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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화 〉Wrath (Im Sorry, Shara) - 8 [완] (69/72)



〈 69화 〉Wrath (Im Sorry, Shara) - 8 [완]

결국에는 놓치고 말았다. 멧돼지들을 처리하고 나름 빠르게 추격에 나섰는데 어떻게 된 것인지 나무들에 있어야할 흔적들이 남아있지 않았다. 만약 땅으로 기어갔다면 그것대로도 남아야 하는데 역시 있지 않았다. 젠장할, 이대로 돌아가기에는 수색의 대가가 너무 없었다. 하지만 더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벌써 해가 떨어져가기 시작했으니까. 아무래도 이만 접어야 할듯 싶었다. 내일 잔해를 치우는 건 돌아가서 어떻게 할지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숲을 빠져나오는 것도 문제이기는 했다. 여기에 무슨 따로 길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방향을 알 수 있는 도구도 들고있지 않았다. 유일하게 길로 삼은 것은 그림자의 방향이었다. 내가 출발했을  보았던 해의 위치와 그림자의 방향을 떠올리고 지금 이동한 해의 각도를 어림잡아 계산해 그림자가 어느 각도만큼, 어떻게 변했는지 대충 계산하며  방향으로만 걸어갔다. 다행히도 산처럼 경사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정말로 숲뿐이어서 직진하기에는 편했다. 물론 걸으면서도 경계는 잊지 않았다. 언제 또 어떻게 덮쳐올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나의 어림잡은 계산은 적중했다. 창호의 집은 아니었지만 그의 집으로 가는 길로 빠져나오게 되었다. 이미 해는 붉은 노을로 변해 있었다. 오후 안으로 돌아간다고 장담했는데 시간이 너무 늦고 말았다. 사라와 코에에게 별일이 없기를 바랬다.

길에 오르고 몇 분 정도 걸어서 그의 집의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 차량에 들릴 생각이었다. 총알이 비어진 탄창을 채울 목적으로.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차의 문을 열기 전, 창호의 집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느낌이 바뀌어 있었다. 거기다가 엄청나게 조용했고. 불길한 감이 나를 덮었다. 총알을 채우는 것을 포기하고 먼저 집부터 들리기로 했다. 그의 집  앞까지 걸어가면서 창호의 모습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문 손잡이를 잡고 돌렸을 때, 나의 불길한 감은 더럽게도  맞았고 급한 마음이 몸을 움직이게 했다.

“이런 시발. 사라! 있어? 사라! 대답해!”

반응이 없었다. 그녀의 귀라면 충분히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2층에 외쳤는데도 말이다. 이건 정말로 무슨 일이 있는 것이다.

“이 개새끼가!”

옆에 있던 삽을 들었다. 한 손뿐이지만 충분했다. 삽의 머리부분으로 문을 내려찍었다. 한번으로는 어림도 없으니 계속, 여러번 내려찍었다.조금씩 나무로  문이 부서지기 시작했고 안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틈으로 보인 안은 개판이었다. 싸움의 흔적들이 흥건하게 남아있었다.  다급해져 갔고 삽을 문에 박은  발로 세게 차서 남은 조각들을 제거해버렸다. 그렇게 문을 부숴서 내가 지나갈 수 있는 입구를 만들어냈다. 바로 안으로 향했다. 손에는 권총을 들고서.

“사라! 코에!”

들어가자마자 넘어진 테이블이 보였고 여러 문들이 열려 있었으며 2층으로 가는 계단에는 액자와 서랍, 그리고 의자가 굴러 떨어져 있었다. 심지어 화장실 문은 무언가로 내려찍은 마냥 부서져 있었고 창고의 문은 반 열린  빛조차 내지 않고 있었다. 오로지 노을빛에만 의존하며 두리번 거렸을 때 사라를 찾을  있었다. 그녀는 부엌에서 쓰러져 있었다.

“사라!”

망설임 없이 다가가서 상체를 일으키고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숨은 붙어있었다. 정말로 다행이었다. 정말로.

그녀의 몸을 살펴보았다. 다른 곳들에 쓸린 자국들이 많았는데 무엇보다 눈에 띈 것은 목에 남아있던 흔적이었다. 누가봐도 강하게 조른 흔적이었다. 거기서부터  이성이 반 정도 날아가기에 충분했다.

“창호, 이 시발새끼가.”

사라를 업고 침대가 있는 2층으로 향했다. 그리고 참담한 풍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동호가 쓰러져 있었고 자은은 보이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 애들이 보이지 않았다. 난 사라를 침대에 눕히고 동호가 살아있음을 확인한 뒤 뺨을 때려서 깨워내는데 성공했다.

“엔......씨?”

“......사라  지키고 있어.”

그는 눈을 뜨자마자 주변을 둘러보았다.  참담한 풍경을 같이 목격하게 되었다. 아,  참담하냐고? 침대 하나가 부서져 있고 이곳에서 웃고 떠들며 쉬고 있어야할 코에가 보이지 않았으니까.

동호에게 내 권총을 쥐어주었다. 아직 크립톤이 올 시간은 아니었지만  망할 괴물새끼가 온다면 사용할 무기정도는 필요한 것이다. 문을 닫는다고 해서 못 들어올만한 잡탕은 아니었다. 그리고 난? 청자켓을 벗어던지고 바로 집을 나섰다. 내 인생 살면서 이만큼 심기를 건드리고 화나게 한 사람은 아빠새끼 말고는 없었다. 그런데 창호 이 빌어쳐먹은 시발새끼가 감히 사라를 건드리고 코에를 데려갔다. 머릿속에서 무언가 끊기는 느낌이었다. 이제 이을 생각도 없었다.

문을 나서자마자 창호 개새끼의 흔적을 찾아 나섰는데 참 고맙게도 땅을 만지고 눈가리를 쳐 박으면서 찾을 필요가 없었다. 무언가를 끌고간 흔적이 선명하게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손에 나이프를 들고 달렸다. 그 길을 따라 계속 달려나갔다.  시발새끼의 옷자락이라도 보기 위해서 쉴 새 없이 달려나갔다. 그 의식을 진행할 생각이라면 아직 시간은 있었다. 끝난게 아니다. 그러니 그 시간마저 끝나기 전에 앞서야 했다.

 숲을 들리게 되었다. 붉은 노을을 맞이한 숲은 온통 붉은 색들 뿐이었다. 정말 불안한 색이 아닐수가 없다. 그냥 좆같은 색이다. 지금  머릿속에는 욕들과 그 망할 개새끼를 어떻게 죽일까 하는 생각 뿐이었다.

“코에, 코에, 코에!”

꼬맹이의 이름을 부르며 나는 미리암그림자 교단의 전통 의식을 진행하는 제단에 도착했다. 자성이와 코에, 창호 그리고 내가 놓쳤던  괴물새끼가 한 번에 모여있었다. 그리고 나의 이성은 완전히 날아가고 말았다.





“......엔......”

“깨어나셨습니까?”

목소리, 이건 동호씨의 목소리였다. 아, 살아있었구나. 나도 그렇게 목을 졸렸음에도 아직 살아있었다. 다행일까?

“......코에, 코에는?”

아직이었다. 내가 이렇게 기절했다는 건 당했다는 것이다. 그럼 코에는? 엔은 돌아온걸까? 창호씨는 어디로?

“동호씨. 코에는요? 엔은 돌아왔나요?”

“마침 출발하려던 참이었습니다.”

“네?”

그가 내게 다가왔다.

“자성이와 코에가 없어졌습니다. 엔은 돌아오자마자 절 깨우고는 그를 쫓아갔습니다.”

그녀가 돌아왔다. 하지만 코에와 자성이가 이미 창호씨에게 끌려간 뒤였다. 내가 벌은 시간은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안돼, 빨리 가야해.

“사라씨?”

동호씨 말고도 자은씨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그녀도 살아있었다. 둘 모두 죽지 않았다. 그런만큼 바로 향해야 했다.

“동호씨, 출발하려던 참이라고 말씀하셨죠? 저도 데려가 주세요.”

“사라씨는 자은이와 함께 있는게 좋습니다. 밖은 위험할 겁니다.”

“지금 밤은 아닌거죠?”

“......네.”

“그러면 아직 크립톤이 돌아다닐 시간은 아니에요. 데려가 주세요. 그곳에는 코에도 있어요. 저도 가야 해요. 코에를 지켜야 한다구요.”

“그는 만만치 않은 인물이었습니다. 제게 권총이 있으니.”

“데려가 주세요.”

날 막아서려는 동호씨에게 강하게 말했다. 코에와 엔이 그곳에 있다면 나도 가야하니까. 하지만 빠르게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었다. 혼자서라도 가는 수밖에. 허리에 있던 지팡이......없었다. 1층에서 떨어트렸었다. 그럼 아직 있을 거니까, 걸음을 옮겼다. 더이상 빛이 느껴지지 않았고 앞이 보이지는 않긴 해도 머릿속의 지도만 따라간다면 1층까지는 무리없을 것이다.

“사라씨.......”

나를 잡는 손이 느껴졌다. 자은씨의 손이었다. 두 손으로 그녀의 손을 떼어내고 다시 앞으로 향했다.

“가도록 하죠.”

  손잡이를 잡고 나서려던 때 동호씨가 뒤에서 말했다. 나의 어깨를 잡으며.

“갑시다. 다같이. 우리들의 아이가 있는 곳으로.”

그리고 우린 1층에서  지팡이를 찾고 바로 집 밖으로 나섰다. 늦지 않았기를 빌었다.  정체모를 의식이 진행되지 않았기를.








“이미 한차례의 의식이 끝났습니다. 어리석은 단원이여.”

[......꼬맹아.]

내 눈앞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꿈일까? 그럴 리가. 이건 수없이 겪어왔던 나의 현실이었다. 수백번 봤었고 수백번 겪었고 수백번 들었다. 내가 직접 만들어내기도 했고 남에 의해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왜, 지금만큼은 받아들일 수가 없는걸까. 꿈이길 바라는 걸까.

‘부웅.’

[아....줌..마.]

코에가......짜증났던 그 꼬맹이가 잡탕의 입에 물린  피를 흘리고 있었다.아래로, 폭포같은 피가, 자성이를 물들이면서. 붉은 피가, 지겹도록 봐왔던 피가. 아니길 빌었다. 전혀 아니길 바라는데 너무도 붉은 피였다. 새빨갛고......시발, 아냐. 그러니까.

“꼬맹이 내려놔,  시발새끼야!”

나이프를 들었다. 눈앞에 있던 창호가 막아서지만 허리를 베어버리고 바로 잡탕에게 달려들었다. 꼬리가 휘둘러지며 내 배를 관통했지만 아무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내게 감각이라는 개념 자체가 있지 않았다. 오로지 코에를, 꼬맹이를 구하려, 저 시발놈의 쓰레기 괴물을 죽이려 달려들었다.

“놔, 놔!”

관통당한 채로 나이프를 휘둘러 잡탕의 목을, 얼굴을, 눈을, 수차례 찔러 박았다. 검은색의 날이 괴물의 피를 머금으며 나의 얼굴에, 옷에, 바지에 튀었다. 그럼에도 코에를 놓지 않고 있었다. 지켜야 한다. 사라와 약속했으니까. 이 꼬맹이를 지키기로. 그리고......그리고.



[아줌마도 자.]



꼬리가 관통했던 내 배에서 빠져나가려 했다. 그래서 이참에 잘라버렸다.나이프로 찍어내리고 그걸로도 잘리지 않으려 하길래 이빨로까지 물어 뜯어버렸다. 살점을 쳐먹듯이 찢어버렸다. 꼬리가 잘리고 괴물이 코에를  채로 비명을 질렀다.

‘츠에에에엑!’

놔, 놓으라고 이 시발새끼야. 꼬맹이는 니 새끼 밥이 아니라고.

“놓으란 말이야! 시발아!”



[난 코에야.]

다시 목에 깊게 나이프를 쳐박아 넣고 잘라내듯 쑤셔주었다. 반응이 있는지 괴로워하면서 꼬맹이에게 박았던 이빨을 빼내기 시작했다.



[아줌마도 천천히 먹어야 해!]


목에서의 나이프를 뽑아내고 남은 한쪽 눈도 쑤셔주었다. 커다랗고 날 바라보는 더러운 눈이 나이프에 박혀 터져나갔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깊이, 내 손마저 들어갈 정도로 깊이 박아 쳐넣어 주었다.




[아줌마 보기보다 열심히야.]

[칭찬이냐? 비꼬는 거냐?]

[칭찬!]




그제서야 괴물이 코에를 놓았다. 그걸 보자마자 깊게 박아 쳐넣어 주었던 나이프를 놓고 하나뿐인 팔로 코에를 안아 들으며 바닥에 굴렀다. 괴물은 계속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얼굴에 앞발을 가져갔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지금 내가 봐야할 것은 코에였다. 안아 들었던 코에를 바라보며, 아직 숨을 쉬고 있는  아이를 살려야 했다.

[코에, 정신차려.]

[아줌마.......]

[눈 떠! 감지마. 금방 치료해줄게. 그러니까 눈 감지마. 응?아줌마가 도와줄테니까.]

[나....여기...아파.]

[괜찮아, 코에. 괜찮아, 아줌마가 치료해줄게.]

[너무....아....파.]

“안돼. 눈 감지마. 코에? 시발!  감지 말란 말이야! 코에, 정신차려. 아직 살  있어. 야! 꼬맹이!”

[아.....ㅁ....]

내게 안겨서, 나를 아줌마라 부르며, 아프다고 말하던 코에의 고개가 힘없이......떨어졌다. 왜? 어째서? 왜 이 꼬맹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건데. 무엇 때문에......이제서야,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받아들이려고 했는데, 왜 이 꼬맹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냐고. 코에가  죽어야......

“내 머릿속에서 꺼져!”

아니, 아직이다. 아직 살릴  있었다. 여기까지 왔던 길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하루빨리 송혜에게로 달려가면 되었다.  친구라면 살릴 수 있을거니까. 충분히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충분히. 아직이야, 정말로 아직이다. 아직이라고. 그러니까 제발.

“숨 좀 쉬어......”

[......]

......조심히 코에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꼬맹이의 작은  손을 가슴에 모아주고 눕혀주었다.


[카노 코에, 에요]


카노 코에. 코에. 목소리.  부르던 꼬맹이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단원으로서도 몸을 담았던 년이 감히 마리아님의 ‘분신’에게 위해를 가하고 의식을 방해하는 것이냐?!”

어깨로 아픈 무언가가 찔려왔다. 눈을 뜨고 보니 내 눈앞에, ‘마태서’라 불리는 쓰레기 새끼가 교단에서 사용했던 듯한 작은 칼로 찌른 것이었다. 아, 그래. 이 새끼도 있었지. 괴물만 있는게 아니었다. 이 시발새끼도 내 눈앞에 있었다. 어깨에 칼이 꽂힌 그대로 일어섰다. 창호가 힘으로 억누르려고  쑤셨지만 아픔따위 느끼지 못했다.

“난 단원이 아냐. ‘서울의 마녀’야.”

주먹을 쥐고 그의 턱을 후려갈겼다. 버티지 못한 창호는 칼을 놓치고 몸을 휘청거렸다. 바로 어깨에 있던 칼을 뽑아서 뒤로 다가오던 괴물에게로 던져주었다.

‘츠에엑!’

이미 눈마저 날아간 괴물이었다. 머리 중앙에 칼이 꽂히자 당황해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죽어버렸으면 했다. 깊이 박았던 나이프를, 눈에 손을 깊숙이 넣어 꺼냈다. 앞발 하나가 나를 향해 휘둘러져 왔다. 몸을 숙여 피하고 그 앞다리 마저도 잘라버렸다. 나이프를 다리에 박고 몸의 힘까지 실어서. 괴물이 소리쳤다. 아니, 괴물이 분노했다.

“뒤져, 시발아.”

그대로 목 아래에 나이프를 쳐박고 썰어내었다. 붙어있던 목이 잘려나가 바닥 아래로 떨어졌다. 그렇게 떠들던 마리아님의 가짜 ‘분신’이 쓰러졌다. 코에처럼 피를 흘리며. 이 잡탕의 피는 검은색이었다.

다시 뒤로 돌았다. 눈 앞에 이제 일어서려던 창호가 있었다. 빠르게 다가가 발로 걷어찬 다음 누운 그의 위에 올라타 가슴에 나이프를 박아주었다.

“크헉!”

정확히 심장의 위치에. 하지만 그가 저항하는 바람에 끝까지 닿지 않았다. 두 손으로 날 막아서려 하고 있었다. 병신새끼가.

“스스로를 ‘마녀’라고 칭하다니. 네년이 그러고도 사람의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냐?”

“사람?”

힘을 주고  더 깊게 박았다.

“난 한번도  자신을 ‘사람’이라고 생각한  없어.”

순간 나이프를 뽑고 그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마무리를 지었다. 위에서 내려가는 나이프가 창호의, 코에를 죽이게 만든 이 남자의 가슴을 꿰뚫었다. 숲의 그림자 안에서, ‘마녀’가 ‘마태서’를 처단했다.

“......코에.”

창호를 죽이고 일어서서 코에에게로 다가갔다. 미처 풀어주지 못한 꼬맹이의 묶인 손도 풀어주었다. 그리고 사라가 내게 해주었던 것처럼, 내가 그녀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눈을 감고 조용히 잠들어버린 코에의 머리를 내 무릎베개를 해주었다. 더 이상 숨은 쉬지 않고 있었다. 그저 조용히, 나를 아줌마라고 부르지 못하며.

조금 뒤, 사라가 동호와 자은과 함께 나타났다. 자은부부는 자성이를 보자마자 안아주면서 재회를 즐겼다. 그에 비해 사라는 내게 다가오면서......

“엔, 코에는?”

“......”

“코에는 무사한거지?”

“......”

“엔, 아니라고 해줘. 코에는 무사하잖아? 그런거지?”

“......미안해, 사라.”

그녀의 몸이 내려앉았다. 보이지 않는 눈동자를 내게 맞추고 있었다. 푸르고 푸른던 눈동자가 전혀 맑지 않았다. 그런 사라의 손을 잡으며 내가......사과했다.

“미안해, 사라. 내가......지키지 못했어.”

“안돼, 코에.”

사라가 내 팔을 붙잡으며 다가와 코에에게로 손을 뻗었다. 머리카락에 손을 올리며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우리는 함께 코에를 안아주고 있었다.

“안돼......코에......”

붉은 노을이 지고 하얀 달이 떠오르려는 밤, 나는 사라와 함께 울고 있었다. 그녀는 눈물까지 보였다......그래, 무슨 감정인지 이제 알  같았다. 엄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던 날, 언니가 내게 말했었다. 슬퍼한다고. 그 때는 가슴만 먹먹해서 몰랐는데, 이게 ‘슬픔’이구나. 이렇게  처음으로 ‘슬픔’을 배웠다. 코에를 통해서. 꼬맹이가 죽음으로서......



[감정을 잃었던 ‘마녀’가 감정을 배웠다. 어떤 결과를 불러올까요?]

[신화 얘기를 하는거야? 그런거라면  잘 모르겠는데.]

[지금 저희가 노리고 있는 ‘마녀’의 이야기입니다.]

[히라, 난 너한테 감시를 하라고 했지 퀴즈같은걸 내라고는 하지 않았어.]

[걱정마세요. 감시는 확실하게 하고 있으니까.]

[‘헤드헌터’는 아예 죽어버린 건가?]

[목이 잘려나갔어요. ‘마녀’의 손에. 살아있을리가요.]

[우리 애들도 제지못한 그놈을 단신으로 죽여버렸다라. 그것도 한 팔로.]

[상대는 ‘마녀’입니다. 잊지 말아주세요.]

[알아, 안다고. 애초에 ‘오일’도 죽여버린 여자인데 이상할 건 없겠지. 이만 통신 끝낼게. 문제가 생겼어. 어쩌면 너를 사용해야 할지도 몰라.]

[큰 문제인가요?]

[‘P’의 실패작이 연구소를 탈출했어.  자식, 나와는 다른 방법으로 크립톤의 유전자를 사용했는데 반은 성공을 했다나봐.]

[‘P’는 어떻게 되었죠?]

[죽었어. 자기가 만든 실패작의 손에.]

[그곳도 만만치 않은 보안이 있는 곳일텐데.]

[그러니까 널 사용할 수도 있다는 거지. ‘P’가 그런 괴물을 만들어서 사용할 곳은 한 군데 뿐이잖아?]

[열등감이 강한 연구자였으니까요.]

[그래서 골치가 아프단 말이지. 이만 통신 끊을게. ‘마녀’가 ‘낚시꾼’의 손에서 풀려난 덕분에 할게 많아. 마침 ‘그 친구들’하고도 연락이  참이고.]

[네. 통신 끊을게요.]

나무 위에서, 지금 ‘마녀’가 머무르고 있는 집을 보면서 통신을 끊었다. 그녀는 자신이 데려온 아이의 시체를 업고 같이 다니는 여자와 함께 들아간 참이었다. ‘오일’을 죽일때는 그저 만만치 않은 상대라고만 느꼈었다. 그런데 아까 전, 그녀가 ‘헤드헌터’를 오로지 단도만 사용해서 죽였을 때, 내 몸이 경고를 넘어서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건 엄연한 ‘두려움’이었다. 무서움을 느낀 것이다.

난 연구원 ‘S’에게서 새로 태어난 이후 크립톤이나 다른 돌연변이들을 보고도 두려움을 느낀적이  한번도 없었다. ‘낚시꾼’을 상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려운 상대이기는 했지만 두렵다고 느낀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방금, 단지 화난 ‘마녀’를 보는 것만으로 큰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처음 그녀의 프로필을 보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서울의 마녀’로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보고 들었을 때 항상 분노와 증오에 미쳐있고 싸움과 살인밖에 모르는 ‘도구’라고 판단했었다. 그런데 내가  ‘마녀’는 돌연변이로부터 사람을 구하고, ‘사라’라는 여자를 위해서 위험한 모든 것을 상대하며 불합리한 규칙으로부터 차별받고 죽어가려던 구역의 아이들을 구한 것도 모자라서 ‘낚시꾼’을 상대로 몸을 버리면서까지 사라를 지켰고 ‘오일’을 죽여 주환의 구역도 지켜내는데 성공했다. 내가 느낀건 모순이었다. 최악의 살인마로 일컬여지고 바로 옆 나라였던 나의 고향까지 떨게했던  ‘마녀’가 사람들을 구하고 있었다. 영웅일까? 그저 심심풀이일까?

나무에서 내려와 집이 아닌 도시쪽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적당한 건물에서 잠을 청할 생각이었다.  주변에서 느껴지는 크립톤의 기운은 없었다. ‘마녀’가 지내는 동안에 단 한번도 느껴져오지 않아서 신기했다. ‘헤드헌터’의 활동이 이 정도로 크립톤을 억제시켜버릴 줄은. 대신에 다른 동물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멧돼지가 돌연변이된 ‘피거쉬’와 ‘보거쉬’였다.

[비켜줬으면 하는데.]

‘꾸이익!’

아무래도 비켜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검집에 꽂아두었던 카타나를 뽑아들었다. 검은색의 날이 스며들어오는 달빛을 머금었다. ‘피거쉬’ 4마리가 내게 돌진해오기 시작했다. 한손으로 잡은 카타나를 들고 똑같이 행동해주었다. 그걸 본 ‘보거쉬’가 상아를 뱉어내듯 발사해 견제하지만 모두 쳐내버리고 ‘피거쉬’에게 휘둘렀다. 막힘없는 날이 2마리를 베었다. 다른 ‘피거쉬’는 제치고 먼저 귀찮게 만드는 ‘보거쉬’를 베어주었다. 이후 유턴해서 재차 돌진해오는 나머지 개체들도 찌르고 베어 죽였다.

[곤란하다니까.]

크립톤은 몰라도 돌연변이 동물들은 정말 귀찮은 존재들이었다.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순수한 중립개체였으니까. 거기다 몇몇은 크립톤만 보면 공격하는 개체들도 있는가 하면 사람을 보고 달려들는 개체들도 있었다. ‘피거쉬’와 ‘보거쉬’는 사람을 습격하는 개체였다.

그렇다고 모두 공격적인 개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슴에서 변형된 한 개체는 크립톤도, 사람도 공격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무리를 이끌고 다니는데 지나가는 자리에 식물이 자라났다. 그 식물은 변형된 식물도 아닌 정말 순수한 식물이었다.

또 어떤 개체는 물을 만들어내는 개체도 있었다. 이들은 신기하게도 맹금류에서 돌연변이가 된 개체들인데 처음 종이 무엇이든 간에 같은 돌연변이류라면 함께 무리를 지었고 날아다니며 한 곳에 정착하면 그곳에 물을 풀어 호수를 만들내기도 했다.  장면을 직접 본 적이 있었다. 장관이랄까, ‘사건’ 이전에는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마치 자연의 큰 한 걸음을 본 것처럼 말이다.

‘S’는 내게 그런 개체들이 확인될 때마다 통신으로 보고해달라고 했지만 지금까지 내가 본 개체들 중에 보고한 것은 단  건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손에 그런 개체들이 들어가면 어떻게 변화가 되는지. ‘살호’가 그  하나였다. 원래 살호는 여우 돌연변이 개체였는데 이들 역시 식물을 자라게 하는 개체들이었다. 사슴과는 다르게 한 장소에 정착을 하고 번식을 한 뒤에 스스로를 희생해 흙이 되어 식물을 자라게 만드는.

하지만 내가 보고를 하자마자 ‘S’는 샘플로 데려가 여러 연구를 거쳐 ‘살호’를 만들어내었고 급기야는 사람의 유전자와 합치기까지 했다. 그 테스트가 진행된 곳이, ‘마녀’가 머물렀던 ‘태신’의 섹터였다. 결과는 실패. 다행히 보고를 올리기 전, 내가 몇 개체를 다른 곳에 숨겼다가 풀어놓아서 아직 멸종하지는 않았다.

[여기서 잠을 자볼까.]

도시에 들어선지 30분. 잠을  곳을 정하게 되었다.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적혀있어서 나도 읽은 수 있었다. ‘모텔’. 고향으로 따지면 ‘료칸’과 역할이 비슷한 곳이었다. 그곳안으로 들어가 문들을 열어보고 고장난 문을 카타나로 부수었다. 그러다 가장 깔끔한 방을 찾아내었고 오늘은 이곳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어제 머물렀던 장소와 멀지 않은 곳이었다.

침대는 생각하리만큼 부드럽지는 않았지만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그곳에 눕고 가지고 있던 카타나는  옆에 조심히 세워두었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감으며 잠을 청했다. 오늘은 꿈을 꿀 수 있기를 바라며.








영원히 잠에 빠져버린 코에를 업고 돌아왔다. 참 좆같게도 돌아온 곳은 창호의 집이었다. 사라는 내 옷자락을 잡으며 따라붙었고 자은네 쪽은 자성이를 데리고서 우리를 보며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그 누구라도 사라와 나를 건든다면 어떻게 할지 장담할  없었다. 특히 내가. 겨우, 사라를 만나면서 끊어져 버렸던 이성을 되찾은 참이었다.

내 등에 업힌 코에는 정말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허리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여전히 내 옷과 피부를 적시며 바닥에 흔적들을 남겼다. 이런 상황속에서도 달빛은 계속 우리를 비추려 들었다. 보라, 여기에 안쓰러운 자들이 있다, 라며. 총이 닿는 곳이었다면 진작에 쏴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돌아오는 길은 길었다. 무척이나 길었다. 아주 더럽게도. 그저 걸음을 걷고 있을 뿐인데도 말이다. 꼬맹이의 무게는 이렇게나 가벼운데  발걸음은 한 걸음마다 무거웠다. 마치 다리에 족쇄를 차고 무게추라도 달아놓은 마냥.

창호의 집이 보였다. 내가 부숴버린 문이 뜯어진 채로 말이다.

“제가 메꿔놓겠습니다.”

동호가 나중에 따로 막아놓겠다고 했다. 알 바 아니었다. 바로 2층으로 향했다. 코에와 만나고 이곳에서 함께했었다. 하나는 부서졌고 멀쩡하게 남아있는 침대에 코에를 눕혔다. 여전히, 눈을 감고서, 숨을 내쉬지 않으며 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사라의 손목을 잡아 이끌어 꼬맹이의 머리에 올려주었다. 그녀는 생기가 있었던 코에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이를 돌보는 엄마처럼. 그러다 이내 울음을 터트렸다. 얼마나 울어버리는지, 나조차도 다시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였다. 옆에서 자은과 자성이도 조용히 코에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숙여주었다. 이런 참담한 상황속에서 먼저 입을 열어준 것은 자은이었다.

“죄송해요. 지키지 못했어요.”

그녀는 얼굴과 어깨에 상처를 입고 있었다. 애들을 지키기 위해서 창호와 싸우다가 입은 상처라고 한다. 그러고보니 동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팔과 어깨, 허리와 다리에 상처를 입었다. 옷이 찢어지고 맨살이 보일 정도로 말이다. 그러니 이들을 탓할 수는 없었다. 나와의 약속을 어긴것도 아니니까. 그럼 누구를 탓해야 하지? 나인가? 모르겠다. 창호는 죽었고 마리아의 ‘분신’이라고 지랄맞았던 괴물도 죽어버렸다. 이제 죽일 대상도 없었다. 나이프를 휘두르고 총을 쏠 대상이 없단 말이다.

조금 뒤, 사라가 울음을 그쳤다. 그리고 우리는 코에를 눕힌 침대에 걸쳐앉아서 조용히 바닥만을 쳐다보았다. 이따금씩 꼬맹이 쪽을 쳐다보았다. 혹시 눈을 뜨지 않을까, 몸을 일으키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죽고 살아난 것처럼.

동호가 문을 막는 소리가 들렸다. 자은이가 자성이를 돌보는 소리가 들렸다. 사라가 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바깥에서 부는 바람의 소리가 들렸다. 코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난 귀찮은 아이가 아니야!]

......환청이었다. 정말로 귀찮은 아이다. 사라보다 어린 나를 아줌마라고 불렀고 갑자기 큰 목소리로 소리를 치지 않나, 일어나라며  몸을 때리지를 않나, 야채는 먹기 싫다며 투정부리지 않나, 진짜로 귀찮은 아이였다.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눈을 뜨기를 바랬다.

동호가 올라왔다. 그는 우리를 보다가 조용히 자은과 자성이를 데리고 내려갔다. 달빛도 무언가에 가려졌는지 우리가 있는 방 안을 비춰주지 않았다. 어둠만이 가득이었다. 그 안에서 처음으로 사라가 움직였다. 그녀는 손을 내쪽으로 내밀고 있었다. 무언가를 찾는 것 같았다. 알 것 같아서 내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자연스레 우리는 손을 맞잡았다. 아무말도 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이후, 자은이 저녁을 준비했다며 먹으라고 했지만 거절했다. 그딴게 지금 배로 들어올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눈을 감고 차가워진 코에의 옆에 누워 마지막으로 안아주며 잠에 들었다. 그리고 이 현실을 받아들이라는 듯 아침이 밝아왔다.






꿈을 꾸었다. 아니, 아직 끝나지 않은 꿈이었다. 나와 엔, 그리고 코에는 공원에서 휴식을 즐기고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양식을 하는 식당이었고 인테리어가 예쁜 집이었다. 그곳에서 코에에게는 어린이용 돈까스를, 엔은 당연하게도 목살 스테이크를, 나는 토마토 스파게티를 주문했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 대화도 나누었다.

[자, 이건 ‘영수증’이라고 부르면 돼]

“연.....수중?”

[아니, 영-수-증]

“영수....증?”

[그래. 뭔지는 알겠지?]

[응, 알아!]

코에의 한국어을 위한 가르침이었다.

“영수증에 대해서 가르치는 거야?”

“우리나라 말로 이렇게 말하면 된다는  가르치는 거지.”

컵에 물을 담아서 엔과 코에에게 주었다.

“나도 일본어를 배워볼까 해.”

“너도?”

“응, 코에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려면 언어가 통해야 하니까. 기초적인 한국어로는 대화가 가능하긴 하지만 무언가를 가르치기에는 많이 부족해.”

“그럴 필요까지 있어? 애니까 금방 배울거고 너도 바쁘잖아. 그냥 내가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가르칠게. 나중에 영어나 가르쳐줘.”

“하지만 엔이 너무 바쁜걸.”

“하하......그건 미안. 형사 때려칠까? 어차피 삼촌이 억지로 꽂아넣은건데.”

“그 뜻은 아니야. 바빠도 엔이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 그만두지 않았으면 좋겠어.”

“반은 맞는데, 나도 최근에 집을 제대로 못 들어오는 데다가 어제처럼 갑작스럽게 나가는 날이 있으니까.”

“하지만 엔같은 형사가 있으니까 좋은거잖아.  그런 엔의 직업이 좋아. 가끔씩 외롭기도 하지만 엔이 누군가를 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버틸 수 있어.”

“영수증!”

대화 중간 코에가 영수증을 들고 가리키며 우리에게 말했다. 아까보다는 발음이 좋아져 있었다. 점점 한국어가 늘어가고 있었다. 칭찬의 의미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동시에 우리가 주문했던 음식들이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돈까스. 맛있는 거.”

“엄청 좋아하네. 꼬맹이.”

“그러게.”

코에는 작은 손으로 포크를 쥐고 먹기 편하게 잘라서 나온 돈까스를 하나씩 베어먹었다. 엔은 나이프를사용해 스테이크를 크게씩 잘라 먹었고 나도 포크로 스파게티를 먹었다. 이곳은 처음 오는 곳이었는데도 맛이 좋았다. 다른 사람들의 웃는 소리들이 가게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좋은 분위기와 함께 하는 저녁은 언제나처럼 만족스러웠다.

저녁을 먹은 뒤에는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나와 코에가 먼저 들어가 씻고 엔이 마지막으로 씻고 나왔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서 코에를 데리고서 책을 한  펼쳐서 말을 가르쳤다. 바로 문장을 알려주기보다는 간단한 단어들 위주로. 그리고 코에가 이미 알고있는 것들로. 발음이 여전히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로 발전해 있었다. 그리고 먼저 잠들어버린 코에였다.

엔이 안아들어 침대에 눕혀준 뒤 돌아왔다. 그리고 어디서 챙겨온 것인지 와인 하나를 꺼냈 잔을 두 개 들고서  옆에 앉았다. 그녀는 바로 코르크를 열고 각자의 잔에 와인을 담아주었다.

“갑자기 왠 와인이야?”

“받았어. 깨끗하다고는   없지만.”

“무슨 의미?”

“알고 싶어? 그럼 먹으면서 얘기해야지. 닭고기 있어?”

“응, 조금만 기다려.”

마침 냉장고에 순살 닭고기가 남아있었다. 따로 양념을 곁들이기보다는 굽기만 하기로 했다. 저녁을 먹은 참이니 많이는 말고 적당한 양을 나눠 오븐에 넣고 구웠다. 그동안 젓가락과 포크를 하나씩 준비하고 남아있던 설거지를 끝내두었다. 닭고기가 잘 익었고 접시에 기름종이를 깔고 담아 가져갔다. 우리는 작게 잔을 부딪혔다.

“맛있다.  와인.”

“그래? 난 소주나 마실걸.”

“그래서 이 와인은 어디서 난거야?”

“오랜만에 만난 친구한테 받았어.”

“비싼거야?”

“아마 그 년이 줬으니까 더럽게 비싼거겠지. 깨끗한 친구라고는 못하겠다만.”

“아까부터 깨끗하지 않다고 했는데 무슨 의미인지 알려줄 수 있어?”

“뭐, 말해야 겠지. 언젠가 말하겠다고 했던거고 그 친구랑 삼촌도 미리 말하라고 그렇게 닥달했으니.”

“응?”

“......있잖아, 사라.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거짓말이 아닌 진짜 내 얘기들이야.”

“응, 알았어.”

엔은 와인을  모금 머금었다. 그리고 조심히, 무드등을  거실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경찰을 잡기 전, 언제나 넌 내 과거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었지?”

“하지만 네가 말하기 싫어하는  같아서 그만뒀어. 지금의 엔이 중요하니까.”

“사실  범죄자였어, 사라.”

“범죄자?”

“응.”

조금 충격이기는 했다. 하지만 섣불리 판단하면 안되었다. 이야기는 끝까지 들어주어야 했다.

“물건을 훔쳤어?”

“다양해. 늘어놓는다면 한 두 가지가 아니야. 하지만 이거는 하나 말해줄 수 있어. 난 최악의 범죄자 중 한 명이야. 솔직히 지금 경찰이 된 것부터가 잘못된 거지. 범죄자였던 개새끼가 경찰이라니. 웃긴 얘기지.”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사람을 죽였어?”

“......부정은 하지 않을게. 군인시절 이전부터 난 사람을 죽였어. 청부살인이라고, 들어봤지?”

“응.”

“주로 그런 것들이야. 어떤 정치인을 죽여달라, 어떤 기밀정보를 가진 사람을 죽여달라. 돈을 받고  손으로 죽였어. 사람을 죽인거야, 사라.”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얘기였다. 왜냐하면 그녀는 경찰이었으니까.

“그러다 삼촌 밑으로 들어갔어. 청부쪽에서 유명세를 타고 삼촌이 끝끝내  찾아내서는 자신의 밑으로 거두었어. 거기서 난 각종 임무를 받고 전장에 투입되는게 일상이었지. 그곳에서도 적군이라는 사람을 죽였어. 수없이, 청부 때보다도 훨씬 더. 그러다 큰 사건 하나에 휘말렸다가 때려쳤지.”

“그 때가  살이었어?”

“19살.”

“말도 안 돼.”

펜을 쥐고 공부를 해야할 나이에 엔은 총을 들었다는 소리였다. 거기가 군인 이전에 사람을 죽였다고 했다. 고등학생 나이에. 믿기지 않는 얘기였다.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얘기들이었지만 지금 엔은 진지하게, 그것도 나에게 털어놓고 있었다. 그녀의 각오는 무척이나 큰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범죄를 싫어한다는 것을, 사람들을 좋아한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정말 뭣 같게도 말이 되는 이야기인거야, 사라”

“......그럼 경찰은 어떻게 된거야?”

“전역하자마자 삼촌이 권유해왔어. 손을 씻지는 못해도 평생 갚을 기회는 주겠다고. 그게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곳이야.”

“그곳 사람들은 알아?”

“알아. 삼촌이 대놓고 얘기해놓고 시작했거든. 덕분에 처음에는 눈치 좀 존나게 받았지. 범죄자 출신, 그것도 거물급 범죄자라는 눈도장이 있었으니까.”

“지금도?”

“아니. 지금은 나아졌더라고. 실적도 분명히 있고 나도 그들에게 범죄자들에 대해서 많이 가르쳐줬거든. 옛날 직업이었던 나였기에 그런건 있더라. 잡아야할 상대가 어떻게 피하는지, 어떻게 행동할지가 눈에 보였어.  내가 했거나 봐왔던 행동들이었으니까.”

“다행이네.”

“다행? 사라, 난 범죄자였다니까? 사람도 죽였어.”

“알아. 방금 직접 얘기해줬잖아.”

“그런데 다행이라니? 넌.”

“맞아, 난 분명 너의 범죄자였던 시절을 싫어해. 이미 충격받았어. 너의 과거가 그런 시절이었다는게.”

엔의 표정이 조금 서글퍼하고 있었다. 방금 말은 진심이었다. 크게 충격을 받았고 과거의 엔을 싫어하고 있었다.

“삼촌분의 말처럼 사람을 죽인 이상 너의 손을 절대로 씻을 수 없어. 절대로 지워지지 않을 죄야.”

“......알아.”

“하지만 엔, 지금의 너는? 비록 과거를 씻어낼 수는 없지만 경찰이 되었고 매일같이, 나를 때로 외롭게 만들고는 있지만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고 있어. 무서운 범죄자들에게 몸까지 던져가면서 싸우고 있어. 지금의 네가 말이야. 그러니까.”

잔을 들고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난 좋아해. 지금의 너를. 엔, 경찰을 그만두지마. 지금이라도 사람들을 위해서 싸워줘.”

“사라......”

“잔을 부딪히자. 내일도 출근해야지.”

“......그렇네. 내일도 쌍놈들 잡으러 뛰어다녀야지.”

“그리고 솔직히 말해줘서 고마워.”

잔을 부딪혔다. 그리고 우리는 간단한 안주와 함께 와인을 즐겼다. 비록 오늘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지만 엔이 솔직하게 말해주었고 천천히 경찰이라는 직업을 통해서 과거를 반성하기로 한 만큼 받아들이기로 했다. 만약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더라면 그때는 정말 미워하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녀의 진실고백은 무척이나 용기있는 행동이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어떤 분이셔?”

“의사야.”

“의사면 대단한거 아니야?”

“무면허 의사야. 따로 병원에 일하고 있는게 아니라 저 높은신 분들 곁에서 주치의  경호원을 하고 있어. 그래서 깨끗하지는 않은거라고 했던거야.”

“그럼 나쁜 의사야?”

“그것도 아닌게, 얘가 가끔씩 봉사라는 것도 다녀오거든. 돈이 없거나 부족한 집이 많은 동네에 찾아가서 애들을 치료해줘. 무료료. 설령 그게 수술을 해야할 정도의  병이라고 말이지.”

“좋은 사람이네.”

“만나봐. 좋은 년인지. 안그래도 걔도 너 보고 싶어하더라.”

“만나볼게.”

“그럼  총을 챙겨야겠네. 이상한 짓 하면 쏴버리게. 마침 체포할 건수도 많은데.”

“그러면 못 써, 엔.”

“예이.”

밤은 깊어갔다. 어두운 하늘 위에서는 하얀 달이 밝게 세상을 비춰 내렸다. 그래서일까, 화이트와인은 정말 맛있었고 무드등에 비춰지는 우리의 분위기도 좋게 흘러갔다. 결국에는 와인에 취하고 말았고 우리는 흔들리는 걸음으로 침대에 누웠다. 코에가 이제 왔냐는 듯 안겨왔다. 정말 행복한......꿈이었다.





해가 뜨고 나는 다시 코에를 업었다. 동호는 삽을 챙겼고 자은은 임시로 사용할 나무 묘비를 만들어내었다. 나무로 된 십자가. 그래, 없는 것보다는 나았지만 어째 미리암그림자 교단이랑 이어지는  같아서 좆같았다. 애초에 마리아님은 이 미리암그림자를 존나게 싫어할 것이다. 내가 아는 그녀는 나같은 ‘마녀’에게 벌을 내리는 존재지, 애꿎은 사람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시지 않으니까.

땅을 파고, 동호와 함께 만든 작은  안에 코에를 눕혔다. 그리고 안에 나와 사라의 흔적들을 각자 담았다. 나는  권총의 총알 하나를, 사라는 하얀 꽃을. 제대로 된 관조차 만들어주지 못해서 미안한데 안에 넣어줄 것도 많지 않았다. 뚜껑을 덮고 파놓은 땅에 넣은 뒤 흙으로 덮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숙인채 그것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코에가 마리아님의 곁에 무사히 갈 수 있기를 기도했다. 사라는 조용히 묵념만은 유지했다. 자은도 자성도 함께해주었다. 코에는......땅에 묻혔다.

이후 우리는 아침을 먹었지만 깨작거리기만 할 뿐 제대로 목이 넘어가는게 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옆에서 반찬투정을 부리던 코에가 없었다. 나와 사라의 사이에 앉아있던 코에가.

아침을 먹고나서 사라는 자은과 함께 2층으로 갔고 난 따로 동호를 불러내었다. 그는 어제 미처 주지 못한 권총을 내게 건네주면서 무엇을 도와주면 되겠냐고 물었다.

“가자. 뒷처리는 해야지.”

우리는 집 밖으로 나섰고 어제, 내가 괴물과 창호를 죽인 곳까지 걸어갔다. 여전히 숲으로 들어갔던 창호새끼의 흔적은 선명히 남아있었고 현장도 마찬가지였다. 목을 잘라낸 괴물과 가슴을 찔러 죽여버린 창호의 시체가 누워있었다. 들고온 포대를 열고 이 시체들을 담았다. 피는 굳어버렸는지 묻지도 않았다.  사이로 코에가 흘린 피도 보였다.

“시발.”

머리를 흔들었다. 예상은 했지만 이것들을 보자마자  이성이 끊어지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옮기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가장 무거운 괴물의 시체는 동호가, 창호의 시체는 내가 바닥에 질질 끌며 들었다. 포대가 잘 찢어지지 않아서 끌면서 가도 충분했다.

도착한 곳은 잔해가 있는 도시의 도로, 정확히는 부서진 인도였다. 그 위에  둘을 올리고 집에 있던 성냥과 신문지를 꺼내 불을 붙였다. 빠르게 불이 붙은 신문지를 포대에 던졌다. 조금씩 옮겨가는 불이 천천히, 크게 시체들을 태워나갔다.  위에 얹혀준건  총알이었다.

“지옥에 가서도 뒤져버려.”

‘탕!’

“가서도 기다리고 있어.”

‘탕!’

“내가 뒤져서 거기가면 또 죽여줄 테니까.”

‘탕!’

3발을 쏘고 집어넣었다. 이제  쓰레기는 영원히 내 기억에 남아있을 것이다. 어제의 일은 사실상 끝이었지만 내게는 아니었다.

“돌아가자.”

“그러죠. 아직 치워야할 잔해도 있고.”

동호는 그런 나를 위해서 주제를 바꿔주었다. 어제의 일은 더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뭔가 물어보려던 것 같은데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사라의 상태를  번 확인한 뒤 창호의 집을 뒤적거렸다. 쓸만한게 뭐가 있는지 말이다. 수확은 많았다. 그래도 농업을 해서인지 먹을 것들이 많았고 아껴놓은 듯한 통조림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으며 쌀도 일부 구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창고에서 차에 넣을 수 있는 소량의 기름과 함께 무기로 쓸만한 사냥총, 새것은 아니지만 침낭을 구하게 되었다. 부서져버린 차와 함께 날아가버려서 침낭이 없던 우리에게는 희소식이었다. 하나뿐이기는 해도 사라가 사용할 것만 있으면 충분하니까.

창고에서 찾은 것들을 모두 차에 실었다. 그리고 동호와 함께 삽과 톱을 들고 내려가 남은 잔해들을 모두 치워버렸다. 자르고, 퍼내고, 부수고. 자은이 없었지만 어제 많이 해놓은 덕분에 양도 얼마 되지 않아서 금방 끝낼 수 있었다. 잔해 치우기가 끝나고나서는 위로 올라와 점심을 먹었다.아침을 제대로 먹지 않고 일해서인지 배가 고파서 많이 먹게 되었다. 사라는 여전히 깨작거리고 있었다.

“사라.”

“......”

“우리 나중에 떠날거야. 많이 먹어둬.”

“......응.”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깨작깨작 먹는건 똑같았다.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냥 내버려두었다. 분명 나보다 충격이 클거고 상처또한 클거니까. 이런 일을 제대로 겪어보지도 못한 그녀였다.

점심을 먹고  뒤에는 자은네와 함께 소파에 둘러앉았다. 나의 옆에는 사라만이 앉아있었다. 뭔가 허전한 느낌이 강했다. 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잔해를 치웠으니 우린 이만 떠나볼게.”

“좀 더 쉬고 가시는게 좋을거에요.”

자은이 말했다.

“아니, 우린 하루빨리 부산으로 가야하니까.”

“엔씨.”

“그만둬, 당신. 지금 이분들한테 여기는 그저 고통일 뿐이야.”

동호가 말했다. 내 말을 대신해주었다.

“더 필요한 것은 없으십니까?”

“없어. 이 집에서 먹을 것도 상당히 구했고 부산으로 향하면서 사용할 것도 얼추 얻었고, 더 이상 챙길건 없어. 충분해.”

“그렇군요.”

“당신들은 어떻게 할거야?”

“저와 남편은 일단은 여기에 남기로 했어요.”

“......그래.  집에 남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겠지. 이상한 멧돼지새끼들이 있기는 해도 대응만 잘하면 문제없는 데다가 당장은 크립톤의 위험도 없으니까. 거기다 밖에는 가꿔놓은 밭들도 있어서 식량도 넉넉할거야. 좋은 선택이야.”

“그것도 있지만.”

자은이 손가락으로 바깥을 가리켰다. 아, 저 이유도 포함된 건가. 그건  고마웠다.

“그럼 우리는 가볼게. 짧은 만남이었지만 나쁘지는 않았어. 고생했어.”

“네, 조심히 떠나세요. 꼭 부산에 도착하기를 빌게요.”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사라와 함께 나왔다. 그녀는  옷자락을 잡으면서 따라나왔다. 조수석에 먼저 태우고 내가 운전석에 올랐다. 차의 시동을 걸고 우리에게 손을 들고 인사하는 자은과 동호에게서 천천히 떠나갔다.

코에가 죽고, 우리는 더 말이 없어졌다.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안그래도 사이가 뒤틀려서 대화가 줄었는데 이젠 필요한 대화마저 사라지려 하고 있었다. 나도, 사라도 서로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치운 잔해 사이로 길이 드러났다. 바로 옆에는 사라와 코에가 앉아서 즐겁게 얘기를 나누던 버스정류장이 빈 채로 세워져 있었다. 그걸 보고서 잠시 차를 세웠다.

“사라, 잠시만 내리자.”

그녀가 슬픈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무슨 소리인가 싶을 테지만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으로 코에와 함께 하기로 했다. 운전석에서 먼저 내린 내가 사라의 손을 잡았다. 조심히 내리게 한 다음에 둘이서 버스정류장에 앉았다. 바람이 불었고 이제 조용해진 숲이 우리를 만지려 했다. 하늘은 정말, 더럽게도 맑았다. 비라도 내렸으면 참 시원할텐데.

대화는 없었다. 그냥 둘이서 손만 잡은 채로 30분간 앉으면서 여러가지 생각들을 했다. 전부 코에에 대한 생각이었고 사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엄마가 떠올랐다. 나를 돌보아 주었던 엄마. 비록 사이비 교단의 신자였지만 나를 키우는데 있어서는 그저 엄마였던 사람.

“엔.”

사라가 나를 불렀다. 오늘 처음으로.

“응.”

대답해 주었다. 힘없이.

“가자.”

“......응.”

다시 차에 타고 출발했다. 잔해 뒤로 드러난 도로를 텅텅 빈 길이었다. 방해하는 폐차도, 끊어진 길도 없었다. 글자가 다 지워진 표지판만이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부산으로 향했다. 똑같은 풍경, 똑같은 도로를 지나면서. 1시간쯤 달리자 사라가 눈을 감은채 잠에 들었다. 하지만  모습이 너무도 안쓰러워 보였다. 그래서 조용히 읊조렸다.

“잘 자, 사라.”






“진영아, 우리 딸.”

“엄마?”

엄마가 불렀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되어 교복을 맞추고  참이었다. 아빠는 일이 있다며 나가서 집에는 나와 엄마뿐이었다.  여전히 교복을 입고서 기쁜 마음을 함께하고 있던 참이었다.

“잠시만 와볼래?”

그녀가 부르기에 다가갔다. 어제 아빠의 훈련으로 다리가 조금 아프기는 했지만 걷는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천천히 다가간 날, 엄마가 안아주었다.

“중학생이 된 걸 축하해. 잘 크고 있다는 거니까.”

“응. 고마워, 엄마.”

“그리고 이건 선물.”

안아주었던 것을 풀고 엄마는 내게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무엇인지 모르는 채로 상자를 열자 안에서 예쁜 목걸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와, 예뻐.”

“우리 딸을 똑 닮은걸로 준비했어. 마음에 드니?”

“응.”

“다행이네. 엄마 선물이 괜찮아서. 그리고 진영아.”

“응?”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 우리 딸.”

“응!”

나는 엄마에게 선물을 받았다는 것에 기뻤다. 그것도 예쁜 목걸이. 전혀 예상치 못한 선물이기도 했다. 그런만큼 고마웠고 앞으로  간직하기로......했다.






[젠장, 그 망할인간. 도대체 뭘 만든거야. 정말 같은 존재가 맞아? 미친거 아냐?]

[통신하자마자 화가나 있다니. 안좋은 일인가요?]

[최악이야! 정말 최악이라고. 이건 어쩔 도리가 없어. 네가 나서줘야겠어]

[‘실패작’때문인가요?]

[‘실패작’을 가장한 ‘성공작’이야. 너도 조심은 해야할거야. 이 실험체, 여러 크립톤들의 특성이 다 들어가 있어. 무엇보다 오른팔 한정이기는 해도 여러가지로 변화까지 일으켜. 만나면  오른팔부터 베어버려.]

[그럴게요. 다른 거는요?]

[아직은 이것뿐이야. 아직 내 위치를 모를 거니까 먼저 처리해줬으면 좋겠어.]

[‘마녀’의 감시는?]

[어디로 향하는지 알고 있으니까 당분간 중단해.]

[알겠어요. 일을 번복하는 느낌이지만. 아, 어제 물어보지 못했는데 형사쪽은 어떻게 되었죠?]

[서울쪽이 털린지 오래고 모습도 감춰버린 뒤로 여전히 소식이 없어. 함부로 애들 풀었다가 역으로 추척당할 위험도 있는데, 이거고 저거고 다 문제야.  가만히 내버려 두지를 않아!]

[감수하고 하신거잖아요. 전  대비책이구요.]

[아, 몰라! 생각을  정리해야할  같아. 통신 끝.]

[......하아......통신 끝.]

통신을 끊자마자 나의 앞에서 망설이던 사슴이 다가와 있었다. 이들은 돌연변이된 사슴무리였다.  지역을 거쳐가는 모양이었다. 조만간 이곳도 식물들이 자라나겠지. 언젠가라도 좋으니 느긋하게 구경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으려만. 사슴의 머리를 손으로쓰다듬어주고 걸음을 돌렸다. ‘마녀’의 감시에서 ‘실험체’의 처리로 임무도 바뀌었고, ‘S’의 말대로 마녀가 어디로 향하는 지는 아니까. 그런데 뭐랄까, 그다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 같지 않았다. ‘마녀’ 때문일까? ‘실험체’ 때문일까? 아니면  다?  수 없었지만 이제 가야할 시간이었다. 나는 카타나를 들고서 사슴무리들과 헤어졌다. 그들도 내가 떠나가는 것을 보고 다시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하러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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