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8화 〉Wrath (I'm Sorry, Shara) - 7 (68/72)



〈 68화 〉Wrath (I'm Sorry, Shara) - 7

집 밖으로, 누군가가 작업이라도 하는지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소리. 아빠께서 어릴  내 방에 시계를 달아주고 가구를 만들어  때 사용하던 망치질 소리였다. 하지만 내가 찾던 소리가 아니였다. 역시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저기, 자은씨.”

“네?”

자은씨를 불렀다. 그녀는 아까부터 동호씨와 얘기를 나누면서 자성이를 돌보고 있었다. 나도 코에를 안고서 돌보고 있었지만 중간부터 확실하게 알아차리고 확인차 그녀에게 물어볼 생각이었다.

“엔은 어디간거죠?”

내가 묻고자  건, 엔의 행방. 자은씨네 가족의 소리는 분명하게 들려왔지만 엔의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것도 오랜 시간동안이나 말이다. 그녀는 항상 분주하게 움직이고 내가 옆에 붙어있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혼자 무언가를 하는 소리들이 들려왔는데 지금은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자은씨네 가족들 소리에 묻혔다고 하기에는 소리의 숫자가 부족했고 엔이 가만히 있다고 하기에도 너무 조용했다.

“아, 그게......”

역시 엔은  방 안에 없었다. 그녀는 어디로 간걸까. 평소에도 자주 어딘가로 나가거나 다녀오기는 했지만 내게 말하지 않고서 나간 적은 없었다. 내가 그녀의 정체를 알고 사이가 나빠진 이후에도 말이다. 최소한 어디로 간다고 하지는 않아도 나간다는 표시는 던져주었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어떤 말도 있지 않았다.

“잠시 숲을 살펴보고 온다고 했습니다.”

“숲을요?”

“네. 금방 돌아올 거라고 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될겁니다.”

“네......”

어제와 오늘, 내가 들은 소리때문일까. 코에를 안고서 그녀가 잔해 치우는 것을 기다릴 때, 난 소리를 들었었다. 처음에는 새나 혹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인가 했지만 전혀 다른 소리였었다. 무언가가 나무를 타고 다니는 소리. 거기다 한동안 멈춰섰다가 떠나는 소리.

분명  엔을 걱정해야 했다. 하지만 어째설까, 걱정보다는 혼란스러움만이 찾아왔다. 그 이유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가 ‘서울의 마녀’이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살인마였고 뉴스로만 보면서 아무도 정체를 몰랐던  마녀, 최악의 살인마이자 고향에서는 현대판 ‘잭  리퍼’라고 불린 여자. 동시에  구하고 적어도 나와 함께했던 동안은 역으로 수많은 사람을 구했던 엔이기도 했다.

“엔.”

[사라언니?]

나도 모르게 코에를 꼭 끌어안아 버렸다. 어떻게 하면 좋은지 모르는 생각과 감정들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이걸 알고 있었던 것일까, 송혜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나에게로 큰 폭풍이 찾아올 거라고. 그러니 조심하라고. 그 때 난 어떤 일이라도 버텨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엔이 그 폭풍의 원인이라고 생각치 못했기 때문에.

‘끼익.’

“어?”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였다. 하지만 엔은 아니었다. 지금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는 꽤나 묵직한 것이었다. 그녀가 계단을 오를 때 들려온 소리는 묵직하지 않았고 오히려 가볍고 조용했다. 아마 창호씨일 것이다. 벌써 저녁시간인 것일까? 아니다. 희미하지만 빛이  눈에 닿는게 느껴져왔다. 아니, 이유를 생각하지 말자. 여기는 그의 집이었고 우리는 겨우 손님이니까.

‘끼익. 쿵.’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발걸음 소리만이 들려오는게 아니었다. 무언가 무거운 것과 함께 올라오고 있었다. 창호씨가 무언가를 들고 오는 것 같았다. 엔이 있었다면 신세를 지고 있으니 한번 쯤 도와주라고 말을 해보겠지만 그녀가 없어서 그러지도 못했다.

‘끼익. 끼익.’

나무계단의 소리는 꽤나 컸다. 나와 코에가 밟을 때는 이 정도로 들리지는 않았었는데.

‘......’

마침내 다 올라온 것인지 소리가 사라졌다. 이어서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소리, 그러니까 문을 두드리지도, 다른 곳으로 가는 소리조차도 들려오지 않았다. 뭔가 이상했다. 지금 창호씨는 멈춰있다는 건데 볼일이 있어서 올라온 게 아닐까? 거기다 무언가를 들고 있다면 말이다.

“사라씨?”

자은이 말을 걸어왔다. 그녀의 곁에 누군가가 눕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생각이라도 하시고 있는 건가요?”

“네? 생각이요?”“네. 아까부터 문쪽을 바라보시면서 가만히 계시길래요.”

“아, 아뇨. 그냥 소리가 들려서요.”

“소리요?”

“네. 아무래도 창호씨가 올라온 것 같아요.”

“정말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었는데.”

“그리고 지금  앞에서 멈추셨는데 들어오시질 않아요.”

“문 앞이요?”

그녀도 문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소리를 멈춰 있었다.

“여보. 문 앞에 창호씨가 있다는데 한 번 확인해 줄 수 있어?”

“창호씨가?”

그리고 동호씨에게 부탁했다. 아, 그러고보니 올라올 때 무거운 것을 들고 오는 듯 했는데 그것 때문일까? 문을 열 손이 없는 것이다. 마침 동호씨가 문을 열어주러 갔으니 어쩌면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잠시 뒤, 방에서 문으로 향하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나무바닥이 소리를 내며 그의 걸음을 알려주었다. 문고리를 잡는 소리, 그리고 천천히 문고리를 돌리는 고리, 이어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창호씨가 우리를 부르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들려온 소리는 동호씨의 다급한 외침이었다.

“자은아! 자성이랑 사라씨 데리고 여기서 나가!”

“여보!”

[언니! 사라언니!]

“누나?!”

한순간이었다. 평화로웠던 소리가 꺼지고 아비규환의 소리들이 합주를 시작한 게. 이 연주의 지휘자는 다름아닌 창호씨였다.

“마리아님의 분신이 오늘 저녁에 도착하게 됩니다.”

“창호씨?”

침대에서 일어나 코에를 나의 뒤로 물리며 창호씨의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다. 목소리와 말투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엔씨의 경고가 맞았어.”

경고?

“여보, 창호씨의 손에.”

“알아, 위험하니까 내 뒤에 있어! 저런 무거운 걸 빠르게 휘두르지는 못할 테니까.”

“사라씨, 코에도 이쪽으로!”

코에가 나의 옷자락을 끌었다. 그걸 따라 움직이자 누군가들의 몸들이 부딪히는게 느껴져 왔다. 아직 우리는 대치하고 있는 상태였다.

“재물이 필요합니다.”

이런 속에서도 달라져버린 창호씨의 목소리와 말은 똑똑히 전달되어 왔다. 어째서 창호씨가? 그리고 엔의 경고라니. 그녀는 이미 무언가를 알고 있던 것일까?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코에를, 자은씨 가족이 무사해야 한다는 것만 떠올랐다.

“엔씨의 말대로라면 지금 자성이랑 코에를 노리고 있을거야. 내가 부딪혀서 틈을 만들테니 그 때 모두를 데리고 나가도록 해.”

“하지만 여보.”

“어서!”

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거운 발걸음이 빠르게 달려나갔다. 그리고 휘둘러지는 소리와 함께 발걸음 소리들이 엉켜 들려왔다.자은씨가  손목을, 코에가 내 옷자락을 잡으며 다급히 어딘가로 이끌어갔다. 머릿속의 지도에서 우리는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천천히 내려가야할 계단을 다급히 내려갔고 위에서는 싸움이 시작되는 소리가 집을 울렸다.

“문이.”

“무슨 일인가요?”

“문이 막혔어요. 판자로 온통 막아놨어.”

“네?”

이 상황이 일어나기 직전 들려온 망치질 소리가 떠올랐다. 설마 이것도 창호씨가? 이제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그는 우리를 해치려 하고 있다는 것. 윗층에서 들려오는 싸움 소리는 여전했다. 하지만 도망칠 곳이 없었다. 우리는 갇히고 만 것이다.

“코에, 언니한테 꼭 붙어있어.”

[언니!]

코에도 무서운지 목소리에 떨림이, 두려움이 묻어있었다. 나는 그런 코에의 손을 놓지 않으려 꼭 붙잡았다.

“누나, 저 문 열려있어.”

  자성이가 말했다. 나는 볼 수 없었지만 어딘가 열린 문을 찾은듯 했다.

“지하? 일단 여기로 피해요!”

지하라고 했다. 자성이가 발견한 문을 지하로 내려가는 문인듯 했다. 자은씨는 바로 내 손목을 잡고 그곳으로 뛰어갔다. 나도 그녀의 발걸음에 맞춰 뛰었고 공기의 냄새가 달라지는 어딘가의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문이 세게 닫히고 자은씨의 발걸음이 계단과 어딘지 모를 창고를 여러번 오갔다.

“자성아! 거기있는 못이란 판자 다 들고와!”

“응!”

[나도.]

“코에!”

코에가 내 손을 떠나갔다. 그 탓에 놀라버린 내가 길을 잃게 되었다. 이곳은 나의 머릿속 지도에 없는 장소였다. 오로지 소리와 어둠뿐이었다. 이 속에서 들려오는건 또다른 망치질 소리, 문을 단단히 막고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계단을 작은 발걸음들이 올라가고 내려오기를 반복했다.

“모두 내려가!”

자은씨의 물러나라는 말이 들려올 때, 다시 코에의 손이  손을 꼭 잡아왔다. 창고 안을 울리도록 무언가를 찾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이거라도.”

다시 자은씨의 말과 함께 시끄러운 소리가 멈추었다. 그녀의 발걸음이, 손이, 나와 코에를 어딘가로 향하게 했다. 이어 내게 말했다.

“잘들어요, 사라씨. 지금 우린 창고에 있어요. 다른 길이 보이지가 않아요. 그러니 자성이와 코에를  데리고 있어 주세요.”

“자은씨는 어떻게 하려구요?”

“문은 확실히 막아뒀지만 그 남자가 들고있던 도끼라면 충분히 부수고 들어올 거에요. 엔씨가 돌아올 때까지 버텨야겠죠.”

“엔.”

그녀가 떠올랐다. 지금 그녀는 여기에 없었다. 금방 돌아올 거라고 동호씨에게 듣기는 했지만 지금은 1분 1초가 급한 상황이었다. 그녀는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있는 걸까? 그렇게 엔을 밀어냈으면서 지금은 또 그녀를 찾고 있었다. 이런 나 자신이 순간 싫어졌다. 그리고 나도 무서웠다. 창호씨가 이런 사람으로 돌변할 줄은.

‘쿵! 쩌적.’

“안돼.”

문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자은씨가 작게 말했다. 그러고보니 위에서 들려왔던 싸움 소리가 사라져 있었다. 그렇다는건......아니야. 난 코에와 자성이를 꼭 안아주고 가지고 있던 엔이 만들어준 지팡이를 손에 쥐었다. 지금 내가 할수 있는건 이것뿐이었다.

‘쿵! 쿵! 쿵!’

지팡이를 펼쳤다.

“사라씨.”

공기가 무거웠고  두 다리가 떨려왔다.

‘쩌적!’

문이 부서지고

“도망가요!”

나는 코에와 자성이의 도움을 받으며......창고에서 도망쳤다.


도망친 잡탕의 흔적들은 아주 선명히 남아있었다. 나무들 윗쪽만 봐도 수많은 긁힌 흔적들만 쫓아가면 되었다. 이것도 병신인게 자기 흔적을 최대한 남기지 않고 가려했다면 땅으로 기어야 했는데 굳이 나무를 타고 이동하고 있었다. 지능이 그렇게 높은 놈은 아니라는 소리였다. 나야 쫓아가기 쉬워서 오히려 땡큐였다만 언제나 그렇듯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멀리서 저격으로만 봤었던 멧돼지들이  눈앞에 친히 나타난 준 것이었다. 자신들의 흰 상아를 내밀고서 말이다.

‘꾸에엑!’

소리는 여전한 멧돼지였다. 놈들은 나를 향해서 망설임없이 돌격해오는가 하면 자성이라는 남자애의 무릎에 박아버린  상아를 쏘기도 했다. 총알보다는 느려서 어떻게든 피할수는 있었지만 추격에 방해가 되었다. 돌격을 피하고 총을 쏘고 흰 상아를 피하고 총을 쏘았다. 그러다 5발쯤 쏘고 나서는 나이프로 바꾸었다. 잡탕을만났을 때 총알이 없으면 곤란한게 이유였다. 이어서 나이프로 멧돼지들의 빈틈을 보고서 수차례 찔러주었다. 추격해야할 상대가 있는 관계로 완전히 목숨을 끊는데 시간을 사용하기 보다는 무기력시키는데 집중했다.

그렇게  무리, 7마리를 불구로 만든 뒤 추격을 이어나갔다. 다행히도 내 눈이 흔적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점점 그림자가 옅어지고 있는 것을 보니 숲도 벗어나고 있는  했다. 벌써 1시간도 넘게 이 숲에 갇혀있었다. 햇빛의 기울기로 봐서는 조금 있으면 저녁으로 넘어갈 때였다. 완전히 해가 지기 전에 빠져나가지 않으면 돌아가기는  자체가 버겁게 될 테니.

오랜 시간동안 쫓은 끝에 도착한 곳은 한 호수가였다. 저 멀리 도로가 보이는 호수, 나무는 없었고 대신 나무에서 내려온 흔적과 물가에 아직 남아있는 발자국들의 흔적들이 이어져 있었다. 생각할 시간도 없이 바로 뒤따라갔다. 나무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속도보다는 많이 줄었을 것이다. 그 얇은 다리로 이 땅에서 흐느적거리며 빠르게 뛰지 못할 테니까. 얼마 가지 않아서 호수 한쪽에서 물을 대가리를 쳐박고 물을 먹고 있는 잡탕이 보였다. 반갑다는 인사로 권총을 5발 쏴주었다.

‘츠에에엑!’

녀석도 반가운지 총알이 박히자 힘찬 울음소리를 내었다. 녀석의 고개가 나를 향하기 전, 권총을 집어넣고 나이프로 바꿨다. 검은색의 날이 향한 곳은 잡탕의 목이었다. 이번에는 찔러넣을 수 있었다.

“좀 더 울어재껴봐, 시발새끼야!”

생각보다 깊게 박히지 않아서 나이프를 고쳐쥐고 좌우로 흔들며 깊게, 더 깊게 쑤셔박았다. 잡탕은 어떻게든 날 떼어내려 앞발을 움직이다가 급기야 꼬리까지 사용해 나를 찔러서라도 떼어내려 했다. 그 전에 나이프를 뽑아 피해주고 눈 앞에 보이는 다리를 베어주었다. 내가 숲에서 베었던 다리였다. 그 덕분일까, 껄끄러웠던 앞 다리 하나가 잘려나갔다. 녀석의 무기가 하나 줄어든 것이다.

‘츠아!’

중심을 잃고 넘어지면서 다른 쪽 앞발을 휘둘러보지만 스치기만 했다. 이대로 남은 앞발도 잘라내려 다가갔다가 또 물러나야 했다. 꼬리의 길이를 늘여 휘두르며 방어하고 다시 나무를 타고서 숲 안으로 튄 것이다.  사람 피곤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청자켓은 이미 반쯤 붉은색으로 대부분 칠해져 있었다. 갈아입을 옷도 없는데 다시 추격까지 하게 만들고 있네.

걸음을 옮겨보려 했지만 한 차례 또 지체되고 말았다. 내 총소리를 듣고  것인지 또 맷돼지 한 무리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바로 권총을 들고 내게 돌진해오던 3마리에게 총알들을 쳐박아 주었다. 남은 것들은 흰 상아를 쏘았고 그걸 피하며 처리해주었다. 벌써 나이프의 날이 삭아버릴 것 같았지만 갈아줄 시간은 없었다. 총 하나 장전하기도 버거운데 칼가는 거라니.

이제 마지막 탄창이었다. 15발. 그리고 나이프. 지금이라도 창호의 집으로 돌아가면 재차 채워넣을 수 있기는 했지만 바로 눈앞에 잡탕이 있었고 내게 많이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 처리하려면 지금이었다. 다시 숲으로, 그림자들이 가득한 그곳으로 몸을 담궜다.


지하의 창고에서 나와 아이들을 따라서 향하게 된 곳은 다시 2층이었다. 문이 막혔고 창고에 아직 싸우는 소리가 들려오는 이 집에서 피할 곳은 있지 않았다.  안에 든 쥐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포기하면 안되었다. 엔은 꼭 돌아올 것이고 그동안 이 아이들을 지켜야 했다. 어떻게 하면?......난 앞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싸움조차도  줄 모르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런쪽으로 사용해본 적 없는 머리를 사용해 여러 생각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한 가지의 방법을 선택하게 되었다. 내가 할  있는건 이 방법뿐이었다.

“얘들아, 우리가 있던 방으로!”

동호씨가 싸우기 위해 남아있던 그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자성이가 그를 찾아서  손을 놓고 달려갔다. 그 발걸음 소리가 선명했다.

“형, 괜찮아? 눈 좀 떠봐, 형!”

“안돼. 동호씨.”

당한 것이다.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 무섭고 눈물이  것 같았다. 하지만 정신을 놓지 않았다. 아직 아이들은 무사하니까. 코에도, 자성이도. 그러니 할  있는걸 하자. 시간을 버는 것만큼은 나도 시도해   있었다. 석재씨의 말이 떠오르지만 이내 곧 지워버렸다. 주환이 내게 쏟아부었던 말이 아직까지도 그 말을 덮어버리고 있었다.

“아니야. 지금은.”

머리를 흔들었다. 석재씨도, 주환도 머리에서 떨쳐내고 코에의 손을 잡고서 자성이를 불렀다. 그리고 물어보았다.

“자성아, 너의 도움이 필요해. 지금 침대 밑에 너희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있긴 있어요. 저나 코에는 들어갈 수 있어요.”

“그거면 돼. 둘 모두 밑에 들어가서 절대 나오지 마. 조금만 기다리면 누나 친구가 올거니까.”

“사라 누나는?”

“난 걱정마. 코에의 곁에만 같이 있어줘.”

[사라 언니?]

알아들을 리 없을 코에의 손을 놓고 자성이에게 보내주었다. 코에가 나를 부르면서 무어라고 했지만 해석할 수 없었고 둘이 침대 밑에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아직도 밑에서 싸우는 듯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나는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엔이 만들어준 지팡이를 쥐고 나의 머릿속에 있던 지도만을 생각했다. 우선  바깥으로 나섰다. 그리고 코에와 다니면서 손으로 만졌던 가구들의 위치를 떠올렸다. 모두 큰 가구들은 아니었다. 지팡이를 두드리며 하나, 만지게 되었다. 서랍인지, 아니면 작은 탁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밀면서 계단 쪽에 두었다. 그리고 둘, 이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무슨 용도로 올려놓은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의자가 있었다. 그것도 옮겼고 셋, 우연히 벽을 짚다가 액자 같은 것이 걸려있는걸 찾게 되었다. 그것도 계단쪽에 세워두었다.

‘쿵!’

싸우고 있을 지하 창고, 그곳에서 큰 울림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끝이었다. 더 이상 들리는 소리가 없었다.

“자은씨.”

그녀도 당한 것이다. 어쩌다가, 도대체  일이 이렇게 된 것일까. 몸에 힘이 풀리며 울고 싶었다. 하지만 내 뒤에 있는 두 아이를 생각하면서 일어섰다. 아직 끝난게 아니니까. 지팡이를 쥐고 일어서서  집 안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천천히 지하에서 올라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주인은 당연하게도 창호씨였다.

“도망치지 말아주세요. 저는 당신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오로지 제가 필요한 것은 제물뿐입니다.”

“당신도 살인마였던 건가요? 창호씨.”

“당신‘도’? 짐작은 했다만 역시 엔씨는 사람을 죽여본 자였군요. 피하길 잘했습니다. 우선 말하건데 전 살인마가 아닙니다. 단순하게 미쳐서 사람을 죽이는 그런 쓰레기들과는 비교하지 말아주세요. 전 미리암그림자 교단의 ‘마태서’로서 신을 모시는 자니까.”

“신을 모시는 자가 사람을, 그것도 어린아이를 제물로 바치겠다고 하나요? 신은 사람을 해치지 않아요.”

“네, 맞습니다. 신은 사람을 해치지 않죠. 하지만 때로는 ‘희생’시키기는 합니다. 미리암그림자 교단은 그런 마리아님의 의도를 대신 수행하는 성스러운 교단입니다.”

“지금 창호씨가 벌이고 있는 일은 ‘희생’이 아니에요. 그저 신이라는 존재에 눈이 멀어 저지르는 ‘살인’일 뿐이에요.”

“‘살인’이 아닙니다. 이건 엄연히 마리아님께서 원하신 제물입니다.”

“그렇게 마리아님이 직접 말씀하시던가요?”

“그 분의 ‘분신’이 말씀하셨습니다.”

“전 그 ‘분신’을 한 번도 만난적 없어요. 지금 창호씨는 그저 망상에 빠진 것뿐이에요!”

“아뇨. ‘분신’은 지금 숲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물을 바쳐왔던 덕분에 이 농가는 마리아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던 겁니다.”

“지금까지? 설마 이미 여러 아이들을.”

“마지막 의식이 두 달 전이었었죠. 같은 또래의 두 아이였습니다. 부모는 이미 ‘피거쉬’에게 당해 죽임을 당하고 운좋게 살아남은 아이들이었습니다.  그 아이들을 거두어 먹이고 재우고 보살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님의 ‘분신’이 찾아왔을 때 제물로 받쳤습니다. 저도 대단히 마음이 아팠지만 ‘희생’은 성스러운 것. 지금은 그저 가슴에만 묻고 있답니다.”

“......당신은 미쳤어요.”

더 들어줄 것도 없었다. 창호씨는 그저 미친 사람이었다. 미리암그림자 교단이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원하고 만들어진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정상적인 집단이 아니라는  뼈저리게 느껴져 왔다.

“전 미치지 않았습니다. 사라이.”

그의 발걸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전 교단의 일원으로서 마리아님의 곁에 서 있을 뿐입니다.”

‘끼익’

그리고 계단에 오르며 삐걱대는 소리가 들려오며 조금씩 가까워졌을  길을 막고 있던 가구들을 모두 밀어버렸다. 내 힘이 약해서 세게 밀지는 못했지만 나무를 계단을 타며 굴러 내려갔다.

“이런!”

‘퍽!’

동시에 창호씨의 당혹스러운 말과 함께 사람이 굴러 떨어지는 소리도 섞여 들어왔다. 제대로 직격당한 것이다. 그는 아무래도 내가 단순히 막고만 있을거라고 생각을 했나보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그에게 붙잡힐 수도 있다는 위험이 있기는 했지만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혼란, 그것만이 지금의 상황에 대한 답이었다.

“계속 아이들을 노리겠다면 절 먼저 잡으셔야  거에요. 모두 숨겼으니까!”

머릿속의 지도를 따라서 걸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테이블, 맞은편에는 넘어진 창호씨가 있을 위치였다. 그래서 닿을지도 모르는 채 무작정 테이블을 밀어버렸다. 중간에 의자들이 걸리면서 제대로 넘어지지 않은 것 같았지만.

“끄악!”

창호씨의 비명이 들리면서 제대로 부딪혔다는 걸 확인하게 되었다. 바로 걸음을 옮겼다. 지팡이를 짚으면서 다음으로 향한 곳은 화장실이었다. 들어가자마자 문을 닫고 잠그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사용할 수 있을 만한 것들을 찾다가 손에 비누가 만져졌다. 그걸 들고 바닥에 떨어트린 뒤 여러번 문질렀다.

“앞도 보지 못하는 자가!”

이곳으로 달려드는 소리가 들렸을  황급히  옆으로 벗어났다. 곧바로 문을 찍어내리며 부수는 소리가 나의 귀를 덮었다. 잠그었던 문이 강제로 열리는 소리와 함께 그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내게 손대지 못했다. 바닥에 칠했던 비누 덕분에 넘어지고 만 것이다.

“컥!”

그의 신음이 들리자마자 다시 밖으로 나갔다. 머릿속의 지도는 여전히 나에게 길들을 밝혀주고 있었다. 지도를 따라, 지팡이를 짚으며, 두려운 마음을 구석에 몰아넣고 다음 방으로 걸었다. 아직 엔이 도착하지 않았다. 시간을 더 벌어야 했다. 위에서, 나보다  두려움을 가지고 버티고 있을 코에를 생각하며 부엌에 도착했다. 칼을 쥐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상대는 도끼를 들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 내가 사용할 도구는 오로지 던지는  뿐이었고 이곳이 최후의 보루였다.

“끝입니다. 당신도.”

벌써 일어선 것인지 창호씨가 나의 뒤에서 목소리를 내었다. 소리만 들리는 나였기에 정확한 거리를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 손만 뻗어 닿을 거리는 아니었고 방향은 대략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 나는 몸을 돌리고 마지막 대화를 시도했다. 그러면서 손은 부엌의 싱크대를 만졌다.

“엔이 돌아올거에요.”

“그 여자는 죽을 겁니다. 그녀가 상대하는 자는 마리아님의 ‘분신’이니까요.”

“아니요. 엔은 돌아와요. 그리고 당신을 막아설 거에요.”

“제가 말한 ‘분신’은 단순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녀가 아무리 싸움을 잘한다 한들 신이 내려주신 ‘분신’을!......이길 수는 없습니다.”

“제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군요.  엔이  ‘분신’과 싸워 이긴다고 한 적 없어요. 돌아온다고 했지.”

“자신만만하군요.”

“약속했으니까요. 코에를 지켜주기로.”

“한낱 사람의 약속을 믿는 당신은, 참으로 안타깝군요. 그 믿음으로 미리암그림자 교단에 단원이 되었더라면 정말 좋은 신자가 되었을텐데.”

“저는 사이비 종교의 신자가 될 생각이 없어요. 신을 믿기는 하지만 당신처럼 광기 어리게 모시지는 않아요. 삶은 내가 살아가는 거지 신이 대신해주지 않으니까!”

손에 쥐었던 프라이팬을 그의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던졌다. 이어서 손에 잡히는 다른 프라이팬들이며 그릇,  그 외의 것들을 모두 집어 던졌다. 엔만큼 강하게 던질 수 없었지만 가능한 모든 힘을 실었다. 효과가 있는지 계속 그의 발걸음이 주춤하는 것이 들려왔다. 내가 던진것들이 요란한 소리들을 내며 바닥을 굴렀다.

“그만 귀찮게 하시죠.”

마지막으로 잡힌 그릇을 던졌을 때 그의 발걸음이 크게 다가오는 것이 들렸다. 이제 던질 것은 어떤것도 없었다. 대신 휘두를 건 있었다. 내가 손에 꼭 쥐고 있던 지팡이를 오른손에 들고  앞으로 휘둘렀다. 좌우로, 강하게.

“허튼 짓입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휘둘렀지만 역으로 잡히고 말았다. 강한 힘이 내 지팡이를 잡고서 움직이지 못하게 했고 이어서 목으로 굵고 까칠한 손이 덮쳐왔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켁.”

지팡이를 쥐었던 손이 펴지고 벗어나보려 그의 손목을 두 손으로 붙잡고 떼어내려 해보았다. 그래도 움직일 기미가 없었다. 내 힘으로는 이 사람의 힘을 이길 수 없었다. 점점 숨이 막히면서 어지러움이 느껴져 왔다.

“아브라함의 아내였던 자여, 눈감아라.”

 수 없는 마지막 한마디가 들려왔다. 점점, 내  손에도 힘이 풀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저항을 해볼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이대로 끝인걸까? 그래도 이런 내 행동으로 코에가 무사하다면 상관없었다. 비록 엔이 지금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코에와 자성이만 구해준다면, 그걸로 됐다. 미안해, 코에. 미안해......엔. 그리고 나의 생각은 점점 멀리,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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