밖으로는 새어나가지 않을 울음소리였다.
“코에가 떠난것도 마음이 아픈데 엔 때문에 더 찢어지는 것 같아. 이젠 싫어. 부산으로 가는 것도, 누군가 죽는 것도. 차라리 엔을 미워했으면 좋겠어. 그 어떤 감정의 방해없이 널 미워하기라도 했으면 좋겠는데......모르겠어, 난.”
“......나도 몰라.”
시동을 걸었다. 앞으로, 중령놈의 차가 앞장서기 시작했다. 마트에서도 노란자켓들에게 잡혀 있었던 여자들이 하나둘씩 부축을 받으며 걸어나오고 있었다. 그 중에 나와 잠깐이나마 대화를 했었던 또래의 여자도 섞여있었다.
차 안의 분위기는 완전히 잡쳐있었고 다시 시작될 수도 있었던 사라와의 대화는 남은 가능성마저 모두 지워버렸다. 적어도, ‘서울의 마녀’도 이 정도로 눈치없고 기회를 날려버릴 바보는 아니었다. 지금의 나는 뭘까. 마치 그 무엇도 아닌 새로운 미친년이 된 것 같았다. ‘엔’도 ‘서울의 마녀’도 ‘낚시꾼의 딸’도 아닌 무언가. 속에서 들끓고 있는 화가 가라앉을 기미조차 없어보였다. 코에가 죽은 뒤로 더욱 그랬다. 그런 나 자신에게 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엑셀을 밟았다. 천천히 차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사라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울다가 곧 그쳐주었다. 시끄러웠던 소음들이 하나둘씩 꺼져갔다. 거, 시발......하늘이 좆같이도 맑았다.
차를 운전하며 중령을 쫓아 도착한 부대의 입구는 튼실하지 않았다. 위병소라고 세워둔게 철판들을 겹겹이 올려 세운 벽이었고 몇몇 부분이 콘크리트였을 뿐이었다. 차라리 차로 가져다가 세우는게 더 튼튼해보일 지경이었다. 문 역시 철판문이었고 그 위, 양옆에 병사 두 명이 M16를 들고 서 있었다. 탄창은 10발짜리였다.
“사령관님은 사령탑에 계시네. 차는 미안하지만 난민구역 이후부터는 들어가지 못하니 이쯤에 적당히 주차해주게.”
중령은 위병소로부터 조금 떨어진 캠프를 가리켰다. 건물이 있기도 하고 텐트가 있기도 했다. 중간마다 씻는 장소인지 적당히 커튼을 두르고 수증기가 올라오는 곳도 있었다. 이 풍경, 겪었던 풍경이었다. 삼촌의 명령으로 아프리카 어딘가 작전을 나갔을 때, 거처대신 머물렀던 미군의 생활풍경이었다. 제대로 된 시설이 없으니 이렇게 지내는 것이겠지.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이나 어린애들, 노인들의 숫자가 많아 보였는데 남자들이야 대부분 여기서 병력으로 이용하거나 인력으로 사용하고 있을테고.
차에서 내렸다. 사라는 내 손이 아닌 옷자락을 잡았고 다른 이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판초의 모자를 씌웠다. 군부대라고 해서 발정난 놈이 단 한명도 없을 거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말이다. 나는 그대로, 비어버린 한쪽 소매를 보이며 걸었다. 나와 싸웠던 3명도 함께 움직여서 좆같긴 하지만 사령관이 누군지 알 때까지는 가만히 있기로 했다.
난민구역을 지나가는데 여러명의 시선들이 우리에게로 향했다. 정확히는 나와 사라라는 이방인보다 3명에게 더 시선이 가 있었다. 원망한다거나 부정적인 시선은 아니었고 수고했다는 그런 느낌이랄까. 아무래도 여기서는 촉망이라도 받는가 보지. 내 앞에서는 거슬리는 개새끼들이지만. 그런데 여기, 바다냄새가 많이 짙었다.
사령탑이라는 곳은 위병소를 지나, 난민 구역이라는 곳을 거쳐 가운데 있는 곳이었다. 이제보니 사령탑을 중심으로 난민구역이 한 바퀴 둘러쌓여 있고 위병소와 경비를 세운 벽이 2차로 둘러쌓여 있는 형태였다. 대충 어떻게 구역을 나누었는지 알 것 같았다. 의외로 단순한 형태였지만 안정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형태이기도 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바로 1층에서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중령의 안내는 문에서 끝이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권총과 나이프를 확인하고 사라가 옷자락을 잘 잡고 있는지 확인했다. 여전히 뒤에 서 있는 3명이 신경쓰였지만 아무래도 같이 들어갈 생각인 것 같아서 불편한 동행을 하기로 했다.
사령탑은 커다란 감시초소를 개조해 놓은 형태였다. 높이는 대충 4층 정도였고 문 옆에는 작은 창문과 환풍구가 보였다. 잘 보이지 않기 위해서인지 색도 남색과 검은색들로 덮어져 있었다. 이 안에, 과연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걸까. 긴장감과 함께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돌려서 여는게 아닌 당겨서 여는 형식이었다. 위에는 무슨 장식인지 작은 인형 하나가 붙어있었다. 그 인형이 흔들리면서 문이 열렸다. 그리고 안에는 낡은 군복에 익숙한 검은색의 베레모를 쓴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오랜만이다, 엔. 그럴거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살아있었네. 하하.”
목 쪽에는 무궁화 3개가 박혀있었다. 대령이었다. 하지만 그건 중요치 않았다. 왜 그가 여기에 있느냐가 먼저였다. 앞서 만났던 사람들처럼 적대적이라거나 껄끄러워서가 아닌 순수한 궁금증이었다. 테이블 위에는 목포의 지리를 나타내는 지도와 여러 체스말들이 세워져 있었고 끝이 타버린 LED등 하나만이 안을 비추었다. 나는 테이블에 있던 의자에 사라를 앉히고 그를 부를때 말고는 절대로 입에 담지 않았던 호칭으로 불렀다.
“선배.”
“여!”
선배는 손가락으로 자신이 멀쩡하다는 걸 과장스럽게 표현했다. 나의 뒤로 따라들어오던 3명은 우리 둘이 무슨 관계인지 몰라 어정쩡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오가는 대화가 없자 걷어찬 남자가 몸을 앞세우며 선배에게 말했다.
“사령관님. 이 여자는 대체 누구입니까?”
“옛날 내 동료.”
“동료? 혹시 사령관님의 목숨을 구해주었다던 그 사람입니까?”
“맞는데.”
한 마디로 묵살시켰다. 눈빛도 함께였다. 선배는 간단한 대답들과 함께 걷어찬 남자에게 잠시 잠자코 있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새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나와 함께 임무를 뛰었을 적에는 그저 그랬는데 지금은 이곳의 우두머리라는 분위기가 짙어져 있었다. 아빠새끼나 삼촌만큼은 아니여서 나한테 별 효과는 없었지만.
“엔,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 같았는데.”
“아, 많지. 그렇고말고. 지금까지 연락 한 번 없었던 선배였으니까.”
“그건 내 잘못이 아냐. 난 어떻게든 너의 연락처를 얻어보려 했는데 길상아저씨가 접근조차 못하게 했어.”
“이젠 아저씨라고 부르나봐?”
“전역하신 뒤로 술도 한잔 했었지.”
“그건 좀 궁금한데.”
“나도 너한테 궁금한게 아주 많아. 우선 셋이서만 얘기해보도록 할까? 범백팀, 나가있어. 보고는 엔한테 직접 듣도록 할테니까.”
“범백팀?”
처음 듣는 팀명이었다. 보나마나 선배가 지은 것이겠지. 저 남자의 네이밍 센스는 옛날부터 거지였다. 툭 하면 이런저런 것들에 이름을 붙였는데 하나같이 거지같은 것들 뿐이었다. 그나저나 팀이었구나, 얘네들.
“우리 부대의 정예팀이야. 이름 잘 지었지?”
“정예? 이런 애새끼들이?”
‘정예’라는 단어에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다른 일반 병사들보다는 강해보였었고 나름 옷차림부터 그런 분위기를 뽐내기는 했지만 정예라는 단어까지 붙을 정도는 아니었다. 싸워봤기에 할 수 있는 소리였다. 그런데 무심코 내뱉은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범백팀의 눈초리가 날 향해있었고 걷어찬 남자가 참지 못하고 건드려왔다.
“당신, 아무리 사령관님의 옛 동료라지만 말조심하는게 좋을거야.”
“애새끼들보고 애새끼들이라고 한 게 잘못이야? 많이 꼽나봐? 3명이서 덤볐는데도 팔 하나 없는 장애인 감당 못해놓고서는.”
“이 여자가!”
“나가라고 했다.”
남자의 손이 내 목을 향하려 할 때, 품 안에서 바로 나이프를 꺼내려 했지만 그럴 필요가 사라졌다. 선배의 한 마디가 잠재웠기 때문이었다. 호오, 억누르는 기운이 흥미가 생길 정도였다. 겨우 4년 사이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사령관님.”
“엔의 말이 다소 거치기는 하지만 엄연한 선배의 평가다. 실제로 너희는 3명이서 팔 하나가 없고 상처를 입은 엔을 상대했지만 이기지 못했지. 만약 중령이 조금만 늦게 도착했어도 너흰 그녀에게 죽었어. 알고 있나?”
“......”
“나가보도록. 난 3번까지는 말해주니까.”
“알겠습니다.”
손이 거둬지고 범백팀이라 불리는 3명이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나도 꺼내려던 나이프를 도로 집어넣었다. 그나저나 이 인간, 내가 상처가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을까.
“미안. 대신 사과할게. 그래도 나름 우리 부대의 자존심이라서 그래.”
“......칫. 됐어. 신경쓰지도 않으니까.”
“거짓말은 좋지 않아. 내가 안 내보냈으면 바로 목 그어버렸을 거잖아. 커피 마실래?”
“그럴 생각 없었어. 긋더라도 죽이지는 않아. 일단 선배쪽 사람이니까. 커피는 됐고 홍차같은거 있으면 사라한테나 줘.”
“사라? 그 옆에 앉아있는 친구 이름인가.”
“그래.”
“호오. 신기하네. 엔의 친구란 말이지.”
선배는 재밌는 걸 찾았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어디서 생산이 되는지 전기를 이용해 포트의 물을 끓이고 차 3잔을 우렸다. 내가 우선 받아 사라의 앞에 놔주었다.
“사라, 앞에 차 있어. 마실거면 마셔.”
“......응.”
“흠......뭐, 서로 얘기하면서 다 알게 되겠지.”
그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베레모를 벗었다. 짧게 자른 머리카락인데도 숱이 많았다. 탈모가 올 일은 없어보였다. 난 지금 스트레스 때문에 언제와도 이상할게 없는데. 다행히 아빠새끼가 탈모가 아니였던 덕분에 30대는 지나야 올 것이다. 젊고 섹스하기 좋은 20대 때 생기는 건 거절이었다.
“우선 나부터 궁금한 걸 물어봐도 될까?”
“뭐가 그리 궁금하실까. 내 전역 이후의 얘기를 재미없는 것 뿐이라서.”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 나도 지금의 네가 아군이 될지, 적군이 될지를 판별해야 하니까.”
“뭔 소리야?”
“그건 자신의 입장을 가장 잘 알고있는 네가 알겠지. ‘서울의 마녀’.”
망설임 없이 권총을 뽑아 들어 선배를 겨누었다. 안타깝게도 그의 말이 맞았다. 아군이 될지, 적군이 될지 판별하는건 내가 가장 잘 알 수 밖에 없었다. 완전히 속아넘어가고 말았다. 짧지만 함께 했었고 나름 송혜같은 애들 말고 일반인의 범주에서 친하게 지냈다고 생각한 선배라며 안심한게 가장 큰 실수였다. 또 무엇보다 내 정체를 알고 있다는 것도 변수에 한 몫 하게 되었다.
“엔?”
“그러게. 선배의 말이 맞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문제였어. 어떻게 할까? 선배니까 특별히 고통없이 보내줄 수 있는데.”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마.”
“민감한 부분을 쥐어짜듯 건드려왔는데 어떻게 반응을 안하는데?”
“너무 직설적으로 말했나? 하하!”
나의 머리는 벌써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었다. 사라를 여기서 무사히 데리고 빠져나가는 방법. 일단 바깥에는 병사들이 많았지만 전부 오합지졸이었고 탄도 그리 넉넉치 않아보였다. 충분히 가능성이 보였다. 선배는 총을 겨눠 여기에 묶고 사라를 먼저 내보낸 뒤 난민구역을 이용해 탈출한다. 그게 내 계획이었다.
“워, 워. 아직 난 궁금한 걸 묻지도 않았어.”
“그래? 다행이네. 그런 내 차례로 바꾸자. 아직 시작 안했잖아. 선배는 어떻게 알고 있는거야? 삼촌이 말해줬어?”
“아니. 길상아저씨는 단 한 마디도. 오히려 경찰쪽에서 알려줬어.”
“경찰?”
“‘부산의 진돗개’. 알고 있겠지?”
“모르면 섭섭하지. 진짜 개새끼마냥 냄새 쳐 맞고서는 나하나 잡겠다고 전국을 쑤셨던 놈인데.”
“‘사건’이 나타나기 전에 그 형사가 접촉해왔었어. ‘마녀’를 잡을거니 도와달라고. 그러면서 사진을 보여줬는데 안에 있던 여자가 너였어.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길상아저씨도 숨기는게 있었고 너도 뭔가 뒤가 구리기는 했었으니까 개인적으로 조사를 했었어. 그런데 맞더라고. 엔이 ‘서울의 마녀’였다는 결과가.”
“개인적인 조사는 됐고, 그래서 협조했다, 이 소리야?”
“협조 안했어.”
이해되지 않았다. ‘서울의 마녀’를 잡으면 특진은 물론이고 엄청난 보수도 받았을 건데. 거기다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던 선배라면 충분히 그 형사와 협조해서 잡고도 남았을 것이다.
“돈이 적었나봐? 서울에 있는 빌딩 하나로는 부족하려나.”
“아니, 날 너무 그런 이기적인 놈으로 보지마. 너니까 협조 안한거야. 만약 ‘서울의 마녀’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바로 잡으러 갔지.”
“다른 속셈이 있던건 아니고?”
“어떻게 해야 믿어줄래?”
“안 믿을건데.”
“엔, 일단 권총 내려놓고 천천히 얘기하면 알 될까? 네 친구가 불안해하잖아.”
옆을 보았다. 사라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웅크리고 있었다. 내 과격한 행동에 반응한 것이다. 내가 알던 사라라면 권총을 든 것이냐며, 그러면 안된다고 말렸을 텐데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조금 씁쓸함을 느끼며 조준을 내렸다. 그래, 일단은 들어보기로 했다. 만약 선배가 나를 적군으로 생각했다면 백범팀을 바깥으로 내보내지도 않았을 거고 이 안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천장이나 땅에도 따로 기척은 없었다.
“좋아. 천천히 무슨 얘기를 해보려고?”
“난 네가 ‘사건’이 일어난 이후의 행적들을 들려줬으면 좋겠어.”
“이유가 뭔데?”
“말했잖아. 아군일지, 적군일지 판별한다고.”
“이미 난 답이 나왔는데.”
“그래? 난 아직 확신이 안서서 말이야.”
“어느 부분에서?”
“그 ‘서울의 마녀’가 사람을 죽이고 다녔지만 역으로 사람도 살리고 다녔다는 부분에서.”
사람을 살렸다. 이 부분에서 사라의 반응이 있었다. 감싸던 두 손을 조금 내리며 선배쪽으로 시선을 두었다.
“사람을 살려? 내가? 약 쳐먹었나 봐. 난 ‘서울의 마녀’야.”
“그 이전에 내 동료인 ‘엔’이기도 하고. 벌써 까먹은 건 아니지? 우리가 어떤 임무들을 해내왔었는지.”
“그건 삼촌의 명령일 뿐이었고 관심도 없는 사람따위 구할 생각 1도 없었어.”
“자의든, 타의든, 결과적으로는 넌 사람을 구했어. 그건 부정할 수 없는 부분이야. 그래서 형사에게서 네가 ‘서울의 마녀’라는걸 들었을 때 단번에 믿지 못한거고.”
“겨우 그것뿐?”
“아니. 나한테는 크나큰 빚이면서 널 재평가한 큰 사건이 있지.”
“......그 선박을 말하는 거야? 케이니?”
“나 하나를 구하기 위해서 너 자신을 희생했어. 몇 개월간 스위스의 마피아 노리개 생활을 했던 것도 알아. 그 때, 넌 충분히 날 버리고 도망칠 수 있었지만 굳이 그 기회를 날려버리고 날 구했지. 악몽이면서 동시에 잊지 않겠다며 줄곧 간직하고 있던 내 기억이야.”
“이기적인 생각일 뿐이야. 내가 그 때 선배를 구했던 이유는 확률적인 전략이었어. 물론 실패했지만.”
“부정은 안하네?”
“정정해준거잖아. 좀 알아 쳐먹으라고.”
“아무튼, ‘사건’이후의 행적을 들려줘. 그게 내 질문이야.”
“......재미없을 거야. 중간부터는 최악의 얘기들 뿐이거든.”
“괜찮아.”
“......역시 선배는 좆같아.”
차를 한 모금 마셔 목을 축였다. 그리고 기나길었던, 나와 사라의 얘기를 시작했다. 처음 ‘사건’이 일어나 팔을 잃은 얘기, 2년간 생존자들의 섹터와 폐허를 이리저리 오가며 혼자 살아왔던 얘기, 생존자보다는 약탈자들을 습격해 죽이고 섹터에서 별 이상한 놈들이 날 습격하려 했던 얘기, 그리고 제일 중요한 전환점이 된 사라를 구한 얘기, 이어서 자만심 가득했던 노인네와 태영이 있던 섹터, 재혁이와 석재를 만나 하마터면 사라를 잃을 뻔하고 식물형 괴물과 사웠던 도시, 송혜와 함께 다른 구역들을 상대하고 케이니와 두영을 쓰러트린 거대한 섹터, 주환을 만나 드디어 아빠새끼를 죽이고 내가 서울의 마녀임을 사라에게 들켰던최악의 기억과 죽었다가 살아난 얘기, 마지막으로 코에를 만났지만 오두막집에서 잠깐이나마 내가 몸을 담궜던 사이비 종교인 때문에 죽은 얘기. 처음에는 무덤덤하게 얘기를 풀어나갔지만 뒤로 갈수록 가슴 어딘가가 나를 옥죄어 왔다. 그게 좆같아서 손으로 강하게 쥐어 뜯어야 할 정도였다.
선배는 내 얘기를 모두 듣고서 무언가 생각하는 중이었다. 사라는 코에의 얘기에서 다시 안좋은 감정을 곱씹어야 했다. 조금 지나서, 선배가 입을 열었다.
“네가 그간 겪었던 얘기는 잘 들었어. 특히 제일 궁금했던 것도 많이 풀렸고.”
“그래서, 적군이야? 아군이야?”
조심히 총으로 손을 가져갔다. 적군이라고 판별했을시 바로 쏘고 도망갈 채비를 위해서였다.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원래부터 아군이었어, 엔.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문제야.”
총에서 손을 떼었다. 이제 여기서는 필요가 없어진 물건이었다. 긴장했던 순간을 풀어주기 위해 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사라는입에도 대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였구나. 지금 네가 그런 눈빛이 된 게.”
“이거? 노란색 눈동자라면 나도 몰라. 죽고 살아나니까 이렇게 변해있었어.”
“아니, 그거 말고. 지금 네 눈빛이 어떤지는 알아? 단순히 화가 난게 아냐.누구라도 눈에 보이면 미워하고 바로 죽여버리겠다는 정도야.”
“원래 그랬어.”
“적어도 이렇게 아군 앞에서 그런 분위기를 낼 정도는 아니였어.”
“미친년이었잖아.”
“최소한의 분별은 있었어.”
“......어쩌라고! 이 이상 날 빡치게 하지마. 진짜 적군이 되어줄 수도 있으니까. 아무튼, 하......더 할 얘기 있어?”
“얘기는 있지만 잠깐 바람을 좀 쐬볼까 해. 따라올래?”
그러면서 선배는 일어섰다. 의자를 뒤로 밀고 자신이 펼쳐놓았던 지도를 접었다. 옷걸이에 걸려있던 코트를 입고 조그맣게 자리를 차지하고서 놓여있던 철계단에 올랐다. 우리를 보며 따라오라는 눈빛을 보냈다. 귀찮았지만 응해주기로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사라의 어깨를 건드렸고 그녀는 내 옷자락을 잡으며 뒤에 붙었다. 계단에서는 내가 먼저 처음 두 칸을 오르고 그녀가 천천히 한 칸씩 오를 때마다 발걸음에 맞춰 올라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옥상, 4면이 모두 유리로 되어 있는 곳이었다. 방탄이려나.
바깥의 풍경은 생각치 못 한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탁 트인 곳이라는 건 알려주었다. 이곳은 항구를 개조한 곳이었다. 어쩐지 난민구역에서 벗겨진 하얀색의 선들이 많이들 보인다 했었다. 주차장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거기다 배는 또 어떻게 끌고왔는지 군함 2척이 정착되어 있었다. 훈련을 하는 중인지 열심히 구르고 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선배는 옥상에 도착하자마자 작은 창문 하나를 열고 담배를 태웠다. 내 주변에 왜 이렇게 담배를 태우는 인물이 많은지 모르겠다. 하나같이 빨리 뒤지고 싶나 보다. 그는 저 멀리, 햇빛 아래에 비치는 바다를 보며 무언가를 열심히 생각하고 있었다. 생각 뒤에는 또 생각이었다. 내용은 알 수 없었다.
“있잖아, 엔. 난 두 가지에서 너에게서 놀랐어.”
“존나 뜬금없는 소리네. 선배도 대가리에 곰팡이 폈어?”
“하나는 네가 저런 아리따운 아가씨를 데리고 다닌다는 거야. 변했구나, 너도.”
“좆까. 그리고 내가 변한게 아니라 세상이 변한거야. 주위 보면 알잖아. 원래부터 좆같았던 세상이 얼마나 더 좆같아졌는지. 낮에는 약탈자 새끼들이 나대지, 밤에는 크립톤 새끼들이 나대지. 하루라도 조용히 섹스조차 할 수 없는 세상이야, 이제.”
“그 속에서 넌 그 아가씨를 지키면서 살아왔잖냐. 무언가를 죽이고 부순다는 것밖에 모르던 ‘엔’이.”
“불만이야? 아까부터 내 신경을 쳐 긁는 것 같은데, 한 판 뜰래?”
“사양이다. 나도 몸은 성해야지.”
“그럼 아가리 잘 놀려. 시발, 개같은 중2병같은 말 그만 뱉으라고.”
“나머지 하나는.”
내 말을 씹었다. 예전 선배였으면 함부로 하지 못할 행동이었는데 성장한 선배는 당당하고 무덤덤하게 내 말을 씹어대고 있었다. 여기서는 저격맞기 딱 좋은 곳이라 권총으로 손을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나이프로는 자꾸 갈 것 같았다. 아니면 한 대 후려갈길까? 그냥.
“네가 사람들을 구했다는거. 첫 번째로 들렸다는 섹터도 그렇고 케이니를 쓰러트렸다던 섹터, 그리고 주환이 있다던 난민구역에다가 한 가족까지 구해냈지. 그 때처럼.”
“내 의지가 아니야. 사라의 말을 따르기로 한 것 뿐이야. 정확히는 우리 둘이서 선택한거지.”
“결과적으로는 구해냈잖아? 그래서 난 널 아군으로 생각한거고.”
“......슬슬 지겨워.”
짜증나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말을 계속 돌려말하고 있었다. 그새 입을 놀리는 스킬도 상당히 늘어난 모양이다. 하지만 시간이 아까웠던 나는 빠르게 본론이나 말했으면 했다. 지금 선배는 말을 숨기며 뱅 돌아가고 있었다. 그냥 추억팔이 일지도 모르지만 난 한시가 급했다. 나도 할 말이 있었다.
“본론을 말해. 아무리 선배가 성장했다지만 날 따라잡으려면 훨씬 멀었으니까. 우린 하루 빨리 부산으로 가야하는 입장이야.”
“그러면 뭐, 알았어. 서두가 많이 길었지?”
“존나게 길었어, 시발.”
“우선 한 가지 알려줄게. 너희는 이대로 가도 부산에 들어가지 못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