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7화 〉Wrath (I'm Sorry, Shara) - 6 (67/72)



〈 67화 〉Wrath (I'm Sorry, Shara) - 6

꿈을 꾸었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 행복하다고 느꼈던 꿈. 앞을 보지 못하던 내가 주변의 풍경까지 보았던 꿈. 그리고 어째선지 선명하게 그려져 내 앞에 나타난 엔의 얼굴이 보인 꿈. 어쩌면 내 상상일 뿐일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얼굴이 보인 꿈. 무엇보다 차가운 세상이 아닌 따뜻함만이 남아있던......




“사라.”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눈을 떴다. 살며시 뜨는 나의 눈앞에는 품안에 안겨 자고 있는 코에와 내 뺨에 손을 올리며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는 엔이 있었다. 그녀는 나와 같은 종류의 노란색 잠옷을 입고 있었다.

“아침이야. 코에 학교 보내야지.”

“......여긴.”

몸을 일으켰다. 화사한 햇빛이 창문 너머로 들어오고 있었다. 집안을 밝혀오는 그 빛은 너무도 오랜만에 보는 빛이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얗고 깨끗한 천장과 벽, 매끄러운 나무로 만든 바닥이 있는 집이었다. 내가  여기에?

“뭐해? 멍하니 있고.”

그런 나에게로 엔이 말을 걸어왔다. 그녀는 벌써 침대에서 일어나 씻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기는 커녕 자연스러웠다. 오히려 어느샌가 나도 일어나서는 다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엔이 씻을 동안 아침을 만들기 위해서 방을 나와 부엌으로 향했다. 코에는 여전히 자고 있었고 지금 시간은 아침 7시 30분이었다. 코에의 등교시간까지 1시간이 남아있었다.

“사라! 수건이 없어!”

토스트기에 빵을 굽고 계란과 베이컨을 굽는 내게 엔이 샤워실 안에서 소리쳤다. 마른게 있으려나, 잠시 정원쪽의 창문을 열고 나가보았다. 그곳에는 빨래를 말리기 위해 줄을 연결해놓았다. 걸려있는 수건들  하얗고 마른 수건을 하나 집어 가져갔다. 그리고 문을 노크했다.

“수건?”

그런데 문이 살짝 열리는 것도 아니고 활짝 열리면서 그녀가 알몸으로 나왔다. 난 급히 누가 보기라도 할까 힘껏 문을 닫아버렸다.

“엔! 문을   여는거야!”

“아니, 뭐 어때서?”

그녀는 항상 부끄러움이 없었다. 그것도 엄청. 다시 문이 살짝 열리고 그 틈으로 수건을 건네주었다. 엔은 왼손으로 받았다.

수건을 건네주고는 다시 부엌으로 돌아와 다 익은 계란프라이와 베이컨을 접시에 담고 구워진 토스트는 그릇에 담아 테이블 위에 올렸다. 그리고 아직도 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코에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깨웠다.

“코에, 일어날 시간이야. 학교가야지.”

[음....싫어.]

아직 일어나기 싫은지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 아이의 뺨을 만져주면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게 했다.

“사라.......언니?”

“응, 아침이야.”

한국어는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중간마다 일본어를 섞어 쓰는 코에였다. 엔이 일본어에 능통해서 기본적인 한국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드디어 침대에서 벗어난 코에를 데리고 테이블에 앉혔다. 물을  모금 먹이고 포크를 쥐어주었다. 이어서 나도 자리에 앉았고 마침 엔도  씻었는지 밖으로 나와 옷을 갈아입고 테이블에 앉았다. 그녀는 하얀색의 블라우스와 청바지를 입었다.

“오늘은 언제 돌아와?”

“그러게. 요즘 지랄맞은 놈들이 유독  괴롭힌단 말이지.”

엔은 경찰이었다. 특히 몸을 쓰고 위험한 일이 많은 강력계에서 일하는 그녀였다. 유일한 가족은 삼촌이었고 그는 높은 신분의 군인이라고 했다.

“항상  조심해.”

“알아.”

토스트를 먹고 계란프라이와 베이컨을 먹은 그녀는 바로 출근길에 나섰다.

“그런데 엔, 블라우스 같은거 입고가도 괜찮아?”

“이거 입어야 나쁜놈들이 유혹에 잘 넘어와. 그럼 다녀올게~”

“응, 조심히 다녀와.”

엔이 먼저 밖으로 나섰다. 그녀를 마중하고 돌아와서는 코에를 씻기고 옷을 입힌 뒤 학교로 보냈다. 오늘은 하얀색과 검은색의 테두리 선이 들어간 원피스였다.

“음.....다녀...오겠습...니다?”

“응. 다녀와. 코에. 차 조심하고.”

아직 완벽하지 않는 한국말로 인사하며 학교로 떠나갔다. 엔과 코에를 보내고 난 뒤에는 나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나름 일을 하고 있는 몸이니까. 정기적인 일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이제는 직업이 되어버린, 글을 쓰는 작가가 내 직업이었다. 지금까지  7권의 책을 냈고 베스트셀러에는 들지 못했지만 나름 호평도 받았었다. 이번에 쓸 이야기는 내가 겪었던 일  하나를 소설로 풀어볼 생각이었다.

양치를 하고 씻은 뒤 책상에 앉고 펜을 쥐었다. 원고지보다는 노트에 쓰는게 편했다. 바깥에서 들어오는 햇빛이 많기에 따로 스탠드등 같은건 두지 않았다. 언제나  시간이 시작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주위가 조용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속에서 난  글자씩 글을 써내려갔다. 상상과 현실이 어루어진 나만의 이야기였다.





점심시간이었다. 글을 쓰면서 정신을 차리자 시계가 벌써 12시를 향하고 있었다. 벌써 이 시간이구나. 잠시 펜을 내려놓고 노트를 덮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냉장고를 열고 안에 무엇이 있을까, 살펴보았다. 그러던 중 남아있는 야채들과 소고기를 이용해 간단한 스튜를 만들어 먹기로 했다. 양파와 당근, 감자를 썰고 소고기도 먹기 한 입 크기로 잘라내었다. 프라이팬을 꺼내 기름을 둘러 마늘과 채소들을 볶고 고기를 구웠다. 마지막으로 버터와 밀가루를 꺼내 프라이팬 위에서 섞어준 뒤 저어주었다. 완성된 재료들로 냄비를 꺼내 소스를 만들고 볶아둔 채소들과 고기를 넣어 끓였다. 이로서 스튜가 완성되었는데 간단히 한  치고는 설거지할 것들이 많아져 버렸다. 다음부터는 밥을 먹기로 했다.

글을 쓰고 먹는 점심은 무척이나 맛있었다. 방금 만들어서 뜨겁기는 했지만 천천히 식혀가며 고기와 야채를 번갈아가며 먹었다. 스튜의 냄새가 부엌을 가득 채우며 맛있는 향기를 가득 채워나갔다.

‘야옹.’

그래서일까 지금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아젤리아가 어느새 나타나 내 무릎 위로 올라왔다. 숟가락질을 멈추고 아젤리아를 안아 들었다. 예전보다 살이 더  느낌이다.

“어디에 있다가 나타난거야. 배고프지?”

‘야옹’

나의 고양이는 항상 아침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언제나 모습을 숨기다가 점심, 배가 고플 때쯤이 되어서야 나타나기 일쑤였다. 잠시 테이블을 떠나 고양이 사료를 꺼내 밥그릇에 넣어주었다. 아젤리아는 바로 밥그릇으로 다가가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나중에 간식으로 츄르도 하나 주어야겠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설거지를 했다. 그러는 김에 청소기도 돌리고 잠시 창문을 열어 환기도 시키고 침대 위에 있는 이불도 먼지를 털어내었다. 커피포트에 물을 올려 데우고 찻잎을 하나 꺼내 잔에 넣고 글을 쓰면서 마실 차를 완성시킬 때쯤이면.

[다녀왔어!]

코에가 돌아오는 시간이 되었다. 코에는 집안에 들어오자마자 가방을 내려놓고 화장실에서 손을 씻은 뒤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서툰 한국어로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내게 얘기해주곤 하는데 오늘은  친구들과 함께 색종이를 가지고 여러가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친구들과 딱지도 쳐보고 종이비행기를 접어 시합도 했다고 한다. 나는 그런 순수한 어린아이들의 세계를 들으며 차를 식혔다.

이야기가 끝나면 코에는 TV를 보거나 책을 읽었고 난 다시 책상에 앉아 글을 써내려갔다. 이 일은 해가 저물어갈 때까지 이어졌고 따로 일이 없었는지 엔이 큰 목소리와 함께 돌아왔다. 해가 지며 밝은 노을빛이 집을 비출때면 그녀의 돌아오는 시간이었다.

“사라! 코에! 나왔어!”

집안으로 그녀의 목소리가 크게 퍼지며 꽤나 소란스러운 등장을 알렸다. 벌써 저녁 시간이 온 것이다. 글을 쓰던 노트를 덮고 책상을 정리하고 거실로 나섰다. 분명 아침까지만 해도 깔끔한 하얀색 블라우스를 입고 갔던 그녀인데 돌아왔을 때는 무슨 일이라도 있던건지 블라우스에 수만은 주름이 생기고 청바지는 끝이 너덜해져 있었다.

“엔, 옷이 왜 그래? 무슨 일이 있던거야?”

“아, 이거? 썩을놈 추격해서 도박장에 쳐들어가게 됐는데 거기서 대판 싸웠거든. 나름 중요한 단서를 들고 있던 놈이라. 하하!”

“어서 벗어. 다림질도 해야겠네.”

“미안! 일단 밥부터 줘.”

그녀가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저녁준비를 했다. 아침에는 빵을, 점심은 나 혼자 스튜였으니 저녁은 밥을 먹을 생각이었다. 전기밥솥에 남은 밥을 떠 담아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냉장고를 열어 치킨너겟을 꺼냈다. 코에와 엔이 정말 좋아하는 것이었다. 최근에 산 에어프라이기를 꺼내 그 안에 한 봉지 통째로 넣었다. 슬슬 튀겨지면서 냄새가 퍼질  코에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치킨!”

“응. 코에가 좋아하는 치킨이야.”

“치킨?!”

그 소리를 또 들은건지엔이 바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나를 확 끌어안으며 요리를 방해해왔다. 그녀는 항상 일을 끝내고 들어오면 나를 안으며 자신이 치료시간이라고 했다. 나도 싫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요리하는 시간에는 좀......

‘우웅! 우웅!’

밥과 다른 반찬들, 그리고 치킨너겟을 그릇에 담아 테이블에 옮겼을 때 강한 진동소리가 울렸다. 엔의 휴대폰이었다. 그녀는 갈아입은 핫팬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네, 성질머리 더럽고 싸움밖에 모르는 형사 엔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자신을 소개하는 말은 이러했다. 예전, 그녀가 근무하는 경찰서를 방문했을  나를 보면서 어떻게 엔과 친구를 했냐는 말을 자주 들었었다. 성격과 행동이 모두 반대라면서.

“뭐?! 그 새끼가? 확실해?”

젓가락으로 치킨너겟을 잡으려다가 멈추었다. 그녀는 무슨 일이라도 터진 것인지 급히 테이블을 떠나 지금 차림에서 후드 자켓 하나만을 걸치고 나가려 했다. 다행히 잠옷위에 걸칠  아니었다.

“사라, 정말 미안한데, 내일 저녁까지는 못들어올  같아.”

“급한 일이야?”

“어, 상당히. 진짜 미안!”

“조심히 다녀와.”

그녀는 내게 사과의 말과 함께 나가버렸다. 처음에는 속상했지만 직업과 일의 강도를 생각해본다면 어쩔  없었고 이제는 많이 익숙해진 참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쪽이 아쉬웠다. 제대로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할 때마다 떠나갔으니 말이다.

“언......니?”

코에가 불렀다. 잠시 멍하니 있고 말았다.

“아, 우리끼리 먹자.”

“응.”

엔의 젓가락과 숟가락을 가지런히 해놓고 치킨너겟과 함께 밥을 먹었다. 엔의 것까지 하는 바람에 너무 많아서 결국에는 남겨야 했다. 용기에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나중에라도 돌아와서 데워먹기를 바랬다.

저녁을 먹은 뒤에는 테이블을 정리하고 코에와 함께 샤워실로 들어가 씻었다. 작은 등을 밀어주고 욕탕에 물을 받아서 잠시동안 몸을 담궜다. 따듯한 온기와 함께 피곤함이 씻겨져 내려갔다. 이후 나는 코에와 함께 TV를 보다가 잠에 들었다.

이번 아침에는 나 혼자 일어나야 했다. 엔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휴대폰을 열어보니 메시지 하나가 들어와 있었다. 범인을 잡았고 오늘 점심쯤에 돌아온다는 내용이었다. 다행히 큰 일을 당한 건 아닌 모양이었다. 속으로 안심을 하며 침대 밖으로 나와 아침 준비를 시작했다.

어제처럼 토스트기에 빵을 넣어굽고 계란프라이와 베이컨 대신 시리얼을 준비했다. 너무 차갑지 않도록 우유를 약간만 데우고 코에를 깨웠다.

“아침이야, 코에.”

[응......]

주말, 코에의 학교도 쉬는 날. 오늘은 근처라도 나가볼까. 이제 따뜻한 봄이 된 만큼 꽃이 펴서 구경할 곳도 분명 많을 테니까.

졸린 눈을 풀지 못하는 코에를 간단히 씻기고 테이블에 앉혀 숟가락을 쥐어주었다. 천천히, 시리얼과 함께 빵을 먹어갔다. 아침을 먹고 난 후에는 바로 책상에 앉았다. 노트를 펼치고 펜을 쥐고서 어제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코에는 TV를 보다가 정원에 나가 키우고 있는 꽃들에게 물을 주고 어떻게 찾았는지 아젤리아를 데리고서 놀기 시작했다.

“사라!”

그리고 시간이 지나 문이 강하게 열리더니 또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온 엔이 신발을 대충 벗어던지며 들어왔다. 그러면서 날 강하게 끌어안았는데 땀 냄새가 진했다.

“엔! 다친 곳은 없는거지?”

“저번처럼 총쏘는 거지들은 없었어. 편하게 싸그리 조져버리고 왔지!”

그녀는 이어서 옷도 벗어던진  샤워실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갈아입을 옷을 미리 준비해주고 마침 준비하려던 점심을 만들어갔다. 코에도 엔이 돌아온 것을 보고 그녀가 샤워실에서 나오자마자 아젤리아를 데리고서 다가갔다.

[그놈은 어디서 찾았냐? 꼬맹아.]

[오늘은 아줌마 컴퓨터 뒤에 있었어.]

[이 고양이, 자꾸 이상한데 들어가네.]

둘이서 일본어로 간단히 대화를 나누고 테이블 의자에 앉았다. 둘을 맞이하며 요리한 음식들을 테이블 위에 두고 포크들을 가져다주었다. 오늘 점심은 베이컨 토마토 스파게티였다. 면과 재료들을 따로 사와 수제로 만든 것이었다. 엔과 코에, 둘 모두  스파게티를 좋아해 주었다.

“엔. 우리 오늘 밖에 나가지 않을래?”

“밖에? 음......쉬고 싶기는 한데.”

“아차, 막 돌아왔었지. 미안해.”

날씨가 좋고 오랜만에 맞이하는 주말이라 잊고 있었다. 그녀는 형사였고 어제도 급하게 끌려갔다가 방금 돌아온 참이었다. 분명 쉬고 싶을 것이다.

“아냐, 나가자. 갔다가 돌아와서 쉬면 되겠지.”

“괜찮겠어?”

“괜찮아. 어차피 남는거 체력이고 혹시나 잠에 빠져서 내가 연락 안받으면 직접 데리러 오겠지 뭐.”

“왠지 미안해져서.”

“이거 먹고 바로 나가자. 어디 가고 싶어?”

“봄이니까 꽃을 보고 싶어.”

“그럼 차타고 가야겠네. 공원이라도 가면 되겠다.”

“응! 코에, 들었지? 공원에 가보자.”

“공원, 좋아!”

우리는 점심을 먹고 간단히 집안 청소를 한 뒤 준비에 나섰다. 코에에게는 봄 외출용으로 원피스와 그 위에 카디건을 걸쳐주었고 엔은 편하다고 잔뜩 장만해놓은 청바지와 얇은 코트를 입었다. 나는 프릴이 달린 하얀 셔츠와 함께 갈색의 치마, 짧은 재킷을 걸쳐 입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자동차에 올랐고 공원으로 출발했다. 따뜻하고, 꽃이 펴서 예쁜 풍경이 가득한 곳에서 코에가 뛰놀고 엔이 쫓아가고 나는 뒤에서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풍경과 어울려진 그 사진 속에서 코에와 엔이 정말 밝은 미소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꿈이었다.



숲속은 그야말로 그림자 천지였다. 보기보다 상당히 높은 나무들이 우뚝 솓아 햇빛을 가리다시피 했다. 몇 번 임무 때문에 정글에 들어가보기도 했었고  유명하다던 벨로베즈스카야 숲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한국에 이런 숲이 있다는 것부터가 참 신기했다. 아무튼 들어가자마자 손에는 권총을 쥐고서 걸음을 천천히 했다. 나무 밑보다는 위쪽을 주시하면서 가지를 타고 이동하거나 나무에 오른 흔적들이 있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보통 숲이라면 새들이 지저귀거나 해야하는데 그런 것도 있지 않았다. 마치 다 떠난  마냥 숲은 조용했고 이쯤되니 정말로 창호가 말한 것처럼 멧돼지나 고라니만이 남았다는 말이 신뢰가기 시작했다. 아니, 멧돼지도 정상적인 놈은 아니었으니까 이것도 빼야하나? 모르겠다.

숲에 들어선지 30분, 잠시 걸음을 쉬었다. 앉지는 않았고 나무에만 기대었다. 그러면서도 시야는 가능한 윗쪽에 두었다.

“하, 시발. 존나 조용하네.”

조용했다. 그것도 엄청나게. 고작 들리는 것이라고는 바람소리가 전부였다. 처음 사라가 숲 쪽에서 소리가 들려온다고 했을때, 정말 신기했었다. 나름 숲에서도 여러 잡음들이 섞여있을 텐데 어떻게 들은 걸까 하고. 그런데 막상 까보니 충분한 가능성이 보였다. 조용하니까.

숲을 보니 명령을 받고 나섰던 추격전이 떠올랐다. 참고로 그때는 삼촌의 밑이 아니었다. 케이니가 날 팔아치우고 목줄을 차고서 강제적으로 소속하게 되었던 마피아 집단 밑이었는데 당시 내 목숨을 담보로 쥐고 있어서 개같지만 명령을 들을 수 밖에 없던 입장이었다. 그리고 그 추격전을 벌였던 장소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정도로 원시림이었던 벨로베즈스카야 숲이었다.

당시 마피아 조직원 중 한 개새끼가 중요한 시약품을 들고 튀었었고 그걸 쫓는게 내 임무였었다. 잡아야할 상대방의 싸움실력과 위험도는 병신이었지만 숲 덕분에 추격에 고생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아빠새끼랑 삼촌한테 배운것들을 써가면서도 말이다. 나뭇가지와 땅을 살펴보면서 어느 방향으로 갔나, 어디쪽으로 튀었을까 하며 꼬박 이틀동안 지랄을 했었고 결과적으로는 잡았지만 과정이 존나게 좆같았다는게 거지였다.

지금도 그럴것 같았다. 숲이 예상 밖으로 쩔어주는 덕분에 말이다. 만약 수색하다가 단서고 뭐고 제대로 발견되는게 없다면 이대로 돌아가 하루 버티고 잔해를 치우자마자 빠르게 떠날 생각이었다. 어쩌면 잔해를 치우다가 만날지도 모르지. 시발.

다시 일어나서 숲을 거닐었다. 10분 정도는 쉬었을까, 그림자가 더 짙어져가는 느낌이었다. 신발에는 흙과 떨어져 있던 잔풀들이 묻어갔고 가지들을 밟으며 지나가는 소리가 울렸다.  숲은 지금 나 혼자만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치 ‘사건’ 이후의 나처럼 말이다. 그래서 뭐랄까, 오랜만에 다른 느낌의 편안함을 느꼈다. 그 어두운 방에 갇혀 벌레들을 씹어먹으며 버텼던 때와 다르게 그저 조용한, 마치 한 번 죽었을 때의 그 편안함 말이다.

그 일이 있고난 후 여러모로 생각하고 있었다. 죽다 살아나는 것 말고 내 몸의 또다른 변화는 없는지, 왜 작은 상처들은 빠르게 치료되지 않는지. 아직까지는 노란색의 눈동자로 변한 것 말고는 변화가 없어서 딱히 신경을 쓰고 있지 않다만 걱정되는 부분도 적지않아 있기는 했다. 혹여나 나도 돌연변이 동물새끼들처럼 변해 사라를 다치게 하지는 않을까 하면서.

얼마나 걸었을까, 물소리가 들려왔다. 작은 물소리였다. 나는 그 소리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사라가 들었다는 소리의 주인이 생물체라면 강에서 물 정도는 마신 흔적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만을 생각하며 다다른 강은, 아니 강이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한 크기. 하지만 동물들이 충분히 물을 마실 수 있을 만한 정도의 규모였다. 그리고 적중했다며 벌써 흔적을 하나 찾을 수 있었다. 발자국, 그것도 작은게 아니었다. 내 손바닥보다두 배는 큰 발자국이었다. 절대 멧돼지나 고라니의 것들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 맹수들이 살고 있다 하더라고 절대 호랑이 사자의 것들도 아니었다. 그만큼 기괴한 모양의 발자국이라는 것이다.

권총을 들고 천천히 그 발자국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가까이서 확인했다. 찍혀있는 발자국에 손가락으로 보이는 부분만 7개였다. 거기다 곰처럼 뭉터기도 아니고 모두 가느다랗게 찍혀있었다. 마치 검의 날을 가져다가 찍어놓은 것처럼. 거기에 내 손을 잠시 대보자 두 배보다 약간 더  크기였다. 아무래도 골때리는 상황이  것 같았다. 일어서서 이 발자국을 기점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횡재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수없이 지나쳐왔던 나무들에서는 보지 못했었던, 여기저기가 긁혀 속살을 내비치고 있는 나무 몇몇개가 있었다. 이곳에서 물을 마신게 하루 이틀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고민에 들었다. 이대로 바짝 쫓을까? 사라에게 돌아갈 시간은 충분히 있었지만  이놈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무언가가 있다는 흔적을 찾은 것이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단서를 찾을 것은 아니었다. 거기다 지금 이 발자국만 봐도 위험한 놈일것은 뻔했다. 돌연변이? 크립톤?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멈추고 일단 돌아가자니 일정에 차질이라기보다는 잔해를 치울때가 문제였다. 어제와 오늘은 훑어만 보고 갔다고 쳐도 내일까지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처리하려면 지금이 제격이었다. 그래야 안심하고 내일 잔해를 걱정없이 치울 수 있겠지. 아니면  좋게 만나지 않고 슬쩍 떠나가거나.

“하, 시발. 세월.”

여전히 난  없는 팔을 탓했다. 두 팔이 다 붙어있었다면  괴물새끼가 어떤 존재인지 몰라도 망설임 없이 한 번 붙어볼 생각쯤은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붙어있는건 한 팔뿐이었고 무기도 사용할 수 있는게 권총과 나이프가 전부였으며 한  죽다 살아나기는 했지만 이번에도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부웅.’

“......”

마침 어떤쪽으로든 고민의 종지부를 찍어야 했는데 대신 해결해줄 친구가 나타났다. 내 앞에, 아니, 정확히는 강 건너편 나무 위에 그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초면부터 평가하자면 아주좆같이도 생겼다는 것이다. 그 흉측했던 체이스벳은 그래도 박쥐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매드독은 완전히 똥개였으며 살호도 크립톤이긴 했지만 이름에 맞게 여우의 모습을, 여기 멧돼지도 공격하는 방식만 바뀌었지 분명히 멧돼지였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서, 자신의 눈으로 날 보고 있는 저 발자국의 주인은 무슨 잡것을 넣고 짬뽕이라도 우려낸 것인지 모습이 상당했다.

예상했던대로 큰 앞발이었다. 손바닥은 곰발바닥이랑 비슷했는데 발톱부분은 내가 사용했었던 환도같이 길고 강해보였으며 나무를 잡기 위해 발달이 된건지 부분마다 마디들이 있어 자신이 타고 있는 나무를  손으로 움켜잡아 타고 있었다. 다리는 호랑이처럼 굵직하기 보다는 원숭이 팔과 유사하게 길고 흐느적거렸고 제일 꼴보기 싫은 대가리는 부엉이 대가리였다. 아, 그런데 또 입은 부엉이 부리가 아니고 문어 입처럼 동그란 모양에 뾰쪽한 이빨들이 역겨울 정도로 붙어있었다. 날개는 없었다. 대신 끝에 무슨 용도인지 용액같은 것이  있는 뾰족한 꼬리가  있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시발, 좆됐네.”

‘부우웅?’

 음을 높이며 우는 저 괴물, 잡탕새끼는 나를 보고도 가만히 있었는데 뭔가를 관찰하는 느낌이 강했다. 시선은 내게 유지한 채 머리를 이리저리 진짜 부엉이처럼 움직여댔다. 당장 급습할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한 발 물러나야 하나, 아니면 선빵부터 쳐야하나. 나의 선택은.

‘치에에엑!’

선택이고 나발이고 바로 몸을 숙여야 했다. 잡탕이 갑자기 자신의 입을 벌리며 숲을 울릴 정도로 울어재끼더니 나를 향해서 뛰어 내려오는 것이었다. 발톱은 당장 나를 죽일 기세로. 아슬아슬하게 그 발톱은 애꿎은 내 머리카락을 일부 자르는데 그쳤다.

“선빵필승 좆같네.”

바로 권총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망할 잡탕을 향해 겨누고서 한 발, 쏘았다.

‘탕!’

총알이 향할 곳은 대가리였지만 순간 몸을 뒤트는 바람에 다른 곳에 맞게 되었다. 잡탕은 곧장 자리에서 점프하고 이리저리 나무들을 타고 올라가 옮겨다니며 내가 맞출 수 없게 조준을 엉망으로 만들어갔다.

“그런다고 못 쏠것 같냐?!”

물론 나도 멍청이는 아니었다. 눈으로 모든 집중을 쏟아붙고 저 놈이 어떤 나무에서 어떤 나무로 옮겨타는지 대충 동선을 읽는데 집중했다. 그리고 하나, 읽어낸 동선의 끝의 나무에 먼저 조준을 가져다놓았다. 잡탕이   나무에 안착하려던 때 방아쇠를 당겨주었다. 두 번째 총알이 빠르게 날아가 머리는 아니지만 운좋게 다리를 맞추는데 성공했다.

‘츠에에!’

괴물은  하나를 허우적대면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놓치지 않고서 방아쇠를 이어 당겼다. 한 번에 쳐박을  있는 피해는 모두  생각이었다.

‘탕, 탕, 탕, 탕!’

4발 째를 쐈을 때, 놈이 급히 몸을 일으키더니 다시 나무를 타는데 집중했다. 나의 윗쪽에서 시끄럽게 움직이며 귀찮다고 느껴질 정도로.  동선을 읽어내야 했다. 다시 눈에 모든 집중력을 쏟아부으면서 어디 나무로 옮겨탈지 지켜보는 가운데, 당하고 말았다. 다른 나무로 옮겨가는 척 몸을 뒤틀며 미리 가져가려던 조준을 헛탕으로 만들더니 내게로 달려든 것이다.

“개새끼가.”

빠르게 몸을 뒤로 던졌다. 조금만 늦었어도 저 발톱에 내 심장이 뜯기거나 입에 머리를 뜯겼을 것이다.

“넌 좀 다르다 이거냐?!”

날 당황하게 만든 것에 빡쳐서 다시 총을 갈겨대려 했는데 이미 또 나무에 올라탄 이후였다. 이제 동선을 읽는 것에 이어서 저 잡탕이 사기 치려는 것까지 읽어내야 했다. 기껏 해봐야 멍청한 돌연변이 새끼라고 생각했는데 나름 머리 좀 쓴다는 것이다.

나무들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그림자들을 이리저리 움직여다. 계속 밝았다가 어둡다가 해서 눈이 좀 아프기는 했지만 이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른게 문제지. 저 꼬리, 아직까지는 사용하지 않았는데 어떤 식으로 나올지 모르니까.

동선을 읽어내면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권총을 집어넣었다. 아까까지 계속 쏘면서 느낀 건데 총알이 박힌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그나마 나무에서 떨어트린 것도 운좋게 다리가 맞아서 그런거지 이런식으로 빨리 움직이는 괴물의 얇은 다리를 다시 맞출 자신은 없었다. 최소한 가만히라도 있으면 몰라. 대신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검은색의 날이 매서운 나이프. 주환에게 받고 잔해를 치우는데 쓰다가 이제 처음으로  목적으로 사용해보게 되었다. 잡탕은 내가 나이프를 들자마자 나무 옮겨다니는 것을 멈추고 좆같은 눈으로  쳐다보았다. 마치 총과 칼에 대해 아는  같았다.

‘부웅?’

그리고 아까처럼 끝 울음소리를 올리며 궁금해하는 눈치를 보이고 있었다.

“뭘 봐, 시발아. 아까처럼 달려들어봐. 꼬추는 있나 한  확인해보게!”

‘츠에에엑!’

일부러 큰 목소리로 도발했다. 그 덕분인지 잡탕도 흥분하며 내게 달려들어 왔다. 여전히 빠른 속도였지만  번이나 봤기에 충분히 반응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칼조차도 빼들지 않았을 것이다. 괴물의 앞발톱이 내게 닿기 직전, 몸을 숙였다. 그리고 내 위를 지나 자신의 배를 보여줄, 이때만은 노렸다.

‘푹.’

나이프를  쥐고 배에 꽂은 뒤 녀석이 돌진해오던 힘까지 이용해서 갈라버릴 생각이었다. 일단 배를 찌르는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예기치 못한 문제를 겪게 되었다. 갈라버리기는커녕 잡탕의 돌진해오던 힘을 이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끌려가고 말았다. 그대로 녀석의 배에  번 깔아 뭉개져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고 더 달려들었다. 녀석이 발톱을 쓰기전에 찌른 칼을 그대로 깊이, 더 깊이 쑤셔주었다.

‘에에엑!’

다른 울음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그러면서 발톱을 움직였다. 급히 칼을 빼고 뒤로 몸을 던져 피하기는 했지만 상처를 피할  없었다.  팔이 없는 왼쪽 어깨를 청자켓과 함께 긁히고 말았다. 피가 튀는건 덤이었다.

“시발, 이건 남색도 아니라서 존나 선명하게 남는데.”

‘츠에에에에엑!’

배를 찌른 공격은 역시 잘 먹혀들어갔다. 일단 이 녀석도 동물쪽이기는 하니까. 거대 매드독을 잡을 때도 배를 조져야 제대로 공격이 들어갔었다. 마지막은 머리를 터트려 장식하기는 했어도 배는 좋은 타격점이었다.

“계속해볼까? 잡탕아.”

‘부우웅!’

이어서 싸움을 계속하려 했는데 잡탕이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 자세도 잡기 전이었지만  감이  망할새끼가 튈거라고 다급히 말하고 있었다. 느낌이 좋지 않아서 나이프를 잠시 땅바닥에 꽂고 바로 권총을 꺼내 여러발 쏘았다.

“가도 꼬추는 내놓고가, 시발아! 좋은 딜도로 바꿔줄게.”

총알이 박히면서 잡탕은 점프의 타이밍을 놓쳤고 그걸 노리고서 다시 나이프를 가져들고 이번에는 내가 달려들었다. 녀석이 입을 벌리며 앞발 하나를 휘둘렀다. 마디들이 펴지면서 발톱은 진짜 환도같이 보였다. 바닥으로 미끄러지듯 몸을 던져 피하고 검은색의 날로 잡탕의 앞다리를 베어버렸다. 얇은 다리라 쉽게 잘라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쉽게도 상처를 주는 것에서 그쳤다. 그래서 더욱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엉덩이를 붙였던 바닥에서 일어나 나이프를 뒤로 휘둘렀다. 끝이 잡탕의 목을 향했다.

“언제 사용하나 했다.”

찔렸으면 했는데 난 몸을 뒤로 내빼야 했다. 드디어 지금까지 가만히만 있던 꼬리를 사용한 것이다. 정확히  손목을 찌르려 했었다. 다행히 나도 꼬리를 계속 신경쓰고 있던 덕분에 피하는건 어렵지 않았다. 다만 난이도가 더 상승했다는 것은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지금도 충분히 좆같은데 더 좆같아졌다는 소리니까.

내가 물러나자마자 다시 나무에 올랐다. 자, 공격? 방어? 어느쪽일지 몰라 나이프를  쥐었다. 그러다가 다시, 급하게 권총을 빼들어야 했다. 아예 나에게서 벗어나려 몸을 틀어버린 것이다. 총구를 올리고 움직이는 그놈에게 쏴재꼈지만 맞지 않았다. 나무들 때문에 총알들이 엉뚱한 나무에만 쳐박혀버렸다.

“......세상 시발, 짬뽕같은 세상.”

바로 내달렸다. 지금  괴물이 도망가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게 느껴져 왔다. 진짜 그냥 감이었다. 동시에 저 잡탕을 여기서 보내면 안된다는 것도 느껴져 왔다. 그래서 내달렸다. 나무를 타고 다니는 놈을 내 달리는 속도로 잡을 수 있기야 하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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