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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화 〉Sloth (Bless You, Shara) - 1 (70/72)



〈 70화 〉Sloth (Bless You, Shara) - 1

최악이다. 시발. 사라와는 대화가 끊긴지 오래되었다. 이제는 사적인 대화뿐 아니라 생존과 관련된 부분도 마찬가지였다. 무엇하나 제대로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다. 이유를 알기에 답답하지는 않았지만 나도 매한가지였기에 더 좆같았다. 그녀는 이제 내 말에 고개만을 끄덕이는게 다였다. 그래도 딱히 뭐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그만큼 충격적인 일이었으니까.

한 아이를 묻어주고 난 후, 나도 변화가 생겼다. 지금까지 내가 떠벌린 말로 보면 그냥  아이가 이 좆같은 세상에서 다른 이들처럼 똑같이 죽었을 뿐인데 어째선지 화가 억눌러지지 않았다. 예전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쳐가며 화내는 것도 아니었다. 조용히, 마치 삼촌처럼 화를 내고 다녔다. 지나가다가 벌레가 보이면 다 밟아 죽여버릴 정도였다. 예민했고 민감했다. 너무 심각해지면 나중에 피아식별도 되지 않아서 사라에게도 해코지 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그런일은 없었다. 그녀도  건드려 오지 않았고.

도로는 여전히 개판이었다. 어딜가도 개판이었다. 잔해를 치우고 달려왔지만 여기저기 길들이 막혀서 돌고 돌아서는 결국 한반도의 아래까지 오고 말았다. 이제 지도도 없었고 여기는 어딘지도 모르겠다. 내 고향의 근처이긴 했지만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서울이나 부산을 들쑤시고 다녔지 이곳은 아예 처음이었다. 표지판도 대부분이 부서지거나 지워져 있었다. 그나마 적혀있는 지명을 읽었지만 처음 듣는 지명들이라 어느 위치인지 가늠조차 어려웠다. 그나마 알아볼 수 있던건 바다였다. 서해인지, 남해인지는 모르겠다만. 시발.

찾아오는 저녁을 대비해 차를 세우고 바로 근처에 있던 폐식당에 머무르게 되었다. 창문과 문들을 모두 막아버리고 가운데 램프를 밝히고서 사라와 함께 주변을 걸었다. 여기가 어디인지부터 알아내야 했다. 그녀는 손을 잡았지만 내가 ‘서울의 마녀’라는 들켰을 적에보다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애초에 말도, 표정도 없었다. 그냥 나를 따라다니는 인형같았다.

1시간, 그 정도쯤 걸으며 주변을 수색했다. 성과는 크지 않았다. 제일 중요한 위치가늠이 파악되지 않았다. 이미 부산으로 가는 길에서 크게 이탈한 것 같았다. 서해, 아니면 남해인데 가능한 남해였으면 했다.

식량을 일부 구할  있었다. 무언가 창고로 보이는 것, 비린내가 심한걸 보니 해산물 같은 것들을 보관한 것 같았다. 그곳에서 운좋게 따지 않은 통조림을 얻을 수 있었다. 안그래도 식량이 점차 줄어가고 있던 때였다. 부산으로 가는 길이 길어짐에 따라 먹는 끼니가 많아진게 문제였다. 그리고? 끝이다. 애초에 여기는 시골동네였다. 뭔가를 더 바라는게 이상한 거지.

식당으로 돌아와 부서진 테이블들을 한쪽 끝으로 밀어버리고 잠자리를 만들었다. 사라에게 침낭과 함께 두터울 이불을 주워와 덮어주었다. 나는 하나뿐인 손에 권총을 들고 경계를 서기 시작했다. 잠은 오후에 눈을 붙여놓아서 충분했다. 내 옆이 아닌 맞은편, 사라가 천천히 눈을 감았고 잠에 빠져들었다. 램프의 빛이 순간 심하게 흔들렸다.

[아줌마!]

......시발. 또 머리에 울리고 있었다. 꼬맹이의 목소리가. 해가 뜬 오전이나 오후에는 멀쩡했는데 조금이라도 어두워지면 이따금씩 머릿속에서 울려퍼졌다. 어떻게든 쳐내려고 발버둥 쳐봤지만  안에서 계속 자리잡고 있었다. 아마 평생 따라올 것이다. 알 바가 아니라고 했으면서 그 꼬맹이가 개시발놈의 창호랑 괴물에게 당했을 때, 이성을 잃을 정도로 분노했으니까. 지금 생각해도 난 왜 그 꼬맹이에게 정을 느꼈는지  수 없었지만 그건 중요치 않았다. 코에가 죽었다. 그게 중요했다.

‘터벅.’

들고 있던 베레타를 움켜쥐었다. 분명히 발소리였다. 나는 급히 시선을 움직였다. 입구가 아닌 창문쪽이었다. 거기다 이 발소리, 크립톤의 것이 아니었다. 그놈들이었다면 이렇게 조용히, 발소리를 숨기려고 하지 않을 테니까.

“시발.”

사라는 잠들었고 총은 사실상   없었다. 크립톤이 상대라면 모를까 사람을 상대로 쐈다가 괜히 괴물새끼들만  불러들일 뿐이었다. 하지만 저쪽도 피차 마찬가지겠지. 권총을 집어넣고 나이프를 들었다. 그리고 재빨리 몸을 숨길 곳을 찾으며 소리에 집중했다.

“창문을 막아놨어. 조용히 뚫을게 없을까?”

“있겠냐? 멍청아!”

아니, 계획을 변경하기로 했다.  저 바깥의 놈들이 우리에 대해 어느정도 정보를 가지고서 쳐들어 온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생각없이 들이닥친  했다. 이러면 더 수월하다고 볼 수 있었다. 조금 최악으로 보일 수 있긴 하지만 만약 계획을 가지고 쳐들어온 것이었다면 사라를 미끼로 이용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저놈들이 노려봤자 우리의 식량 아니면 몸이었다. 크립톤들 때문에 여자들이 줄어드니까. 아무튼, 나이프를 들고서 몸을 풀었다. 가능한 소리없이 처리해야 했다.

“안에 여자들이었던 건 확실한거지?”

“그렇다니까.  명은 모자까지 써서 가리긴 했는데 여자일거야. 데려가면 두목이 우리 몫도 확실히 쳐주겠지.”

두목? 집단인가. 대충 상황파악이 되었다. 지금 저 밖에 있는 놈들은 우리를 납치해 자신들의 두목에게 데려가려는 속셈이었다. 즉, 당장 눈앞의 본능에 충실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제대로된 정보도 없이 쳐들어왔다는 건가. 멍청했다. 몸을 풀고 출입구용으로 쉽게 해체할  있는 창문으로 갔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커튼대용을 치우고 막았던 것들도 치운 뒤 조심히 열고 밖으로 나갔다. 다시 닫고 나서는 발걸음을 죽였다. 크립톤이 오지 않을까 주변을 확인한 뒤 벽에 붙어서 이동했다. 소리가 났던 쪽, 고개를 조금 내밀어 확인하자  목소리의 주인들 밖에 없었다. 남자 두 명, 모두 노란색의 자켓을 입고 있었다. 나이프를 고쳐잡았다.

“야, 근데 생각해보면 두목한테 데려다주기 전에 우리도 재미 좀 보면 안 돼? 솔직히 한 번쯤은 그래도 괜찮잖아.”

“미쳤냐? 죽고 싶은면 그러던가. 그리고 데려다 주면 한 번 재미볼 기회 주잖아.”

“아니, 시발. 그것도 겨우 한 번이잖아. 내가 지금 쌓인게 몇 일인데.”

“난 됐네요. 좆같아도 목숨이  중요해서.”

일단 쌓였다고 말한 남자는 살리기로 했다. 두목한테 데려다준다던가,  전에 손대면 죽는다던가로 보면 꽤나 규모가 있어 보이는 집단인 것 같았다. 나는 조용히 지나가고 싶으니 정보를 얻기로 했다. 싸움이 좋고 사람 죽이는 것도 좋지만 사라가 있었고 지금 내 상태로 보건데 적당한 선에서 그치지 않을 것 같았다. 지금도 화를 최대한 억누르고 있는 중이었다.

“그냥 부수고 진입하자. 어차피 여기는 크립톤이 잘 오지도 않는 곳이니까. 난  하나뿐이었던 여자를 맡을게.  모자를 맡아.”

“역할을 나눌 필요가 뭐 있어? 상대는 여자야. 나 혼자서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걸?”

“무기를 들고 있을 수도 있어.”

“그래봐야 우리들처럼 칼같은게 전부겠지.”

다 불어주네. ‘우리들’이라는 단어가 저 둘 뿐인지, 아니면 집단 전체인지를 모르겠지만 이 새끼들, 상당히 병신들이었다. 그들은 내가 막아놓은 창문을 부수기로 결정하고 품에서 해머를 꺼냈다.  손으로 쥐고 두드리는 망치가 아니었다. 나도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한 남자가 해머를 머리 위로 들어올렸을 때, 뛰쳐나갔다.  나이프로 먼저 목을 그었다. 피가 내 손에 튀었다. 잔동작은 없었다. 아직 배를 뚫린 상처가 완전히 낫지 않아서 조심해야 했다. 그리고 내가 찍어둔  놈, 쉽사리 힘을 쓸 수 없도록 오른손을베고 넘어트리며 입을 막았다. 비명을 지르려 하지만 내 손에 막혀 새어나오는 건 작은 소리뿐이었다.

“입 닥치고 있는게 좋을거야.  쓸모있어 보여서  죽일 거거든. 하지만 좆같게 굴면 바로 베어버릴거야. 알겠어?”

세차게 고개를 끄덕여 왔다. 옆에는 해머와 함께 넘어져 버린 남자가 조용히 죽어있었다. 난 시체 그대로 크립톤의 먹이로 던져줄 생각이었다. 충분히 배를 채울 것이고  식당은 조용히 넘어가 주겠지.

“일어서.”

천천히 남자의 입을 풀고 일으켜 세웠다. 그는 내 말에 고분고분 따랐다. 죽어버린 자신의 동료에게 시선을 주기는 했지만 수상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를 식당 바로 옆에 있던 창고로 밀쳤다. 그리고 품에서 붕대 하나를 던져준 뒤 바깥에서 문을 닫아 막아버렸다. 해가 떠오를 때, 여러 가지를 물어볼 생각이었다. 이후 죽였던 남자의 시체를 수색했다. 유통기한이 몇 개월 지난 초코바 2개와 커터칼, 기름이  남은 라이터를 얻을 수 있었다. 그 뒤에는 식당에서 떨어진 곳에 던져버리고 왔다.

조용히 정체모를 두 놈을 처리하고 다시 식당 안으로 들어와 창문을 막고 경계를 섰다. 걸려있던 시계는 이제 새벽으로 넘어가려 했다. 사라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여전히 잠들어 있었는데 그녀의 몸 어디든 만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쩌다가 이렇게  걸까. 코에가 함께 할 때, 조금이지만 나아지는 기미가 보였는데 이제는 완전히 나를 차단시켜버린 느낌이었다. 한 마디라도 좋으니까 목소리를 들려주었으면 하는데.

[난 귀찮은 아이가 아니야!]

애꿎은 테이블에 머리를 세게 박았다. 다시 들려왔다. 꼬맹이의 목소리가 나를 옥죄어 왔다. 만약 내가  괴물을 쫓지 않았더라면 살 수 있지 않았을까? 그 생각뿐이었다. 꼬맹이의 환청이 들려올 때마다  생각만 했다. 특히나 괴물을 쫓기로 내가 선택한 거라  좆같았고 그냥 더, 시발. 시발. 시발.

“시발......개병신 시발, 좆같은 씹창난 새끼, 시발.”

허튼 욕짓거리나 내뱉는 모습이 한심해 보였다. 그냥 확 미쳐버리고 싶었다. 이미 미칠것 같았다. 미친년이었지만 정줄을 놓아버리고 싶었다. 난 이딴 상황을 바라지 않았다고, 시발. 한번 더 머리를 박았다. 그런다고 꼬맹이는 돌아오지 않는다. 땅속에 묻었으니까. 그렇게 오늘도 좆같은 아침이 찾아왔다. 밝은 해는 꼴도 보기 싫었다.



밤을  아침, 아직 사라가 일어나지 않았을  남자를 집어넣었던 창고로 향했다. 문을 열자 오른손에 붕대를 감은 남자가 자고 있었다. 짜증나서 발로 차 깨웠다. 그는 다급히 일어나 무슨 일인지 당황하다가 나를 보고서 겁을 먹고 긴장했다. 나이프를 꺼내 겨누며 씨부렸다.

“질문은 나만 한다.  답만 해.  마디라도 다른 말을 지껄이면 바로 죽여버릴 거니까.”

움직이는 고개. 바로 질문을 시작했다. 우선은 여기에 대한 정보들이 먼저였다. 내 위치가 어디인지, 부산으로 얼마나 더 가야하는지.

“여기 근처에  도시가 있어?”

“목포가 있습니다.”

‘목포’? 그 소리는 여기가 전라남도, 그것도 진짜 땅 끝쪽이라는 소리였다. 젠장할! 불안하긴 했는데 아예 길을 잘못 들었다. 시발. 머리가 아파왔다.  바로 뒤, 산 너머로 큰 건물이 몇  보이기는 했는데 설마 저게 목포였을 줄이야. 일단 진정하자. 기름이 부족하긴 하지만 도시가 있으니까 섹터를 털든 주유소를 털든 구할 수는 있을 것이다. 다른 정보를 캐보기로 했다.

“니새끼 얘기 중에 두목하고 여자얘기가 많던데, 너네 뭐하는 집단이야?”

“그게, 그거까지는 좀.”

이상한 대답을 해서 찔러버렸다. 가차없이 그의 오른쪽 어깨에 깊숙히 박아주었다. 그러면서 팔로 입을 막았다. 비명을 내지르지만 바깥까지 닿지 않았다.

“답만 하랬지?”

“우웁! 웁!”

나이프를 빼내었다. 죽인다고는 했지만 정보가 먼저였다. 애초에 살려줄 생각은 1도 없었다.

“그...그냥 저희도 생존자입니다.”

“지랄하지마. 우리를 가져다가 두목에게 받친다고 한 것부터 정상적인 생존자일 리가 없으니까. 보나마나 섹터가 습격하고 다니는 약탈집단이겠지. 여자가 보이면 데려다가 노리개로 삼았을 거고. 아냐?”

“마...맞습니다.”

“좋아. 우린 목포로 갈거야. 은신처, 근거지, 알고 있는  싹  불어.”

“그, 알고는 있는데.”

나이프로 한  더 찔렀다. 이번엔 허벅지였다. 죽을 것 같은 고통이겠지만 아쉽게도 사람은 그리 간단하게 죽지 않는다. 고통만 더 세게 받을 뿐이었다. 남자는 더 고통스럽게 비명을 내지르려 했다. 팔로 막고 진정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질문을 이어갔다.

“불어.”

“..대형마트!......제가 알고 있는 근거지는 대형마트뿐입니다. 정말로, 전 그것밖에 몰라요. 다른 은신처나 근거지에는 발도 못 들이밀어 봤다구요!”

거짓말로는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이런 쫄다구 새끼한테 은신처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다만 ‘다른’이라고 한 것을 보이 한 두 군데가 아닌듯 했다. 마치 마피아나 야쿠자 마냥 여러 개의 근거지를 운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하는 정도라면 규모가 조금도 아닌  편이었다.

“안에 너희 말고 생존자들이 모인 섹터는 있어?”

“없습니다. 정말로 없습니다. 저희도 외부자나 간간히 남아서 숨어있는 생존자들을 습격했을 뿐이니까요.”

“......그래.”

고민도 하지 않았다. 바로 남자의 목을 그어버렸다. 주환에게 받은 나이프는 날이 예리해서 사람의 살점 따위는 쉽게 벨 수 있었다. 그어버린 목으로 피가 쏟아져 나왔다. 남자의 눈은 마지막까지 날 향해 ‘어째서?’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대로 쓰러져 죽어버렸다. 이제 쓸모없는 새끼였다.

충분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도시를 지날  있는 정도의 정보는 들을 수 있었다. 이제 내가 해야할 일도 하나 정할 수 있었다. 이놈들의 근거지라고 했던 마트를 습격할 생각이었다. 약탈집단인 만큼 식량도, 기름도 충분히 가지고 있을 터였다. 거기다 이 놈들이 총까지는 들고 있지 않았던 걸로 봐서는 대부분이 칼이나 둔기같은 거나 쓸테니 어렵지 않았다. 다만 문제는 사라였다. 그녀를 어디에 숨기느냐인데 차에 두기에는 너무 위험했고 다른 건물에 숨길만한 장소를 찾아봐야 했다.

식당으로 돌아가기 전, 던져두었던 남자쪽을 확인하러 가보았다. 뭐, 예상한 결과와 별반 다를건 없었다. 이 새끼들, 그동안 쳐먹지도 못한 건지 완전히 뜯어먹었다. 살은 말할 것도 없었고 내장이 튀어나오고 일부 뼈들도 부서져 있었다. 남아있는건 얼굴 반쪽과 거추장스럽게 드러난 하반신이었다. 뒤돌았다.

이제 필요 없으니 문에 막았던 것들을 발로  부숴버렸다. 이리저리 소리가 시끄러웠지만 사라도 일어날 시간이었고 내 몸이 피곤해지기 전에는 마트에 있는 잔챙이들을 쓸어버려야 했다.

‘쨍그랑!’

힘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유리문까지 깨버렸다. 그대로 안으로 들어가자 사라가 눈을 비비며 일어나고 있던 참이었다. 다가가서 꺼진 램프를 들고 그녀에게 아침말을 건넸다.

“사라, 이동할 시간이야. 아침은 차에서 먹자.”

“......”

끄덕이는 고개뿐이었다. 그녀는 내 말에 곧장 일어나 기다렸다. 그동안 침낭을 정리해 등에 메고 램프와 함께 사라의 손을 잡았다. 여기까지는 허용이었다. 다만 달갑지 않을 것이다. 여러명의 피들을 묻혔고 코에도 지키지 못했으니까.

차에 올라타자마자 뒤에 있던 과일통조림 하나와 초코바를 건네주었다. 당장 고기를 구워먹을  없어서 열량 위주로 먹인 것이다. 통조림의 뚜껑을 따주고 초코바의 비닐도 뜯어서 양손에 쥐어주었다. 나도 초코바 하나를 까먹고 나이프와 권총을 확인했다. 준비는 끝났다. 시동을 걸고 차를 몰아 ‘목포’의 도심 속으로 들어갔다. 이제 표지판에서는 지워져버린 도시였다.



[히라.]

[네, 잘 들려요.]

[일단 어디로 향하는지 알아냈어. 무슨 생각인지는  수 없지만 지금 방향으로 간다면 도달할 곳은 ‘목포’뿐이야.]

[멀리도 갔네요. 그새 방향을 틀었다니. 저라도 도착하는데 시간을 많이 걸릴거에요. 헬리콥터 지원은 무리겠죠?]

[무리. 형사, 노길상 다음으로 까다로운 인물이 그곳에 있으니까 말이야.]

[어쩔 수 없네요. 시간이 길어지겠지만 직접 이동할게요.]

[그래. 그리고 가능한 눈에 띄는 행동은 하지마. 그쪽은 지금 양아치들하고 대치 중이니까.]

[양아치들을 도와서 미리 죽여버릴까요?]

[그러면 나야 좋겠지만 말처럼 쉬워야지. 그 남자도  혼자서 감당할  있는 인물이 아니야. 괜한  하지 말라는 거야. ‘낚시꾼’만큼은 아니긴 하지만.]

[걱정이 너무 많은거 아닌가요?]

[‘마녀’에게 겁먹은 네가 할 소리는 아니지 않아?]

[직접 ‘마녀’를 보지 않아서 그래요.]

[말싸움 해봤자 얘기만 길어지겠지. 우선 이동하고 도착하면 다시 통신 줘. 슬슬 바빠질 시간이라서 말이야.]

[그러죠.]

[수고해.]




도로는 다른 곳과 달리 개판이었다. 하지만 차가 달리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많이 지나다닌 흔적들이 보였다. 그리고 오면서  집단이 만든 것 같은 바리케이드들이 수없이 보였다. 대부분은 무언가랑 싸우기라도 한 것처럼 부서져 있었긴 했지만 아마 크립톤 때문이겠지.

대형마트를 찾는건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도심에 들어선지 얼마 지나지 않아 누가봐도 생존자들이 머물고 있는 대형마트를 찾을 수 있었다. 자, 이제 검증할 시간이었다. 그 새끼가 말한 정보를 순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어쩌면 근거지 중 하나가 아닌 본진일 수도 있다. 자기가 살  있다는 희망에 끝까지 함정에 빠트리려 한 말 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차를 세우고 사라와 함께 내렸다. 그녀에게는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이미 들킬거 다 들켰고 어차피 무사히 지나가기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었다.

“사라. 지금부터 난 미친 개새끼마냥 싸우러 갈거야. 약탈을 주로 삼아서 뒤질 목숨을 연명하는 놈들인데 식량이랑 기름이 필요해서 뺏을거거든. 그렇지 않으면 부산에 도착하지 못해. 그러니까 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그녀를 이끌고 들어간 곳은  기능을 잃고 완전히 무너져내린 은행이었다. 지금만큼 은행에 들릴 놈은 없을 것이다. 돈은 도움이 안되니까. 장작도 인도에 있던 나무나 가구점에서 구해 불을 지피는게 더 빠를 것이다.

사라를 은행에 있던 책상 밑에 집어넣었다. 다른 책상까지 끌고와 보이지 않도록 덮고 의자까지 밀어 고정시켰다. 숨을 쉬는데는 문제 없을 것이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차로 돌아와 트렁크를 열고 라이플을 꺼냈다. 스코프로  멀리, 대형마트를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일단 근거지는 맞았다.  새끼들과 같은 노란색의 자켓들을 입고 있었다. 저게 집단의 조직복장인가 보지. 무기들도 칼, 둔기들이 대부분이었다. 다시 차의 트렁크에 집어넣고 차키를 챙겼다. 권총의 탄을 확인하고 허벅지에 있는 권총집에 끼워넣고 나이프를 들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달려 대형마트의 입구까지 달렸다. 그곳에는 두 명의 보초가 식칼과 지렛대를 들고 서 있었다. 빠르게 달려오는 내 모습에 시선이 움직였지만 이미 내 나이프가 닿아있었다. 한 명의 목을 베고 이어서 심장을 찔렀다. 비명소리도 내지 못한  죽어가는 병신들이었다.

보초를 죽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1층에도 적지 않은 인원들이 있었다. 역시 대규모 집단이었다. 그들은 각자들 모여서 카드게임을 하고 있거나 멀리서 잡아온 듯한 여자한테 꼬추를 박고 있는게 보였다. 그걸 파악하는데 걸린 시간을 불과  초, 나이프를 휘둘러 문에서 가장 가까웠던 놈의 뒷목을 찔러 죽였다. 바로 옆, 고개를 돌리길래 목을 베었다. 그제서야 모두가 나를 보게 되었다. 15명. 칼 7명, 지렛대 2명, 망치 4명, 목도 2명. 무기를 한 번에 훑어본 뒤 제일 만만해 보이던 칼을 든 놈에게 달려들었다.

“니년은 뭐야?!”

시끄러웠다. 나를 향해 칼을 휘둘러왔다. 몸을 숙이고 다리를 찔러 굽힌  그대로 나이프를 들어올리며 턱을 찔렀다. 바로 뒤에서 다가오는 발소리들, 몸을 돌리며 그가 들었던 칼을 뺏어 베었다. 붉은 피들이 나를 물들이려 공중에 튀었다. 이어 옆에서 달려와 휘둘러진 지렛대를 막고 다리를 걸어 넘어트린 뒤 똑같이 목을 찔렀다. 빼내고 뒤에서 달려오던 놈의 가슴에 던져 꽂아주고 내 나이프를 뽑아 고쳐잡은  차례차례 죽여버렸다. 망치를 휘둘러오면 피한뒤 찌르고 칼을 들고 설쳐오면 찌르고 뺏기를 반복하며 죽였다. 목도는 나이프로 흘려주면서 배를 가격해주었다. 몸을 숙이면 등을 찌르고 뼈가 드러날 정도로 썰어주었다. 1층은 그렇게 정리되었다.

이대로 몸소 올라가 주려는데 마침 2층에서 상황 파악을 한 것인지 많은 인원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20명 남짓했고 이제는 야구배트와 렌치, 도끼들도 추가가 되어있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노란색의 자켓이었고 몇 명은 조끼로 대신하고 있었다. 그들은 1층에서의 시체를 보고서 나를 완전히 경계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1층도 적은 인원은 아니었다. 그런데 단  명에게 썰렸으니 이상할 건 없었다. 지금 이들은 나를 보며 두려워 하고 있었다. 마치 ‘서울의 마녀’시절,  이름을 듣자마자 겁먹었던 병신들처럼. 그래서  역이용했다.

쉬지 않고 달려들었다. 나이프로 찌르고 잠깐씩 도끼를 뺏어 던지고 머리를 찍었다. 죽이고, 죽였고,  죽였다. 한 놈도 남김없이. 2층도 뚫어버린 나는 곧장 3층으로 갔고 그곳에서 만날  있었다. 두목인지, 부두목인지로 보이는  남자를. 그는 다른 잔챙이들과 긴 날을 달아놓은 파이프와 리볼버를 지니고 있었다.

“네가 두목이야?”

“너, 뭐하는 년이야? 군에서 보냈어?”

“군?”

모르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그래도 군이라고 한 걸 보니  도시에는 이들 말고도 누군가들이 더 있는듯 했다. 잡았던 남자에게서는 듣지 못했던 정보였다. 좀 더 술술 불게 만들고 싶었지만 바로 공격해왔다. 잔챙이들이 먼저 덤벼들었는데 이제는 귀찮아지기까지 했다. 그래서 단번에 뚫어버렸다. 나이프를 쥐고 목, 심장, 배, 허리, 필요하다면 사타구니까지 찔러서 죽이거나  죽여버렸다. 이미 마트에 남아있던 마네킹과 물건들에는 핏자국들이 흥건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두목이 날 향해 리볼버를 겨누었지만 내 손에는 이미 베레타가 들려있었다.  발, 방아쇠를 당겨 다리를 맞추고 두 발, 어깨를 맞추었다. 그는 맞은 부위를 감싸며 바닥을 뒹굴었다. 일어서기도 힘들 것이다.

“원래는 그냥 죽이고 이곳에 있던 식량이나 기름만 뺏어가려고 했는데, 니새끼도 쓸모있어 보인다?”

“뭐하는 년인지 모르겠는데 날 건들면.”

“건들면 뭐?”

빡치게 하길래 총알이 박힌 다리를 짓이겨 주었다. 그의  손이 내 발목을 잡아 떼어내려 하길래 더 짓눌러주었다. 아프라고, 더 고통받으라는 의미로 세게.

“어쩔건데? 어쩔거냐고 시발아. 어쩔건데! 해보던가, 하는 거라고는 약탈밖에 모르는 기생충새끼야!”

“그만!”

‘탕!’

......총성이 들렸다. 처음에는 누군가가 나를 쐈다고 생각했는데 범인은 나였다. 그걸 깨달았을 때 총구가 그의 머리로 향해있던걸 볼  있었다. 정보를 더 뜯어내기로 했으면서, 무언가  캐내려 했는데 순간적으로 화가 올랐던 감정이 손을 움직이게 만든 것이다.  발목을 잡았던 두 손이 힘없게 떨어져나갔다. 밟았던 다리에서는 피가 흘러나오고 있을 뿐이었다.

“......시발. 나도 병신이네.”

평소에도 화를 못 참는다고 자주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죽여버릴 상대와 살려야  상대를 구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죽여버리고 말았다. 죄책감? 그런게 있을리가 없지. 그런데 즐거움도 들지 않았다. 내가 자주 하던 짓거리였고 취미, 혹은 특기와도 같은 짓거리인데 하나도 즐겁다는 감정이 들지 않았다. 이제서야 개과천선이라도 하려는 조짐인가? 개소리다. 시발, 이건 개소리라고.

발을 떼고 죽여버린 시체를 멀리 차버렸다. 식어버린 시체를 밟고 무어라 지껄여본들 뜯어낼  있는 정보가 없었다. 그나마 내가 반만 죽였던 잔챙이들을 살펴보지만 이미 피를 많이 흘려서 의식이 날아갔거나 죽어있었다. 모두 내가 했던 짓들이었다. ‘서울의 마녀’였던 시절처럼 내가. 기분이 좆같아졌다. 챙길 것만 챙겨서 돌아가기로 했다. 주변에 있던 가방을 주워 열고 안에 식량을 가득 담아 메었다. 기름은 아쉽게도 20L짜리 통 하나가 전부였다.

“꺅!”

소음이 들렸다. 여자의 것이었다. 들린 쪽은 모든게 어질러져 있던 가구점 쪽이었다. 그래봐야 이미 나무로 된 것들은 대부분이 없어진 가게였다. 그 안에 살짝 보이는 살가죽이 보였다. 권총을 들고 천천히 다가갔다. 적군일까. 그러다 여기로 올라오면서  버러지가 여자에게 꼬추를 쳐박고 있던게 떠올랐다. 정체가 예상되었지만 그래도 경계했다. 발걸음 소리가 마트를 울렸다. 그러는 것만 같았다. 좆같은 기분과 함께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숫자 좀 되네.”

장관까지는 아니었다. 난  명이라고 생각했는데 꽤 숫자가 되었다. 내 나이 근처대로 보이는 여자들이 옷 하나 걸치지 못한  쇠기둥이나 파이프들에 수갑이나 밪줄들로 묶여져 있었다. 몰골을 보니 제대로 먹지도 못한 것 같았고 제정신인 여자도 별로 보이지 않았다. 몸에는 상처가 있는 여자가 있는가 하면 없는 여자도 있었다. 죽은 여자도 있었다.

“사...살려...오빠.....”

누군가가 씨부렸다. 나보다도 어려보이는 여자였다. 가까이 다가가 몸을 숙였다. 나이프와 권총을 집어넣고 손으로 고개를 들도록 했다. 이미 알고 있는 역한 비린내가  코를 찔러왔다. 익숙했기에 별 신경쓰지 않고 내  말을 했다.

“야. 이 도시에 살아남은 군인들이 있어?”

“군인....부대가...있어요.”

“그래? 좆같네, 시발.”

부대가 있다니. 아직도 군부대가 남아있다는 소린가? 그렇다면 사양이었다. 경찰과 군인이라면 이제 질색이었다. 이제 정말 돌아가기로 했다. 고개를 잡았던 손을 치우고 1층으로 내려가는 길로 움직였다.

“저기....살려....”

뒤에서 여자가 말했다. 살려달라고. 평소라면 더 고통받지 말라며 죽여버리거나 버렸을 것이다.  사라만 챙기면 그만이니까. 그런데 왜 갑자기 내 발걸음을 잡는걸까.  지랄같았다. 순간의 동정일 것이다. 분노라는 감정만을 남긴  모든 생각들을 이성으로 돌렸다.  여자를 구하면 내게 돌아오는 이득이 뭘까? 없었다. 밥만 축낼 뿐이었다. 애초에 이런 쓸데없는 생각까지 해야했던가. 다 지랄이다. 좆같은 아량이었다. 다시 발을 움직였다. 뒤에서 계속 살려달라는 목소리들이 들렸지만 전부 무시해버렸다.

[너무....아....파.]

“......”

머리를 흔들었다. 또 들려오고 있었다. 꼬맹이의 환청이  괴롭혔다. 걸음걸이가 흔들렸고 하마터면 계단에서 넘어질 뻔했다. 잠시 손잡이를 잡고 앉았다.  괴물새끼한테 물리고 피를 흘리며 죽어가던 꼬맹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정말 최악이었다. 좆같은 기분이 말로 표현할  없을 정도로 변해갔다. 몸이 무거워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가야했다. 사라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천천히, 다시 몸을 일으키고 죽였던 이들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코에는 죽었다. 그 꼬맹이는 죽었단 말이야......

마트를 빠져나와서 사라를 안겨주었던 은행건물로 향했다. 따라오는 기척이나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이 근처는 나와 사라뿐이었다. 고정시키는 용도로 놔두었던 의자들을 치우고 밀었던 책상을 다시 빼내었다. 그리고 안에서 잠자코 기다리던 사라를 끄집어내었다.

“나 왔어, 사라.”

“......”

여전히 대답은 없었지만 무사한 걸로 충분했다. 그녀의 손을 잡아 이끌며 차로 향했다. 아직 아침이었고 잠은 오지 않았다. 마트 근처에 있어봐야 좋은 것 같지는 않아서 이동하기로 했다. 가능한 오전 안에  도시에서 벗어날 생각이었다. 목포의 도로들이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달려봐야 알겠지. 차에 시동을 걸고 사라에게 안전벨트를 해주었다. 그리고 출발하려던 때, 그동안 입을 다물었던 사라가 내게 한 마디, 물었다.

“다 죽인거야?”

엑셀을 밟으려던 발이 멈췄다. 그녀의 질문은 커다란 날이 있었다. 딱 한 마디 물어오는, 힘없는 목소리인데도 수많은 의미들이 담겨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난, 거짓말을 하지 않고서 답했다.

“그래. 다 죽였어. 어차피 생존자들을 죽이거나 잡으면서 약탈하던 쓰레기들이야. 내가 했던 짓거리들을 그대로 하던 범죄자새끼들.”

“......그래.”

대화는 끝이었다. 다시 운전대를 고쳐잡고 엑셀을 밟았다. 무거워진 공기를 가득히 싣고서 차를 출발시켰다. 그런데 또 무언가가 나를 막아서왔다. 벌써 한숨이 나올 정도였다. 세상은 여전히 날 가만히 내버려둘 생각이 없어보였다. 바로 앞으로,  차량 몇 대가 병력을 태우고서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노란자켓 새끼한테 들었던 얘기  군이 떠올랐고 내버려두고  여자에게서도 들었던 부대 얘기가 떠올랐다. 그쪽 놈들이었다. 일이 이중으로 귀찮게 되었다.

이미 손은 권총으로 향하고 있었다. 억지로 돌파하기에는 녀석들의 차량이 길을 막다시피 했다. 후진도 방법 중 하나지만 이미 백미러를 통해서 볼 수 있었다. 차 앞의 군인들과 다른 복장을 한 남자가 당당히 서서 막고 있는걸 말이다. 브레이크를 밟고 차를 멈춰 세웠다. 머릿속으로 수백가지의 생각들을 했다.

“사라, 잠시 차 안에 있어. 군인들이 몸소 찾아왔네.”

“군인들이라며. 도와주려는 거겠지.”

“글쎄.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군인이 맞는지부터 의심해봐야 하거든.”

차의 시동을 껐다. 내가 이렇게 진정하는 이유는 저쪽에서도 딱히 공격할 의사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만약 우리를 죽이거나 약탈할 생각이었다면 벌써 기척도 없이 다가온 뒷 놈이 선빵을 쳤을것이다. 우선은 내가 생각하는 그 군인쪽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이들과 싸움도 불가피해 보이기는 했다.

앞에 있는 군인들은 10명, 모두 총을 소지하고 있었다. 흔하디 흔한 K2소총이었다. 뒤에 있는 남자는 허리에 마체테 하나와 어떻게 개조해서 달았는지 고배율 스코프를 부착한 M1개런드를 들고 있었다. 딱 봐도 저녀석이 팀장급으로 보였다. 조용히 차에서 내렸다. 이미 우리를 발견했고 친절하게 바로 지나가라고 할  같지는 않았다.

“여자가 내렸습니다.”

남자는 자신의 귀에 꽂은 통신기로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었다.

“차 안에도  명  있습니다.”

이미 사라의 존재까지 알고 있는 걸 보이 어디 옥상에서 스코프를 통해서 보고있었나 보다.  손은 여전히 베레타 위에 올려져 있었다. 언제든지 뽑아서 아군일지 적군일지 모를 이 새끼들을 죽이기 위함이었다.

“특이점이요? 노란색 눈동자네요. 말이라도 걸어볼까요? 사령관님.”

‘사령관’이라는 단어가 참 좆같았다. 오랜만에 듣는 단어였다. 망해버린 세상에서 아직도 사령관 노릇을 하고 있다는 소리인데 어떻게 이런 군인들을 통솔할 수 있는지, 참 대단한 인물이었다. 삼촌이라면 쉽게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니었다.

“통신기를요? 그래도 괜찮겠어요? 적군일 수도 있습니다. 마트에 있던 반란군들을 쓸어버리기는 했지만 아직 판단하기는 이르지 않습니까.”

그것까지 보고 있었다니, 아무래도 저쪽은 크게 경계를 하는 듯 했다. 오죽하면 차에서 내린 군인들 중 저 남자와 비슷한 부류로 보이는 여자 한 명이 내게 칼을 겨누고 있었다. 시대가 어느 때인데 환도를 사용하고 있냐. 그녀까지 견제하며 함부로 행동하지 않았다. 조금 뒤, 남자쪽에서 말했다.

“사령관님께서 당신과 얘기하고 싶다는데. 받아.”

건방진 자세로 통신기를 던져왔다. 하지만 받을 손이 없었던 나였기에  가슴에 맞고 바닥으로 튕겨 떨어졌다. 권총에서 손을 뗄 생각은 없었다.

“받지 않으면 적이라 생각하고 죽일 수도 있어.”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총을 들고 있고 2명이라고 해서 나보다 머리 위에 서있다고 생각하나본데 이미  손도 권총을 쥐고 있었고 마음만 먹으면 확실하게 보낼  있었다.

“받을 손이 없는데 장애인 배려도 없나봐?”

“그 권총으로  손은 장식이야?”

“니새끼들만 견제하는게 아니라서. 뭣하면 직접 다가와서 귀에 꽂아주던지, 아니면 무기  내려놓던지. 지금  뒤에서 슬금슬금 칼들고 찌르려는 여자까지 포함해서.”

“......”

여기서 결단을 내리기로 했다. 차를 타고왔던 군인들이 마트 안으로 들어간 지금, 이들이 무기를 내려놓으면 통신기를 줍고, 내리지 않는다면 바로 죽여버릴 생각이었다.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기에 직접 숫자를 세어주기로 했다.

“3.”

망설이는 눈빛이 보였고 뒤에서 조심히 다가오던 여자의 발걸음도 멈추었다.

“2.”

여전히 고민하는 걸로 보였다. 시간을 끌 생각이었다면 착각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나도 그렇게 바보는 아니었다.

“1.”

“내려놓지.”

통했다. 남자는 자신이 메고 있던 라이플을 바닥에 내려놓았고 허리에 차고 있던 마체테도 마찬가지였다. 여자도 환도를 검집에 넣어 내렸다. 이것만으로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내쪽으로 밀어.”

두 번째 상황. 순순히 내쪽으로 밀어줄지, 아니면 갑작스럽게 주워서 싸움을 걸어올지 볼 생각이었다. 다시 셋을 세야 하나 싶었는데 그들은 바로 발로 차서 내쪽으로 밀어주었다. 그래서  불안했다. 이 새끼들, 너무 순순히 넘겨주었다. 나는 슬그머니 차에 붙어 운전석의 문을 열고 등을 막아줄 방패로 삼아 앉았다. 그리고 권총을 손에 쥔 채로 통신기를 줍고 조수석에 있던 사라에게 건네주었다.

“사라. 지금 내가 건네주는건 귀에 꽂아서 사용하는 통신기야.  군인놈들의 사령관이라는 사람인데 잠시 내 입을 대신해주었으면 해. 뭣하면 싸움  것 같거든. 참고로 이건 내 과거와는 연관이 없는 일이야. 이놈들은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

“......”

그녀는 한 손을 내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뻗어 손을 찾아 나섰다. 난 그 여린 손에 직접 피부를 맞닿게 해 위치를 알려주고 통신기를 건네주었다. 그걸 귀에 꽂은 사라가 말했다.

“들리시나요?”

‘XXXXXXX’

통신이 시작되었다. 넘겨주자마자 앉았던 자세를 일으켜 권총을 쥐고 남자쪽을 견제했다. 그는 내가 보이는 총구에 긴장한 기색을 보였다. 그러면서 주변에 있던 건물도 빠르게 훑어보았다. 다른 저격수가 있지 않을까 하면서. 주환의 밑에 있던 그 정도의 괴물놈이 아니라면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것이다. 햇빛에 스코프가 반짝여주면 더 좋고.

“제 이름은 ‘사라 리즈’입니다. 당신이 찾는 사람의 이름은.”

“내 이름 말하지마, 사라.”

사령관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내 이름을  위험도 있었다. 삼촌을 통해서가 아닌 빡촌의 언니를 통해서 여럿 접촉한 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엔’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서울의 마녀’라는걸 쉽게 알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확실히 적군으로 간주될 위험이 너무도 컸다. 최악의 경우에는 사라도 공범취급을 당할 수도 있었다.

“......아니요. 이름은 못 알려드리겠어요.”

‘XXXXXX’

“전 그녀에게 보호받고 있는 사람이에요.”

‘XXXXXX’

“......직접 통화하고 싶데. 나로는 안될 것 같다면서.”

“거절하면 어떻게 할 건지 물어봐.”

“거절하면 저희를 어떻게 하실 생각이죠?”

‘XXXXXX’

“강제로 제압하겠데.”

“간 더럽게 큰 놈들이네.”

하지만  가지는 안심할  있었다. 말했듯 이미 우리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벌써 죽였을 것이다. 사령관도 제압한다는 걸로 봐서는 딱히 해코지할 생각은 없어보였다. 그러니 강행돌파 하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군인새끼들이랑 엮이는 건 절대로 사양이었다.

“사라.  통신기 내게 다시 줘봐.”

그녀는 귀에 꽂았던 통신기를 빼어 내 쪽으로 내밀었다. 나는 조심히 그 통신기를 받아들고 잠시 귀에 꽂았다. 그리고 내 할 말 만을 바삐 말했다.

“네가 뭐하는 새끼인지는 모르겠는데 강제로 제압? 지랄하네.  마트에 있던 노란자켓 무리하고는 무슨 관계인지 궁금하지도 않아. 우린  길이 바빠서 말이지. 그러니까 손 떼는게 좋을거야!”

대답이 들려오기 전, 통신기를 빼 바닥으로 던졌다. 그대로 발로 밟아 부수고 이 유리한 상황을 이끌어가기로 했다. 남자와 여자,  모두 내 행동에 적군으로 간주한  했다. 내게 달려들어왔다. 망설임 없이 권총을 남자쪽으로 겨누었다. 가능하다면 죽이고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차를 몰고 떠날 수 있는 빈틈을 만들어내야 했다. 그런 생각으로 방아쇠를 당겼는데 저격수에만 집착했던 내 실수가 업보를 만들고 말았다.

“위쪽에서 발소리가 들려!”

우리가 타고온 차의 지붕, 그 위로 누군가가 뛰어내렸다. 검은색의 코트와 검은색의 모자를 쓰고서 위험한 사람이라는 분위기를 풍겼다. 도대체 어디서 뛰어내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몸을 숙여야 했다. 나무도 아닌 알루미늄 배트였다. 멍청하게 서 있었다면 머리를 맞고 반쯤 기절했을지도 모른다. 이로서 베레타는 사실상 봉인되었다. 그새 눈앞에 있던 남자가 가까이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몸을 숙인것과 동시에 권총을 넣었고 바로 나이프를 꺼내 휘둘렀다. 아래에서 위로, 남자는 바로 발걸음을 멈추고 뒤로 피했다. 반응이 빨랐다. 노란자켓같은 조무래기가 아니었다. 제대로 훈련을 받은 티가 보였다.

남자를 잠시 물러나게 하고 나서는 지붕 위에 있던 남자에게로 타깃을 바꾸었다. 위로 올렸던 나이프를 고쳐잡고 그의 발목을 노렸다. 이대로 찔러 땅 밑으로 끌어내리든 하려 했지만먼저 눈치채고 뒤로 피하며 지붕에서 내려왔다. 좆같았다. 이제는 여자를 상대해야 했다. 나이프를 휘두르며 돌린 몸, 내 얼굴로 주먹이 날아오고 있었다. 운전석의 문을 발로 차서 밀쳐냈다. 그리고 몸을 숙였다. 어느새 주워갔는지 마체테가 위로 지나가 차 문에 박혀버렸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손으로 땅을 짚은  발끝을 올려 머리를 때려주었다. 배에 뚫린 상처가 욱신거렸다.

“시발, 또 상처 터지겠네.”

“꺄악!”

사라가 비명을 질렀다. 그래도 그녀에게로 피해가 가지는 않았다. 이쪽 놈들도 딱히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다.

내게 머리를 허용해준 남자는 잠시 빠지게 되었다. 꽤나 어지러울 것이다. 바로 일어서면서 배트를 쥐었던 남자를 눈으로 쫓았다. 빠르게 차를 넘어 내 앞에 서 있었다. 다시 향해오는 야구배트, 나이프로 옆으로 흘리며 차를 때리게 하고 허리를 걷어차 주었다.  반동으로 운전석의 문에 등이 부딪혔는데 이러다 문이 부서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아직까지는 멀쩡했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여자가 옆으로 돌아 다가왔다. 그녀도 환도를 주워 뽑아 휘둘렀다. 검도를 배운 것 같지는 않았다. 무언가 검술을 사용하는 것 같기는 한데 매끄럽지가 않았다. 놀라울 정도로 쉽게 피할  있었다.   다리를 뻗어 넘어트리고 나이프를 위로 고쳐들었다. 이대로 머리를 내려찍어 죽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운이 좋았다. 그  머리가 땅과 부딪히며 감겼던 눈을 뜨고 고개를 옆으로 비껴 피했다.

“썅년이!”

애꿎은 나이프가 바닥을 찍었지만 다시 고쳐잡을 필요도 없었다. 그대로 기울여서 머리  쪽을 크게 베어 귀를 잘라줄 생각이었다.

‘퍽!’

누군가 나를 세게 걷어찼다. 덕분에 여자에게서 떨어지게 되었다. 재빨리 균형을 잡고 일어서자 머리를 맞았던 남자가 정신을 차리고 날 떼어낸 것이다. 뭐, 그리 아프지는 않았다. 이 정도는 평소에도 뒤지도록 맞고 다닌 정도였다. 버텨낼 수 있었다.

“당신, 뭐하는 여자야? 대체.”

“나? 알아서 뭐하게.  뒤질 개새끼들이.”

나이프를 던지고 바로 권총을 뽑았다. 던져진 나이프의 끝은 야구배트 남자를향해 날아갔다. 그는 손쉽게 피해버렸다. 그래야지. 베레타로 피한 경로를 예측하고 미리 겨누고 있었으니까. 손가락이 방아쇠에 올려진 지 오래였다. 이대로  놈, 보낼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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